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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추억하며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3. 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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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추억하며   

2011.3.25  호호당의 김태규님

 

 

 

결혼 참 많이도 하는 여자로만 내게 각인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享年(향년) 79 세로 타계했다. 이에 또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여배우 한 사람이 갔을 뿐인데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니 야릇하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될 무렵 우리나라는 철저한 貧國(빈국)이었고, 그녀의 訃音(부음)을 듣는 지금 우리나라는 상당히 잘 사는 나라로 변해있다.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당시 우리사회의 윤리풍토는 한 번 결혼하면 그걸로 끝까지 사는 것이 당연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우리 역시 이혼은 그저 그런 소식에 불과한 사회로 변해 있다.

 

그녀가 일세를 풍미하던 시절의 우리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금의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변화, 그러나 잘 느끼지 못하던 그 많은 변화들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일시에 강렬한 對照(대조)로 다가와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녀가 요란스레 명성을 휘날리던 시절, 우리사회의 보통 사람들은 외국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아주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그 비싼 달러를 주고 수입해온 값비싼 필름이었기에 너덜너덜 누더기가 될 때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상영되고 또 상영되던 시절이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 영화란 귀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오락도 아니며 그저 텔레비전 틀면 마치 광고 영상처럼 눈앞에 절로 깔리는 그저 그런 오락물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제 거의 공짜 물건이다.

 

다시 말해, 1960 년대 시절 영화는 모든 판타지, all that fantasy 였고 2010 년의 영화는 사실 만화책 한 권만도 못한 물건이다.

 

리즈 테일러의 부음은 이런 ‘센티멘탈’을 와락 하고 안겨주고 있으니, 역시 그녀는 요란하고 대단한 존재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다섯 살 무렵 ‘흑기사 아이반호’라는 영화에서였다. 1960 년 전후한 시점인데, 잠시 영화 데이터베이스인 ‘IMDB’에 들어가 조회해보니 개봉은 1952 년으로 되어있다. (당시 우리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늦게 개봉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 어린 아이의 눈에도 리즈 테일러는 너무나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감탄이었다.

 

당시 나는 ‘아, 예쁘다!’를 연발했고, 어린 내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은 어머니는 기사 역으로 나온 超(초)미남 배우 ‘로버트 테일러’에게 홀딱 빠져서 ‘저 봐라, 정말 잘 생겼지!’ 하며 내 동의를 구해왔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미소를 지어 본다.)

 

영화, 실로 값비싼 오락이었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했던 나는 어려서부터 참 많이도 보았다.

 

영화 관람을 대단히 즐기셨던 아버지는 어린이 입장 불가도 그다지 개의치 않고 데리고 다니셨다.

 

덕분에 키스 장면을 엄청 많이 보았지만, 나는 그저 으윽-하며 징그럽게만 느꼈다. 왜 더럽게 어른들은 입을 맞추지? 하는 생각 혹은 ‘아, 포옹하다보면 나중에는 너무 가까워져서 할 짓이라곤 저것밖에 없겠구나’ 하고 어른의 세계를 내 나름으로 이해 했었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 역시 외아들인 나를 데리고 누이들 몰래 아버지 몰래 영화관을 잘도 다니셨다. 아버지와 말다툼을 한 다음 날이면 거의 어김없이 영화관 행이었고 나중에는 나도 두 분의 말다툼을 은근 반길 정도였다.

 

내가 영화에 대해 오랜 내공을 지니게 된 것은 모두 두 분의 공로인 셈이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영화는 ‘클레오파트라’였다.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여전히 어린 시절이라 그녀의 매력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영화 자체의 엄청난 스펙터클과 로마 군대의 멋진 투구와 갑옷에 매료되었다. 또 안토니우스로 나온 리처드 버튼의 어리석은 행동에 ‘쯧쯧 여자에 빠져서 아이고 저런 병신!’ 하며 손가락질 했던 기억만 난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그 영화 때문에 두 사람이 기존의 남편 마누라 다 버리고 결혼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저 배우란 것들은 인간이 아닌 모양이다’ 했었다.

 

‘너는 나중에 저러면 안 된다’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고, ‘엄마 걱정 마’ 하며 안심시키려 하던 나는 착한 아들이었다.

 
당시만 해도 내 인생 최대 난제 중에 하나가 훗날 어른이 되면 어떻게 창피함을 무릅쓰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민망한 결혼식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엘리자베스 테일러란 여자는 그 예쁜 미모를 권력삼아 마구 휘두르며 결혼을 밥 먹듯이 해치우는 프로 결혼선수로 귀착 되었다. 또 돈 있는 부호들이란 그녀의 부름에 언제든지 응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상한 바보들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 역시 이혼은 일상 다반사, 그러나 20 년전까지만 해도 누가 이혼하고 또 재혼한다고 하면 ‘야, 지가 리즈 테일러냐 아니면 니가 리처드 버튼이라니?’하며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제임스 딘과 함께 출연한 ‘자이언트’도 부모님 대동하고 보았지만 정말 재미가 너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 사실 나는 서부영화라는 말에 속아서 갔던 것인데, 알고 보니 ‘서부활극영화’가 아니라 그냥 서부영화였다.

 

그저 어머니가 록 허드슨에게 빠져서 멍 때리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니 이 아줌마 정말 한심하네’ 하게 여겼던 기억이 나고, 또 영화 속 유부녀인 리즈 테일러가 양아치 건달 같은 제임스 딘에게 애매한 묘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저런 나쁜 년이 다 있나?’ 했던 추억만 남아있다. (훗날 다시 보니 제법 좋은 영화였다.)

 

그러나 그 끔찍이도 아름다운 눈의 리즈 테일러도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했고 서서히 무대에서 사라져갔고 또 내게서 잊혀져갔다.

 

그저 간간히 ‘또 누구와 결혼했다’는 소식 정도였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사이 나도 성인이 되었고, 그녀의 빈번한 결혼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또 우리 사회의 이혼율도 높아지면서 어느덧 이해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운명과 관련하여 하나 재미난 점이 있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리차드 버튼과의 공통점이다.

 

그녀는 戊午(무오)일 생이고, 버튼도 戊戌(무술)일 생이라는 사실이다.

 

사실상 겨울 생인 리즈의 운명으로 볼 때 같은 기운, 즉 同氣(동기)의 리차드 버튼이야말로 서로 잘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그들의 사주 구조를 보고 이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故人(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위해 한 마디 변호하고자 한다.

 

결혼 선수였던 그녀였지만, 그녀 자신의 말을 인용해자면 자신은 결혼한 남자하고만 잤지, 결코 그냥 무책임하게 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잠자리를 가졌던 남자는 ‘겨우’ 여덟 명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세기의 미녀인 그녀가 그렇다니 너무 약소하지 않은가!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 남자의 돈이나 여타 다른 이유에서 자신의 美色(미색)을 거래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알겠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씨, 조영남 식 표현대로 ‘제1의 결혼’밖에 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내인 저에게 당신은 當代(당대)의 豪放女(호방녀)였습니다.

 

함께 했던 세월이 즐거웠기에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그러니 편히 가시길, 굿 바이.

 

3월 하순에 눈 내리는 저녁을 보게 되다니, 세월의 정취가 何(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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