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역사)의 長期的(장기적) 合理性(합리성)
2011.3.30 호호당의 김태규님
이 말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자 및 저술활동을 했던 黃仁宇(황인우) 선생의 역사관으로서 나는 이 말을 실로 애호한다. (선생의 이름은 중국식 발음으로는 ‘황런위’, 미국에선 Ray Huang 이라 한다.)
2000 년 초에 돌아가신 이 분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라는 번역서를 통해서였다. 그의 탁월한 생각에 홀딱 반해버린 나는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고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고 또 번역되지 않은 책도 주문해서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1991 년에 나오고 국내에는 2001 년에 번역 출판된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 세기'라는 책은 선생의 저작 중에서 가장 걸작임에 틀림이 없다.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이란 말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문제들이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꾸준히 좋아져 왔다는 선생의 견해이다.
이 말에 그거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라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낙관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 하겠다.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가 막연히 삶을 낙관하는 것과 갖은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사람이 가지는 낙관은 달라도 많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 선생의 이런 역사관은 서구세계에선 대단히 찾아보기 드문 것으로서 역사에 대해 悠長(유장)한 시야를 가진 중국인 특유의 것이라 하겠으며 그 바탕에는 한 번 陰(음)하면 한 번 陽(양)하면서 굽이굽이 변화 발전해가는 세계관이 놓여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오늘 황인우 선생을 소개하는 까닭이 있다.
음양과 오행으로 세상을 살피는 나는 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 궁리한다.
이런 궁리는 당장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 2008 년 금융패닉을 겪은 이래 양적완화를 펼치면서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대해, 좀 더 멀리는 빚더미 위에 앉은 선진국들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 더 멀게는 인류가 과연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까지 미친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나는 동시에 여러 현인들의 책을 읽어본다. 힌트라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러다가 며칠 전 황 선생의 책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 세기'를 다시 펼쳐 읽다가 평범하지만 좋은 힌트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을 발견했다.
“다음 한 세기를 내다보면서 우리는 미래 세계의 출구는 국제적으로 더욱 명확한 분업과 협업을 통해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는 농업을 더욱 강화하고 토지가 좁고 인구가 많은 국가는 공업에 주력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에 진력하고 있으며, 이미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는 하이테크에 전문적으로 주력하여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환경오염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고 물자의 환원과 재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후발 국가는 선진국의 민법과 상법을 참고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선진국은 낙후된 국가를 도와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사회적 관습을 바꾸어 새로운 국가관과 인생관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당장 우리 앞에 펼쳐진 시야에서 볼 때 황 선생의 이런 말 이상의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우리 대한민국이 현재 선생이 얘기한 그 길로 가고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선생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들려준다.
자신의 견해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사적인 자리에서 받기도 했다면서 독자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비관적인 관점은 出口(출구)가 없다는 것이다.
참 그렇지 않은가!
‘비관론에는 출구가 없다’는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래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내 가슴을 흔들어놓은 한 줄의 문장이기도 하다.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비관적인 사람들이 많다. 굳이 지식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방면에서 경험이 풍부한 자들도 비관적인 경우가 많다. 메시아를 자처하는 지식인의 경우는 더 심하다, 그들은 비관론을 확산시키고 그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지지자들을 모으기도 한다.
그런데 황 선생은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미래를 낙관한다.
1980 년대 초반의 나 역시 ‘얼치기’ 지식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일본 좌파 학자들이 당시 從屬理論(종속이론)에 입각해서 쓴 다양한 경제이론 서적들을 열독하면서 힘들어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결과적으로 허무맹랑한 것들이었다.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 즉 그 사람의 세계관이 먼저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 희망을 자신의 주장에 반영하는 것이기에 뒷받침하는 논거의 치밀성이나 정교함은 읽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주장의 옳고 그름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에게는 비관적일 수 있는 근거나 자료가 얼마든지 보이는 법이고, 그 반대인 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독자도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자신이 택한 방향에 따라 책을 사서 읽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1980 년대 당시 우리사회는 무척이나 암울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책읽기는 좋아하고, 사실 아무 것도 모르던 나는 그런 좌파이론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6 년 아시안 게임과 1988 년 올림픽을 관전하면서 이게 또 뭐냐 싶었다.
아니, 대한민국은 뭐 빠지게 열심히 해도 결국 미 제국주의와 자본가들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허덕인다 하더니 급속도로 좋아져가는 이 상황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이게 다 쥐약인 거지, 좀 희망을 주면서 확실하게 옭아매기 위해 떡밥을 던지는 거’라는 설명이었다.
나름 말이 되는 소리 같았지만, 실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 좌파 운동권 대학생들은 정주영 회장을 불러내어 면전에서 買辦資本(매판자본)이라 매도했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어느 누구가 고 정주영 회장을 매판자본이라 하는가?
매판자본, 최근 젊은이들은 이런 단어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침탈해오는 외국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현지 走狗(주구)로서 자국 국민들의 膏血(고혈)을 빨아내느라 혈안이 된 매국적 자본가를 그렇게 부른다.
매판자본론은 1960 년대 우리 사회를 주름잡던 좌파 이론이었고 다음으로 1970 년대에는 종속이론이 성행했다. 이런 식으로 부단히 그럴듯한 좌파이론들이 10 년을 간격으로 등장하고 또 사라져간다.
이는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라, 역사책을 보면 내가 메시아다, 내가 미륵보살이다 하던 사람 많았고 지금도 많다. 이루 열거할 수 없으리만큼 數多(수다)하다.
그러니 이상한 이론은 앞으로도 연이어 등장할 것이지만, 많이 낚여본 나는 더 이상 낚이지 않는다. 물론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낚일 것이다. 마치 무슨 통과의례와도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 어설픈 이론이나 주장보다는 어차피 세상을 살아갈 거라면 낙관적인 생각이 좋다고 본다. 그렇기에 황 선생의 주장, 즉 歷史(역사)의 長期的(장기적) 合理性(합리성)을 나는 선호한다.
역사책을 보면 文(문)과 辭(사)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속인 똑똑한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픔도 많고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그 뿌리가 튼실해서 일시적으로 邪道(사도)가 횡행할 순 있어도 오래 이어지는 법은 없다.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믿는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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