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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서울 강남, 익스트림 럭셔리(Extreme Luxury)!>>>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5. 1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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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서울 강남, 익스트림 럭셔리(Extreme Luxury)!   

2011.5.9  호호당의 김태규님

 

 

너무너무 奢侈(사치)한 것이 전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그 비싼 명품을 들고 다니는 젊은 아가씨들이 너무도 많고, 아주머니들도 옷차림이나 멋부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또 제 어머니가 성형을 하셔서 저보다 더 얼굴이 팽팽해요...

 

토요일 오후 만나서 점심도 하고 차도 한 잔 하면서 듣게 된 한 부인의 所懷(소회)였다. (부인의 얼굴에는 화장기도 거의 없었다.)

 

그 부인은 1999 년 무렵 목회 하시는 부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래 이번에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고 하니 12 년 만에 대하는 고국의 변한 풍경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감히 잘라 말하건대, 2011 년 현 시점에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하고 사치한 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고 그 중에서도 서울이며 또 서울 강남 일대인 것이 분명하다. 그 부인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동의하시는지? 그게 약간은 궁금하다.

 

그 부인은 눈에 보이는 서울의 모습과 특히 여성들의 치장에 대해 그런 생각을 밝혔지만, 나는 그건 일부이고 우리 사회 한 가운데를 흘러가고 있는  時代精神(시대정신) 자체가 極端(극단)의 豪華奢侈(호화사치)라고 여긴다.

 

다만 우리 전체가 호화하고 사치스런 풍조에 푹 젖어있는 까닭으로 잘 느끼지 못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구구하게 우리가 얼마나 사치호화한 지에 대해 열거하며 증명해 보이고픈 생각은 없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라 본다.

 

또 현재의 물질적 호화사치가 못마땅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나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면서 그를 비판할 자격을 갖춘 先知者(선지자)와는 거리가 멀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읽고 그 변화를 관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냉정한 관찰자만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 많은 迂餘曲折(우여곡절)에 대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우니 그렇다.

 

오늘의 얘기는 현재의 극단적 럭셔리에 대해 그 출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경과, 그리고 현 시점이 그 흐름의 마지막 최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 관한 것이다.

 

언젠가 얘기한 바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1981 辛酉(신유)년 가을에 ‘88 올림픽 개최’라는 朗報(낭보)가 전해진 이래 하고자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乘勝長驅(승승장구)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 년이 지난 2011 辛卯(신묘)년 금년 가을부터는 그 어떤 일도 쉽사리 되는 일은 결코 없는 세월이 다시 30 년간 이어지리라 확신한다.

 

우리 국운상 1981 년 가을부터 모든 기운이 뻗어가는 長氣(장기)의 때가 시작되었고, 금년 가을로서 모든 기운이 자취를 감추는 藏氣(장기)의 때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長氣(장기)나 藏氣(장기)는 모두 같은 소리지만 하나는 뻗을 長(장)이요 또 하나는 숨을 藏(장)인 차이가 있다.

 

숨을 藏(장)의 藏氣(장기)인 때, 숨겨야 하고 숨어야 할 때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간에 무진 용을 쓰고 애를 썼으니 좀 쉴 때가 된 것이다. 이미 우리 내부의 탄력과 동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이 그냥 이어진다는 판단 하에 일을 펼치고 연장할 것 같으면 그 일은 좌절이나 실패로 마무리될 것이다.

 

숨어야 하고 숨겨야 하는 때, 또 쉬어야 하는 藏氣(장기)의 기간은 일단 10 년간에 걸쳐 진행이 될 것이니, 2021 辛丑(신축)년 가을까지에 이를 것이다.

 

하루아침에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일이 생겨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움츠려야 할 때에 그렇지 아니한 일들이 있을 것이니 그런 것들이 무너지면서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앞으로 있을 일의 예고편이라 보면 되겠다.

 

미처 움츠리지 못해 생겨날 일의 파급력과 충격은 금년 가을부터 서서히 시작되겠지만 그것이 모두의 피부에 대단히 민감하게 느껴지는 때는 아마도 금년 가을부터 정확하게 6 년이 지난 시점이 될 것이니 2017 년 가을 무렵일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10 년 기간의 60 % 지점인 까닭이다.)

 

그리하여 2021 辛丑(신축)년 가을이 되면 일단 정리할 것은 거의 마무리되어 우리는 나름의 새로운 低點(저점)이자 균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바로 그 지점은 우리 국운 60 년 주기를 한해에 비긴다면 양력 1월 20일 경의 가장 추운 절기인 大寒(대한)에 해당되는 셈이다. 대한, 가장 추운 시점, 가장 熱氣(열기)가 떨어진 시점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의 시점이 우리 사회 사치호화 풍조에 있어 가장 최극성의 때라고 말하는 것이고, 나라마다 국운의 주기가 다른 까닭으로 우리가 현재 세계에서 사장 극단의 럭셔리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령 급부상한 중국의 경우 극단의 호화사치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 이어가고 더 진전되면서 2025 乙巳(을사)년 가을이 될 것이다. (그러니 가령 사치 물품을 취급하는 상인이라면 우리보다는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일본이 호화 사치한 때는 벌써 지났고 현재 우리가 그 정점에 있으며, 중국은 좀 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이처럼 모든 나라가 그 나름의 주기 상에서 기운이 움츠러드는 藏氣(장기) 직전에서 가장 호화하고 사치스런 풍조를 보여주는 것이니 그 또한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사실 奢侈(사치)란 것은 그 자체가 偏向(편향)된 어휘이다.

