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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생각한다 (2)

일본관련

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2. 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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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は韓国にとって”特別な国“」は冷戦終結で終わった

日韓関係の構造的変化を考える(2)

2019. 02. 15 澤田克己(毎日新聞記者、元ソウル支局長)



일한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생각한다 (2)


            일본이 한국에게 "특별한 나라"였던 것은 냉전종식으로 끝났다



                                2019. 02. 15 澤田克己(사와다 카츠미) 번역   오마니나




 "천황폐하의 한마디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된다"는 한국 국회의장의 발언이나, 징용공 문제에서 일본정부에게 "겸허함"을 요구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어느 쪽도 일본측의 반응을 꼼꼼하게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난 회에서는, 그러한 한국 측의 "가벼움"이 양국관계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개략을 설명했다. 최근 30년 사이에,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존재감이 놀라울 정도로 낮아졌다. 한국 측에서  너무나 "가벼운" 발언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이 일본의 존재감 저하가 있다. 이러한 한국 측에 의한 인식의 "가벼움"은 큰 문제지만, 한편으로 냉전종결이라는 세계사적인 사건의 영향을 생각하면 일본의 존재감 저하라는 현상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사진: YONHAP NEWS아프로)


동아시아 정세를 격변시킨 냉전 종식


 30년 전에 냉전종식이 선언되었을 때, 뉴스의 주요무대는 구 소련을 포함한 유럽이었다. 그러나 냉전은 세계전체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아시아도 무관하지 않았다. 냉전 하의 한국은, 625전쟁으로 교전했던 북조선과 함께 동서 양 진영이 대립하는 최전방이었다. 그 한국이 사회주의권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종식 덕분이다.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은, 냉전종식의 흐름에 따라 사회주의권과의 관계 정상화를 적극 추진했다. 한국이 진행한 "북방 외교"의 하이라이트가 소련(90년), 중국(92년)과의 수교였다.


 이때,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미일 양국과 북조선의 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 중소가 한국과, 일미가 북조선과 각각 수교하는 "크로스 승인"을 하지 않으면 지역정세가 안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미와 북조선의 관계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지지해왔던 중·소 양국의 배신이다. 북조선의 외무상은 당시, 한국과의 수교방침을 전달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소련 외무상에게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의사를 시사했다. 북조선은 그 이전부터 핵개발을 추진했지만, 커다란 국제문제가 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북조선과 소련(나중에 러시아)의 관계가 냉각된 것은 물론, 중국과의 정상급 왕래도 90년대 말까지 끊겼다. 북조선은 냉전종식으로 인해 단숨에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어버린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끊겨, 1990년대 중반에는 기상불순까지 겹쳐 극심한 식량위기에 빠졌다. 북조선이 냉전종식 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한반도 정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 냉전의 세계에서는 글로벌화가 진행되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중국은, 글로벌화의 물결에 따라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2010년에는 명목 GDP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현재의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경제력을 배경으로 기존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려고 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한국은, 중국과 마주보는 것에서도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냉전 종결 후의 세계정세는 일본을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타국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특히 냉전 하에서 "최전방 국가"라는 궁핍한 위치에 갇혀 있던 한국은, 일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일본은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0여년 전, 한국에 주재했던 일본 외교관과 술을 마시며 나눴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이야기 하던 중, 그는 "냉전시대의 한국에게 세계라는 것은 일본과 미국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진실을 말한 것이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625전쟁으로 전 국토가이 전장이 된 한국과 북조선 사이에는 중무장한 대군끼리 대치하는 공간만 펼쳐져 있었을 뿐, 상대 진영과의 외교는 없었다. 더구나 한국은 70년대에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경제적으로 약체인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았다. 안전보장와 경제의 양면에서, 한국은 미일 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식민지 지배의 기억이 새로웠던 시기에, 반일여론이 높아졌다고 해도, 정권으로서는 방만한 반일을 방치할 여유는 없었다. 상징적인 사례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없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굴욕외교"라고 반발하는 여론을 계엄령으로 짓누른 박정희 정권의 선택일 것이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박정희를 "친일적"이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일본에는 있지만, 나는 좀 회의적이다. 식민지 출신자에 대한 차별을 체험했을 인물에게 단순한 "친일"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오히려 현실주의자로서, 일본의 자금과 기술 없이는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 밖에는 길이 없었으므로 반일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억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1980년대의 세계정세의 변화를 받아 "한국에 있어서의 세계"는 크게 달라진다. 1985년에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해,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다. 88년의 서울올림픽에는 동서 양 진영이 모두 모여,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한국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차례로 국교를 맺었다. 그리고 1989년에 냉전종결이 선언되고, 1990년에 소련, 92년에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다. 한국에 있어서의 세계는 미일 뿐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 시기 이후, 한국외교의 중심으로서 이야기하게 된 것은,일본 ,미국, 중국, 소련(러시아)이라는 주변 4강국을 일컫는 "4강"이란 말이었다.


 그래도 군사동맹으로 뒷받침된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전보장에 필수적이다.결과적으로, 중소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나라"가 나타나므로서 감소한 것은 일본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되었다.


