歴史的視点から見た「米朝首脳会談」の本質
朝鮮半島の歴史が暗示する“金正恩の末路”
2019年3月10日 樋泉克夫樋泉克夫(愛知県立大学名誉教授)
역사적 시점에서 본「북미정상회담」의 본질
한반도의 역사가 암시하는 "김정은의 말로"
2019年3月10日 樋泉克夫(히이즈미 가쓰오) 번역 오마니나

사진:AFP/아프러
2월 말의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성공이었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실패했였을까. 그 반대였을까. 아니면 두 사람 모두에게 성공이었을까. 혹은 함께 실패한 것이었을까. 서로가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허들을 지나치게 올린 것인가 -- 양 진영 관계자 뿐만이 아니라 관계 각국에서도 시끄럽게 갑론을박하는 논의를 볼 수 있어, 그 평가는 결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미평화선언까지 단행할 것이 아닐까 하는 등 이상하리만치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우리나라 미디어의 대부분에서 떠도는 "낙담론"은 눈을 가리기만 할 뿐이다. 북미양국 관계는 이제 단번에 급랭할 것이라는 극단론까지 나올 정도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근거가 박약한 채로 희망적 관측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은 아닐까.
따지고 보면,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이후 무려 70년 가까이, 때로는 적대감정을 표출하면서 상호불신을 계속 날카롭게 세워온 양국이다. 지난해 6월의 싱가포르에 이어 하노이의 2회째 회담에서 최고정상이 만나 악수한다고 해서, 그 정도의 관계로 서로가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있을 정도로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나 현실을 벗어난 것이며,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적대"를 "우호"로 전환한 키신저의 수완
과거에 "외교라는 것은 협상 당사자의 개인적 신뢰감 조성이 대전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1972년 2월의 리처드 닉슨의 방중을 성사시켰던 키신저 대통령 보좌관이었다고 기억한다.
그가 닉슨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에서 저우언라이 총리 이하 중국정부의 최고위층과 가졌던 기밀회담의 내용을 기록한『닉슨 방중 비밀회의록(증보판 결정판)』(나고야 대학 출판회 2016년)에는, 적대적인 미중 간의 신뢰구축을 위해(서라는 것은 중국측을 신용시키기 위해), 미국은 당시의 중국에게 최대의 위협이었던 "소련사회제국주의"가 중국을 향해 전개했던 군사정보를 최대한 빠뜨리지 않고 전달했다고 기록했다.
실은 이 회담의 3년 전인 1969년 3월 중소 양국은, 양국 국경을 흐르는 아무르 강(흑룡강)지류의 우수리 강의 모랫톱에 위치한 만스키(전바오)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전면전쟁 일보직전의 군사충돌을 되풀이했다. 중국측은 국내용으로 소련군을 반격해 승리했다고 전했지만, 역시 근대장비를 갖춘 소련군의 위협을 섬뜩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 인민전쟁 시대는 지나갔음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쩌둥은 소련군의 핵사용 전면공격까지 가정해 베이징 중심부에 방공호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삼선건설(三線建設)"이라고 칭해 무기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국방시설을 내륙부로 이전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국민에게는 "타도 미제국주의"를 계속 외치면서도,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논법에 따라, 모택동은 여러가지 방법을 구사해 화이트·하우스에 "닉슨 방중 환영"의 싸인을 보낸 것이다. 당시의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이 수집한 소련군에 관한 최고군사기밀은 입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갖고 싶었을 것이다.
"소련의 군사기밀"을 제공함으로서, 적대에서 우호로 전환시키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미국의 대중외교의 "진심도"를 나타냈다는 것일까.
"비즈니스"와 "외교"는 다르다
이렇게 해서 화이트하우스와 중남해의 신뢰관계가 쌓이면서 미중우호관계가 시작된 셈인데, 과연 지난 해의 일련의 대북협상에 나서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콤비는, 과거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보좌관 콤비가 중국정부에 나타낸 것과 같은 신뢰양성 작업을 시도했던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로켓 맨"에서"에서 "세계적인 굿 가이"로 180도 전환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순한 립서비스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역시 북조선으로서도 미국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노이 회담 2일째, 대북 강경론자인 볼턴 대통령 보좌관이 북조선 내의 핵군사시설에 관한 최고기밀을 제시하므로서, 김정은 위원장이 자리를 떴고, 협상은 결렬됐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강경자세 일변도로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역시 상대가 약하다고 해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강온을 섞은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것을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잘하는 딜이라면, 비즈니스 상의 거래와 외교협상이 같은 수준의 얘기가 되고 만다. 비즈니스 거래에는 외교와 표리일체인 국방이라는 측면이 없다는 것을,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발전으로 독재체제는 붕괴한다는 "환상"
트럼프 대통령은 핵을 포기할 경우의 북조선 경제의 큰 가능성을 공언한다. 하지만, 김왕조의 계속에 의한 경제발전을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경제발전에 의해 생활향상이 달성되므로서 국민이 민주화의 방향으로 움직여, 장래 김왕조의 독재체제 붕괴를 그리고 있는 것인가.
