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세월을 건너 현대에 뿌리내린 99칸 심부잣댁의 위엄
당대 대부호의 대명사인 '99칸 기와집' 청송 송소고택은 '덕천동 심부잣댁'으로 더 유명하다.
조선 영조때 만석의 부를 누렸다는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松韶 沈琥澤)이 1880년 경 호박골에서 본래 살던 덕천리로 이전하면서 지었다고 전해지는 송소고택.
재력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 간 정승 열 셋, 왕비 셋, 부마 넷을 배출한 명문가의 위엄 있는 자태가 곳곳에 남아 있다. 덕천마을 넓은 평지 위에 남동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 송소고택은 전체적으로 '口'자 형태를 갖추고 있다.
대문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진 돌담은 안에 들어가보지 않아도 이 고택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남다른 권위를 뽐내는 솟을대문을 지나 펼쳐지는 고택 전경은 규모에서 먼저 압도된다. 3,000여 평 대지 위에 총 7개 동으로 구성된 건물마다 별도의 마당이 마련되어 있고, 고택의 역사와 세월을 같이한 정원수들이 정성스럽게 가꾼 화단, 세 개의 우물과 세 개의 화장실, 방 갯수보다 많은 고방들이 이 집안의 위풍당당했던 역사를 증명한다.
조선팔도 곳곳에 자기 땅이 없는 곳이 없었다는 엄청난 재력
심부잣댁의 재력은 9대 2만석으로 조선 팔도 곳곳에 땅이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에 화폐의 가치 변동이 심해 나라에서 은화로 납부하라는 명이 내려오자 안계고을에 있는 전답을 은화로 바꾸었더니 고을의 은화란 은화가 전부 모였으며, 이를 호박골로 옮기는 행렬이 10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날 집에 큰 도둑이 들어 많은 재산을 훔쳐갔는데 이때 도둑을 맞고 남은 돈으로 지은 곳이 송소고택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니 그 재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만석꾼을 넘어 이만석꾼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부를 누렸던 조선 최상의 명문가들의 당시 삶이 궁금한 이들에게 송소고택에서의 하루를 추천한다.
고택의 규모와 품위에 어울리는 정성을 더하다
송소고택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협회중앙회 및 매일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한 '2011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고택의 규모며 시설, 보존 상태, 역사적 가치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99칸 넓은 고택을 관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송소고택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깔끔함과 단아함'이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루와 기둥, 언제든 손님이 들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리된 방,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된 흙담 아래서 갖가지 색깔로 피어난 꽃들이며 툇마루 위에 놓여있는 살림살이들까지 원래 그 곳에 있었던 양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9년째 송소고택을 지키고 있다는 삽살개 '껌껌이'마저 손님을 향해 함부로 짖는 일이 없으니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으로서도 절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게 된다.
내딛는 첫걸음부터 느낄 수 있는 명문가의 권위
송소고택의 솟을대문은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홍살을 설치해 집안의 권위를 높였으며, 대문의 기둥은 1m가 넘는 팔각 모양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누각이나 정자에 사용하는 양식으로 일반적인 대문에는 주춧돌까지 나무
기둥이 내려오게 되어 있으나 더 위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자연석을 깎아
만든 기둥을 세운 것이다. 대문 양 옆은 행랑채로 4개의 방이 있다.
행랑아범이 기거하거나 길가던 과객, 혹은 장기체류하던 식객들에게 내어주던
방이다. 행랑채 오른쪽 건물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무실 옆에 서 있는
두 그루의 향나무 사이 문으로 들어가면 화장실과 욕실이 나온다.
내부는 현대식이지만 외부는 고택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나무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솟을대문과 행랑채
송소고택 전경
내외담(헛담)과 꽃과 나무로 아기자기한 화단
송소고택에서 이채로운 것은 'ㄴ'자 모양의 내외담(헛담)과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화단이다.
내외가 엄격하던 시절, 풍수지리학적으로 안채는 밖으로 드러나면 복이 나간다
하여 대부분의 고택에서 안채는 집안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문
정면에서도 조금 비껴서 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는
안채를 완전히 가리기 위해 내외담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남자는 내외담 왼쪽을 통해 사랑채로, 여자는 오른쪽을 통해 안채로 들어갔다.
내외담 옆의 화단은 집주인의 정성 어린 손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공간이다.
고택과 역사를 함께해온 100년 넘은 회양목과 갖가지 꽃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져 있다. 내외담이나 마당 중앙의 화단 역시 규모가 큰 가옥이라야 가능한
송소고택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앞마당
내외담(헛담)
가장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건물
고택에서 가장 화려하게 지어진 사랑채는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로 나뉘어
남다른 규모를 자랑한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머물렀던 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 넓게 펼쳐져 있고, 대청과 책방, 누마루가 붙어
있는 누마루방, 큰 사랑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에는 시원하게 처마 밑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분합문이 있어 너른 마당으로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해 준다.
특이한 것은 마루 아래 나무로 된 긴 디딤판이다. 보통 대청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데 송소고택에서는 댓돌 대신 나무
디딤판을 두었다. 추운 겨울에 버선을 신고 이동할 때 냉기를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큰 사랑채 전경
큰 사랑채 대청에서 본 풍경
시원한 마당 전경을 볼 수 있는 누마루방과 큰 사랑방
언뜻 보아도 기품이 흐르는 고가구들로 장식된 대청 위에 앉으면 넓은 마당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랑채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누마루방이다. 거의 방 크기와 같은 정도의 누마루가 붙어있는 누마루방은 큰 사랑채의 손님이 머물던 곳으로 창을 열고 보면 삼면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며 고택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는 대청이나 큰 사랑방에서 바라보는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 이곳이 귀한 손님을 위한 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택에서 가장 넓은 큰 사랑방은 대대로 집안의 큰어른이 머물던 곳이다. 본래 벽면의 문을 들어올릴 수 있어 대청과 통하는 구조이나 현재는 문을 병풍으로 막아 온전한 방으로만 꾸몄다.
