ㆍ·현재 집값 거품시기의 3분의 1로 추락
ㆍ·‘2019년 재폭락’ 괴담도
지난달 12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杉竝)구 주택가.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로 중산층에게 인기있는 지역이다. 세이부신주쿠(西武新宿)선 전철의 이오기(井荻)역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든지 3분도 되지 않아 비어있는 단독주택이 나타났다. 몇년간 방치된 듯 유령의집을 방불케 했다. 우편함에는 누렇게 썩은 전단지가 가득했다. 인근 2층 주택도 커튼이 모두 뜯겨나가 창문을 통해 폐허상태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이 일대에서 빈집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오기역에서 시모이구사(下井草)역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10가구 규모의 소형아파트는 절반이 빈집이었다. 스기나미구의 빈집 비율은 10%에 달한다. 서민지역인 가쓰시카(葛飾)구 역시 빈집문제가 심각했다. 지하철 지요다(千代田)선의 아야세(綾瀨)역에서 15분 가량 떨어진 3층 아파트의 12가구 중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3가구 뿐이었다.
■현재 집값 거품시기의 3분의 1로 추락
일본은 이미 ‘빈집 대국’이다. 일본 전역의 빈집 수는 2013년 820만채를 넘어섰다. 전체 주택의 13.5%, 7채 가운데 1채가 빈집이고, 연간 약 20만채씩 늘어나고 있다. 지방은 훨씬 심각하다. 빈집 비율이 14.8%에 달하는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JR전철역에서 10분 거리의 주택가가 빈집 투성이여서 골목길 1㎞ 구간을 걷는 동안 10채가 넘는 빈집이 목격됐다. 지난 7일 찾은 이 거리의 빈집들은 벽 외장재가 떨어져 나가거나 부식됐고, 잡초와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어떤 집은 현관에 법원의 압류딱지가 붙어 있다. 이곳 주민은 “자녀들이 대도시로 나가 있으니 집주인이 사망하면 바로 빈집이 된다. 내놔도 팔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시카와현의 현청소재지 가나자와(金澤)시, 온천으로 유명한 군마(群馬)현 구사쓰(草津) 주택가 등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빈집은 일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도성장기였던 1960~1970년대 일본에서는 ‘마이홈’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소득과 부동산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일본인들은 앞다퉈 빚을 내 집을 장만했다. 70년대 일본판 국토균형개발정책인 ‘일본열도개조론’은 토지 투기를 불러일으켜 땅값 폭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부동산 가격은 3.5배 급등했다.
하지만 1990년대초 부동산·주식 거품이 붕괴되면서 주택가격은 속락했다. 이어 90년대 중반 핵심인구층인 생산가능인구(15~64세)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부동산 시세는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거품시기 돈을 빌려 집을 장만했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나 노숙자가 속출했다. 80년대 대도시 근교에 집을 장만했지만 9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붕괴로 도심 땅값이 내리자 성장한 자녀들이 대도시로 이주했다. 노인부부가 덩그러니 집을 지키다 숨지면 빈집이 돼버린다. 도쿄 부동산중개업자 기하라 다카아키(木原孝明)는 “역이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 생활편의시설에서 먼 빈집은 방치할 수 밖에 없다. 집을 철거해 공터로 놔둘 경우 세금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빈집이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빈집대책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오랜 시간 방치돼 붕괴 등의 위험이 있는 빈집을 지자체가 강제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집값이 묘지값보다 싼 곳도 등장
2012년 집권한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과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 유치의 영향으로 도쿄 도심 등의 부동산 가격이 뛰었고 전국 평균으로도 지가가 올랐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집값이 제자리 걸음을 할 뿐아니라 매기도 없다. 도쿄에서 비교적 가깝고 온천과 스키 휴양지로 유명한 니가타(新潟)현 유자와(湯澤)의 리조트 아파트는 수천만엔(수억원)하던 가격이 최근 10만엔(100만원)까지 폭락했지만 고정자산세와 관리비 부담에 거래가 끊긴 상태다. 부동산 전문가 쇼지 다마오(庄司玉緖)는 “고령화 속에 빈집이 늘어나면서 택지가격이 묘지가격보다 싼 지역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의 빈집이 2033년에는 전체의 30.5%(2147만채), 2040년에는 4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전역의 주택 절반이 빈집이 된다는 뜻이다. 인구감소 추세가 지속되는 한 일본 전역이 ‘고스트타운’으로 변모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지게 된다.
■‘2019년 재폭락’ 괴담도
일본 부동산 업계에서는 ‘2019년 집값폭락 괴담’이 돌고 있다. 일본의 가구수는 2019년 5307만 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간 인구가 줄었어도 1인 가구 증가로 증가하던 전체 가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주택수요도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베노믹스’가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이 2020년 올림픽 개최이후 꺼지면서 90년대를 방불케 하는 폭락세가 재연될 거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올림픽 이전에 팔고 나가야 하는지’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2013년 무렵부터 수익성 부동산을 집중 매입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2019년 무렵에 대거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본 세법상 5년이상 보유할 경우 매도시 세부담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인구감소에 따른 리스크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닛세이기초연구소 마쓰무라 토오루(松村徹)부동산연구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가격의 기술적인 등락은 있지만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변화가 근저에 깔려 있는 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ㆍ·‘2019년 재폭락’ 괴담도
지난달 12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杉竝)구 주택가.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로 중산층에게 인기있는 지역이다. 세이부신주쿠(西武新宿)선 전철의 이오기(井荻)역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든지 3분도 되지 않아 비어있는 단독주택이 나타났다. 몇년간 방치된 듯 유령의집을 방불케 했다. 우편함에는 누렇게 썩은 전단지가 가득했다. 인근 2층 주택도 커튼이 모두 뜯겨나가 창문을 통해 폐허상태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이 일대에서 빈집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오기역에서 시모이구사(下井草)역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10가구 규모의 소형아파트는 절반이 빈집이었다. 스기나미구의 빈집 비율은 10%에 달한다. 서민지역인 가쓰시카(葛飾)구 역시 빈집문제가 심각했다. 지하철 지요다(千代田)선의 아야세(綾瀨)역에서 15분 가량 떨어진 3층 아파트의 12가구 중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3가구 뿐이었다.
