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 박상돈 | 입력 2011.04.24 06:03
◇ 카드 몸집 불리기..카드론 가계부실 위험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말 카드사의 자산은 55조원으로 카드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2년말(68조원) 이후 연말 기준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드사 몸집이 다시 불어나면서 장사도 잘돼 카드사 당기순이익이 2003년에는 10조원이 넘는 손실을 보였다가 2006년부터는 매년 2조원 안팎의 순익을 거뒀고 작년에는 흑자가 2조7천억원까지 불어났다.
카드사용 문화가 더욱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카드사들의 마케팅도 더욱 힘을 발휘했고 특히 최근에는 카드론 성장세가 눈에 띄게 늘면서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작년 카드론 실적은 23조9천억원으로 전년보다 33.3%나 껑충 뛰었다. 2003년(37조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는 카드사가 정부 압박으로 가맹점 수수료와 현금서비스 금리를 계속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사용 한도에 대해선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아도 되는 카드론으로 눈을 돌린 때문이다.
그러나 카드론은 은행에서 더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신용층이 찾는 경우가 많아 은행 부채를 떠안은 채 다시 부채를 지게 되는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 분석 결과, 작년 저신용층인 신용 8∼10등급의 신규 카드발급 건은 13만8천817장으로 전년보다 17.6%나 늘었다.
또 지난해 신규 발급된 신용카드는 모두 1천200만개로 2009년(970만개)에 비해 24%가량 늘었다. 7∼10등급의 저신용자에게 발급된 카드는 전체의 8.7%에 해당하는 104만개로 전년 비중 6.6%(64만개)를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금리 상승기라는 주변여건과 맞물려 카드론이 가져올 가계부채 부실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카드론 이용자 상당수가 저신용층이어서 금리 인상에다 높은 물가로 인해 상환능력이 떨어져 가계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KB국민카드에 이어 우리카드까지 올해 상반기 분사를 마치면 4대 금융지주의 카드 계열사는 모두 독립 체제로 운영된다. 그만큼 카드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어 카드 부실 우려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지주사들이 카드를 독립하는 것은 카드사가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불릴 만큼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다. 작년 신한카드의 순이익은 1조1천70억원으로 신한금융지주의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1조6천484억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 성역없는 영업전쟁..금융시장 왜곡
카드사가 카드론 영업으로 저신용층까지 공략한 것처럼 이제 은행, 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대부업체의 영업전쟁은 그 경계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한 때 캐피털의 주 영업지대인 주택할부금융은 벌써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활성화로 시장을 잠식해버렸다는 게 캐피털업계의 주장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캐피털의 주택할부금융 신규실적은 1997년 2조6천억원에 달했으나 2009년에는 3천억원에 그쳤다. 반면 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은 1999년 100조원에서 작년에는 457조원으로 엄청나게 커졌다.
캐피털의 할부금융은 자동차 분야 한 곳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신용대출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저축은행의 PF 부실이 카드사의 시장 잠식에서 촉발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카드사들이 소매금융까지 넘보면서 저축은행이 PF에 손댔다가 부실을 떠안게 됐다는 주장이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금융당국 수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이 모인 자리에서 "카드사들이 카드론과 같은 고리대금업으로 저축은행의 영업기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축은행의 자산이 2002년말 26조원에서 작년말 87조원으로 커지는 동안 신용대출 잔액은 9조4천억원에서 12조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금융당국이 2006년 도입한 `88클럽' 여신한도 우대조치가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이견도 있다. 또한 금리 격차를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금리가 높아 금리 경쟁에서 밀린 것일 뿐 카드사들이 저축은행의 소매금융을 갉아먹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카드론의 금리는 평균 15∼16%로 은행보다 높지만 현금서비스(23%)와 캐피털(28∼29%), 30%대 중후반의 저축은행 및 대부업체보다는 낮다.
그러나 각 금융권의 성역없는 전쟁으로 한 곳에서 부실이 터져 연쇄 도미노가 발생하면 전체 금융권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은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경제적인 위기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체계를 신설한 것도 금융왜곡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국회 저축은행 청문회에서 "위기가 생길 때마다 미소금융이다 뭐다 해서 새로운 금융형태를 만드는데 이는 결국 기존 금융형태를 왜곡시키고 금융시장만 복잡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 "지금은 다르다"..카드 대란은 기우 반론도
카드사의 몸집 불리기와 카드론 영업 확대가 카드 대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카드 사태가 발생한 2003년과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카드사의 연체율만 봐도 카드 사태 직후인 2004년 6월말에는 25.12%에 달했으나 작년말에는 역대 최저치인 1.68%까지 떨어졌다.
또 과거와 달리 카드사들이 개인의 대출정보를 공유하고 있어 돌려막기식 소비 행태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카드 발급을 위한 심사도 까다로워져 길거리에서 카드 회원을 모집하다가 적발되면 곧바로 제재가 가해진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무직자가 직업란에 프리랜서라고 적어도 아무런 검증없이 카드를 발급해줬는데 지금은 신용을 철저히 조사하는 등 예전과는 천지차이"라고 소개했다.
금융감독 당국도 한차례 `큰 교훈'을 얻은 바 있어 카드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카드 자산의 대손충당금 최저 적립률을 상향조정하고 복수카드 정보공유 범위를 3장 이상에서 2장 이상으로 확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면 가계대출 가운데 신용대출이 가장 먼저 터질 것"이라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카드검사 전담팀을 신설할 계획이며, 한국은행도 거시적인 측면에서 카드 문제가 국내 전체 금융권에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예의주시하며 분석작업에 착수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장금리가 자꾸 올라 고객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부실 고객이 일부에 불과해 제2의 카드 사태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aka@yna.co.kr (끝) < 저작권자(c)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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