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기존에 살던 집을 구하던 무렵만 해도 이렇게까지 전세 매물이 없지는 않았다. 가격이 조금 맞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전세 매물은 끊임없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현재, 그마저도 씨가 말랐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다양한 집을 보았다. 아파트, 빌라 등.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신축 빌라였다. 120세대 정도의 작지 않은 단지였고, 이제 막 완공을 해서 집주인들이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기 시작한 터였다. 부동산을 통해 알아보니 다른 매물들처럼 집주인 대부분은 월세를 희망하고 있었다. 전세가 나오면 연락을 달라 해놓은 지 며칠 후, 전세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곳과 계약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전세를 계약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등기부등본이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집의 소유자가 정확한지, 집에 대한 저당이 설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전세를 얻게 되면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세 계약을 하기 전, 관할 등기소에서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는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약하려던 집의 분양가는 1억 7000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그 집의 전세 가격은 1억 2000만원. 그러나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한 그 집의 부채는 1억 5600만원이었다. 집주인은 1억 7000만원의 집을 구매하기 위해 1억 6000만원 가량의 빚을 진 것이었다. 세입자보다 자산이 부족한 집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수도권 외곽의 주거지로 개발되고 있는 지역을 돌다보면 흔히 마주치는 게 '내 집 마련 500만원부터', 혹은 '내 집 마련 1000만원부터'라는 현수막들이다. 이전까지는 별 관심없이 지나치던 현수막이지만, 그날 알았다. 이렇게 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집 역시 그랬구나라는 사실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부동산 거품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과는 관계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고 있었다. 건축업자가 구매자에게 금융사를 연결시켜주면 금융사가 구매자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익을 얻는 구조였다. 구매자는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 손실을 매우기 위해 월세를 놓고 있는 것이었다. 금리가 이렇게나 떨어진 시대에서 전세금으로 이자 손실을 매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월세가 늘어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본 이상 저 집을 계약할 수는 없었다. 폭탄은 언제 터져도 터지기 마련. 그런 폭탄을 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른 집을 계약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평탄치는 않았다. 직장 생활 7년차 나름 모으고 모았지만, 전세금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금액을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고,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첫 빚을 지게 되었다.
30대 직장인, 7년 이상 저축을 꾸준히 했고, 큰 지출이나 낭비도 없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없었다. 그건 아마 대한민국 30대 누구나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은 빚을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첫 빚을 지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집으로 인해 나의 첫 가계부채가 생겼다. 매달 나가는 이자, 12달을 합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 내 통장에서 은행으로 넘어가게 된다. 문득 전세 계약 직전까지 갔던 그 집의 주인은 어떻게 돈을 갚아나갈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수많은 현수막에 현혹되어 집을 구매하게 된, 그리고 구매하게 될 사람들도 어떻게 돈을 갚아나갈지 궁금했다. 그리고, 답답해졌다.
우리 모두 폭탄 하나씩을 든 셈이었다.
언젠가 터질 폭탄을.
폭탄이 터지면 책임은 누가 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