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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한끼의 사회학 -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

영어회화

by 21세기 나의조국 2013. 8. 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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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한끼의 사회학 -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

2013.08.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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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가족을 떠나서 사회와 접촉을 하게 되는 시기는 스무살을 전후한 때일 것입니다.

 

학교를 다니든, 직장생활을 하든 이때는 혈연,지연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소리가 바로 "밥한끼 사줄께" 또는 "밥한번 같이 먹자" 일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사회생활속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될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밥한끼 사겠다"는 제안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1) 밥한끼를 얻어먹는 것으로 수직적 관계에 종속된다

 

 

 

밥을 같이 먹는것은 대화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우리는 왜 어느한쪽 일방이 밥을 사야만하고 또 어느 한쪽은 밥을 '얻어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서구인들의 관점 아니 가까운 주변국가들만해도 그런 인식은 흔치 않습니다.

 

오늘도 가쉽성 기사를 보니 여자들이 첫데이트를 할때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함께 밥값을 계산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남녀가 만났을때에 남성이 밥값을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은 배경입니다.

 

연장자나 선배나 남자가 밥을 사야하는 문화, 밥값을 부담해야만 하는 문화 그것이 체면이라고 포장되어있고 예의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함정이 있습니다.

 

밥값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대화와 만남을 이끌어 내기위해서 상대방의 경제적 부담을 미리 해소해준다는 의미로 밥을 사겠다고 말하는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밥을 사주고, 또 다른 일방은 '얻어먹는' 행위는 두사람사이에 가장 값싸게 사회적으로 '수직적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선배에게 학창시절내내 끊임 없이 밥을 얻어먹은 후배들은 사회에 나왔을때 선배의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만큼 수직관계가 고착되었고 밥을 얻어먹은 만큼의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후배가 선배의 청탁을 도덕과 양심, 법의 잣대를 들어서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사람은 배은망덕한 '싸가지 없는 놈'이 되어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안에서 매장 될것입니다.

 

자 이것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늘 강조하는 혈연, 지연, 학연을 배제하는 생각과 이념으로써 동질감을 갖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학연이란 이처럼 '밥을 사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혈연과 지연도 같습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가족이나 친척에게 도움받은 것이 많을 수록 그들의 불법적인 청탁마저도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것이 바로 혈연, 지연 학연입니다.

 

지연은 많이 희석이 되었으니, 혈연정도가 가장 강력한 힘이 있다고 칩시다. 학연은 여러분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에 대응하는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2)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인간이 사회적 네트워크속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관습적으로 자신을 은근슬쩍 옭아매는 수직적관계로의 유혹을 떨쳐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밥한끼를 얻어먹는다는게 그리 큰일이 아닌것 같지만 가장 값싸게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국민경선 선관위원장이었던 김영배는 훗날 후단협에 참여하면서 노무현을 향해 ' 그가 나에게 설렁탕 한그릇 사준적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나와 그는 수직적관계로 어떤 은혜를 받은것이 없다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밥을 사주고, 얻어먹으면서 형성된 수직관계는 학창시절중에도 선배의 이야기에 '토달지 못하는' 문화를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사회가 서구인들처럼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토론이란 수평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그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수직적 관계로 되어버렸으니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2002년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던 그 해에 저는 포항에 있었는데 '포항노사모'의 태동을 지켜봤습니다. 물론 10월 즈음해서 서울로 다시 올라왔기 때문에 그뒤론 '노하우'(노무현후보의 홈피)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활동을 대신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비교적 활발하게 온라인의 사회적 관계들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몇번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를 주의깊게 살펴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원칙과 상식을 모토로 삼고있는 노무현지지자들 조차도 이런 오프라인 모임에서 누군가가 돈을 대신내주면 좋아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중 글도 좀 쓰고 연장이며, 경제력도 있는 한 논객이 수십명의 밥값을 치르자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뒤에 그 논객이 2006년경 사실상 변절하고 보수진영으로 갔을때까지 그때 오프라인에서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꿀먹은 벙어리였습니다.

 

겨우 식사값 몇푼에 자신의 원칙과 상식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밥먹으러 들어가기전에 함께 계산하자고 하십시오. 단지 대화를 위해서 식사를 제안한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제안에 거부감을 느끼기는 커녕 고마워 할것입니다.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할때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이사나 부장같은 사람들은 하청업체들이 밥사고 술사고 대접하는 것을 마치 당연한듯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직장문화가 좋은 편인 곳에서 근무를 했는데도 그랬습니다.

