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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오공,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놈 >>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3. 3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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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놈   

2011.3.30  호호당의 김태규님

 

 

 

점심시간, 길을 걷다보니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는 비슷비슷한 기성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어떤 허름한 건물 입구에 모여 서성대고 있었다. 척 보니 네트워크 마케팅 행사였다.

 

흔히들 긍정의 힘을 얘기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만 잘 될 수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 책은 꾸준히 팔려나가고 ‘신념의 힘’, 이런 제목의 강연회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네트워크 마케팅만이 아니라, 교회에 가면 干證(간증)이란 형식을 빌려 신자들을 열심히 불러 모은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묘한 웃음을 짓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손오공이란 원숭이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손오공의 긍정적인 자세에 대해 간단한 토막 얘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손오공은 그냥 돌원숭이이었다. 천지간의 精氣(정기)를 받아 태어난 놈이라서 여간한 靈物(영물)이 아니다.

 

처음에 돌원숭이는 花果山(화과산)의 水簾洞(수렴동), 동굴 입구에 폭포가 떨어지면서 일종의 珠簾(주렴), 구슬발이 되는 그런 아늑한 동굴에서 원숭이들의 두목 노릇을 해먹다가 어느 날 문득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누구나 고딩이 시절이면 으레 한 번쯤은 던져보는 질문, What is the life? 이런 거 말이다.

 

그리하여 여러 따르는 무리 원숭이들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 돌원숭이는 여러 곳을 떠돌다가 마침내 실력 있어 보이는 신선을 만나 절하고 제자가 된다.

 

方寸山(방촌산)의 三星洞(삼성동)에 거하는 菩提祖師(보리조사)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근본도 없어 姓(성)도 없던 그는 사부로부터 遜(손)이라는 성을 받고 또 입문한 항렬에 따라 法名(법명)을 받으니 깨달을 悟(오)자 돌림에 빈 空(공)으로 하여 孫悟空(손오공)이 되었다.

 

色卽是空(색즉시공)에서 말하는 空(공)의 이치를 좀 깨우쳐보렴 하는 사부의 의도였다.

 

손오공이 사부를 만나 문도가 된 이래 일곱 해가 지났을 무렵의 어느 강연에서 사부의 말씀을 듣고 나름 깨우치는 바가 있어 흥이 난 나머지 절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여러 제자들 중에서 홀로 신바람이 난 손오공을 보고 사부는 ‘너 왜 춤까지 추고 그러니?’ 하고 물었다.

 

이에 손오공은 얻은 바가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하고 공손히 답을 했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보리 조사는 ‘그래 네가 뭘 나로부터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은데?’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손오공은 제자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니 좀 안내 해달라고 역으로 청을 했다.

 

이에 보리조사는 내게는 ‘지식 포트폴리오’가 실로 다양하다고 말을 했다. (폼 엄청 잡으면서)

 

먼저 道(도)자 門中(문중)이 있어 360 개의 길이 있고 모두 다 正果(정과)를 얻을 수 있지만 과연 네가 이런 방면에 적성인지 좀 그렇다고 했다. (얌전히 도를 닦기에는 손오공이 어울리지 않는 놈이라는 얘기)

 

그러면서 다시 術(술)자 門中(문중)의 길도 있다고 하자 손오공은 배우면 뭐에 쓰냐고 물었고, 사부는 術(술)에는 신선을 부르거나 점을 치는 종류라고 했다. 이에 손오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사부는 다시 流(류)자 문중도 있다면서 儒家(유가)나 釋家(석가), 道家(도가), 음양가나 墨家(묵가), 醫家(의가) 등이 있으며 경을 읽거나 아니면 염불을 통해 도를 닦는 방식이라 했다. 역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손오공이었다.

 

다시 그러면 靜(정)자 문중의 길도 있다면서 참선이나 호흡법을 통해 수련하는 공부가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손오공은 별로 라는 표정이었다.

 

다시 이번에는 動(동)자 문중의 길, 무술이나 丹藥(단약)만드는 기술, 채음보양과 같은 房中術(방중술) 등등의 길을 제시했지만, 역시 손오공의 입 끝은 뾰족했다.

 

(참고로 ‘채음보양’, 음을 채취하여 양을 보한다는 이 기술은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의 기운을 취하여 정력을 강화하고 젊음을 되찾는다는 방중술로서 오늘날 이른바 ‘원조교제’의 출발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세월이 좋아져서 역으로 부잣집 마나님들이 미소년들로 채양보음한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러자 역정이 난 사부는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아 이도 저도 다 싫다면 넌 뭘 배우겠다는 얘기냐 하면서 들고 있던 작대기로 손오공의 머리를 세 번 후려쳤다. 그러고 나선 확 삐친 보리조사 사부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많은 제자들은 손오공 때문에 강연회 분위기 완전 망쳐버렸다고 찌릿한 눈빛을 마구 쏘아 주었지만, 손오공은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자 손오공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을 통해 사부가 거하는 방으로 들어가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다렸다.

 

자동 침입 시스템을 통해 미리 알아차린 사부는 짐짓 자는 척 하다가 깨어나 넌 이 야밤에 웬일이래? 하고 물었다.

 

그러자 손오공은 아까 낮에 사부께서 제 머리를 작대기로 세 번 쳤으니 그건 야반 三更(삼경)에 찾아오라는 암시가 아니었겠습니까요 했다.

 

사부는 야 이 잔머리 좋은 놈 보았나, 내 메시지를 이토록 확실하게 알아차리다니 하면서 누구에게도 가르쳐준 바 없던 최상승 秘術(비술)과 絶技(절기)를 아낌없이 전수하게 된다.

 

西遊記(서유기) 책을 보면 사부는 암시를 날렸고 손오공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면, in fact, 사부는 성질이 나서 세게 후려 팬 것이었다. 천년 묵은 나무로 만든 작대기이니 얼마나 아팠으랴! 그런데 패고 나니 사부도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道(도)란 道(도)는 모두 닦은 내가 이런 미천한 돌원숭이를 이처럼 세게 때리다니 하는 후회가 들었고 측은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면서 미안해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 손오공이란 놈이 야밤에 쳐들어와서 아까 세 번 때린 것을 두고 夜半(야반) 三更(삼경)에 찾아오라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억지를 놓으니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런 것이 바로 긍정적인 자세의 표본이 아닐는지.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그것을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세,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혜.

 

그래서 나는 손오공이란 근본도 없는 돌원숭이를 문학사상 가장 긍정적인 놈이라 말하는 것이다.

 

싸구려 양복 한 벌 걸치고 네트워크 마케팅 행사장을 서성대는 참 딱한 젊은이들이다. 오죽하면 그런 곳을 기웃거리고 다니겠는가! 청년백수의 시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저들 중에 분명히 오늘의 처지를 미래의 발판으로 만들어낼 손오공 같이 기발하고 발랄한 젊은이가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묘한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래 새파랗게 젊다는 밑천 밖에 너희들이 더 있겠니, 이번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에서 자칫 왕창 덤태기를 덮어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훗날의 재벌이 탄생할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니. 그러니 홧팅!!

 

봄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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