 2003년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국력 신장을 배경으로 "한국의 세계"를 더욱 넓히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인 윤영관 씨는 그해 말으 기자회견에서,  한국외교의 과제로서 "자주외교"를 강조했다. 윤씨는 회견에서 "우리나라의 국력에 맞는 글로벌 외교를 펼쳐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4강에 더해, EU와 ASEAN, 중동 등 글로벌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한 의지가 곧바로 결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미와의 관계 만이 국가로서의 생명선이라고 하던 시대는 이미 예전에 끝났다.



경제에서도 일본의존도는 크게 저하



 냉전종식과 때를 맞춰 한국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했다. 한국은 1996년 "선진국 클럽"으로 불렸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2010년에는 개발도상국의 지원을 담당하는 주요 선진국 29개국과 유럽연합(EU)이 회원인 OECD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구식민지로 "원조받는 측"이었던 나라로서는 지금까지도 유일한 DAC 회원국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후반에는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의 세계에서도 최빈국 중의 하나다. 그러한 경이적인 경제성장에는, 65년의 국교정상화를 받아 일본에서 제공된 자금과 기술이 크게 기여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징용공소송과 청구권협정의 관계 등으로 여러 설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에 기댄 것은 돈과 기술뿐만이 아니다. 무역상대로서도,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요한 상대국이었다. 한일수교 이후 5년 만인 70년을 보면, 한국의 무역상대국 점유율은 일본이 37%, 미국이 34.8%로 합치면 70%에 달했다. 미일의 비중은 점차 낮아지지만, 1990년에도 일본 23.1%, 미국 26.9%로 전체 무역의 절반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다만 일미 합계의 비율이 50%를 넘은 것은 90년이 마지막으로, 그 다음은 직선적으로 떨어져 간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에는 30%대를 기록했고, 2004년에는 20%대, 2011년에는 마침내 10%대를 기록했다. 지난해(18년)는 일본 7.5%, 미국 11.5%로 총 19%다.


 1980년대부터 세세하게 교역이 시작된 중국의 점유율은 90년 2.1%였지만, 2001년 10.8%, 2009년 처음으로 20%대에 진입하는 동시에, 미일 합계(20.1%)를 웃도는 20.5%로 순조롭게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23.6%에 이르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미·중 3개국의 점유율 변동 만이 아니다. 3개국 만을 더해도 작년의 점유율은 4할 이상이다. 꽤 큰 숫자이지만, 일·미 2개국으로 7할이었던 정도의 과점상태는 아니다. 한국은 이미 GDP 규모로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무역 상대도 다각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한국에게 특별한 나라였던 일본의 위상은, 냉전종식을 전후해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불가역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는 그것을 전제로 놓은 후에 생각해 나가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이 양국 모두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 점에도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http://wedge.ismedia.jp/articles/-/15370?page=3


사와다 카츠미 씨의 글은 다나카 사카이 씨와 함께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고 할까, 꼭 찾아보는 편입니다만, 이번 글도 현재의 한일관계악화의 원인이 최근이 아니라, 30년 전 이상 전에 있었던 냉전종결에 의한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작년 욱일기 게양거부와 징용공 문제, 레이더 조사 문제는, 그 냉전구도가 와해된 이후,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미군산에 의해, 북핵을 빌미로 한 <대 중국 봉쇄망이었던 미일한의 종속구조>가 북핵문제의 해빙에 의해 무너지면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것과 같은 흐름에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동감을 느낍니다.


결국, 최근 한국민들이 보여주는 단선적인 반일감정은, 그 구조적인 구도가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로파간다의 필요성은 영원할 것이라고 봅니다만,,,,


더불어 한국과 북조선은 냉전 종결 시의 대처에 의해 그 운명이 그때 이미 갈렸다고 할 수있습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 말에 걸친 소위 "고난의 행군시절"에 대해, 북당국은 미제국주의 조선압살정책에 의한 결과로 선전하고 이것을 남측 내에서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원래, 미국은 북과 경제관계가 전혀 없는 것이므로, 애초부터 경제제재는 미국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조선이 피해를 받은 것은 소련의 붕괴와 그 위성국가로부터의 원조경제의 붕괴, 그리고 중국이라는 혈맹의 미중수교에 의한 배신을 사전에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입니다.


한국이 오히려 소련, 중국, 동유럽의 사회주의권과의 관계를 강화해나간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지요. 현재 북핵을 둘러싼 구도 역시 똑같습니다. 북의 핵보유는 미국 만이 아니라, 중러에 의해 용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소위 "핵 병진노선"은 애초에 성공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그 점을 확실히 알고 오히려, 협상수단으로서의 핵개발을 단기간에 집중시켜 "한국"을 중개자로 한, 북미대화에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북당국의 주장대로 북의 핵무력에 의해 미국을 협상탁에 강제로 끌어앉힌 것이 아니므로, 그 댓가를 치뤄야 할 것입니다.  


   









가져온 곳 : 
카페 >통일의 건널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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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뽀로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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