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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의 죽음, 일본 변화의 서막을 열다.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7. 1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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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물꼬

 

아베 신조의 돌연한 죽음으로서 일본은 거대한 변화의 서막을 열었다.

 

어떤 까닭에서 거대한 변화의 서막이라고 하는가? 이 점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니 너무나도 막막하다.

 

그 淵源(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것 같으면 1185년에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 체제 이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물줄기가 너무나도 면면하고 그 사이에 이런저런 支流(지류)가 워낙 복잡다단해서 사흘간 뜸을 들였다. 설득력 있게 얘기하려면 최소한 장문의 논문 한 편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아예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아베 신조 사건의 배경에 놓인 여러 일들

 

 

그냥 관련된 주요 단어와 주제들만 나열해둔다.

 

오래 전의 일로서 헤이안 시대의 院政(원정, 인세이), 法皇(법황), 가마쿠라 막부, 大名(대명, 다이묘), 정이대장군, 줄여서 將軍(장군,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직이었던 關白(관백, 칸파쿠)라는 독특한 명칭의 뉘앙스.

 

근대화 시절부터 보면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의 내항, 이른바 黑線來航(흑선래항), 1867년의 막부 해체와 大政奉還(대정봉환), 왕정복고, 華族(화족)과 財閥(재벌), 1890년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해서 만든 대일본제국 헌법 안의 천황에 대한 권리 규정, 1910-1920년대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그 이후 軍國主義(군국주의)의 발로, 일제의 침략전쟁,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전.

 

현대사에서 주요한 일들은 다음과 같다.

 

미군 지배하의 전후체제, 1946년 천황제의 존치와 헌법 수정(평화헌법), 일본 내 공산당의 발흥과 그에 대한 대응인 1955년 자민당의 등장(55년 체제),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실리주의 독트린, 자민당의 파벌 구조, 관료 주도하의 자본주의와 일본 특색 사회주의의 결합.

 

1960년대의 전공투 사건과 일본 赤軍(적군)파 사건, 천재작가이자 국수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1970년 할복 사건, “생장의 집”이란 종교 활동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좌파와 미국식 사고방식에 대한 반발로서 일본 우파 세력과 결합해서 출범시킨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그리고 이 단체가 또 다른 우익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일본회의”.

 

자민당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 호헌파와 개헌파, 천황직 계승에 대한 규범, 쇼와 천황으로부터 이어진 자민당에 대한 불만과 그에 따른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 천황직 양위 사건, 아이코 공주의 즉위 가능성, 이런 일들이 이번 사건의 배후와 바닥에 놓인 주요 일들이다.

 

여기에 1990년 버블 붕괴, 1995년의 코베 대지진, 19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등 그 결과 “잃어버린 30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설프게나마 말하기조차 어려운 사정

 

 

이처럼 복잡하게 나열해놓은 모든 일들이 이번 아베 신조의 피격 사망 사건을 설명함에 있어 놓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일본의 특수한 관계와 감정을 고려할 때 어설프게 언급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원고지 25매 정도를 가지고 이런 사건이오! 라고 말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무식하게 정리해보면 

 

 

그냥 무식하게 정리하자면 일본엔 현재 천황 중심의 護憲派(호헌파)와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권을 지닐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민당 아베 파벌 중심의 改憲派(개헌파)가 있다. 덧붙이면 호헌파가 야당 또는 소수 세력이고 개헌파가 여당 또는 다수 세력이다.

 

아베 신조는 원래 자민당의 비주류 계열로서 일본 버블 붕괴 이후 동경대 법대가 장악하고 있는 대장성을 재무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진 세력의 한 명이었다. 그 이후 자민당이 2009-2012년 기간 중 야당이 된 이래 급격히 당내 실세로 등장했고 2012년 자민당이 정권을 되찾자 ‘아베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때부터 아베 신조는 아베노믹스와 함께 평화헌법 개정을 본격 추진했고 2020년까지 최장기 총리이자 줄곧 자민당 내 최대파벌의 보스로 군림해왔다. 정권 획득과 유지 과정에서 일본회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으며 수많은 이익단체와 압력단체과도 개인적인 연결을 통해 거래를 해왔다.

 

 

통장 비밀번호의 유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베의 죽음과 동시에 그가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주고받은 무수한 거래내역과 비자금이 들어있는 통장들의 비밀번호가 동시에 사라졌다고 말이다. 모두 아베 개인을 통해 일어났기에 ‘아베파’에 속한 여러 ‘제2인자’들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될까? 최대 파벌이었던 아베파는 이제 유지될 수가 없다. 금권정치의 원동력인 막대한 비자금의 소재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수많은 이익단체들과 압력단체들이 ‘아베 보험“이란 상품에 가입했을 것이고 그간에 수시로 거래를 해왔을 터인데 그 내역이 일시에 사라진 셈이다. 그야말로 황당할 것이다.

