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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나라" 북조선의 리얼 급변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관련

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6. 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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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ャーナリストが訪朝して感じた「閉ざされた国」北朝鮮のリアル
激変する「近くて遠い国」【前編】 
2019年 6月 15日 立岩 陽一郎



             "닫힌 나라" 북조선의 리얼   급변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


 
                          2019年 6月 15日 立  岩 陽一郎(다테이와 요이치로) 번역   오마니나




차갑고 무뚝뚝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친근하게 되어 간다. 심각한 빈곤과 식량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한편으로, 특권계급과 부유층이 점점 증가해, 격차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닫힌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북조선을 방문한 저널리스트 타테이와 요이치로 씨가, 현지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현상을 철저 취재했다.


평양과는 다른 나라 같아


"저것은 농지입니다"


4월 29일, 평양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 속. 옆자리에서 나의 안내와 통역을 담당하는 대문협(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일본국의 남성국원인 K씨가 차창 밖을 가르키며 유창한 일본어로 말했다.


"엣? 저게 농지……입니까?"


K씨의 손가락 끝에 있는 풍경이, 나에게는 아무래도, 풍요한 결실을 가져다 주는 농지 그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황량한 대지"라는 형용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눈앞에 펼쳐진 토지에, 인간이 경작하고 있는 듯 보이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농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한 듯했다. 갈색 땅이 그대로 드러난 채, 작물은 그림자도 형태도 없다.


저 멀리있는, 바위의 곳곳에 이끼가 덮혀있는 듯한 산능선을 봐도, 이 주변이 농경에 적합한 구역이라고는 생각할 수없었다. 광산자원은 풍부할 지 모르지만, 야채나 곡물의 혜택과는 인연이 부족한 것 같다.


    


조선반도의 북쪽에 있는 이 나라는, 항상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은, 정치체제의 문제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반도의 남부가 농경에 적합한 것에 비해,북부는 광물자원이 풍부해, 공업에 적합하다는 것은 전쟁 전부터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전의 일본통치시대, 일본정부는, 지금의 한국과 겹치는 반도의 남측을 식량생산 지역으로 하고, 북부를 중공업지대로 규정해 산업정책을 추진했다.


그런 것을 떠오리고 있노라니, 먼 창밖에 펼쳐지는 "농지"의 곳곳에, 몇몇 사람의 그림자가 작게 보였다.  풀 한포기 나지않은 토지지만,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지나자, 이번에는 차창으로 마을이 보였다. 같은 형태의 집이 수십채 모여있는 형태로 지어져 있다.


"저것이 농부의 집입니까?"라고 묻자, K씨는 "그렇습니다. 협동농장이라서, 모두 농사를 짓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흥미로운 얘기를 덧붙였다.


"집은 산 기슭 주변에 지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경지면적을 늘리기 위해서 입니다"


비옥하지 없는 땅이지만, 농지로서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엄중한 식량사정의 일단을 보는 듯 했다. 마을과 그 주변에 자동차는 볼 수 없었다. 많은 나라의 농지에는 당연하게 있는 농업용 트랙터도 보지 못했지만, 소는 몇마리 있었다.


"평양과는 많이 다르구나……"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지만  K씨는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답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반응은 없었다.

물론, 대답할 필요는 없다.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평양시내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황막한 땅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양과 교외는 마치 다른 나라 같다──. 버스의 진동에 흔들리면서, 나는 2일 전에 들어온 이 나라의 거대한 수도를 생각했다.


오픈한지 얼마안된 백화점


4월 27일, 베이징 공항에서 고려항공기를 타고, 2시간여의 비행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나로서는 1년 만에 두번째 방북이 된다.


공항에서 시가지로 향하는 도중, 주위의 풍경에 적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새로운 건물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불과 1년사이에, 수도는 예상을 크게 웃도는 변모를 보이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불과 보름 전에 오픈한 대성 백화점이다. 개업 직전에, 김정은 조선노동당위원장(나의 방북 조금 전에 국무위원장으로도 재임명)이 시찰한 것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나는 이번 방북에서 대성 백화점은 꼭 가보고 싶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찰했을 때에 공개된 것은 스틸 사진이고, 그것만 봐서는 가게 안의 모습은 잘 알 수없다.