누마루방에서 바라본 넓은 마당
고가구와 병풍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진 큰 사랑방
집안의 큰아들이 머물던 작은 사랑채
작은 사랑채는 집안의 큰아들이 머물던 곳으로 큰 사랑채와 이어져 있는 중문
옆에 2칸의 방과 안채로 통하는 우측 쪽문 옆의 방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의 크기와 분위기는 큰 사랑채와 비슷하다. 송소고택의 거의 모든 방에는
단정한 발들이 걸려있으며, 하나같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창을 열면 후원으로, 마당으로, 별채로 열리는 다채로운 풍경들에 마음 또한
풍성해 진다. 대부분의 온돌방에는 벽장이나 다락이 있는데 사랑채 방의 벽장은
사람 둘이 누워 자도 충분할 정도로 넓다. 다락 역시 어지간한 방 크기만큼
넉넉하다. TV 등의 전자기기는 벽장 속에 숨겨져 있어 고택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인의 정성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다.방 1칸이 따로 딸려있는
작은 사랑채방
고택의 살림을 책임지던 넓은 안채
사랑채 뒤쪽과 어울려 口자 구조를 띠고 있는 안채는 주인 부부가 기거하는
안방과 숙박이 가능한 안사랑방, 중간방, 찬모방 그리고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고, 안채 마당 좌우로 커다란 고방이 자리잡고 있으며, 디딜방아가 있는 방앗간채가 남아있다. 방앗간채 뒤쪽으로는 텃밭이 있는데 본래 이 자리는
곡식을 널어놓는 자리였다고 한다. 고택 내에서 곡식을 말리고 방아를 찧어
보관하는 과정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안채의 고방이 사람이 머물던
방보다 규모가 크다. 고택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큰 규모의 안채 전경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아궁이와 엿보기 구멍
안채 대청에 앉아 시선이 바로 닿는 것은 나지막한 굴뚝이다.
송소고택에서는 아직도 장작으로 불을 지펴 방을 데우는 곳이 절반 정도 된다.
손님이 들기 전 아궁이에 미리 불을 지펴두는데 굴뚝을 통해 하얀 연기가 마당을
휘감으며 돌아나가는 풍경이 이채롭다. 겨울이면 한 번에 30톤 정도의
나무장작을 주문해 불을 지핀다고 한다. 안채에서 독특한 것은 사랑채와 안채를
가로막는 담장에 뚫려있는 엿보기 구멍이다. 사랑채 쪽에는 6개, 안채 쪽에는
3개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사랑채 쪽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안채 쪽의 구멍으로 보면 사랑채 마당을 내다볼 수 있다.
내외가 엄격했을 때 안채의 여인들이 사랑채에 어떤 손님이 오셨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안채 쪽에서 본 엿보기 구멍
큰 사랑채 우측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별채로 갈 수 있다.
별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으며 마루와 온돌방,
대청으로 구성된다. 오른쪽 온돌방 앞으로는 누마루가 있으며 마당에 별도의
우물이 있다. 별채는 집안의 여자아이들이 지내던 곳으로 이곳에서 바깥 출입을
삼가면서 글과 바느질, 요리 등을 배우고 예절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별채 대청의 문은 사랑채처럼 위로 들어올릴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꼭 닫혀있는 별채의 문들을 보며 남녀의 구분이 엄격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별채에는 바로 옆 송정고택으로 이어지는 쪽문이 있는데
송정고택은 심호택의 둘째 아들인 심상광의 살림집이었던 곳으로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송소고택의 별채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송현오거리('대구, 남안동IC' 방면) → 어가골교차로('영덕, 안동댐, 시청' 방면)
→ 정상교차로('영덕, 영천' 방면) → 신덕1삼거리('임하' 방면0 → 충효로 → 덕천길 → 송소고택길 → 송소고택
청송시외버스터미널 → '청송-지경행', '청송-구수(지경)행' 버스, 덕천2리 정류장 → 송소고택
주왕산을 오르며 달기약수터에 들렀다면 주왕산맛집으로 이름난 신동양식당을 찾아보자. 백숙과 닭떡갈비, 묵은지찜닭 등 여러 메뉴가 있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달기약수로 고아 만든 달기약수능이버섯백숙이다. 주왕산 인근에서 채취한 자연산 능이버섯과 여러 가지 한방재료를 넣고 4시간 이상 달기약수로 조리한 대표 메뉴로 푸짐한 밑반찬들과 함께 제공되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송소고택에서 도보 2~3분 거리에 있는 소슬밥상은 고택 부근에서 유일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으로
예약이 필수이며 따로 메뉴가 정해져 있지 않다. 주문을 하면 정갈하게 마련된 한정식 밥상이 차려진다.
반찬 하나하나 조미료 대신 주인의 손맛이 듬뿍 들어있는 정성 어린 밥상으로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입맛이 없는 아침상으로 제격이다. 천연염색체험장인 '소슬자연빛깔'과 함께 운영되고 있어 곱고 아름다운 빛깔의 천연염색 작품들을 볼 수 있다.
★★★★★ <<< 33가지 한옥이야기>>> 한옥스테이 (0) | 2016.02.27 |
---|---|
경주 최부자 충의당 (0) | 2016.02.05 |
강릉 선교장 (0) | 2016.01.15 |
경북 안동 수애당 (0) | 2014.05.24 |
경북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 (0) | 2013.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