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제국의 쇠퇴
나 호호당은 67세이다. 예전, 그러니까 1993년 12월,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낸 이래로 지금 2022년까지 29년간 건강검진이란 것을 하지 않았다. 건강이나 長壽(장수)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요 건강관리에도 나름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
최근 들어 몸의 노쇠를 부쩍 느낀다. 세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帝國(제국)이 기울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이야 90까지 살겠다는 것이지만 이제 슬슬 죽음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하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죽음 역시도 건강할 때 준비해두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67세의 나이이다. 이제부턴 어떤 병에 걸려 죽어도 그건 病死(병사)가 아니라 自然死(자연사)란 생각을 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이제 준비를 좀 해야겠으니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것이니 그게 어디 만만하겠는가, 당연히 이러저런 일들을 따져가면서 잘 준비해야 하겠다는 말이다.
우선 해마다 연말이 되면 遺言(유언)을 글로 써놓을 생각이고 해마다 수정할 것이 있으면 새롭게 작성해야 하겠다. 또 긴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매뉴얼도 만들어 둘 생각이다.
현재 내 몸을 돌봐주는 韓醫師(한의사)가 오래 전부터 있긴 하지만 현대의학의 내과 전문의도 한 분 정도 찾아볼 생각이다.
성가시게 하지 않고 몇 가지 핵심 체크 사항만 확인해주고 자문해주는 의사, 노화를 관리해주고 가급적이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길잡이를 잘 해주실 의사, 집에서 죽었을 경우 사망진단서 작성에 도움이 될 의사, 쉽게 만나긴 어려울 것이니 이제부터 잘 찾아볼 생각이다.
멘탈 관리가 더 중요할 것 같은데
게다가 멘탈 관리도 이제 더욱 확고히 해야 하겠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으나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경우 겁먹거나 당황하지 않도록 평소에도 명상이나 공부를 통해 꾸준히 준비를 해야 하겠다. 죽음이 찾아올 경우 귀한 손님으로까지 받아들일 수준까지야 어렵겠으나 자연스럽게 맞이할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 오셨어? 좀 더 뒤에 오시지 뭘 굳이 이렇게 발걸음을.
건강 검진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결국 현대의학에 대한 회의감이란 걸 알게 된다. 현대의학은 죽을 사람을 가급적 편하게 죽게 하기 보다는 무조건 살려놓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죽을 사람을 더 고생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으니 수행을 많이 한 스님의 죽음이다. 그냥 앓기는 했으나 죽기 직전까지 겉보기엔 멀쩡한 상태에서 돌아가셨다는 얘기 말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스님들은 자아와 삶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은 분들이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애착이 크지 않으면 죽기까지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크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그렇다고 스님들 수준의 수행을 하기엔 이미 좀 그렇고 그저 편안한 죽음을 위해 불필요한 애착을 최대한 줄여보고자 노력할 작정이다.
최근 가까운 사람이 둘이나 내 곁을 떠났다. 그들의 생년월일시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임종 날자를 두 달 전부터 추산해놓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하루 지나서 갔고 또 한 사람은 예상했던 날에 정확히 떠났다. 이런 능력이 내게 있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저 담담하게 보낼 수 있었다. 갈 때 가는구나!
죽음을 얘기하는 이유
왜 죽음을 얘기하는가? 안 그래도 우울한 시국에, 하는 독자님들도 계실 것 같다.
이에 살아있는 날까지 최대한 명랑하고 즐겁게 살기 위함이라고 답을 드린다. 평소 우리는 살아있는 것 자체를 두고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을 상기하거나 환기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수 있기에 오늘은 죽음을 얘기한다.
예전부터 고생을 좀 겪고 난 뒤부터 우울 모드(mode)가 찾아들면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우울해할 수 있는 것 역시 삶의 빼놓을 수 없는 맛이자 특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몇몇 사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아주 또렷하다. 얼마나 絶望(절망)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 다행히도 나 호호당은 그런 처지에까지 가본 적이 없다.
고민도 있고 고생도 하고 걱정도 하지만 그건 다 잠시의 일이고 어느새 지나간다는 사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큰 눈에선 늘 낙관적이다. 욕망하지만 한 편으론 늘 아니면 말고!, 이 길이 아니라면 저 길로 가지 뭐! 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낙관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 굶은 적 없고 길바닥에서 잔 적 없으니,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 그다지 없을 것 같으니 뭐가 무서우랴.
글로벌 전체적으로 피할 길이 없어보여서
그런데 사실 이런 글을 쓰게 된 배경이 달리 있다. 최근 두어 달 동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년부터 우리 사회가 크나큰 어려움에 처할 것 같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지불했어야 할 비용을 글로벌 전체적으로 아직 미결제 상태로 이어왔으니 결국 이번엔 그 지불을 모면할 길이 도무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전 글로벌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찾아오고 있고 또 한동안은 이어질 것 같으니 그렇다. 이에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만큼은 확실히 두드려 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경기침체? 그건 모르겠고 일단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으면 모든 게 다 끝이란 생각을 하는 연준으로 보인다.
미국이 신속하게 금리를 올리자 오랜 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던 유럽중앙은행도 결국 금리를 0.5%로 올렸다. 유럽의 상당수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경기침체에 빠져있건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올렸다. 어디 한 번 다 함께 죽어 보자는 결의라고나 할까!
공동의 통화인 유로를 유지하고자 그간 나름 많은 돈을 털어서 이탈리아나 그리스로 보냈던 독일도 지금은 상황이 전혀 녹록하지가 않다. 그러자 벌써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사퇴하고 연정은 끝이 났다. 드라기에게 연신 독일로부터 돈을 더 뜯어낼 수 있다고 압박해오던 연정의 나머지 정당들이 이탈해버린 것이다.
이번 일은 어쩌면 유로(Euro)시스템의 붕괴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동향도 절대 만만치가 않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비교적 쉽게 지나간 것에는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도 있었지만 사실 중국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전 세계가 극심한 침체로 들어갈 판국에서 중국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전체적인 침체를 막았다. 수요를 창출해준 것이다. 우리 역시 당시 중국 수출 비중이 급증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는 글로벌 경제 그리고 우리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디에도 안전판 또는 발판이 되어줄 경제가 없다. 일본은 자체의 문제로 인해 아예 금리인상을 시도해볼 입장이 아니고, 이미 침체로 들어선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문제,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여러 나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을 해야 했다. 보나마나 극심한 침체가 올 것이다.
미국 연준은 침체를 각오하고 금리인상에 나섰다. 그러니 내년은 전 글로벌 스케일의 경기침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냥 침체가 아니라 저마다 사정이 다른 탓에 공황이나 금융위기가 찾아들 수도 있다.
우리 역시 덩달아 미국을 따라서 마냥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라 할 수 있는 높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금리를 미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증시의 경우 이미 조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부동산이 꺾어질 경우 또 다시 심한 조정을 감내해야 할 것도 같다.
一波萬波(일파만파), 이런 말이 있는데 딱 그 상황이다.
한 번 크게 죽어야만 다시 살아날 것 같으니
야, 이건 그야말로 죽음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그러다가 그래, 한 번 크게 죽어야만 오히려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한참 빠져 있다가 이거 그럴 일만도 아니네, 나도 잘 살기 위해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해야 하겠네 싶어서 오늘의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