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반문 “정말 세상을 바꾸려면…” (노무현재단 / 2011-03-10)
부산 사상구 버스터미널에서 택시에 올라 <노무현재단 부산지역위원회> 사무실로 향했다. 부산 시내는 동남권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플래카드로 울긋불긋 덮여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노 대통령께 부산은 정치적 고향이란 수식 외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부림사건’으로 불리는 이 재판의 변론을 맡으며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보다 깊이 고민을 시작했다. <부산지역위원회>는 노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끓어올랐던 추모열기에서 시작되었다. 각계 인사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부산시민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분향소 운영을 맡았다. 서거 1주기를 맞이해 추모콘서트 부산공연을 주관하고 지역 최초로 ‘노무현 시민학교’를 여는 등 활발한 추모사업을 진행했다.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운영위원장 입장에서는 이게 납득이 안돼요. 그래서 만나면 부산 말로 막 공굽니다.(웃음) 니가 왜 가입 안했노.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막 졸라요.” 이 제안은 운영위원장이 먼저 하셨는데 우리가 다 죽으면 누가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그 가치를 새기겠냐. 그래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중요하다고 하신 거지요.” 또 상시 사업으로 봉하마을을 찾아 후원회원 가입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봉하 농산물 지역판매, 봉하 생태캠프 운영, 사진전 개최 등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아마 송 신부님이 마침 개인적으로 축하받을 일이 있었는데 노 대통령은 선거운동은 안하고 축하만 하고 나온 거죠. 다른 사람들 예배 보는데 미안해서 그랬다고 하시데요.” 그런데 노 대통령께서는 이 돈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심의 없이 돈을 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하신 거죠. 그런데 대통령님께서 하신 말씀이 ‘2003년도에 쓰고 2004년도에도 쓰면 2005년도에는 절대 못 바꾼다. 지금 당장 바꿔라’라고 지시하셨죠. 저도 나름 명색이 괜찮은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씀 앞에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우리가 뭘 한 거요’라고 말씀하시기에 ‘참여정부가 정책의 품질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바꿨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당시 제가 권해 드렸던 책이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입니다. 저도 한 번 읽고 권해 드렸는데 다음에 뵈니깐 몇 번이나 정독하며 고민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출처 : http://www.knowhow.or.kr/foundation_story/story_view.php?start=0&pri_no=999563748
부산지역위에서 만난 이정호 공동대표·설동일 운영위원장, 숨겨진 ‘일화’ 쏟아내
한때 부산에서 잘 나가는 조세변호사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노무현 변호사는 80년대 이후 노동자, 학생들과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그 후 부산은 그에게 첫 의원 배지를 안겼지만 끊임없이 좌절과 상처를 주기도 했다.
6?2 지방선거 후 많은 부산 출신 인사들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토로한다. 당시 야권의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는 45%를 득표해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많은 부산 사람들이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새로운 기대와 희망이 싹트고 있다고 말한다.
부산지역위원회 첫 발을 떼다
서면 구시가지 낡은 건물 3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가자 부경대 교수인 이정호 공동대표(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설동일 운영위원장, 이진걸 사무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희망연대(구 노동자연대) 사무실 한 켠을 얻어 공동으로 쓰는 형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정호 대표가 특유의 사투리로 “부산 택시가 좀 거세지요”라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이정호 대표는 노사모 회원으로 시작해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학계 지지를 이끌어냈고 설동일 운영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삶을 바꾼 ‘부림사건’으로 인연을 맺었다. 1981년 당시 전두환 정권은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로 부산지역 지식인과 교사, 대학생 22명을 구속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부산지역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했고, 지난해 10월 6일 국제신문사 강당에서 500여명의 후원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했다. 현재 <부산지역위원회>는 이정호 대표를 비롯해 이기숙 신라대 교수(자치21 이사장), 이학기 동아대 교수(전 부산참여연대 공동대표)가 3인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부산지역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설동일 운영위원장은 운영상 첫 애로사항으로 기대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후원회원 모집을 꼽았다.
“지역위원회는 중앙에 기대지 않고 별도로 후원 모집을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늘지 않네요. 부산에서 노 대통령 찍은 사람이 30% 정도 되는데 추산해보면 60만명 정도 되지요. 우리 주변만 둘러 봐도 가입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아직 안한 경우가 많데요.”
