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 고은지 | 입력 2011.04.24 06:03 | 수정 2011.04.24 14:36
"카드론에 대한 당국의 감시.규제 강화돼야"
"카드문제 금리정책으로 유연하게 대처해야"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대형 은행들의 카드업무 강화가 일차적으로는 제2금융권의 영역을 잠식했고 나아가 `카드 대란'까지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시중은행 및 카드업계, 저축은행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대형은행이나 대기업 계열의 카드사들이 중(中)금리 시장에 나서는 바람에 저축은행들이 저신용자 소액대출이 아닌 다른 영역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은행과 카드업계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은 저축은행들이 수익성 확대에 치중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며, 현 금융시스템에서 업권별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카드업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막으려면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감독 당국 역시 선제적으로 나설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 저축은행 "은행.카드사 중금리 시장 장악"
저축은행은 대형 금융회사나 대기업 계열 여신전문회사(여전사)들이 중금리 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저축은행이 설 자리가 줄었다고 토로했다.
저축은행의 주 업무는 저신용층에 대한 소액대출이었으나 `2003년 카드사태'로 신용대출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붕괴되고 여전사들이 중금리 시장을 치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보면 은행과 카드사들이 저축은행의 영업기반을 잠식하는 바람에 저축은행이 PF대출로 눈을 돌렸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저축은행이 다시 저신용자 소액대출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카드사들의 카드론을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은행과 카드사는 저축은행보다 자금조달비용이 낮아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카드론이 없다면 저축은행도 리스크와 변동성이 큰 고금리 저신용자 소액대출의 금리를 좀 더 낮춰잡을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 카드업계 "PF대출 부실은 저축은행이 초래"
그러나 카드업계는 저축은행이 금리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고금리 때문이지 이를 여전사에 전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저축은행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감독 당국이 저축은행에 대해선 영업규제를 많이 풀어준 반면 카드와 캐피털은 여전히 옥죄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과 카드사의 금리는 15∼17% 정도 차이가 난다"면서 "저축은행이 잘못한 것을 가지고 카드사가 빼앗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캐피털도 주택 할부시장이 고유영역이었는데 지금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하면서 다 가져갔다"면서 "금융시장의 벽이 허물어지고 시장을 넓혀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다른 영역을 침범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카드가 저축은행 영역을 잠식했다는 것은 카드와 저축은행의 영업기반을 잘 모르는 이야기"라며 "저축은행이 카드사처럼 신용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이들은 또 여전사는 일명 `50% 룰(규칙)'이 있어 할부영업이 다른 영업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 없는 등의 규제가 많다며 감독 당국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시중은행 "업권간 특정영역 없다"
시중은행들도 카드업계와 마찬가지로 은행과 카드사가 서민금융에 주력해 저축은행의 영역을 잠식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시공사 등급이 우량하고 사업성이 양호한 사업장에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PF대출을 한 은행과는 달리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덜 우량한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대출을 해줬기 때문에 부실 위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쉽게 자산을 늘리고 고수익을 챙기려다 보니 리스크 관리에 소홀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또 금융업종 간 영업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업종을 넘나드는 영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업의 본질은 리스크를 거래하는 것으로 금융 권역 별로 거래하는 리스크가 다른 것이지 거래할 수 있는 특정 영업영역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주택담보대출도 은행, 캐피털, 저축은행 모두 취급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리스크가 낮으면 은행이 고객들에게 저금리로 대출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으면 고(高)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제2금융권이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감독 당국 "선제적 대응 나서겠다"
감독 당국과 한국은행은 카드 영업확대로 저축은행 시장이 잠식됐다는 논리의 타당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저축은행과 카드사의 소액신용대출에 위험성이 상존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단행될 조직개편에서 카드사에 대한 감독과 검사조직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카드사 감독업무를 담당하는 여신전문서비스실을 여신전문감독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카드사 검사업무는 전담팀 2곳에서 담당하게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사는 자체 수신은 없지만, 워낙 금리가 낮아 자금을 조달해 신용대출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라며 "금리가 오르면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이 가장 먼저 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금융안정분석국을 중심으로 최근 대두되고 있는 `카드 대란' 우려가 전체 금융권 및 우리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카드사 문제는 한은의 고유영역은 아니지만, 금융시스템은 어느 한 곳만 잘못되면 전체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감독 당국과는 별도로 2중, 3중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자체 분석자료와 신용평가사의 카드 관련업에 대한 분석정보를 수집, 정밀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 "대책 마련 시급"
대다수 전문가는 은행들의 카드업무 강화로 저축은행의 영업기반이 축소된 면이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저축은행 역시 무작정 수익성만을 추구한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 연구위원은 "초기 저축은행은 저신용 소액대출 중심이었는데 이것이 실패로 귀결되면서 대체 수익원을 찾은 것이 부동산 PF대출"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정형권 전문연구원도 "사실 소액대출은 수익성이 낮아 저축은행이 성장동력으로 삼기엔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그런 와중에 부동산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앞다퉈 부동산 PF에 눈을 돌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03년과 같은 카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실 우려가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방법론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 위원은 "은행들이 카드업무를 분사까지 하는 상황이어서 경쟁이 과열될 우려가 있다"면서 "특히 자체 규제가 어려운 여전사의 카드론을 중심으로 감독 당국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 연구원은 "금융당국의 카드업 규제는 카드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강화한 상태"라면서 "추가로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금리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등 거시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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