 

어느날 부장의 소개로 제가 담당하게 될 납품업체의 사장을 횟집에서 만났는데 밥을 얻어먹고 난뒤에 부장이 넌즈시 그 업체사장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느낌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1년도 못가서 망할 회사같다 사장마인드가 완전히 아니라고 그랬더니 그 다음날로 담당을 바꾸더군요.

 

만약 제가 좋게 이야기하고 감쌌다면 그들의 커넥션안에 자연스럽게 융화되었을 것입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봐주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것을 눈감아주는 그런 커넥션 말입니다. 이거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한 그냥 보통의 문화 아닙니까?

 

이걸 극복하려면 업자에게 밥한끼 얻어먹는것을 두렵게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어야 됩니다. 단지 몇만원도 안되는 밥한끼 얻어먹는게 어때?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값싸게 자신의 권리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밥을 사주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또한 상대방을 나에게 수직적으로 종속시키는 행위라서 왜 도대체 이놈들은 자유롭게 토론도 못하고 무능력하냐고 부하직원들에게 성질을 내기전에 자기 앞에서 반대되는 의견을 낼 수 없게끔 수직적관계를 만들어온것은 아닌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혈연,지연, 학연으로 대표되는 이 사회의 부패한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밥한끼 사주고 얻어먹는 문화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남녀가 누구는 밥을 사주고 누군 얻어먹는 관계로 시작한다면, 그것은 남녀간의 수직적관계, 종속적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남자야 좋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여성이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만약 제딸이 데이트를 나가서 얻어먹었다고 하면 그남자하고는 결혼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할 작정입니다. 결혼한뒤 가정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바로 그런 수평적이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가정은 부부가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대화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데이트 첫날부터 얻어먹었기 때문입니다.

 

 

 

3) 누군가는 베풀고 누군가는 얻어먹는 종놈의 문화를 탈피해야한다

 

 

 

대통령은 못사는 서민을 만나면 '금일봉'을 베풀고, 대기업 회장님은 하청업체 임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상생을 이야기하면서 '격려금'을 전달하는 행위

 

 

얻어먹은만큼 종속된다

 

이런 행위들은 이 사회에 만연해있고, 뭔가를 받아먹은 입장에서는 부당한 지시가 내려와도 한마디 말조차 할수없는 그런관계가 되었다는것을 자각해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라면 수평적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줄 알아야됩니다. 이 시대는 이미 혈연,지연, 학연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의 네트워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고교동창에게 일일이 전화돌려서 생명보험들어달라고 외판하는 생명보험회사신입사원들처럼 밑천이 떨어지면 도태될것입니다.

 

제가 경제적공진화 모임을 만들고 5년동안 이 공동체를 발전시켜 오면서 드러나지 않게 가장 신경쓴 부분이 바로 밥한끼 얻어먹는 '빚'을 지고 서로간에 수직적 관계로 묶이는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밥한끼 먹자는 제안은 모두 뿌리쳤으며 설혹 회원들의 활동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정기적인 강의에서 나오는 회비의 잔여분으로 모두 충당했습니다.

 

공동체의 매니저와 회원들간에 수직적관계가 형성되면 그안에는 원칙도 상식도 그리고 대화도 죽습니다.

 

1999년의 어느날 종로구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을 만나러 가서 내돈내지 않고 얻어먹었던 돈까스 한접시가 지금까지도 제게 빚으로 남아있는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살아오면서 그때 내가 돈을내고 먹자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것을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그러한 인간관계의 늪속에서 인간 노무현은 죽음에 이르른것입니다. 혈연인 아내와 딸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감, 지연과 학연인 수많은 사람들의 왜 자신에게 은혜를 갚지 않느냐는 비난속에 그는 괴로와 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 해줄 수 있기는 커녕 자신의 원칙과 상식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들이 고통을 감수 하도록 인내해야하는것을 견뎌하지 못해 했습니다.

 

그것은 노무현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것은 극복할 수 없었던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아니 뭔가 잘못되어왔지만 지금부터라도, 꺼리낌없이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러한 수평적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쏟으십시오.

 

만약 혈연,지연,학연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평생을 그러한 사회적네트워크의 종복으로 살게 되는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혈연,학연,지연을 대신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200명이 넘는 회원들과 함께 만들어놓은 '경제적 공진화 모임'이라는 네트워크는 그들의 삶에서 혈연,학연,지연을 떠나서 그들의 삶을 그 이상으로 단단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직적, 종속적 사회관계의 늪에서 자각하고 빠져나와서 서로간에 물한잔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그 수많은 사람들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두 여러분의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제가 시작하고 벌써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관계,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썩고 부패한 갑을관계로 얼룩진 이 사회를 정화시킬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다른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아주 작은 '자각'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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