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의 가장 큰 미덕으로 고즈넉함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검소하고 소박한 면을 특히 강조한,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형식미가 아닌가. 그러나 단순히 규모만 보고 “스케일이 작다”라며 고고한 전통을 폄하하려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 그런 이들에게는 강릉의 선교장을 소개해야 한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양반집이었던 선교장은, 고택들 중 흔치 않게 장(莊 :자체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 물리적 공간만 광대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그곳에 담긴 이야기 역시 고택들 중 첫손에 꼽힐 만큼 다양하다.
그 광활한 공간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으로 강원도 유람을 떠나는 선비들에게 늘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던 선교장은 풍류와 사교의 중심지로, 우리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야기의 보고이다.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이내번(李乃蕃,1703~1781, 호:무경(茂卿))에 의해 처음 지어진 후 10대에 이르도록 발전과 증축을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선교장은 동, 서, 외로 나뉜 별당과 열화당, 중사랑채, 행랑채와 사당이 12개의 대문을 함께 사용하며, 총 103칸의 규모를 자랑한다. ‘칸’이라는 것은 한옥의 규모를 가늠하는 단위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으로 세는데, 조선 시대 궁궐을 제외하고 법률로 정해놓은 민가의 최대 건축 규모는 99칸이었다. 그러므로 103칸은 상당히 이례적인 규모로 국내 최고, 최대로 꼽힌다. 그 웅장한 규모는 넉넉한 인심으로도 이어진다. 강릉 선교장 동진학교
“정철 선생이 『관동별곡』을 지은 이후 조선 후기 사대부들에게 관동 유람은 선비로서 꼭 한 번쯤 경험해야 할 풍류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배를 놓아 경포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해서 선교(船橋 : 배 다리)장의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경포호수 경관이 상당하여 관동 유람을 하는 선비들의 방문으로 사시사철 언제나 손님이 많았습니다.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게 큰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의무였으니까요.” 강릉 선교장 동별당
선교장의 살림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강백 관장은 “비단 손님뿐 아니라 흉년이 들때면 지역 주민들에게 곳간을 개방하는 역할을 했던 곳도 바로 선교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러한 선교장도 이강백 관장이 퇴직 후 돌아온 1991년, 위기를 맞았다. 광활한 고택에서 거처하는 사람은 이강백 관장 부부와 어머니, 단 세 명뿐이었으니 집을 돌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선교장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애쓰던 이강백 관장은 마침내 행정지원을 이끌어냈고, 향후 전국의 많은 고택들도 혜택을 보게 되었다. 우리 전통건축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노력이 또 다른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이어진 것이다. 강릉 선교장 연지당과 서별당
웅장한 규모의 선교장을 둘러본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활래정부터 살펴볼 것을 권한다. 연잎으로 가득 뒤덮인 연못 위에 떠 있듯 자리 잡고 있는 활래정은 누마루 두 칸, 온돌방 두 칸과 준비실 한칸 반의 크기로 1816년에 건립되었는데, 사방의 문을 열면 매우 개방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는 정자 형태로 되어있다. 독특한 점은 일반 정자와는 달리 마루뿐아니라 온돌방도 갖고 있으며, 온돌방과 마루 사이에 차와 다과를 준비하는 준비실이 따로 있어서 접대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활래정은 현재 다실로도 활용되고 있다. 활래정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시인 묵객들이 각각의 개성대로 글씨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20년 경에쓰인 김정희(호:추사)의 ‘단풍이 있는 산에 살리라(紅葉山居)’라는 뜻의 현판이다. 김정희는 조선 시대 서예의 거장으로 추사체(秋史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어냈다. 강릉 선교장 활래정
열화당은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물로, 1815년에 건립되었다. 팔작지붕을 가진 사랑채인데,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구절에서 인용하여 삼형제가 늘 열화당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측면의 대부분을 문으로 구성했는데, 여름철에는 그 문을 들어올려 마치 정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평면구성을 하였다.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해 덧달아 낸 처마가 독특한 멋을 보여준다. 같은 이름의 출판사 ‘열화당’ 역시 선교장의 후손들이 설립한 것으로 그 정신을 기리며 지금은 ‘열화당 작은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초정(草亭)은 열화당 뒤편 언덕에 위치한 ㅡ자형 초가집으로 그 중 한 칸은 마루로 만들어져 있다. 여름에 책을 읽는 공간으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강릉 선교장 열화당 초당
안채는 선교장에서 최초로 지어진 ㄷ자 형태의 건물이다. 식구가 늘어나고 주변의 친척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동별당(東別堂), 외별당(外別堂)과 안살림을 물려준 웃어른들이 머물던 서별당(西別堂)을 건축하게 되었다. 가세가 늘어남에 따라 행랑채와 곳간채 등 공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선교장의 규모도 확장되었다.
