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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하여 (1)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2. 1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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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하여 (1)   

2011.2.16  호호당의 김태규님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부유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내부의 양극화로 인한 문제가 있지만 객관적인 기준에서 보면 분명 그러하다. 땅이 좁고 부존자원도 없으나, 뛰어난 인력과 기술이 있어 그를 발판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 시장에 내다 팔고 거기서 얻어진 외화를 가지고 필요한 물자를 사들여 와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방금 말한 것이 이른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인 셈이니 이 모델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나아가서 어쩌면 영구히 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 모델이 작동가능(workable)하지 않게 되면, 다른 代案(대안)을 찾아내어 현재의 번영을 유지해갈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사실 지금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오리지널은 이웃나라 일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은행을 설립 육성했으며, 그를 발판으로 수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일본이 걸어갔던 그 길은 독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의 금융회사를 1990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금융기관’이라 불렀고 지금도 일부는 그렇다. 이는 과거 일본 제국시대의 금융회사는 모두 사실상 국가기관이었기에 그런 언어사용습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1900 년대 초반은 서구 열강들이 활개를 치는 제국주의의 시대였기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스스로 군사강국이 되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軍國主義(군국주의)로 기울었다가 끝내 미국과의 전쟁에서 쓴 苦杯(고배)를 들어야 했다. 미국 점령 하에서 일본은 군사주의를 완전 포기하기로 하고 오로지 경제발전에만 전념했고 그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방식 그리고 수출주도형 경제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일본은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소위 ‘빅 히트’를 친 일본이었다. 특히 미국이 소련과 맞선 냉전 기간 동안 일본은 엄청난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국가주도하의 경제발전 모델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를 모방한 것이라는 지적도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그것은 ‘독일식 모델’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일본은 독일식 모델을 기반으로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비호 아래 미국과 유럽의 선진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을 해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고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1961 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가 독재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얻고 그를 통해 신속한 개혁을 이룩하면서 경제발전 모델로서 채택한 것 역시 일본 모델이었다.

 

그것은 일본 모델의 완벽한 복제였다.  1960 년대 당시로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었던 하나의 커다란 강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실상 신분상 거의 완벽한 ‘평등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국민 대다수가 ‘거지’였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 국민 중에 ‘헝그리 정신’이 충만하지 않았던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모두들 억척이었고 잘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꺼리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헝그리 정신을 바탕으로 박정희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과 수출 모델은 일본을 능가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모델도 있었고, 외부 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수출보다는 내수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수 모델도 있었으며, 또 은밀하게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평등 경제 모델도 있었지만 모두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을 元祖(원조)로 하고 일본에서 보다 정치하게 다듬어진 국가주도형 수출경제 모델이야말로 오늘날 번영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었음은 이제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물론 국가주도형 방식은 일본도 그렇고 우리도 지금 그렇지만 일정 상태에 도달하고 나면 외부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이에 일본이나 우리 모두 ‘英美(영미)식 시장형’으로 전환해왔지만 국가주도형이 남긴 영향의 자취는 오늘날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경제 운영이 ‘영미식 시장형’으로 전환되는 것과 맞물려서 정치 운영도 데모크라시로 전환했으니 그 분기점은 1987 년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이야말로 모든 국민들이 이제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던 시기였다. 하지만 꿈은 짧았다.

 

1991 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지구촌의 유일 통치자’로 등극했고,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자유진영’, 서구와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를 포함한 국가들을 ‘상전으로 모실 이유’가 사라진 미국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신보수주의’의 흐름이 득세해갔다.

 

미국은 1994 년을 기점으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엮으려는 시도 즉 글로벌리제이션을 출범시켰고 덩달아 우리 역시 보다 더 급속한 속도로 개방형 시장 모델로 전환해갔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우리가 영미식의 ‘시장형 개방 모델’로 전환하게 되자 불가피하게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국내시장의 개방속도는 가속화되었고, 이와 맞물려서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인한 저렴한 ‘차이나 프라이스’의 맹렬한 물결이 밀어 닥치니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마련인 중소기업 중심의 내수 산업은 사실상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바로 양극화의 원인이라 하겠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정치적 이념과 경제 문제를 놓고 아연 치열한 이념논쟁 국면을 맞이했다. 또 그런 와중에서 국민들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다분히 좌파성향의 정권을 선택했고, 두 번에 걸친 정권은 양극화의 문제를 완충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은 것이 아니라 클 수가 없었던 것이라 말해야 하겠다.)

