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봄에 이미 기틀이 잡히는 까닭으로...
2011.5.30 호호당의 김태규님
앞글 두 개를 통해 운세상승의 전반부, 즉 ‘운명의 봄’에 대하여 얘기했다. 자세히 얘기했다고 여겼지만, 약간 거리를 두고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미흡한 감이 든다.
운명의 봄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깊이 이해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운명의 봄에 일어나는 일들이야말로 나머지 모든 시간들을 통해 생겨나고 일어날 일들을 사실상 결정짓고 좌우하기에 그렇다. 그만큼 운명의 봄은 중요한 것이며 나머지 시간들의 일들은 어쩌면 그 후일담 내지는 에필로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쉽게 말하면, 15 년에 걸치는 운명의 봄에 있는 일들이 나머지 45 년의 윤곽을 결정짓게 된다. 이는 마치 사람이 태어나 스무 살이 되기까지의 일들이 그 사람 생애 전체에 걸친 윤곽을 테두리 짓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러니 운명의 봄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깊고 넓은 이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게 생기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닐 것이다. 중언부언이 아니라 진심으로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그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경영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의 발로로 받아주길 바란다.
그러니 앞글 두 개를 통해 말했던 운명의 봄에 대해 다시 한 번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운세상승의 전반기는 우리가 해마다 대하고 겪게 되는 자연의 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그 석 달에 걸친 봄 중에서 앞서의 두 달 동안(운세로 치면 10 년간)은 그 누구도 보아주는 이 없지만 홀로만의 내밀한 시간들, 외롭고도 치열한 고난의 과정이니,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마지막 달에 가서 화려한 開花(개화)의 때를 맞이하게 된다.
춘삼월의 화려한 개화, 들과 산에 피어나는 저 꽃들은 그러니 그냥 때가 되어 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나긴 겨울과 그에 이은 봄의 쌀쌀한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것이니 이는 진부한 문학적 修辭(수사)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 꽃이 역경 속에서 피어나기에 그 화려함 뒤에 놓인 속사정을 알고 나면 가슴 뭉클해지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해마다 4월 초가 되면 섬진강 인근 하동 쌍계사 벚꽃놀이를 간다. 찾아가서 꽃들의 향연에 흠뻑 도취하니 꽃놀이라는 말이 맞지만, 한편으로 긴 겨울과 봄추위를 이겨낸 벚나무들의 고충을 내 충분히 알기에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대화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겨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꽃의 피어남 그 자체는 이제 세상에 ‘자신의 있음’을 널리 알리는 선포의 의미일 뿐, 꽃 그 자체는 밥도 아니고 돈도 아니라는 점을 얘기했다. 開花(개화) 그 자체는 일견 화려하긴 해도 실은 이제 시작을 알리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따라서 봄, 즉 운기상승의 전반부는 한마디로 고난의 계절이지만, 그 고난은 쇠망해가는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優雅(우아)한 무기력함’이 아니라, 여름을 열기 위한 힘찬 과정이라 했으니 ‘逆境(역경)과 希望(희망)이 共存(공존)하는 때’가 운기상승의 전반부인 것이다.
아름답고도 슬픈 그리고 힘찬 계절이 봄이니, 우리의 운명에 있어 그 기간은 15 년에 걸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이 중에 운명의 봄을 지나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 과연 그때가 그런 때였구나!’하고 깊이 공감할 수도 있겠다. 또 어떤 이는 ‘지금 내가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될 수도 있으리라.)
(저번에는 쓰고 나서 많이 지쳤지만,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활력이 되살아난다. 이 대단한 생명력, 그 신비함에 대하여 감탄을 금할 수 없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양력 2월과 3월의 봄에 당신이 저 산과 들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었던 가를 물어 보라.
산과 들은 마른 갈색의 나뭇가지들과 미처 삭아들지 않은 황갈색 낙엽들로 그저 황량할 뿐이고 그 사이로 때 묻은 殘雪(잔설)이 있어, 우리의 눈길은 그리로 향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마땅히 바라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양력 2월 초 경에 있는 立春(입춘)부터 4월 초 꽃이 피는 시기까지 두 달의 봄은 당신 운명의 바닥 지점으로부터 10 년에 걸치는 기간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러니 당신 역시 운명의 立春(입춘)으로부터 淸明(청명)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 10 년 동안은 어느 누구도 당신을 바라봐 주지도 않고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실은 당신 스스로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바라봐 주고 지켜봐 준다는 것, 이는 실로 중요한 일이다.
텔레비전만 해도 요즘처럼 볼 것이 많고 채널이 많은 시절, 어떤 프로그램이 처음 5 분 안에 흥미를 끌지 않으면 즉각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노래? 스타트로부터 5 초 동안에 끌어당기는 맛이 없으면 즉각 꺼버리거나 돌려버린다. 글을 써도 제목이 전부인 글이어야 하는 것이고.