일본 도쿄(東京)도 스기나미(杉竝)구 주택가에 있는 빈집. 스기나미의 주택 가운데 10% 정도가 비어있다. 도쿄/윤희일 특파원
■현재 집값 거품시기의 3분의 1로 추락
일본은 이미 ‘빈집 대국’이다. 일본 전역의 빈집 수는 2013년 820만채를 넘어섰다. 전체 주택의 13.5%, 7채 가운데 1채가 빈집이고, 연간 약 20만채씩 늘어나고 있다. 지방은 훨씬 심각하다. 빈집 비율이 14.8%에 달하는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JR전철역에서 10분 거리의 주택가가 빈집 투성이여서 골목길 1㎞ 구간을 걷는 동안 10채가 넘는 빈집이 목격됐다. 지난 7일 찾은 이 거리의 빈집들은 벽 외장재가 떨어져 나가거나 부식됐고, 잡초와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어떤 집은 현관에 법원의 압류딱지가 붙어 있다. 이곳 주민은 “자녀들이 대도시로 나가 있으니 집주인이 사망하면 바로 빈집이 된다. 내놔도 팔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시카와현의 현청소재지 가나자와(金澤)시, 온천으로 유명한 군마(群馬)현 구사쓰(草津) 주택가 등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빈집은 일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주택가에 있는 빈집. 이시카와현 지역의 주택 가운데 15% 정도가 빈집이다. 이시카와/윤희일 특파원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 군마(群馬)현 아가쓰마(吾妻)군 구사쓰(草津)정의 주택가에 있는 빈집. 유명 온천지인 이곳도 빈집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군마/윤희일 특파원
고도성장기였던 1960~1970년대 일본에서는 ‘마이홈’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소득과 부동산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일본인들은 앞다퉈 빚을 내 집을 장만했다. 70년대 일본판 국토균형개발정책인 ‘일본열도개조론’은 토지 투기를 불러일으켜 땅값 폭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부동산 가격은 3.5배 급등했다.
하지만 1990년대초 부동산·주식 거품이 붕괴되면서 주택가격은 속락했다. 이어 90년대 중반 핵심인구층인 생산가능인구(15~64세)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부동산 시세는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거품시기 돈을 빌려 집을 장만했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자살하는 이나 노숙자가 속출했다. 80년대 대도시 근교에 집을 장만했지만 90년대 이후 부동산 거품붕괴로 도심 땅값이 내리자 성장한 자녀들이 대도시로 이주했다. 노인부부가 덩그러니 집을 지키다 숨지면 빈집이 돼버린다. 도쿄 부동산중개업자 기하라 다카아키(木原孝明)는 “역이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 생활편의시설에서 먼 빈집은 방치할 수 밖에 없다. 집을 철거해 공터로 놔둘 경우 세금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빈집이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빈집대책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오랜 시간 방치돼 붕괴 등의 위험이 있는 빈집을 지자체가 강제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집값이 묘지값보다 싼 곳도 등장
2012년 집권한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과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 유치의 영향으로 도쿄 도심 등의 부동산 가격이 뛰었고 전국 평균으로도 지가가 올랐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집값이 제자리 걸음을 할 뿐아니라 매기도 없다. 도쿄에서 비교적 가깝고 온천과 스키 휴양지로 유명한 니가타(新潟)현 유자와(湯澤)의 리조트 아파트는 수천만엔(수억원)하던 가격이 최근 10만엔(100만원)까지 폭락했지만 고정자산세와 관리비 부담에 거래가 끊긴 상태다. 부동산 전문가 쇼지 다마오(庄司玉緖)는 “고령화 속에 빈집이 늘어나면서 택지가격이 묘지가격보다 싼 지역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의 빈집이 2033년에는 전체의 30.5%(2147만채), 2040년에는 4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전역의 주택 절반이 빈집이 된다는 뜻이다. 인구감소 추세가 지속되는 한 일본 전역이 ‘고스트타운’으로 변모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지게 된다.
■‘2019년 재폭락’ 괴담도
일본 부동산 업계에서는 ‘2019년 집값폭락 괴담’이 돌고 있다. 일본의 가구수는 2019년 5307만 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간 인구가 줄었어도 1인 가구 증가로 증가하던 전체 가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주택수요도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베노믹스’가 만들어낸 부동산 거품이 2020년 올림픽 개최이후 꺼지면서 90년대를 방불케 하는 폭락세가 재연될 거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올림픽 이전에 팔고 나가야 하는지’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2013년 무렵부터 수익성 부동산을 집중 매입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2019년 무렵에 대거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본 세법상 5년이상 보유할 경우 매도시 세부담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인구감소에 따른 리스크임은 부정할 수 없다. 닛세이기초연구소 마쓰무라 토오루(松村徹)부동산연구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가격의 기술적인 등락은 있지만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변화가 근저에 깔려 있는 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도쿄|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