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는 요지부동인 바
저번 글에서 글로벌화는 온 지구촌의 달러화(dollarization)를 가져왔다는 말을 했다.
일부에선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가 흔들리고 침식되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통계자료를 보자. 영문 위키에 가서 “Reserve currency”라고 입력해보라. 2번 항목 ‘Global currency reserves’를 보면 1965년부터 작년 2021년까지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중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잘 나와 있다.
1965년 달러 비중은 72.93% 였고 1970년엔 84.85%까지 늘었다가 그 이후 1990년엔 47.14% 까지 줄었다. 그 이후 2000년대엔 다시 70% 이상으로 늘었는데 이는 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해 달러 선호도가 커진 까닭이다.
그 이후 다시 60% 초반까지 줄었으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미국 연준이 각 우방국들의 중앙은행들에게 “달러 스왑” 즉 달러 마이너스 통장을 터줌으로써 다른 나라의 외환위기를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며 오히려 60% 이하로 약간 더 내렸다. 이는 저번의 달러 스왑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외환위기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60년 전에 비해 달러 보유 비중이 줄어든 것은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화와 그 번영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일 뿐이다. 1965년 당시 부유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 독일을 포함한 유럽 그리고 일본의 부흥으로 인해 비중이 줄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급격한 발전으로 위안화가 2% 정도 새롭게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유럽과 일본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나라들의 경제 발전을 촉진한 결과 달러 보유 비중이 적절한 선으로 줄어들었을 뿐이지 기축 통화의 지위가 흔들거린다는 식의 표현은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현 시점은 물론이고 상당 세월 뒤에도 글로벌 통화로서 달러가 흔들리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예 상상해낼 수가 없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기에 언젠가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그 사이에 전 글로벌이 커다란 재앙과 파국을 겪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통화인 달러의 담보는 오로지 미국에 대한 무한 신뢰밖에 없다는 사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미국 달러 역시 자체로는 어던 가치도 없는 디지털 머니란 점이다. 따지면 비트코인과 차이가 없다. 다만 달러는 미국 자체가 보증한다는 점, 즉 미국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유통되는 글로벌 통화라 하겠다.
글로벌 세계가 철저하게 “달러화”되어버린 오늘의 시점이고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기침체 등으로 앞날이 상당히 어두워진 현 시점에서 미국 달러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는 것도 앞날을 살핌에 있어 약간의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들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라 하지만 영어론 한 발 더 나아가서 world currency 또는 global currency 라고 한다. 아예 드러내놓고 ‘세계통화’ 또는 ‘글로벌 통화’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엔 그렇게 부르지 않고 준비통화, Reserve currency 라고 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해외 지급, 즉 외환수요에 대비해서 보유하는 통화라는 의미였다. 이처럼 세월이 가면서 용어도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달러 체제는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변함이 없었으니
미국 달러가 가장 신뢰할 만한 국제 결제 통화로서 등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7월부터였다. (브레튼 우즈 체제)
당시 모든 나라가 전쟁으로 피폐해졌으나 미국만이 멀쩡하고 강성했기에 미국의 자원과 물자, 그리고 교역을 위해선 미국 달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 돈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달러는 교환가치를 담보하기 위해 미국의 금 보유액과 연동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달러는 곧 금이었다. 그랬기에 당시의 환율은 고정되어 있었다. 고정환율제는 참으로 큰 장점이 있었으니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없어서 교역을 가일층 촉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준비통화로서의 미국 달러는 어이가 없게도 금방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가 시작된 지 겨우 15년 만인 1958년의 일이었다.
트리핀의 딜레마
달러 체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미국의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로버트 트리핀란 사람이었다. 1959년 그는 미 의회에 나가 달러 금 본위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증언했다. 다음해 1960년이 되자 그의 지적은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교역을 통해 발전하려면 준비 통화인 미국 달러가 믹구 국내용만이 아니라 그 나라들에게도 넉넉히 공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곧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전제로 한다. 반대로 미국이 무역흑자를 지속적으로 볼 것 같으면 다른 나라들은 준비통화인 달러가 부족해져서 경기불황과 경제회복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트리핀의 말처럼 19444에 출범한 브레튼 우즈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앗던 것이다.