어떤 백화점인가? 무엇을 팔까? 어떤 손님이 얼마나 있을까?...궁금증은 커질 뿐이었다. 다행히도 도착 다음 날, 대성 백화점을 찾아갈 수 있었다.


건물 밖에는, 온통 커다란 유리와 흰색이나 오렌지 색의 벽으로 덮혀, 세련된 인상을 준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많은 손님이 찾아와서는, 차례로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가게 안에 들어가, 눈 앞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우선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의류매장으로, 일본의 데파토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3층에는 고급의류 매장이 있으며, 유럽의 유명 브랜드의 의류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유럽이나 일본의 고급브랜드 화장품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도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이나 연인인 듯한 손님들이 점원을 붙잡고는 즐겁게 얘기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나는 K씨에게 "정말 손님이 오네"라고 놀리는 어조로 말하자, 그는 조금 발끈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또 타테이와 씨, 그런 말을 하시네……. 건물도 가짜가 아니고, 손님도 많이 오고 있고, 물건도 팔고 있잖습니까"


그말을 듣고 나도 웃은 것은, 실은 K씨에게는 1년 전의 최초의 방북 때도 함께 했었기 때문에,농담을 하면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이 나라에서 고층건축을 볼 때마다 "저거, 가짜?"라고 농담조로 묻는 것을, K씨도 기꺼이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


문득, 그 때,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풍채좋은 남자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오오, 김정은 위원장 아닌가!

……라고 생각한 것은 순간일 뿐, 비슷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듬직한 체격과, 무엇보다 옆 머리를 바짝 깎아올린 김위원장과 흡사하다.


그런데, 절대적인 정치권력을 가진 독재자는, 패션 면에서도 이 나라 남자들의 선구자가 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의 앞을, 새하얀 슈트로 몸을 감싼 남성은, 일행인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고급 명품매장으로 사라졌다.


     


최상층은 푸드 코트가 되어 있고, 몇몇 커플이나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부유한 특권계급의 사람들


대조적이었던 것은, 마지막으로 둘러본 1층의 식료품이나 생활잡화매장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대고, 모두, 선반에 진열된 조미료, 재료, 과자, 음료, 세제 등을 잡고는 맘에 드는 것을 계산대로 가져간다.


     


나도 처음엔, 기념으로 무언가 사려고 했지만, 계산대 앞에 장사진이 생겨, 상당히 기다려야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그 대신은 아니지만, K씨에게 통역을 받아 여성점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 꽤 손님이 많을 것 같은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


"매일 많은 분이 찾아 오십니다"


── 멋지게 차려입는 손님이 상당히 있는데, 역시 시민 여러분에게 백화점은 특별한 장소인가요?


"여러분들이, 멋을 부리고 오시고 있으며, 즐거우셨으면 합니다"


질문과 답이 좀 맞지 않았지만, 가게 안이 혼잡하고 바쁜 가운데, 성실하게 대응하고 준 것에는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방북 중의 나의 스케줄은, 사전에 신청한 취재희망을 대문협이 검토해, 조정해 주기로 되어 있다. 가급적이면 나의 희망대로 여러가지로 예정을 짜준 것은 고맙지만, 덕분에 차례대로 취재처를 가야 하기 때문에, 대성 백화점에도 더 있고 싶었지만, 이 세련된 백화점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제 끝이었다.


즉, 대성 백화점은, 이 나라 속에서도 두드러지게 특별한 곳이다. 그 점은, 나를 보았을 때의 손님의 분위기에서도 나타났다.