 

일단 자민당 내부에서 ‘헤쳐 모여’가 조만간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 총리인 기시다는 웃고 있을 것이다. 아베 신조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원래 자민당 비주류-지금은 주류-였던 아베파와는 달리 이시다 시게루 계열 즉 원래 보수 본류-지금은 오히려 비주류-의 파벌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정도 해두고 이제부터 나 호호당의 생각을 털어놓아야 하겠다.

 

 

2025년 한일관계 정상화

 

 

나 호호당은 2025년에 가서 한일 양국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1905년의 을사 보호 조약, 비록 힘에 밀려 강제 당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관계가 깊어졌다. 60년이 흘러 1965년의 한일 회담, 미국이 나서서 두 나라를 맺어주었고 그로서 우리의 경제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 다시 60년이 흐른 시점은 2025년이 된다. 다시 乙巳(을사)년이다. 이번엔 미국의 중재보다도 양국 스스로 대등한 입장에서 화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그간 우리 대한민국은 강국이 되었기에 일본 역시 이번에는 자세가 보다 은근하고 정중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눈앞의 흐름,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은 아베 신조와 문재인 정부 간의 갈등만 불거졌을 뿐이다. 양쪽 모두 자신의 정치에 이용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관계 정상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아베파의 움직임이 별로인 것 같아서 이거 쉬운 문제가 아닌데 하는 걱정을 해왔다.

 

 

일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일본의 國運(군운)을 살필 것 같으면 올 해 2022년이 60년 순환에서 小滿(소만)인지라 모종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나지 않겠어? 하고 추산해왔다. 그런데 아베 신조가 사망했다. 기시다는 요리저리 재는 타입이긴 하지만 훨씬 실용주의자여서 관계정상화에 훨씬 더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니 이번 사건은 일종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신조, 나름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원래 아베는 친한파에 속하던 인물이었는데 현실 정치를 해먹다보니 도중에 어쩔 수 없이 우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일 수가 없다. 유권자의 생각이 우선인 까닭이다.)

 

나 호호당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善惡(선악)과 是非(시비)에 대해 훨씬 유연해졌다. 절대적으로 이렇다 하고 판별하기엔 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내 머리를 훨씬 넘어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절묘한 타이밍에 가다.

 

 

그렇기에 哀悼(애도)하는 한 편으로 “당신 참 적절한 때에 죽어주었구려!”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당신이 죽어 주어서 한일 양국이 정상화되고 평화롭게 잘 지내게 된다면 두고두고 고맙게 여길 참이요, 하는 마음이다.

 

아울러 자민당 체제가 1955년에 시작되었으니 큰 변화가 나타날 시점은 60 더하기 12, 즉 72년 뒤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7년이 되면 자민당 체제가 드디어 사라지거나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거란 계산도 하고 있다. 연속성은 있으면서도 새로운 일본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큰 눈에서 보면 우리와 일본은 혈통적으로도 한 뿌리나 다름이 없다. 660년 한반도에서 백제가 사라졌을 때 대거 구원 병력을 보냈다가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홀로서기’를 했던 일본이 아닌가! 이에 686년 덴무 천황이 죽으면서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日本(일본)이라 정했다. 천황이란 명칭 역시 그때 만들어졌다. 그러니 일본은 백제의 후예란 믿음 그리고 많은 증거들을 갖고 있다.

 

그러니 길게 보면 적대할 상대가 아니란 얘기이다. 중국이 설쳐대는데 우리가 일본하고 잘 지내는 것, 미국과의 연결고리를 생각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일본의 우익단체들을 보면 속으로 미국에 대한 反感(반감)이 상당하다. 당연하다. 무참하게 깨졌으니까 그럴 법도 하다. 그러다 보니 과거 한 때 아시아 대륙을 쥐락펴락했던 군국주의 일본제국이 그리울 수도 있겠으나 그들 역시 잘 알고 있다,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잘 해야 감정의 殘在(잔재)일 뿐이다. 기껏해야 술 먹는 자리에서나 가능한 생각들.

 

일본, 누군가의 표현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피차간에 모르는 게 실로 많은 우리와 일본이다. 아베 신조의 죽음, 이번 일로 해서 좋은 계기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니 저승길 잘 살펴 가시게나.

 

(앞에 나열한 주제들, 일본에 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공부하기에 좋을 것이라 여긴다.)

 

출처: https://hohodang.tistory.com/ [희희락락호호당: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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