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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노래 한 곡 하입시다!”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3. 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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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노래 한 곡 하입시다!”
노 대통령이 사랑한 노래 ‘어머니’에서 ‘비에 젖은 주막’까지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가 두 달 남짓으로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그의 뜻을 기리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재단에서는 5월 23일 봉하 추도식을 비롯해 전시회와 학술심포지엄, 추모공연 등 ‘사람사는 세상’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추모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2주기를 준비하며 그의 63년 삶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 어록 등 각종 자료들을 되짚어보니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못지않게 ‘인간 노무현’의 됨됨이와 온정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을 회상하며 그의 삶과 정신을 곱씹어보려고 합니다.


민중가요 ‘어머니’에서 비롯된 ‘사람사는 세상’

 

노 대통령의 ‘노래 이야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어머니’를 가장 먼저 꺼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노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이자 재단 홈페이지, 그리고 재단 공식명칭에도 들어가는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이 바로 이 노래 가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절정기였던 87년 6월 항쟁 당시, 이 땅에 독재를 몰아내고 ‘새 세상’을 만들려는 염원이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을 때입니다. 일부에서 당시 민중가요였던 ‘어머니’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는데, 노 대통령 역시 이 노래를 목놓아 부르며 시위현장에서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그 뒤 국회의원과 장관 시절, 그리고 대통령을 거쳐 퇴임 뒤 봉하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면서도 그의 삶에서 가장 큰 화두는 “어머님 해맑은 웃음의 그날”, 바로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에게 ‘어머니’는 바로 ‘국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부산’과 ‘광주’에 관한 노래 두 곡입니다. 노 대통령은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다시 고배를 마셨고,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서울을 떠나 다시 부산으로 귀환, 2000년 4월 북강서을 선거에 출마했다가 다시 낙선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거리유세에서 노 대통령은 1995년의 기억을 곱씹으며 부산시민들을 향해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라며 ‘부산 갈매기’를 목이 터지게 불렀습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자서전을 통해 “얼마나 맺힌 게 많으면, 얼마나 마음에 사무친 게 많으면 유세 중에 ‘부산 갈매기’, ‘동백섬’도 불렀다”며 부산 롯데호텔 앞 유세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애환이 담긴 ‘부산 갈매기’는 2년 뒤 광주에서 다시 환호의 노래로 탈바꿈합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광주경선에서 기호 2번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득표수 595표 득표율 37.9%로 1위를 차지하면서입니다. 영남 출신 후보가 광주에서 얻은 득표율 1위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지역주의를 넘어선 의미 있는 승리로 회자됩니다.


광주의 노래, 민중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직녀에게’

 

광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와 관련된 노래 두 곡을 더 이야기해야겠습니다. 하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1980년 12월)를 소설가 황석영 씨가 다듬어 가사로 쓴 곡으로, 1982년에 만들어진 노래굿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노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에 이미 ‘민중 애국가’ ‘광주의 애국가’로 많은 사람들이 불렀고, 노 대통령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23주년이었던 2003년, 광주를 찾은 노 대통령은 오찬에서 “80년대 초 부산에서 학생들이 많이 붙잡혀와 재판을 받았다. 대부분은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부산시민들에게 퍼뜨리는 것이 그 이유였다. 80년대 합창되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출정가’, ‘5월의 노래’ 등을 많이 불렀다.

 

이후 87년 6월 부산 시민들의 항쟁의 주제는 광주였다. 저도 광주사람들의 정치적 지향과 함께 정치를 해왔다. 지난 경선에서 광주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지금은 대통령이 돼서 광주에 오게 됐다. 광주시민 못지않게 광주정신을 각별히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듬해인 2004년에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5·18 민주화운동 24주년 기념식에서 군악대가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연주한 것입니다. 군부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희생된 영혼들 앞에서 군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역설적인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정부 공식행사에서 연주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광주에 얽힌 또 하나의 노래는 ‘직녀에게’입니다. 문병란의 시에 박문옥 작곡, 가수 김원중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역시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06년 10월 광주 아시아문화회관 착공식을 기념해 광주를 방문한 노 대통령은 김원중의 울림 깊은 노래를 들고 “앞으로 이 노래를 소개할 때는 그냥 ‘직녀에게’라고 하지 말고 ‘노무현이 좋아하는 노래 직녀에게’로 해달라”며 노래에 대한 애정을 표했습니다. 또한 광주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로 김원중의 ‘바위섬’과 ‘직녀에게’, 김유성의 ‘빙빙빙’ 등을 꼽기도 했습니다.

 

 

후에 김원중은 ‘직녀에게’를 부를 때마다 “노 대통령을 생각하며 좀 더 정성을 다해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1월 27일에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출범을 준비하는 자리에도 참석해 노 대통령에 대한 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의 외침 “민주주의여 만세!”

 

시간을 돌려 노 대통령이 2002년 4월 27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최종 결정된 날로 가봅니다. 대통령 후보 결정을 축하하기 위해 노사모가 주최한 ‘노사모 2002년 희망 만들기’ 행사 현장입니다. 경기도 이천의 덕평수련원에서 열렸던 이날 행사에서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 노사모 회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아침이슬’과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기교 없이 투박하지만 호소력 짙은 노래 실력이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앵콜!”이 빗발치자 노 대통령은 주먹 쥔 왼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2절까지 막힘없이 열창했습니다.

 

 

약 6개월 뒤인 10월 21일, 노사모가 꾸린 여의도의 ‘희망 포장마차’에 방문해 부른 ‘작은 연인들’은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입니다. 1979년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로 만들어졌는데, 이때는 노 대통령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짧은 판사 시절을 거쳐 변호사로 막 개업할 무렵입니다. 평범한 시민에서 변호사, 재야운동가, 정치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첫 번째 변환점이었던 시기에 유행한 곡입니다.

 

 

노 대통령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전에 부산상고 동창 셋과 함께 얼마간 부산에 있는 어망회사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성적이 가장 우수했던 노 대통령은 경리과에서 일을 했습니다. 당시는 대부분의 공장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게 일상적이었습니다.

 

부산 범일동에 있는 친구(정인석 전 열린우리당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집에서 하숙을 했던 노 대통령은 회사가 있는 부암동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버스비를 아끼느라 걸어서 새벽 출근을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1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이때 친구와 함께 즐겨 불렀던 노래가 김상국의 ‘불나비’입니다.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와 ‘아침이슬’,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안치환의 ‘솔아 푸르른 솔아’도 노 대통령이 즐겨 부른 노래들입니다. 이 가운데 ‘상록수’와 ‘사랑으로’는 2002년 대선 광고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부른 노래가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면서 대선 승리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이후에도 노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래로 불리고 있습니다.

 

넥타이 없는 하얀 와이셔츠 차림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사랑으로’를 부르는 모습은 ‘인간 노무현’에 대한 정서적 교감과 깊은 신뢰로 이어져 ‘대통령 노무현’으로까지 그를 사랑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곧 다시 5월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노래’는 한이나 절망의 호소가 아닌 내일을 위한 희망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이제는 슬픔을 뛰어넘는 나눔과 연대, 내일을 위한 담금질의 노래, 진보의 뜻이 한 데 모인 신명나는 노래를 불러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노 대통령이 퇴임 뒤 봉하 생활 3개월째를 맞은 2008년 5월 어느 날, 그를 찾은 수많은 방문객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님. 마이크 사셨는데 노래 한 곡 하입시다!” 하며 노래를 청하자 못이기는 척 수줍게 시작한, 신명났던 노래 한 곡을 함께 들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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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8일
노무현재단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4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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