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을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첫 손에 꼽히는 최부자집. 하지만 그 명문가에도 원류는 존재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참전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이 생애를 보낸 충의당(忠義堂)이 바로 그곳이다.
충의당은 크지도 위압적이지도 않다. 단정하고 반듯한 공간들은, 최진립 장군의 고매한 인품을 반영이라도 하듯 기단이 낮고 화려하지 않으며 건물의 위세를 뽐내지 않는다. 그곳에 살던 사람, 그리고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의 유명세에 견주어 보면 굉장히 겸손한 모습이다.
“ 대대로 청렴한 집안이었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최진립 장군께 드릴 물고기를 잡아온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사용한 그물코가 촘촘한 것을 확인하시고는 ‘작은 물고기까지 모두 잡아버리면 후세에 남길 것이 없어진다’라며 그물을 태워버리셨다고 합니다.”
교편을 잡고 후학을 양성하다, 이제는 고택과 그 안에 서린 선조의 혼을 지키고 있는 15대손 최채량(崔採亮) 씨는 충의당에 대해 “최부자가 백 년 동안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많은 이들을 도운 곳”이라고 말한다.
“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최부자 정신과 가훈들역시 모두 이곳에서 최진립 장군에 의해 시작된 것들이지요.” 그래서인지 충의당은 오랜 역사와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역시도 오직 청렴과 근검을 가장 높은 가치로 삼았던 집안의 내력에 기인한 것임에 틀림없다.
경주 충의당 전경
경주 충의당 흠흠당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는 사당(祠堂)이 있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서면 다실로 사용되는 경모각(景慕閣)과 충의당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충의당 뒤로는 흠흠당, 우산초려(愚山草廬), 안채인 잠와(潛窩)고택이 안마당을 둘러싸고 자리 잡아 부분적으로 열린 口자형의 전형적인 남부 지방 양반 가옥의 배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충의당은 좌측에는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으로 꾸미고, 우측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흠흠당은 원래 충의당의 당호였으나 사랑채의 이름이 충의당으로 바뀌면서 중사랑채에 흠흠당이라는 당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붕에 기와를 책으로 엎어놓은 듯 한 맞배지붕이며 방과 함께 마루가 있어서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다. 사당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고즈넉한 느낌이 살아 있고 내부는 전통 한옥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독립된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서 숙박을 하기에 편리하다. 경주 충의당 경모각
우산초려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원래 초가지붕 이었으나 최근 기와지붕으로 바꾸었다. 흠흠당에 비해서 좀 더 소박한 느낌을 주며 편리한 숙박을 위해 독립된 욕실과 화장실을 가지고 있다.
잠와고택은 안채로 사용되는 一자형 건물로, 왼쪽으로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연결되어 있다. 충의당의 손님들은 이 안채의 큰방에서 안마당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하게 된다.
사당은 전면에 툇마루가 딸린 맞배지붕으로, 상부 구조물은 민가의 사당으로서는 매우 화려하고 섬세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경주 충의당 우산초려
충의당을 방문하면 꼭 보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충노비(忠奴碑)고 다른 하나는 회나무다.
충노비는 말 그대로 충성을 다했던 노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병자호란 당시, 용인(龍仁)전투에서 죽음과 마주하게 된 최진립 장군이 평생에 걸쳐 자신을 따르던 환갑을 넘긴 두 노비에게 “너희는 집으로 돌아가 목숨을 지키라”라고 명했지만 이에 “주인이 목숨을 버려 충신이 되거늘 어찌 저희가 충노(忠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함께 목숨을 바쳤다 한다. 그 뒤로 이곳 충의당에서는 최진립 장군에게 제를 올린 후 그대로 상을 물려 두노비를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 신분 구분이 엄격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양반들로부터 많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집안의 전통이 되었다. 경주 충의당 충노비
회나무는 집에서 대문을 나서면 왼편으로 보이는데, 최진립 장군이 직접 심은 것이라 전해진다. 신기한 것은, 이 나무가 1905년 고사(枯死)했다가 1945년 갑자기 회생했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일본에 점령당한 후 다시 해방된 연도와 일치한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이한 우연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여러 번 불에 탄 이후에도 여전히 푸른 잎을 틔웠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단순히 우연이라 치부하기는 어렵다. 경주 충의당 회화나무
충의당에는 작은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최진립 장군때부터 내려오는 유물과 유품을 철저하게 관리해온 덕분에 일 년 내내 순환 전시를 해도 될 만큼 그 수가 많으며, 일부는 한국정신문화연구소 등에 위탁 관리를 하고 있을 정도라 한다.
물론 집안에 설치된 것이기에 유물전시관의 면적이 그리 넓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전시품은 최진립 장군과 그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경주 충의당 유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충의당에서는 서예, 다도 등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특히 현재 충의당을 지키고 있는 최채량 씨의 글씨는 경주에서도 알아주는 명필로 소문이 나있으니 서예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문의해 보기를 바란다 경주 충의당 서예체험
동대구분기점 → 경주IC → 나정교삼거리에서 부산, 언양 방면 우회전 → 이조리 방향 우측 방향 → 이조중앙길 → 내남로 → 이조3길
경주시외버스 터미널 → 154/505/507/502/508번 탑승 → 이조 정류장 → 충의당
신경주역 → 51/70번 탑승 → 경주초등학교 앞에서 502번 환승 → 이조 정류장 → 충의당
궁중음식 전문가인 주인이 운영하는 예약제 한정식 전문점. 수리뫼란 으뜸 가는 음식맛과 최고의 정성을 뜻한다. 이곳의 주인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 이수자로, 각종 국가 행사에도 종종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4인 이상으로 예약을 해야 하며, 하루 한 끼당 한 팀만 예약을 받고 있다. 메뉴는 예약 사항에 맞춰 구성하여 차려낸다. 궁중요리인 구절판과 연저육찜, 죽순채, 대하 잣 무침, 너비아니, 승기약탕, 도미면 등의 메뉴가 대표적이다.
회덮밥 한 가지 메뉴만 내놓는 독특한 식당. 그만큼 회덮밥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양은 여느 식당 같은 소박한 느낌을 주지만, 듬뿍 얹어주는 회 때문에 유명한 곳. 양푼에 담긴 밥 위에 얹어져 나오는 회는 종류를 따지지 않고 그날의 신선한 생선을 이것저것 섞어서 놓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은 포항 구룡포에서 가져 오는 청어, 물가자미, 숭어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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