만약 경제발전의 결과의 대부분이 김왕조와 그와 연관된 특권계층을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최악의 경우, 국민에게의 미래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악몽 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한편, 경제가 풍족해지면 독재 체제는 붕괴해 스스로 민주화로 향할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면,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1978년 말의 대외개방 이후의 중국이 가르켜 준다.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와 마찬가지인 "김왕조 3대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를 한반도에 정착시킬 수 있다. 독재체제 하의 시장경제는 독재의 기반강화로 이어져 민주화로 향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이웃인 중국에서 증명이 완료된 일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북에 대해 어떤 미래상을 그리고 있을까. 하긴, 그의 일련의 북조선외교가 대통령 재선을 노리는 선거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면, 김정은 위원장 뿐 아니라 북조선 국민에게는 치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외교협상의 "현실"
상대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쌍방이 교섭한 전형적인 사례로서 생각되는 것은, 역시 중국에서의 국공대립이다.
1945년 8월 15일의 일본패배를 계기로, 장래의 중국의 체재를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미국정부가 중재역을 맡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양당을 이끄는 장개석과 모택동이 충칭에서 회담해, 차세대 중국지도자는 장개석(=국민당)임을 골자로 한 협정, 맺어진 1945년 10월 10일을 따서 "쌍십협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체결했다. 하지만, 1924년 국공합작 이후,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를 이어 온 만큼, 양측이 상대방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기위해 협정을 맺는 한편으로, 서로 상대를 타도할 수 있는 군비를 갖추며 때를 기다렸다.
이후, 공산당 역사관으로 "국내해방전쟁"이라고 부르는 국공내전이 1946년 6월부터 1949년 10월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후까지 이어진다.
이 사이 농촌에서는 공산당의 전쟁이 올바르다는 의식을 국민에게 철저히 주지시키기 위해 짜여져, 문화대혁명기에 한창 공연된 혁명현대경극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두견산'에서는, 싸움을 진행시키는데 있어서의 방침에 관한 '담담타타, 타타담담(談々打々,打々談々)"이라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말하자면 테이블에 앉는'담담'도, 전쟁터에서 서로 싸우는 '타타'도, 최종목적인 승리를 얻기위해 연속으로 이어지는 전술의 일환이다. 전장에서의 싸움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협상하고, 테이블에서의 교섭에 강한 입장에서 임하기 위해 전장에서의 싸움을 유리하게 전개해, 최종승리로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일본인은 "타타"가 끝나면 "담담이 시작되어, 쌍방이 "불가역적"으로 전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테이블에 앉는다고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세계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라톤협상"이 예상되는 이유
설령 북미 협상에 "담담타타, 타타담담"을 적용한다면, 미국에게는 "타타"라는 것은 제재강화이고, 북조선에게는 미사일 발사이자 핵실험이 될 것인가. 아마도 앞으로도 주변을 위기상황으로 몰고가면서 북미양국은 외교능력을 다해 마라톤 협상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든 북조선이든 일방적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것도 북미 양국의 사연(국익)만으로는 북동아시아를 좌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를 둘러싼 역사, 지정학, 국제관계 등을 고려할 때, 다음 사항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1)북조선이 주도하든 한국이 주도하든, 핵을 보유한 채로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은,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2)한반도가 통일되었다고 해서, 4개국 중의 1개국이 통일된 한반도와 "특수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3)한국전쟁 이후, 북중 양국은 반드시"피의 동맹"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다.
4)북조선의 경제발전을 생각할 때, 현실적으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일본뿐 이다.
5)그 일본과 북조선 간에는 "납치문제"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
6)핵은 김왕조를 지탱하는 유일한 최강의 수단이다.
