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성장시키는 방법
2013.08.2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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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정신의 근육'이라는 말을 했을 겁니다.
정신도 근육처럼 적절한 긴장과 단련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죠.
1. 인간은 두번의 성장기를 거친다
흔히들 오해하기 쉬운것중의 하나가 좋은학교 나오고 석사, 박사학위 땄으니 정신적으로 성숙한 하나의 자아를 완성한거 아니냐? 소위 지식인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다뤘던 그림입니다만, 인간의 성장은 육체적 성장기와 정신적 성장기를 갖고 있습니다.
10대의 성장은 육체의 성장이 주가 되고 정신은 그 성장에 적응하기 바쁘며,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육체의 급격한 성장에 정신적 성장이 따라가 주지 못하면 서른살이 되어도 정신적 미숙아인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서른살이 되었다고 해서, 덩치가 성인만큼 커졌다고 해서 그를 '人間'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부조화를 채워나가는 20~30대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그뒤에 다시 40대가 되어 인간은 두번째 성장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신의 폭발적 성장기입니다. 보통 아이들은 10대의 시기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음식물을 공급해주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새나 네발짐승, 물고기들도 잘 아는 본능적 보호입니다.
인간이 동물들을 떠나서 보다 수준높은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런 짐승들도 다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나아가서 정신적 자양분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훌륭한 부모는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것과 마찬가지로 10대의 시기에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잘 먹이고 자주 놀러가주는 것으로 부모의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마리의 건강한 '애완동물'을 길러내고 있는것 뿐이고 백지상태의 아이들은 대개의 정신적 자양분을 부모로 부터 받기 때문에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 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것, 또 누군가를 사랑해야한다는 것도 부모의 입과 행동을 통해서 '가르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 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얼굴 표정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 '교육'이란 것에 대해서 가끔 안타까운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교육이란 뭐 그렇게 거창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이란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특히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20대면 끝나도록 되어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육체의 성장에 비례해서 정신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만약 10대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친구를 괴롭히고 왕따하고 폭력을 행사하는것을 보고,듣게 된다면 또 그런 폭력의 행사가 방치되어있는 교육현장이라면 교육의 목적은 철저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교육이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머리속에 쓸어담아서 좋은 점수를 따도록 하는것, 좋은학교에 진학하도록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류대학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제정신나간 학부모의 바람일 뿐이지 '교육'의 본질은 아닙니다.
인간의 첫번째 성장기에 적합한 교육의 목적은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서 남을 괴롭히고 때리고 싶더라도 그것을 자제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것이 바로 교육자이고 학교인 것입니다.
마치 학교와 교사가 지식의 전달자인양, 학원선생님처럼 돈받고 교과서의 지식을 전수하는 시간때우기로 교육자의 임무가 완수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또 교사가 자신의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서 학생들이 교육의 본질을 벗어나서 잘못 성장하는것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비난받는 것을 떠나서 그 스스로의 정신적 성장을 저해하게 됩니다. 그 얘기는 뒤에서 또 합시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인간본연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시스템'이란 10대에 있어서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도록 "적응력" 을 갖게 해주고 짐승으로서의 본능을 절제하는 '이성'을 배우게 하는데 촛점이 맞춰져야만 합니다.
성적이 몇십점 뒤쳐졌다고 해서 그 인간의 최종적 발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좋은학교를 못가면 인생이 끝장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부모의 편견일 뿐입니다.
2.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의 두번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의 첫번째 성장기때에 그 아이가 정신적으로 육체의 발달을 따라갈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그것은 교과서에 있는 지식이나, 영어학습같은 것이 아닙니다.
정신의 성장은 그런것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리하게 점수를 따는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그 아이를 정신적으로 퇴행시킵니다.
자 예를 들어봅시다.
