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의 퇴진
2011.5.2 호호당의 김태규님
이미 지난 달 순복음교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힌 조용기 목사가 이제 자신의 퇴진을 확고히 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2009 년 김수환 추기경의 善終(선종)에 이어 이번 조용기 목사의 은퇴 또한 ‘한 시대의 종막’을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개인적으로 그 분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찬동할 수 없는 점이 많다. 하지만 그거야 내 개인의 생각일 뿐, 어찌 되었건 지난 수 십 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 중에 한 분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존경할 만한 대목도 적지 아니하다.
우리 대한민국은 1934 년생을 전후한 세대들이 사실상 모든 권위와 부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조용기 목사 역시 1934 년생으로서 종교계에서 일대 성취를 한 사람이다.
어떤 까닭으로 1934 년생을 중심으로 하는 분들이 그토록 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까닭이 있으니 이에 말씀드리고자 한다.
우리의 國運(국운)은 1904 년에 시작해서 360 년에 걸치는 주기를 가지며 그는 다시 60 년씩 여섯 번에 걸친 작은 주기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 60 년으로 이루어지는 제1차와 제2차, 제3차 小週期(소주기)까지는 기의 상승이고, 제4차부터 제6차까지는 기의 하강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1904 년부터 180 년이 지난 2084 년까지는 상승, 그로부터 180 년간에 걸친 하강이 시작되면 2264 년에 가서 바닥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화려한 시기는 언제나 늦가을이니 우리 국운 상 대한민국이 가장 절정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시점은 제 5차 소주기가 시작되는 2144 년부터 45 년간-60 년의 3/4-의 기간이 될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1934 년은 1904 년에 시작된 제1차 소주기 상에 있어 기의 絶頂(절정)이었다.
국운의 절정 무렵에 태어난 사람은 가장 왕성한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고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출생과 동시에 국운의 기가 하강하는 바람에 생후 15 년이 지나면 모든 환경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1934년부터 15 년이 지나면 1949 년이니 그로부터 겨울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1950 년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따라서 1934 년생의 경우 세상에 대해 눈을 뜰 무렵부터 세상이 험난하고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역경을 만나면 가장 급한 것이 가장 시급한 것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바이벌 게임’부터 배우게 된다.
그런 면에서 1934 년생을 전후한 앞뒤 5 년, 1929-1938 에 이르는 세대는 나쁘게 말하면 가장 도덕과 윤리가 처지는 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덕과 윤리는 살아남은 뒤의 얘기이기 쉽기 때문이다. 줄이면 禮節(예절)과 體面(체면)은 뒷전인 법이다.
반대로 긍정적으로 말하면 치열한 생존 게임을 익히다 보니 根性(근성)과 鬪志(투지)는 가장 강렬한 세대가 바로 1934년을 전후한 세대라고 하겠다.
우리가 지난 1960 년대의 나락에서 오늘날 세계 유수의 강국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29-1938 세대의 강인한 노력과 투지 덕분이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들 헝그리 복서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가령 1934 생의 경우 박정희의 개혁이 시작된 1964 년, 제3 공화국 출범 당시 나이 서른이었다. 그들이 새마을 운동과 함께 수출입국의 발판을 다졌다.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아는 그들은 오로지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일념이었다. 반면 정당성과 도덕 윤리 같은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사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용기 목사가 교회를 성장시켜온 발판 역시 투지와 근성이었다. 그걸 떠나 달리 설명한 길이 없다.
그 세대들에게 있어 세상은 ‘먼저 해먹는 자가 장땡인 세상’이었지, 이것저것 살피고 인간적인 도의를 따지는 것은 ‘뒤처지기 일수인 세상’이었다.
따라서 1934 년을 전후한 세대는 ‘헝그리 코리언’이자 ‘어글리 코리언’이었지만, 반면 不屈(불굴), ‘인빈시블 코리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실로 묘해서, 그들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1964 년생을 중심으로 하는 세대는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한때 386 이란 호칭을 지녔던 세대, 1959-1968 기간의 세대는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는 세대로 성장한 결과 현실과 실질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1959-1968 세대는 아버지 세대를 否定(부정)했다. 너희들은 룰도 규칙도 도덕도 없이 그저 성공만이 전부라는 천박한 관념의 소유자들이라 매도했다.
그런데 그들은 2000 년부터 이어져온 이념 투쟁의 기간을 통해 아버지 세대, 즉 1929-1938 세대가 우리 대한민국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왜 가능했던가 하는 점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고 더러는 애써 부인하기도 했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 대한민국이 현재 부여안고 앓고 있는 葛藤(갈등)이고 矛盾(모순)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상호간의 오해일 뿐이다. 처한 환경이 다르다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서로의 偏見(편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갈등과 모순, 근원적인 오해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세월이 약’이라 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것 같으면 그 또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964 년생 세대는 1994 년에 가서 민주화를 달성했으니 1994 년은 제2차 60 년 소주기 상의 절정이었다. 그로부터 15 년이 지나 2009 년 우리 국운은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다시 1994 년부터 17.5 년이 지난 2011 년 금년 가을부터는 본격 겨울 추위가 시작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조용기 목사 등의 분들은 이 시기에 들어 세상을 떠나거나 물러가고 있다.
그래서 한 시대의 終焉(종언)이라 하는 것이다.
이제 1934 년생 세대가 물러가면서 부와 재산과 명예도 함께 세상 속에 놓고 갈 것이다. 어차피 영원히 소유할 순 없는 법이니 그렇다.
이게 중요하다, 아들이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그 부친을 미워하고 증오하다가도 철이 들면 그 부친을 이해하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듯 조만간 1964 년생 세대는 1934 년생 세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존경하게도 될 것이다.
1958 년 교회를 시작해서 교회를 이끌어온 조용기 목사의 일생 행적을 두고 앞서 모두 찬동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 분 역시 힘든 세월 속에서 대한민국을 일구어온 위대한 종교 지도자 중에 한 사람임을 내가 인정하는 까닭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제 그분이 물러가고 있고 한 시대가 저물고 있으니, 미흡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음 사람들이 보완하고 완성하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조용기 목사님, 정말 그간 애 많이 쓰셨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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