그 결과 준비통화 나중에 기축통화 또 이어서 글로벌 통화로 발전한 미국 달러는 이미 1959년부터 문제가 되고 위기로 번질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었다. 전쟁은 끝이 나지 않았고 한도 끝도 없이 戰費(전비)가 들어갔다. 그야말로 “물 먹는 하마”였던 베트남 전쟁이다. (결국 이 전쟁은 1975년 미국의 무조건 철수, 사실상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미국은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었기에 다시 말해서 달러가 계속 유츌되고 있었기에 조만간 미국 국내 자금시장에선 저들의 통화인 달러가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러자 경기는 침체일로를 걸었고 반면 유럽이나 일본은 급격히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미국 돈인 달러가 미국 내에선 씨가 마를 지경에까지 이르자 취해진 미국의 황당한 조치
당시 사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1966년의 경우 미국 이외 각 나라들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의 양 즉 금보유량은 140억 달러 어치였으나 미국이 보유한 금의 보유량은 겨우 132억 달러 어치였다.
그 132억 달러 역시 국내 경제에서 돌아다니는 달러 액수만큼의 금을 차감하면 미국이 해외에서 수입할 때 대금으로 지불할 수 있는 여유분은 겨우 32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에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더 이상 달러는 금과 연동되지 않는다, 달러를 제시하면 금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폐기해버렸다. 이를 당시엔 닉슨 쇼크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두들 미국 달러를 계속 사용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
2차 대전 이후 사실상 국제무대에서의 권력을 상실한 유럽 각국들은 비아냥거리고 항의를 했으나 그 또한 시늉에 불과했다. 그들 또한 달러를 대체할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달러 부족으로 서유럽 국가들의 물건을 수입해주지 않으면 그 즉시 서유럽 경제는 파탄에 직면할 것이었다. 오로지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만이 서유럽과 일본 각국에게 있어 경제와 산업 발전의 원동력인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서유럽 나라들과 일본은 이거 참 이상하다, 낚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달러 체제를 받아들였다. 변동환율제 하의 국제결제 통화 달러가 된 것이고 이로서 가치의 절대 기준은 사라지고 말았다.
금이던 달러가 이젠 종이돈에 불과해졌지만 그럼에도 달러를 결제나 외환보유 통화로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던 서유럽과 일본이었다.
종이쪽지를 황금으로 인정하기로 한 글로벌
이로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그 자체로는 그저 종이쪽지인 미국 달러가 여전히 기축통화로 유지되었다.
미국이 제 맘대로 달러를 마구 찍어낸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그렇지, 미국 저놈들이 아무런 담보도 없이 종이 위에다 달러라고 인쇄하기만 하면 그게 바로 돈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종이쪽지를 얻기 위해 애써 만들어낸 각종 제품과 물품들을 미국으로 실어 나른다면 이게 어떻게 되는 일이지? 이건 우리가 미국의 머슴이거나 노예란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고도 희한한 것은 석유가 나는 중동 국가들에게 가서 원유 대금으로 달러를 지불하면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종이돈 달러인데 그게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된다는 사실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자체 가치가 전혀 없는 미국 달러가 모든 나라들 사이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주고받으면서 교역이 이루어졌으며 또 그를 기반으로 전체적으로 각 나라 특히 서유럽과 일본의 경제는 날로 발전했고 번영했으며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
그렇게 일이 돌아가자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왜 그렇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거나 해명하고자 나서는 경제학자나 금융학자들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애매하게 어려운 용어나 수치를 들먹일 뿐 명쾌한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돈 또는 화폐란 것이 결국 신용(credit)과 성질이 동일하다는 정도의 설명만 제시되었다.
미국 달러는 아무런 담보가 없다. 그저 미국 연준이 발행한 借用證(차용증)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글로벌 경제는 잘도 돌아갔고 또 번영을 구가했다. 물론 모두들 이런 차용증 따위를 미국이 계속해서 발행하고 끊어줄 수 있을까? 언젠가 어디에서부터 받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을 터인데 하는 의구심은 모두들 조용히 가슴 속에 담아둘 뿐이었다. 당장 잘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이 아무런 담보도 없이 발행한 차용증에 불과한 미국 달러는 닉슨 쇼크 이후에도 잘도 돌아갔고 국제결제 통화 나아가서 기축통화 더 나아가서 글로벌 통화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
양적완화, 그야말로 더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지만 모두들 묵묵부답
또 다시 세월이 흘러 2008년이 되자 더더욱 깜짝 놀라만한 일이 벌어졌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연준은 더 많은 달러를 찍어서, 아니 디지털로 컴퓨터 디스크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엄청난 달러를 공급했다는 사실이다. 양적완화라고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사기극을 펼친 것이다.
