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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가 한 소리로 웃는구나!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2. 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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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가 한 소리로 웃는구나!   

2011.2.20   호호당의 김태규님

 

 

 

마음이 울적할 때 간혹 ‘창해일성소’라는 중국노래를 곧잘 불러보곤 한다.

 

중국 무협영화 ‘소오강호’의 주제곡이다.

 

笑傲江湖(소오강호)라는 말은 세상의 榮辱(영욕) 따위는 그 까짓 거 하며 웃어넘긴다는 뜻, 호탕한 기상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노래 가사의 번역과 뜻풀이가 미흡하다 싶어 여기에 내 나름의 번역을 올려 본다.

 

먼저 노랫말부터 올린다.

 

滄海一聲笑 (창해일성소)
滔滔兩岸潮 (도도양안조)
浮沈隨浪記今朝 (부침수랑기금조)
滄天笑紛紛世上滔 (창천소분분세상도)
誰負誰剩出天知曉 (수부수잉출천지효)
江山笑煙雨遙 (강산소연우요)
濤浪濤盡紅塵俗事知多少 (도랑도진홍진속사지다소)
淸風笑竟惹寂寥 (청풍소경야적료)
豪情還剩了一襟晩照 (호정환잉료일금만조)
蒼生笑不再寂寥 (창생소부재적료)
豪情仍在癡癡笑笑 (호정잉재치치소소)

 

번역을 해보면 이렇다.

 

푸른 바다가 크게 소리 내어 웃는구나,
이편저편 해안에는 물결도 도도하니
파도를 따라 浮沈(부침)하는 오늘의 아침을 기억하리라,
푸른 하늘은 어지러운 세상 물결을 그저 웃고만 있으니
누가 이기고 또 지는지는 저 밝아오는 새벽하늘만이 알리라,
웃고 있는 강산과 저 멀리 어리는 안개비는
물결처럼 浮沈(부침)하는 홍진 속세의 일 따위야 아예 무심할 것이니,
맑은 바람 웃으며 불어와 마침내 塵世(진세)를 털어내고 나면
호걸의 마음에는 그저 소매에 서리는 저녁놀만 남으리라,
이에 창생 만물은 웃기만 할 뿐 적막할 일 다시 없을 것이니
호걸도 따라서 그저 껄껄 어리석은 웃음만 지을 뿐이네.

 

무협소설 笑傲江湖(소오강호)는 저자 ‘김용’ 스스로가 밝힌 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의 일들을 諷刺(풍자)하고 있다.

 

각자가 다양한 동기에서 그리고 이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치욕을 안기고 공격하고 죽이는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던 문화대혁명이다.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亂動(난동)을 혁명이라 하고 또 거기에 더하여 ‘文化(문화)’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했다는 것 또한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다.

 

造反有理(조반유리)라는 말, ‘젊은 홍위병들이 저토록 성을 내며 들고 일어나는 데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젊은이들의 거친 난동을 뒤에서 선동하여 政敵(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고 또 연장했던 모택동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마다, 친구와 친지 사이에 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서로마다  반동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고발했다.

 

내가 먼저 고발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대로 거꾸로 고발당해서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심지어 죽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히스테리로 인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억지 고발과 자아비판이 무려 10 년간을 橫溢(횡일)했던 역사의 일대 난동 사건이 文革(문혁)이었다.

 

그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오욕의 멍에를 썼고 목숨을 잃었다. 이런 非人間(비인간)의 세상은 훗날 중국의 시인 巴金(파금)으로 하여금 강렬한 반성의 시를 한편 짓도록 만들었다. 언젠가 소개했던 적이 있다.

 

‘비루는 비루한 자의 통행증이요, 고상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라는 극도로 짧은 시가 그것이다. 비루한 놈들은 살아남기 위해 친구와 친지를 고발해가면서 살아남았으니 비루함은 삶의 통행증인 셈이요, 절개를 지키려던 高尙(고상)한 자는 그 바람에 끝내 모조리 죽고 말았으니 인간적 존엄은 죽은 자의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명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시인 자신도 부끄럽게 살아남았으니 역시 비루한 자의 한 사람이라는 자기반성이었다. 이에 원래 글과 언어를 業(업)으로 하는 시인이건만 그처럼 극도로 짧은 시를 썼던 것이다.

 

소설 笑傲江湖(소오강호)에서 주인공 ‘영호충’은 무림정파의 일문인 화산파의 수제자이지만, 마교 교주의 딸인 영영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정파의 고수와 마교의 고수는 陣營(진영)을 초월하여 琴曲(금곡)을 공동으로 작곡하고 연주하며 교류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들이 지은 금곡의 이름은 笑傲江湖(소오강호)이고.

 

주인공 영호충은 그 곡의 악보를 얻게 되고 절세의 무공을 익히면서 서서히 자신의 경험과 양심에 입각하여 理念(이념)의 차이보다는 결국 인간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세상을 열어가게 된다.

 

그 세상은 비록 작지만 분명 새로운 세상이었다.

 

江湖(강호)란 다른 곳이 아니라 저마다의 욕망과 이해로 얽혀있는 세상,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에게 笑傲江湖(소오강호)하며 살고픈 마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는 자신의 욕망을 한껏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 또한 누르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笑傲江湖(소오강호)는 ‘욕망 게임’을 어느 선에선가는 내려놓지 않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라 하겠다.

 

어느 선에선가 내려놓는다는 것,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흔히 나는 그러고 싶지만 처자식이 있으니 그럴 수 없다는 핑계가 대번에 떠오를 것이고, 또 나는 그러고 싶지만 주변 사람과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는 잘난 핑계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外流(외류)라고 自稱(자칭)하며 지낸다. 主流(주류)? 되기도 힘들지만 유지하기도 어렵고, 非主流(비주류)하면서 씩씩대며 도전하자니 그 또한 너무 성가셔서 아예 ‘흐름의 밖’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그저 밥먹고 풍류하며 살고자 할 뿐이다.

 

仙樂(선악)과 正邪(정사), 是非(시비), 그런 거 난 잘 모르겠다.

 

가끔 울적할 때면 滄海一聲笑 (창해일성소)를 불러본다. 빈 작업실에서 한 바탕 소리하고 나니 문득 봄이 오는 푸른 남해바다가 눈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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