이 외에도 여성들의 공간이었던 연지당(蓮池棠), 단체 손님이 기거하던 중사랑채 등 다양한 공간을 구비하고 있어서 그 실용성과 품위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풍모를 자랑한다. 강릉 선교장 서별당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선교장은 풍류와 사교의 장으로, 예전부터 화려한 상차림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식가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을 터. 활래정 연꽃의 ‘연’과 선교장의 살림을 맡아왔던 여인들의 거처인 연지당의 첫 머리를 따서 지은 가승 음식전문점 ‘연(蓮)’과 각종 전과 강원도 향토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까지 갖추고 있을 만큼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선교장에서는 예약 손님들을 대상으로 정성스런 아침과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아침 식사에는 부드러운 초당두부가, 저녁 식사에는 시원한 황태국 정식이 나오는데, 은은하며 담백한 맛이 선교장의 가풍이 어떠했는지 은은히 알려준다. 상에 함께 오르는 된장국은 강원도의 막된장으로 끓여 그 맛이 깊고 그윽하다.
화려함과 풍성함을 자랑하는 선교장의 300년 가승 음식도 맛볼 수 있는데 통천댁(通川宅) 전골 4인상, 풍류(風流)상, 선비상, 수라상 등이 마련되어 있다. 4인 이상 전일 예약은 필수다.
강릉 선교장 가승음식점 연
강릉 선교장 아침식사
선교장에는 조선 말기 근대식 학교인 동진(東震)학교로 사용되었던 동진당(東震當)이 있다. 동진당 옆 유물전시관은 예전에는 곳간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의 현판 탁본체험을 할 수 있다. 유물전시관의 뒤편에는 맛을 내는 집이라는 뜻으로 ‘자미재(滋味齋)’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특이한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나무 판자로 지붕을 만들었다 하여 이름 붙은 강원도의 너와집 형식에 기와집 모양을 본떴다는 점이 이채롭다. 지금은 선교장을 찾는 손님을 위한 세탁실 겸 준비실로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오랜 세월 선교장을 지켜 오고 현재는 집안 대대로 계승해 온 음식을 8대 종부 성기희(成耆姬) 여사(이강백 관장의 어머니)가 정리하고 연구한 곳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선교장에는 제기차기와 그네뛰기, 투호 같은 민속 놀이, 전통예절, 떡과 한과 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예약하면 참여 가능하다. 활래정 다실과 열화당 작은 도서관도 투숙객을 위한 편안한 휴식처이다.
강릉 선교장 유물전시관
강릉 선교장 유물전시관
강릉IC → 주문진, 경포 방향 → 사임당로 → 솔올교차로 → 양양, 주문진 방향 좌회전 → 동해대로 → 경포, 참소리박물관, 강릉 선교장 방향 → 선교장
강릉버스터미널 → 202번 탑승 → 선교장
강릉버스터미널 → 302/303번 탑승 → 오죽헌 → 선교장
강릉역 → 202번 탑승 → 선교장
강릉역 → 300/308/302번 탑승 → 오죽헌 앞 정류장 → 선교장
가게 앞에서 직접 재배한 콩을 사용해 두부를 만드는 곳. 순두부 뿐 아니라 두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있어 메뉴 선택의 폭이 넓다. 400년된 가옥에서 상을 받는 것도 독특한 즐거움. 다만 단체손님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조용한 식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든 역할을 한 카페 중 한 곳. 다양한 산지별 원두를 보유하고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든 인테리어 역시 이곳만의 특징. 직접 구워낸 빵도 인기가 높다. 항상 손님이 많은 곳이라 카페 내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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