이 나라의 국민(그들은 인민이라고 부르는데)에게, 수도 평양에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권이다. 그래도 평양시민의 대부분은, 거리에서 나 같은 외국인을 보았을 때, 일순간이지만 동요해, 몸이 경직되는 것이 어쩐지 눈에 띈다. 외국인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또 외국인과 부딪히는 것으로 불이익을 입지 않겠느가 하는 우려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성 백화점의 고객들은, 나와 동행한 일본인을 보더라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특히 관심도 나타내는 시늉도, 이쪽을 쳐다보는 것도 일절 없었다.


요컨대, 국민 중에서도 특별한 평양시민 중에서, 더욱 특권적인 사람들 ── 즉 외국인을 봐도 놀라지 않고, 세계적인 고급 브랜드 상품을 살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부유층 ──이 확실히 존재하며, 그들이 이 백화점의 고객인 것이다. 대성 백화점뿐 아니라, 평양시내에서 최근 속속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건조물은, 선진국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극히 일부의 특권계급을 위한 성소(성역)인 지도 모른다.


손님의 대부분이 택시로 대성 백화점에 들이닥쳤던 것도, 나에게는 좀 놀라움이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방북했을 때, 평양시내를 택시가 달리는 것을 보고, "야, 택시가 있구나"라고 말하고, K씨로부터 "우리나라도 보통 나라입니다. 택시 정도는 있습니다"라고 놀림받은 적이 있다. 다만, 택시가 있기는 있어도, 당시는 아직 별로 이용자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리도 아니다. 평양의 공공 교통기관은, 지하철도 버스도 노면전차도 모두, 어디까지 타고가도 운임은 5원이면 된다. 5원은 공정환율이 5엔이 되는데, 만일 실제환율이 있다면 1엔에도 못 미치는 것. 즉, 한없이 무료에 가깝다는 것이다.


당연히, 택시를 타면 엄청난 고액의 승차요금이 든다. 그 택시를 타고 백화점에 오는 사람이 지난 1년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해, 그 나름대로의 수자에 이르렀을 것이다.


추진되는 개방노선에 확산되는 격차


버스에 흔들리면서, 전날과 전전날에 평양에서 보았던 것을 회상하다, 조금씩이나마 윤택해져가는 수도의 특권층과, 지방에서 빈곤에 시달리면서 옛날 그대로의 삶을 보내는 서민층과의 격차확대를, 새삼 느끼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우리가 북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분명히, 버스의 차창으로 보이는 메마른 땅과 가난한 농촌풍경이다. 물론, 그것이 이 나라의 거짓없는 현실인 것은 틀림없다.


다만 동시에, 그러한 농촌과 평양 사이에 격차가 있고, 평양시민 중에 격차가 생기고 있는 것도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리얼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지역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많은 개발도상국이 채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개발독재"다.


동남아 국가, 한국, 중국....등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메이지 유신 후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한정된 자원을 수도와 도시권에 중점적으로 투하해 발전을 촉진하고, 그곳을 끌어올리는 것부터 시작해 국가전체의 수준향상을 도모한다는 방식이다.


이 개발독재는, 필연적으로,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흐름을 촉진시킨다. 최초에 특정지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자본과 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며, 다양한 사람에 대해서도 개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을 나는 이번 방북에서 여러 번 느꼈다. 실은 평양에 도착하기 전, 베이징발 고려항공의 비행기부터 실감했다. CA(승무원)의 태도에 확실히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기내에서는 그 모습이 확실히 변해 있었다.


무뚝뚝했던 대응이 친근하게



이착륙 때, CA의 한명이 나와 마주 앉았다. 흔치 않은 기회여서, 옆에 있던 재일교포 동행자에게 통역을 부탁해, 이륙할 때부터 일찌감치 말을 건네다 보니, 상냥한 표정으로 싹싹한 대답이 돌아와 놀랐다.


──어떻게 고려항공의 CA가 되었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고려항공에 들어와, 그리고 CA 전문학교를 다녔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일본에서 CA지망자가 어떻게 그 일을 하는 지도 전혀 모른다. 그녀의 대답에 재치있는 반응도 할 수없어 계속해서 물었다.


──고려항공에 들어가는데, 뭔가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이 필요한가요?


"아니오, 누구든 들어갈 수 있어요."