대중적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이나 영화, 노래나 음악, 책 같은 것은 초장에 승부를 보지 않으면 흥행할 수가 없는 세상이다. 뒷부분이나 뒷맛, 깊은 맛, 그윽한 맛 같은 것은 나중 나중 문제에 불과하다.
즉각 확하고 끌어당겨 놓고 난 다음의 일인 것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확 하고 당겨놓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초적인 것 아니면 아주 괴기하고 변태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풍요와 동시에 말초적이고 괴기하며 변태적인 사회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데카당스, decadence 가 아니면 또 무엇일 수 있으랴!
이는 우리 국운이 봄이나 여름 심지어는 가을도 이미 지나 초겨울에 들어서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징표라 하겠다. 지금의 이 우아한 무기력함은 조만간 겨울 추위가 닥쳐올 징조가 아니면 무엇이랴!
돌아가서 얘기하자.
쳐다봐 준다는 것이 중요하건만, 모든 생명은 그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건만 운명의 봄 중에서 초기 10 년간은 누구도 쳐다봐 주지 않으니 슬프고 힘든 계절, 본질적으로 남으로부터 또 나로부터 내가 소외되는 계절이다.
疏外(소외)란 ‘누가 쳐다봐 주지 않음’의 동의어라는 사실.
그러니 그 초기 10 년의 세월을 당신이 지금 지내고 있다면 당신은 운명의 그 길을 홀로 외로이 걷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어떤 까닭으로 해서 홀로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당신에겐 타인의 이목을 끌만한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개털 신세, 작장에서 잘렸거나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알거지가 되었거나 지위를 잃었거나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당신을 굳이 찾아올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혼자 걷는 그 길은 흔히 땡전 한 푼 없이 그냥 길에서 구걸해가며 걸어야 할 때도 많다. (더러 돈은 많아도 그 돈을 쓸 곳이 없어서 궁핍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더하여 그런 당신이 딸린 처자식마저 있다면 그 길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또는 처자식마저 당신 보는 그 눈이 싸늘할 수도 있으니 또한 얼마나 맥이 빠지는 일인가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주변 그리고 남들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것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것,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는 이 시기야말로 조용히 ‘나만의 칼’을 갈기에 더 없이 좋은 때가 된다는 사실이다.
서러울 때마다 눈물을 흘리거나 삼키고, 칼을 갈면서 ‘너희들 내게 이랬다 이거지, 너희들 내가 나가면 다 죽었어!’ 하는 유치한 마음으로라도 칼을 갈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은 다 유치하다. 슬프고 힘든데 유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운명의 봄 15 년 중에서 초기 10 년의 기간은 홀로 길을 걷는 때이고 누구도 쳐다봐 주지 않는 소외의 때이며 그로서 눈물을 삼키면서 나만의 칼을 갈기에 가장 좋은 때인 것이다. 슥삭슥삭- 이 소리는 칼 가는 소리이다.
참고 견디고 또 홀로 눈물 흘리면서 칼을 가는 이 10 년의 기간이 15 년에 걸친 운명의 봄 중에서도 앞부분이며 이때의 일들이 60 년에 걸치는 운명의 전체 주기를 통해 일어날 일들을 결정짓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4 년에서 1974 년에 이르는 초기 10 년의 일들이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성공 대한민국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 기간은 결핍의 계절이었고 소외의 때였으며 눈물의 시간들이었지만, 당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각자가 저마다의 칼을 실로 잘 갈았기에 지금 풍요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칼의 날은 무뎌졌고, 또 일부는 이미 녹이 슬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그런 사실을. 하지만 조만간 그렇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는 때 역시 멀지 않았다.
우리 대한민국은 2024 년에 이르는 겨울 기간 동안 그 무디고 녹슨 칼날로서 대충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쓰긴 하겠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2024 년 국운의 새로운 立春(입춘)에 다다르면 지금의 날을 전혀 새롭게 갈아 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게 更新(갱신)인 것이다.
봄은 소외와 결핍, 눈물의 계절이지만, 그 기간 동안에 당신만의 칼을 갈아내어야 하는 때라는 사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기간인가 말이다.
그래야만 김훈의 소설 제목처럼 그 다음 세월에 가서 당신만의 ‘칼의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슬프냐, 슬퍼해도 좋다, 그러나 너의 칼을 갈아라!
힘드냐, 힘들어도 좋다, 그러나 너의 칼을 갈아라!
외롭냐, 외로워도 좋다, 그러나 너의 칼을 갈아라!
이게 봄의 노랫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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