정신은 육체와 비교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잘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적절한 긴장이 주어져야 합니다. 잘먹는것 만큼이나 적절한 긴장으로 운동을 해나가면 신체는 육체적 밸런스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극한의 힘이 필요한 순간에 준비된 힘을 뽑아내서 위기를 넘길 수 있게됩니다. 그것이 육체를 성장시키는 방법이고 준비하는 방법입니다. 이런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을 잘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먹는것 (지식을 주입하는것)뿐만 아니라 아이가 적절히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사색의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정신적으로 비만아가 되어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학습에 지쳐버린 아이들은 정신의 비만아입니다.
적절한 긴장이란 정신적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것은 호기심입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살려줄때에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성장해가게 됩니다.
만약 아이들이 우주에 관한 관심, 별들에 관한 질문을 할때에 그것은 점수따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무시해버리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퇴행시키는 부모입니다.
자유로운 사색과 충분한 휴식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것들을 정신적으로 소화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가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현행의 교육시스템은 최악의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교육시스템을 통해서 주입받는 초,중,고교의 엄청난 학습량은 오히려 아무 쓸데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단언컨데 그 모든 아이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소화되지' 않습니다.
쉬지않고 먹이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현명한 부모는 아이들의 성장을 인생 전체의 시기로 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내 자녀가 20대에 성장이 끝나고,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정답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내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두번째 성장기에 도움이 되도록 첫번째 성장기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것으로 사명을 삼아야 합니다.
육체와 정신에 균형을 이룩한 아이들은 40대가 되어서 다시한번 정신적으로 성장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서 직무를 수행할때에 이뤄집니다.
예를들면 학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따는것으로 배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고 크게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대학에 입학하는것으로 목표를 삼고, 박사학위를 따내는 것으로 목표를 삼는 크게 기형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이란 거기서부터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 두번째 성장은 스스로가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첫번째 성장기에 두번째 성장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 뿐입니다. 두번째 성장은 그 스스로가 해 내야만 합니다.
이 두번째 정신적 성장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일까요?
위에서 설명했듯이 호기심과 적절한 긴장이 없다면 정신은 쓰지않는 근육처럼 퇴보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적 이슈 예를 들어서 정의로움을 일깨워야할 순간에 이렇게 말해버리곤 합니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면서 정신적으로 치열한 주제들을 외면해 버립니다.
외면해 버린다는것은 편안함을 줍니다. 정신적으로 피곤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태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복될 수록 그사람의 근육은 풀어지고, 보잘것 없는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 우리가 사는 우주의 방정식안에서 인간의 크기는 육체의 질량의 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정신의 질량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크다고 하는것은 바로 정신의 무게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 적절한 반응이 없는 편안함을 추구한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정신의 질량부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별들에게 있어서는 충분한 질량을 갖는다는 것은 윤회의 과정을 빠르게 전환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즉 질량이 충분한 별들은 폭발로 생을 마감함과 동시에 블랙홀을 형성하면서 다음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보잘것 없는 질량, 충분치 못한 질량을 가진 별들은 그대로 위축되어서 백색왜성으로 오랜 시간을 떠돌게 됩니다. 이게 우리에게 있어서는 무엇인것 같습니까?