──CA 일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영광입니다"


약간 과장된 답같은 기분도 들지만, 그런 말을 듣고 승객으로서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뭐, 앞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대답하도록, 메뉴얼로서 외우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CA와 대화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식사나 차를 서비스할 때, 혹은 화장실에 갈 때 등, 여러 승객들이 CA에게 말을 건네고, 그녀들도 솔직하게 대답한다.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접대"자세가 인상에 남았다. 이 변화는 물론, 고려항공이라는 한 조직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여러 직장이나 생활의 장에서, 그때그때의 정책을 반영하는 사상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외국인 승객에 대해 CA가 친근하게 되었다는 대응의 변화도, "대외적인 개방노선으로" 라는 국가의 방향성의 변화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환영 무드"는 공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를 내려, 터미널 빌딩에 들어서자 마자 공항직원인 여성이 두 사람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둘 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상냥하게 인사했다. 이 역시 지난해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존의 "차가운 나라"라는 이미지에 어긋난다. 역시, 조금 놀랐다.


평양의 공항빌딩의 크기는, 일본으로 말하면 지방공항 정도로, 입국심사는 4개의 부스에서 행해졌다. 엄격한 체크없이, 젊은 여성입국심사관이 내 여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환하게 웃으며 통과시켜 주었다.


1년 전에는 여러가지 세세하게 화물을 체크당했던 세관도, 이번에는 거의 "그냥"인 상태였다. 작년과 같이 스마트폰 제출은 요구받았지만, 금년은 사진 앱의 내용까지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또한, 외국인들을 가급적 스트레스 없이 맞아들이려는 국가의 의지를 느꼈다.


군사 경계선에서의 군인들


회상이 조금 지나쳤다. 마크로 버스안으로 얘기를 되돌린다.

평양을 나선지 3시간여, 거대한 문 앞에서 버스는 멈췄다. 내려서 문을 들어서니 우뚝 솟은 성벽처럼 콘크리트 건물들이 있다. 그 속에서, 어렵게 다달은 "목적의 땅"을 밟기위한 최종 절차를 거친다.


목적의 땅──그것은 군사분계선이다. 한반도를 남북 2개 국가로 나누는,"북위 38선"으로 불리는 경계선. 그것을 목표로 나는 평양에서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건물 안에는 정부인력과 조선인민군 장병 외에 유럽이나 중국 관광객도 많아, 북새통을 이뤘다. 군사분계선으로 가는 절차를 K씨가 밟아 주는 동안, 나는 1년 전에도 갔던 선물가게에 다시 들렸다. 거기에서도 또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팔리고 있는 선물들이 이전보다 매력적으로 되어 있었다. 예를들어, 국기의 그림과 "Pyongyang"(평양)의 문자가 자수로 수놓아진  캡모자나 티셔츠. 아름다운 조선의 여성을 그린 그림엽서. 어느 곳이나 관광지에 자주 있는 토산물일 지도 모르지만, 작년에는 그런 것조차 없었던 것이다(그렇다면 무엇을 팔았는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뜻 사고 싶어했던 것이 없었다는 기억은 있다).


분명 외국에서온 관광객을 생각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놓아두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 또한 개방을 위한 방침전환의 발로일 것이다.


다른 관광객들과 어울려 여러가지 선물을 사려고 하자, K 씨가 찾아와, "타테이와씨, 조선인민군의 설명이 시작되니까, 오세요"라고 말했다.


우리 군사분계선 방문객들에 대한 설명에 나선 사람은, 조선인민군의 황미정 중좌였다. 지난해의 설명은 조금 더 젊은 대위였지만, 올해는 중좌라는 상당한 고위군인이 맡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황중좌가 시종일관 담담하게 상황설명을 한 것이다. 1년 전의 설명을 맡았던 대위는 "비겁한 제국주의자의 미군은..."등등, 끊임없이 미군을 매도하는 표현을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하게 "미군은..."뿐이었다.