옆 자리에 있던 이정호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원래 우리 운영위원장이 욕심이 많으세요.(웃음) 설 운영위원장이 평소 버릇처럼 하시는 말이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것 (후원회원 모집) 하나 밖에 없다. 그래서 팔 걷어부친 겁니다. 가입을 안 한 분들 중에는 아직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저는 이해를 하는데요.
“우리 다 죽어뿌면 우짤끼고”
사업 계획에 대해 말하던 중 이정호 대표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설 운영위원장이랑 내기를 했어요. 지역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대학생캠프’에 누가 더 많이 참여시키나. 현재까지 제가 학교에 있어서 더 유리한 것 같지만 우리 운영위원장이 워낙 재주가 좋은 분이라 제가 떨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위원회>는 매달 산행, 트래킹, 대화마당 등의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대화마당은 지난 2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초청강연에 이어 이달에는 16일에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연사로 나설 예정이다.
4월 5일부터는 국제신문사 강당에서 제2기 부산지역 ‘노무현시민학교’를 개설할 예정이다. 강사로 문재인, 김용익, 문성근, 조기숙, 이정우, 유시민이 나선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희망’ 연대
인터뷰 중 땅거미가 지자 건너편 식당으로 이동했다. 지역위원회를 나오기 전 낡은 건물의 사무실을 둘러보며 무척 유래가 깊은 곳인 것 같다고 말하자 설 운영위원장이 이 사무실(희망연대)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문재인 이사장 그리고 부산지역 인사들이 의기투합해 열었던 ‘노동자를 위한 연대’가 전신이란 것이다.
부림사건 당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이들이 부산?경남지역 시민?노동운동의 활동가로 자리를 잡았고, 노 변호사는 노동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87년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 고문변호사 제도를 제안하며 본격적인 법률지원 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의료보건 및 노동계 등의 인사들과 함께 1989년 4월 ‘노동자를 위한 연대’를 만들었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연대’가 해산됐지만 노 대통령과 문재인 이사장의 헌신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그후 현재까지 희망연대가 그 맥을 잇고 있으며 여전히 부산지역 노동자 지원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숨겨진 세 가지 일화
추억담이 나오니 이야기가 깊어졌다. 차 시간을 넘길까봐 시계를 자주 보는데 설동일 운영위원장이 노 대통령과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때 일인데요. 송기인 신부가 자기 성당에 와서 인사를 하라고 했어요. 선거운동차 노 대통령을 모시고 갔지요. 그런데 이 분이 쭉 가만히 서 계시다가 신부님께만 ‘축하합니다’라며 인사만 하고 나오시는 거예요.
참모로서 그럴 때는 야속하지 않았냐고 반문하니 그는 고개를 흔들며 “아닙니다. 원래 그런 분인 거 다 알았지요”라고 답한다. 이정호 대표는 이어 세간에 많이 알려진 대통령 교부금에 관한 깊숙한 이야기를 꺼냈다.
“2003년 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통령 특별교부금이란 게 있어요. 연간 1조3천억원 정도 되는 엄청난 돈이죠. 국회 심의도 안 받고 그야말로 청와대 쌈지돈이었어요. 예전에는 지방에서 대통령을 서로 모시려고 했던 게 대통령이 하사하는 식으로 이 돈을 막 내려 보냈기 때문이죠.
그때 제가 노 대통령께 보고를 드릴 때 좀 머리를 굴렸죠. 2005년에 법을 바꾸면 2006년까지는 교부금을 쓸 수 있거든요. 당시 균형발전예산 등과 같이 돈 쓸 때가 많아서 2005년도에 바꾸자고 보고했습니다.
이정호 대표는 인터뷰 막바지에 노 대통령이 던진 세가지 질문을 꺼냈다.
“2008년 여름 강원도에 갈 때, 버스 안에서 노 대통령께서 대뜸 ‘이 수석 우리가 권력을 누렸소’라고 묻데요. 그래서 제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죠. 이어 ‘세상을 바꿨소’라고 물으셔서 ‘생각만큼 바꾸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보니깐 누린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꾼 것도 아니더라. 정말 세상을 바꾸려면 시민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부터 공부하자.’ 그때 민주주의 2.0에 대해 말씀하시며 꼭 같이 공부하자고 하셨죠.
노무현재단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4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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