 

보통의 우리들은 매일 옷을 갈아입고 조석으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며 지낸다. 이를 두고 사치라 할 수 있는가? 그저 보통의 일이지.

 

그러나 한해 내내 한 벌 옷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해 내내 목욕 두어 번 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생활 행태는 사치로 보일 것이니, 사치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말이고 동시에 편향된 낱말인 것이다.

 

그러나 奢侈(사치)는 문제가 된다. 사치 그 자체로서 문제라기보다는 사치에 치중하는 자는 정신이 浮薄(부박)해지고 內實(내실)보다는 裝飾(장식)에 더 빠져들 수 있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삶은 內實(내실)과 裝飾(장식)이 균형을 이룰 때 아름답다. 이를 동양고전에서는 文(문)과 質(질)의 문제라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文(문)이란 文飾(문식)인 것이니 꾸미는 것을 말한다. 질은 문자 그대로 바탕을 말한다.

 

그 文質(문질)이 균형을 잡아야 俗(속)되지도 않고 野(야)하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이다. 文(문)이 앞서면 俗(속)되기 쉽고 質(질)이 앞서면 野(야)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質(질)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文(문) 또는 文飾(문식)에 대한 시도들이 주름잡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크게 비판적으로 또 비관적으로 볼 까닭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까닭은 우리 사회가 질적 향상에 等閒(등한)한 것이 아니라, 현 단계에서 질적 향상의 노력이 어떤 하나의 커다란 벽에 봉착해있기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줄여 말하면 어느 정도 할 것은 다 해보았다는 것이고, 이에 그것이 어려우니 자꾸만 형식과 틀, 즉 文飾(문식)에 대한 집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여성들의 옷차림만이 아니라 서점에 가서 신간 책을 보아도 내용보다는 글자체의 편집이나 디자인, 화려한 비주얼에 더 힘이 들어가 있다.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면 ‘제목이 곧 내용’인 ‘제곧내’가 판을 치고 있다. 기사의 질을 측정하는 방법으로서 오로지 量(양)을 기준하다보니 조회 내지는 클릭 수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을 강조하다보니, 결국 클릭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얕은 사고가 바로 우리 사회의 사치풍조로 연결되고 있음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질을 이른바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상식을 어기고 있는 우리인 것이다.

 

앞서 文質(문질)의 얘기를 했다. 박정희로 대변되는 군부 통치는 질적인 발전을 이룩했지만, 문은 약했다. 이어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문민 통치부터 문은 발전했지만 질적 발전은 약했다.

 

자고로 무인들은 文彩(문채)보다는 質朴(질박)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고, 문인들은 문채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으니 이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문과 질은 동시에 가지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어서 문을 강조하는 시절이 있고 그것이 지나치면 다시 질을 강조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세상은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陰陽(음양)이다.

 

글이 다소 길어졌지만, 할 얘기를 좀 더 해서 마무리를 짓겟다.

 

우리 사회에 있어 質(질)에서 文(문)으로 균형추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올해가 辛卯(신묘)년이니 이 코드를 가지고 逆算(역산)해가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辛卯(신묘)보다 12 앞에 己卯(기묘)가 있고 그 12 앞에 丁卯(정묘)가 나온다. 丁卯(정묘)에서 시작된 문의 흐름인 것이니 1987 년이었다.

 

금년으로부터 30 년 전이 1981 辛酉(신유)년이었고, 그로부터 6 년이 지난 1987 년부터 민주화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셈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일단 피하고자 한다.)

 

그때부터 민주화만이 아니라, 모든 흐름이 문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것이다. 그 이전의 우리 사회가 문식이 너무 취약한 면이 있었던 것이니 그것을 강조하는 것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문식으로의 흐름도 또 다시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문식만 남고 실질이 너무 약해져 버린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입만 살아 움직이는 때’가 지금인 것이다.

 

질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흐름이 시작하는 때가 금년 가을부터인 것이고 다시 6년이 지난 2017 丁酉(정유)년부터는 그간의 지나친 문식들, 허접스런 문식들이 거의 정리되고 실패로 끝나있을 것은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간 배에 낀 지나친 지방을 제거하는 건강한 사회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다이어트 좀 하게 된다는 얘기를 이처럼 길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 날씬한 몸매를 그토록 염원해왔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간 20 회에 걸쳐 쌍계사 여행사진에서 시작한 대문의 '봄 사진 시리즈'를 종료한다. 마지막은 쌍계사에서 칠불사로 오르는 호젓한 산길에 피어난 벚꽃 사진이다. 시작한 지점에서 끝을 내는 셈이다. 보라, 2011 년의 봄은 저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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