다만, 작년에도 이번에도, 이 설명에서 한국군에 대해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 이면에는 아마, "우리는 미군과 싸운 것이지, 한국군은 단지 미군측에 붙어만 있던 무리들"이라는 시각이 있을 것이다.


설명이 끝나자, 다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으로 향한다. 판문점으로 불리며, 유엔군(주로 한국군과 미군)과 조선인민군이 마주보는 지점이다.


우리들과 함께 황중좌가 "안전을 위해 동행하겠습니다"라며 버스를 탔다.옆에는 헬멧과 선글라스 차림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어라? 이 사람들,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네......두 사람을 보는 순간 좀 놀라서 물었다.


──중좌, 권총을 휴대하지 않았네요.


"네, 작년까지만 해도 (군사분계선에서)경무장이 허용됐지만, 지금은 비무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권총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두 분 모두 허전하고 불안하지 않나요.


"남조선군(한국군)도 무장하지 않거든요."


중좌은 상당히 편안한 모습으로 질문에 답해 주었다.이것도, 말붙일 엄두도 못냈던 작년의 안내역인 대위와 다르다.


남북 모두 무장하고 있지 않다면, "안전을 위해서" 따라올 필요는 없지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쌍방 모두 확실히 무장하고 있어, 불측의 사태가 나더라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던 중에, 차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버스는 멈췄다. 자, 드디어 남북 양군이 대치하는 군사분계선이다. 나는 1년 전처럼, 심장의 고동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후편에 계속)


                                    https://gendai.ismedia.jp/articles/-/65094?page=4



요컨대, 국민 중에서도 특별한 평양시민 중에서, 더욱 특권적인 사람들 ── 즉 외국인을 봐도 놀라지 않고, 세계적인 고급 브랜드 상품을 살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부유층 ──이 확실히 존재하며, 그들이 이 백화점의 고객인 것이다. 대성 백화점뿐 아니라, 평양시내에서 최근 속속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건조물은, 선진국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극히 일부의 특권계급을 위한 성소(성역)인 지도 모른다.




우리가 북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분명히, 버스의 차창으로 보이는 메마른 땅과 가난한 농촌풍경이다. 물론, 그것이 이 나라의 거짓없는 현실인 것은 틀림없다.


다만 동시에, 그러한 농촌과 평양 사이에 격차가 있고, 평양시민 중에 격차가 생기고 있는 것도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리얼한 사실일 것이다.


이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특정지역에 자본과 인력을 집중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많은 개발도상국이 채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개발독재"다.


동남아 국가, 한국, 중국....등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메이지 유신 후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한정된 자원을 수도와 도시권에 중점적으로 투하해 발전을 촉진하고, 그곳을 끌어올리는 것부터 시작해 국가전체의 수준향상을 도모한다는 방식이다.


이러한 북의 변화, 정확히 말하면 평양의 변화, 즉 개혁개방의 흐름은 본인이 14년부터 지적해 오고 있습니다만, 본문에서도 나오는 평양공항의 신청사에는 그 전의 순안공항에 내걸려있던 김일성,김정일의 대형초상이 걸려있지 않습니다. 원래 평양의 순안공항에 두 지도자의 대형초상을 내걸었던 이유는, 북조선 그 자체가 김일성, 김정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에 나타내기 위한 선전수단의 일환이었습니다만, 그것이 김위원장의 시대가 되어, 사라진 것의 의미는 주목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북당국, 특히 평양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은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방북수기에도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평양의 돈주라는 존재와 신분격차를 느끼게 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그 때가 2015년도 입니다. 4년전의 이야기지만, 개발독재의 스피드가 평양에 적용되는 속도는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보다 더 빠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북을 몇 번이나 방문해 그 유명해진 신은미 씨의 체험담을 보면, 북 전체는 아니지만, 평양의 상황은, 오히려 위 찌라시 언론(?)의 설명과 유사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진짜 북의 경제체제가 어떤 지는, 북 당국의 공식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국가주도의 계획경제, 즉 사회주의 경제로 간주해야 겠습니다만, 그 범주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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