 

반면 개방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오히려 그를 기회로 삼아 강한 탄력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일부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놀라울 정도의 성장과 발전을 성취하는데 성공했다. 양극화로 인해 경제적 안정을 잃어버리고 몰락한 사람들, 또는 몰락의 위기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기업의 놀라운 약진과 성취는 정서적으로 묘한 愛憎(애증) 관계를 심어주었다.

 

대기업이 있어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니 그것으로 국내경제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장개방과 내수산업의 기반 침체, 부익부 빈익빈의 추세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그 怨望(원망)을 대기업 쪽으로 돌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삼성 때리기’로 한동안 절정에 달했다가 지금은 다소 시들해졌다.

 

대기업의 경우 1990 년대와 같이 안정된 생활기반을 지키고자 하는 ‘노조’로부터의 시달림과 높은 인건비로부터 벗어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생산시설의 자동화는 물론 시설 자체를 해외 현지로 돌릴 필요가 있었기에 국내에서의 일자리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일자리 부문에서의 악순환은 교육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대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대거 ‘스펙’ 경쟁에 돌입했고, 영어 익히기에 여념이 없어진 오늘이다.

 

반면 국내에 그간 축적된 富(부)로 인해 상류층과 그를 모방하려는 중산층의 열망으로 인해 2004 년 무렵부터 웰빙과 럭셔리 붐이 대거 일기 시작했다. 주택도 프리미엄 아파트, 교육도 미국 유학은 기본, 여행도 해외여행이 추세로 자리를 잡아갔지만 그것이 아주 ‘단기간의 달콤함’이라는 것을 내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풍요의 그늘 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어 갔으니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용산참사’라고 우리가 칭하고 있는 사건, 분명 當爲(당위)의 견지에서 경찰이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애매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미안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다시 당초의 주제였던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로 돌아와 보자. 이제 국가주도형 경제는 아니다. 하지만 부존자원이 없으니 오로지 뛰어난 인력에 바탕을 두고 수출로 먹고 외화를 벌고 그로서 석유와 철광석 등의 물자를 들여와서 살아야하는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미 80 년대 무렵에도 수출보다는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부단히 제기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탁상공론이었고 요망사항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서비스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노무현 정권 당시 ‘금융 허브’ 육성이 안건이었지만, 사실 언감생심 어림도 없었으니 당시 나는 그저 鼻笑(비소)만을 날렸다.

 

우리는 어느 사이 세계에서 가장 무역의존도 다시 말해 외부환경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되어있다. 증시로 말하면 시장민감도 즉 베타(beta)가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설 연휴에 심심해서 자료를 통해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들을 검색해보았다. 대표적인 나라 세 개를 찾으니 우리 대한민국과 독일, 네델란드, 이 세 나라였다.

 

자료를 보자.

                       GDP(달러)        수출 규모(달러)         GDP 대비 수출 비중

대한민국              9,863 억               4,674 억                        47 %

독일                   33,060 억             13,337 억                        40 %
네델란드              7,700 억               4,513 억                        58 %
중국                   57,450 억             15,060 억                        26 %

 

 

참고로 중국도 비교해보았는데, 중국이 엄청나게 수출을 많이 하지만 비중은 26 % 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수출하면 일본인 것 같지만 놀랍게도 비중은 14 % 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GDP 대비 수출비중이 네델란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네델란드의 경우 우리보다 수출 비중이 높긴 하지만 수출 대상국이 주로 이웃나라인 독일이나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주로 유럽 대륙이고 미국으로의 수출은 겨우 4 %에 불과하다. 줄이면 이웃들과 장사하며 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출 대상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골고루 퍼져있다. 다시 말해 우리 수출은 육로보다는 주로 바다를 통해 전 세계로 운송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에서 무역 의존도는 물론 전 세계 각지의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FTA 에 가장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델란드하면 전통적으로 무역의 나라 商人(상인)의 나라이다. 그러니 우리 역시 네델란드에 못하지 않은 상인의 나라가 되어있는 셈이고 또 되어야만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되어있는 것을 설 연휴 시간을 보내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이 길어졌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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