양적완화는 이제 더 이상 돈이 돈 같지 않은 시대를 열었다.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전 글로벌과 미국 내부적으로 달러와 신용이 너무 많아서 스탁이 누적되어 거품이 발생하고 그 결과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그것을 더 많은 달러를 공급함으로써 해결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래도 되나? 당시 원로 경제학자인 조순 선생님께서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거품을 더 큰 거품으로 해결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물론 조순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그 어떤 경제학자도 이 미증유의 해괴한 수법에 대해 감히 설명하거나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제 ‘경제학’이란 것 자체가 학문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통계치를 내고 거기에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는 용도로서의 경제학자들 즉 증권사나 경제연구소의 이코노미스트들만 남았다.
나 호호당 생각에 2008년의 양적완화로서 글로벌 경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와 차원으로 진입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
한 번 길이 열리자 2020년 미국 파월 연준의장은 한 술 더 떴다.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로 제한된 양적완화가 아니라 무제한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그까짓 달러 따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넉넉하게 뿌릴 것이여, 하는 식이었다.
이는 몰래 일을 저지르고 있다가 들키게 되자 아예 배 째라는 식이었다. “니네들 뭐 어쩔 것이여! 싫으면 말어.”
전 글로벌은 이번에도 역시 아, 그렇구나 하면서 순순히 미국의 길을 따랐다. 어쨌거나 미국 없이는 글로벌 경제는 그저 파국과 재앙의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머지 글로벌인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현실 인식
생각해보라, 글로벌 통화인 달러가 사라지면 각국은 나라간에 저마다 유리한 환율을 제시하면서 교역을 하고자 할 것이다. 불리하면 자국 환율을 확 낮추어버리거나 또는 높여서 거래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변동환율제는 변동하긴 하지만 그래도 달러라는 기준점을 가지고 이루어진다. 이게 없어지면 사실상 국가 간의 교역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특히 우리처럼 오로지 수출을 통해 먹고 사는 경제는 달러가 사라질 것 같으면 상상조차 불가능한 경제 파탄이 올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뭔 짓을 하든 받아들일 수밖에.
그런 문제에 비하면 지금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든 아니면 그러다가 경기침체가 오면 다시 인하하든 그냥 그들의 처분에 맡기는 것 정도는 달게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달러를 마구 풀어놓은 오늘의 글로벌,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맞이하게 될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일까? 아니면 인플레이션과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일까? 또 그도 아니면 연준이 풀어놓은 달러를 마구 수거한 나머지 모든 것이 조용히 시들어가는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올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경제학자란 사람들은 이미 벌서 그런 질문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 나아가서 예측 따윈 포기한 지 오래이다. “우리 경제학은 이미 학문이 아니무니다”, 하고 항복한 지 오래란 말이다.
의리인지 계산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문제는 결국 이렇다. 宗家(종가)댁이 자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순 없다, 그러면 결국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도생하면서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니. 그게 싫으면 모두가 나서서 종가댁의 붕괴를 十匙一飯(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각자의 몸을 바쳐 받치면서 때를 기다려볼 것인가? 하는 문제라 본다.
하지만 굳이 비관적으로 볼 이유만은 없다고 본다. 지난 수십년간 잘 굴러왔지 않은가. 그러니 미국과 나머지 꼬붕들이 함께 잘 협조하면서 비비적거리다 보면 그런대로 현 글로벌 체제와 달러 체제가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희망도 품어본다.
(오늘 글도 길었다. 저번에도 제법 긴 글을 썼지만 올리고 나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명이 너무나도 부족하단 생각에서 오늘은 저번 글을 보충했다. 그런데 말이다. 여전히 미흡하단 느낌이 드니 그저 헐! 한다. 동영상으로 좀 길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또한 영상편집과 자막 다는 일이 여간 힘들지가 않아서 결국 이렇게 글로 쓴다. 동영상의 경우 口語(구어)체의 말을 문어체 즉 문장으로 바꾸려고 하니 그 또한 고생이다. 독자님들께선 다소 글이 길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쓰는 이 역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