아마, 이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다원 방정식의 해법"은 도무지 발견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관련국들은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마라톤협상을 각오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역사가 암시하는 김정은의 말로
같은 전용열차를 이용한 긴 여행이지만, 위풍당당했던 하노이행에 비해, 귀로는 의기소침, 언론이 전하는 인상은 전혀 달랐다. 하지만 지난해의 싱가포르 이후, 이렇게까지 서방언론에 노출되어 버린 이상, 김정은 위원장은 예전처럼 신비의 베일 안쪽에 갇혀 있을 수 없을 것이다.역시 국제사회를 향해 어떠한 메시지를 보내, 관계국과의 관계재구축을 계속 모색할 것이 아닐까.
그래서 떠오르는 것이, 한반도의 독재자가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의 "다음 수"를 생각할 때 생각이 미치는 것이, 이씨조선 제26대 국왕으로 대한제국 초대황제(재위 1864년~1907년)에 오른 고종(1852년~1919년)과 민비(명성황후/1851년~95년)라는 2인 최고권력자라는 행태다.
청국의 조공 체제하에 놓여져 있는 이상,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선택사항은 지극히 한정된 것이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궁궐 내의 쿠데타와 내란, 나아가 청일·러일 전쟁을 거쳐 한일병합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탁류에 고종과 민비는 때로는 맞섰다. 그래서 두사람의 업적을 그린『고종·명성황후』(키무라 미키 미네르바 책방 2007년)를 인용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다.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은, 고종 즉위부터 10년간 대원군 집정기라고 불리는 시기에 "조선왕조에서 가장 큰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재정정책에 실패하므로서 "농촌의 새로운 궁핍화를 초래"하고 말았다.청나라나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국경을 넘어 달아나는 농민들이 속출했고, 왕조경제의 붕괴는, 국방면에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탈북"이라는 현상은 김왕조 3대의 치세 탓이므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황자(皇子)인 의친왕은 비(妃)보다 하래인 귀인(貴人)인 장씨와의 사이에서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슬하인 "'한성부를 떠나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를 전전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황자라도 의친왕의 입장은, 형인 황태자나 동생인 영친왕보다 훨씬 뒤처지는 것이었다. 고종도 또한, 해외유학 중에 낭비혁이 있던 의친황을 흔쾌히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 기록된 의친왕의 처지는 오랜동안 해외에 방치되었던 김정일의 아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며, 해외유학 중의 낭비벽이 원인으로 아버지에게서 "흔쾌히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점은 재작년 2월에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김정남을 연상시키므로 불가사의한 인연이다.
고종이 칙령으로 자신을 대한민국의 육해군을 총괄하는 "대원수"로 정한 1898년, "자시의 아래에 황태자가『원수』로서 그 일체의 통솔을 맡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비상사태가 발생하거나, 출정해야 하는 상태가 일어난 경우를 제외하고』, 황태자 외의 황자, 황손을, 그 아래인 대장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정했다". 이것을 권력유지의 전통적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형인 김정철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행태도 어쩐지 납득이 가능해진다.
대외관계에서는, "첫째로(종주국인 청나라를 제쳐놓고),자신의 밀서에 의한 비밀외교로 서양열강을 끌어들이려는 것, 그리고 둘째로, 그것이 드러난 경우에는, 그 협상에 직접 나섰던 신하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셋째로, 그 경우에 공작의 대상이 된 열강에게는 최대한 배려하는 방식이다".
"대외관계와 국내문제의 구별조차 모호"했던 고종이긴 했지만 "그것을 고종(高宗)의 권력욕이나 금전욕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졸속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자신과 자기가족을 지키는 것으로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고종 민비'에서는 "이렇게 해서 진짜 파국이 오게된다"며, 인상적인 문장으로 결론을 지었다.
1990년대 초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해, 소련이 해체되고, 동서냉전 구조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승리가 주창되어, 미국 일극구조가 태어난 상황을 파악해, 프랭크·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역사에 종말은 없었던 것 같다.
이상, 한반도 정세에도, 미국 정치에도 전혀 문외한이지만,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약간의 생각을 해보았다.
http://wedge.ismedia.jp/articles/-/15585
하노이 노딜 전후, 가장 강력한 대북발언은 폼페이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북측은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폼페이오 "北에도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같은날 희망"
2019년02월22일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989년 동독의 베를린 장벽 붕괴를 거론하며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방영된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1989년 동독 국경을 순찰하는 젊은 군인이었다"며 "아무도 그 때 장벽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무도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가 그날과 같은 날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http://www.newspim.com/news/view/20190222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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