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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6. 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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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아닌 내 돈   

2011.6.1  호호당의 김태규님

 

 

늦은 점심을 위해 작업실을 나섰다. 발길 향할 곳은 일단 강남 교보빌딩 쪽, 으레 망설이게 된다. 책방을 먼저 들를까 아님 그냥 먹고 나서 소화 겸 책방을 갈까?

 

우선 먹고 보자 하고 결정하니, 이어 뭘 먹지? 하는 갈등. 생각하기 싫을 때는 그냥 길 건너편의 버거킹을 찾지만, 오늘따라 길을 건너기가 귀찮다, 그냥 교보빌딩 1층에 있는 이탈리안 샌드위치 집을 택했다.

 

정해야 한다는 성가심 때문에 으레 시키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종업원 아기씨도 내가 뭘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알기에 말이 필요 없고 그저 돈만 내면 된다.

 

5,250 원, 잔돈에는 언제나 50 원 동전이 따라 나온다. 빵을 항상 로즈마리로 주문하는 까닭이다. 그럴 때마다 아차, 이놈의 쓸모없는 동전, 작업실에 제법 있는데 또 그냥 왔구나 하는 후회를 한다. 그 동전들은 예외 없이 5.250 원 짜리 샌드위치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다. 그냥 5,300 원하면 좋겠는데...

 

오이와 고추 피클, 상판을 보니 늘 보던 놈, 지겹긴 하지만 조금 그릇에 담아서 가져온 다음 기다리니 샌드위치 나오고, 나는 씹는다.

 

창밖 관상용 소나무, 아무리 봐도 나는 저 소나무를 소나무답게 그려보지 못했다는 일상의 좌절감을 또 다시 떠올리게 하는 저 소나무. 그를 바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샌드위치를 뱃속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다.

 

강남 교보문고는 지하에 있다. 내려가려 했으나 피워 문 담배, 마저 피워야 했기에 그냥 옥외 매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슬렁 걸음, 폐인 건달 스텝으로 걸으며 담배를 다 피운 다음, 늘 실례하게 되는 벚나무 줄기에 비벼 끈 다음, 쓰레기통을 찾으니 오늘따라 보이지가 않는다. 쓰레기통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매대를 둘러보았다.

 

시시껄렁한 책, 너저분한 책들 사이에서 가끔 괜찮은 책을 발견하곤 한다.

 

눈길을 잡아당기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제목은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서양문명을 세웠나’였다.

 

원 제목은 'How the catholic church built western civilization'이었다. 참 이런 책을 어느 누구가 사주겠니? 하며 책을 들춰보니 뒷면에 이런 말이 있었다.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가톨릭교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 대답은 한마디로 ‘타락’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 대답은 분명 ‘문명화’여야 한다.”

 

항변이 제법 그럴 듯 했다. 서양 문명의 건설에 있어 가톨릭교회가 가장 공이 크다는 말이고, 책 내용도 그런 것이었다.

 

‘그래, 항변이 정말 말이 되네, 내가 사 주지’ 하면서 집어 들었다. 물론 가격표를 보니 할인 매대에 올려 진 책답게 겨우 5,000원이었다. 정가는 14,000원이었고. 남는 장사임이 분명하고 그 늘 먹다보니 그저 그런 샌드위치보다도 쌌다. 오케이.

 

하나 건졌다 싶은 마음에 흥이 일어 돌아서니 반대 편 매대에 ‘로마공화정’이 눈에 들어왔다. 저 책, 언젠가 사려다가 무거워서 그만 두었던 책인데, ‘아쭈, 여기 할인매대에 얌전히도 누워계시는군요, 저렴하니 물론 사드리죠, 이 오빠가’ 하며 마치 불법 성매매하는 기분으로 집어 들었다.

 

性(성)을 사셨습니까? Did you bought sex? 이게 한동안 경찰이 성매매 단속할 때 쓰던 말이라 한다.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난 그때 꽤나 키득대며 웃어야 했다.

 

책값은 당초 28,000 원에서 14,000 원으로 반값이다. 역시 오우케이!

 

할인매대는 매력과 스릴이 넘치는 곳이다.

 

구박받는 책들, 잘 팔리는 바람에 너무 많이 제작되었다가 남아도는 책들, 그렇고 그런 너저분한 책들, 성공 필살기 같은 제목의 책 말이다, 그리고 내겐 정말 좋은 책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곳이 할인매대이다.

 

나는 책을 살 때 상당히 이모저모 따진다. 이른바 원가 대비 효과를 엄청 계산한다. 심지어는 페이지 당 글자 수까지 따져가며 책을 산다.

 

책을 살 때 나는 소위 콩나물 사는 주부 이상으로 깐깐해진다. 아주 깍쟁이 노릇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나를 보고 돈에 인색하지 않다는 인상을 갖는다. 사실이 그러니까. 하지만 책을 살 때만은 완전 돌변해서 인색하기 그지없다.

 

책값을 아껴서가 아니다. 나는 상당히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다. 책방에 들렀다가 이 책 괜찮은 책인데 앞으로 팔릴 까닭이 없다 싶으면 일단 사놓고 본다. 초판 1쇄가 사실상 마지막일 가능성이 거의 99 % 이다 싶으면 냉큼 산다. 주로 번역서인 경우가 많은데, 번역한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산다.

 

그런데 왜 나는 책에 대해서만은 인색한 행동을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가진 돈 중에서 정말 내 돈은 책사는 돈이 전부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비로 매달 아내 통장으로 거액(?)을 입금한다. 거의 부정 공무원이 하는 상납 차원이다. 이런저런 모든 돈은 거의 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상납 차원의 돈이니 내 통장에 돈이 있다 해도 거의가 이런 돈들이다. 그러니 그런 돈은 내 돈인 것 같지만 사실 내 돈이 아니다.

 

그런 내 돈 아닌 내 돈들은 내게 있어 그저 통행증, 패스와도 같다.

 

담배 사는 돈도 내 돈이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기 때문에 피우는 것이니 그건 내 돈이 아니다. 역시 삶의 통행세 같은 것이다.

 

교통비도 내 돈이 아니며, 식사비도 살기 위해 내는 돈이니 역시 인생 통행세와 같다.

 

옷을 산다? 그 돈 역시 내 돈이 아니다. 상대에게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돈이니 알고 보면 굴욕을 모면하기 위한 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물론 가끔 잘 보이고 싶은 여성이 있어, 옷을 살 때도 있다. 인정한다, 그럴 때 쓰는 돈은 내 돈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고.

 

내가 매달 지출하는 거의 모든 돈, 벌어서 쓰는 거의 모든 돈은 내 돈이 아니다. 그저 책을 살 때만이 나는 주체적으로 돈을 지불한다. 내 돈을 사용하는 것이니, 책을 살 때 인색한 것이다. 인색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내가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라면 내 돈은 평생을 통해 아마도 한 푼도 필요 없을 것이고 가질 마음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지만, 역시 과장된 표현이라 본다.

 

돈이 없다면 어떻게 매일 밤 주는 길고양이들 먹이를 사들일 것이며, 강아지들 간식을 살 수 있으랴!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사거나 선물을 한다면 그건 내 돈을 쓰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많지는 않아도 분명 돈이 필요한 사람이다.

 

내 수입의 10 % 만이 내 돈이고 90 % 는 내 돈 아닌 내 돈이다. 그건 통행료 같은 돈, 인생 통행료 말이다. 그러니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버는 능력 또한 그저 그러니 돈에 관해서 사실 나는 아주 깍쟁이 구두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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