우주안에서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질량미달의 별의 존재는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는 죽음 이후 중음신, 귀신이 되어버리는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백색왜성들은 오랜시간에 걸쳐서 다시 질량을 흡수한뒤에야 찬드라세카르한계에 도달해서 블랙홀이 되고 다시 다음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인간의 정신적 성장은 대충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언젠가는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40대를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폭발적인 정신의 성장은 '교활하다는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3. 선악의 대립은 편협한 종교적 세계관에나 있는 것일뿐 진실이 아니다
사실 조로아스터교 (불을 숭배하는 종교)로 부터 시작된 선악의 대결구도는 서구 기독교사회에서 고착화되어서 여러분이 모두 아는 스타워즈라는 영화같은 것을 보면 선악의 대결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런식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선한신과 악한신이 따로 존재하는 균형을 이루고있는 그런 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혼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서구 기독교적 개념에 너무 몰입해버리면 과거 미국의 부시처럼 자기편이 아닌것을 모두 '악'으로 규정하는 유치한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유치한 세계관이 횡행하고 있지만, 본질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정신의 발달은 가장 상식적이고 원칙적이며 악의를 차츰 배제해 나가게 된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
즉 우리의 정신이 발달한다는 것은 꼼수나 악의가 늘어나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선의를 가지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명박같은 자들은 대단히 사악하고 교활하지만 그것은 정신이 성장했다, 수준있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퇴행한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회안에서 생각하는 교활하고 사기를 잘쳐서 성공하는것이 남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적어도 정신의 발달, 우주안에서 인간의 성장을 가늠하는 척도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착각일 뿐입니다.
정신의 크기로 따진다면 묵묵히 농사지으면서 사심없이 생활하고 끊임없이 자연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는 농부가 오히려 박사학위를 따거나 대통령이 된 교활한 사기꾼보다 훨씬 크고 비교할 수 없는 정신의 질량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여러분이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라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 두번에 걸쳐서 성장을 하고, 또 인간의 크기는 정신의 질량으로 결정된다는 제 말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우주의 보편적 진실입니다.
우리는 일회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하나의 생에서 축적된 정신의 발달은 138억년이라는 우주의 시간동안 큰 격차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살아가지만 옆에 있는 여러분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들은 사실은 우주를 떠도는 작은 별똥별이나 태양보다 백만배는 더 큰, 엄청나게 큰 항성처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적 격차'를 가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모습이 비슷한 인간이라고 해서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4. 정신의 성장은 한계를 돌파하는 힘을 갖는다
육체를 단련해서 근육을 만들어 두면 극한의 상황에서 다른사람의 목숨을 구하거나 나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래서 소방관들이 끊임없이 체력을 단련해 두는 것이고, 군인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것입니다.
정신의 질량을 높이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자극에 활발하게 반응하면서, 호기심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것인가? 또 지식을 습득하는것은 물론이고 '사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정신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회성의 삶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우주가 시작된지 138억년이 되는 시간동안 아니 사실은 그런 우주가 여섯번이상 반복되는 동안에 우리는 존재해왔고 우리의 육체는 별들의 잔해로 만들어진 '별' 그 자체이며 우리의 정신은 우주의 시작점에서 출발해서 이 우주가 138억년동안 거대하게 커온것처럼 함께 성장해 온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성장은 돌고도는 쳇바퀴같은 윤회의 사슬안에서 우리가 그것을 끊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속박을 받는것을 벗어날 수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간은 물질적성장을 이루는것이 아니라 정신적 질량을 축적한다고 했습니다. 이 정신적 질량은 윤회를 통해서 수많은생 138억년동안 1억3천8백만번의 생을 새로이 반복해왔더라도 점진적으로 성장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순간에 그 충분한 정신적 질량, 정신의 근육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적 제약,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서 무한대한 자유에 이르게하는 한계를 뛰어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해탈이라고 부르든 각성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인간이라면 우리의 삶을 138억년의 연속성 속에서 고찰해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는 것이며, 한 생안에서 잘먹고 잘사는데, 부자가되는데에 온힘을 쏟는 바보스러운 열정을 넘어서 그 한생 한생을 우리가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 다시 하룻동안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듯이 긴 생에 있어서 한잠자는 휴식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우주적 속박을 벗어난다는것은 단지 우주와 내가 따로 논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빅뱅의 이전, 우주가 시작하기 이전의 하나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전자보다 더 작은 존재로 그대로 있는 동시에 138억년의 시간을 흘러 광대무변한 우주가 되어있는 이 두가지 동시성을 내것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자유 여러분이 이생에서 누리고싶어하는 어떠한 권력과 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주전체를 합한것보다 더 큰 무한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삶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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