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엔화를 보는 눈
2011.2.9 호호당의 김태규님
常平通寶(상평통보), 조선시대의 동전을 역사책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테두리는 둥글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나 있는 구리로 만든 돈이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天圓地方(천원지방) 사상을 본뜬 것이다.
상평통보와 같이 동양 3국의 동전은 형태가 둥글고 그런 까닭으로 중국과 우리 그리고 일본 모두 돈을 동그라미 즉 圓(원)이라 해왔다. 중국은 현재 돈을 元(원)이라 하지만 실은 圓(원)과 발음이 같다. 우리는 아예 한글로만 ‘원’이라 하며, 일본은 여전히 圓(원)이라 한다. 다만 나라마다 소리가 달라서 중국은 위엔, 우리는 원, 일본은 엔이라 할 뿐이다.
오늘은 중국 원화 즉 위엔화의 환율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 지금 미국은 별별 이상한 핑계를 들어가며 중국더러 위엔화를 왕창 올리라고 갖은 압력을 넣고 있다.
중국은 수출을 위해 위엔의 가치를 그간 저평가된 상태로 유지해왔고, 미국 또한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오히려 낮은 위엔을 한껏 즐기며 지냈다.
중국산 덤핑 물건들을 실컷 즐겨왔던 것이다. 미국의 월마트와 같은 수입업자들은 중국 측 생산자에게는 거의 ‘제로마진’을 강요하면서 그들은 온갖 중간 마진을 다 붙여가며 재미를 보았다.
또 미국 국민들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 저렴한 중국 물건들을 실컷 쓰면서 마치 중국에게 善心(선심)이라도 베푸는 양 갖은 위세를 다 부렸다.
그러나 엄청난 薄利(박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푼 두푼 달러를 축적해왔다. 중국은 초한지에 나오는 명장 韓信(한신)의 故事(고사)처럼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며 마침내 굳세게 일어서는 崛起(굴기)의 단계에 이르렀다. 壯(장)하다 하리라!
축적된 중국의 달러는 미국 시장 내에서 막대한 통화팽창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미국 금융회사들은 끝 모를 파생상품 이자놀이에 취해 놀다가 한 방에 뻥! 하고 금융패닉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또 뭐야 하고 화들짝 놀란 미국은 일단 책에 나오는 대로 금리를 제로 베이스로 낮추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양적완화 즉 달러 찍어내기, 달러 물타기는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던 방법이었다.
가령 우리나라 경제가 왕창 무너졌는데 경기를 살리겠다고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낼 것 같으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투자들은 모조리 채권 주식 다 팔고 줄행랑을 쳐버릴 것이다. 결국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럴 것이 분명한 데, 미국만은 달러를 두 번에 걸쳐 아직도 부족하다면서 천연덕스럽게 마구 찍어내고 있다. 이 모두 달러가 기축통화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실로 뻔뻔한 짓이 아닐 수 없다. 끗발을 마구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뭐 너희들이 우리가 이런다고 어쩔 것이여’ 하며 오히려 적반하장격의 미국이다.
미국은 동시에 달러 물타기의 이유 중에 하나로서 중국의 위엔화를 왕창 올려야 하는데 중국이 순순히 응하지 않으니 그렇다는 이상한 핑계를 달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 엄청난 중국의 무역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는 모두 그 원인이 중국에게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중국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야말로 실컷 데리고 놀다가 너 때문에 내가 망하게 생겼다고 연인을 탓하는 부잣집 망나니 도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토라진 중국이 호락호락 응하지 않자 미국은 중국에게 ‘사실 너하고 나하고 이 천하를 다스리는 게 아니겠어’ 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훈장의 이름은 글로벌 투, 즉 G-2 였다.
아시다시피 훈장은 그 자체로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저 생색내기에 적격이다. 기껏 훈장까지 수여했건만 중국이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자 ‘아쭈 이것이 그간 컸네’ 하면서 서서히 이빨을 갈기 시작한 미국이다.
과거 일본이나 독일을 데리고 놀 때는 플라자 호텔에 불러다가 ‘엔화 왕창 올린다, 오빠가 좀 피곤해서 말이야’ 했더니 순순히 말을 들었건만 아니 이것들은 전혀 말을 들을 기미가 없네 하면서.
얼마 전 일본은 하토야마가 豪氣(호기)롭게 미국 오빠에게 한 번 대들었다가 훅 하고 날아가 버린 뒤 시방 무릎 꿇고 양팔 다 들고 반성 중이다. (그 바람에 작년 우리는 엄청 재미를 봤지만.)
하지만 중국은 현재 기백이 만만치 않다. 오히려 미국 국채를 흔들며 ‘나 성질나면 다 던져버릴 거야’ 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실은 기백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분고분 응했다가는 곤욕을 치를 것 같아 조심 중이라 하겠다.
역설이지만 중국이 미국에게 이처럼 엉길 수 있는 이유는 일본보다 경제가 후진적이기 때문이고 생활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만 해도 이미 무역으로 먹고 살고 있고 게다가 거의 선진국에 준하는 생활수준이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지만 중국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미국에게 개기고 엉길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잃을 것이 없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한이고 말이다. 작년의 천안함 사건이나 또 연평도 사건에서 보듯이 중국은 위엔화 절상을 요구해오는 미국에 대해 슬슬 엉겨 붙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위엔화 절상을 미국과 이면 협상을 통해 서서히 점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체면만큼은 구기지 않겠다는 것이고, 거기에 미국은 류사오보 노벨상 수여를 통해 여전히 괴롭히고 있다. (스웨덴 애들도 참 그렇다, 완전 미국의 ‘꼬붕’인 셈이다.)
그런 까닭으로 중국은 결코 위엔화의 급격한 절상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역시 위엔화의 급격한 절상으로 중국 경제가 침체될 경우 미국 경기부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 결국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하겠다.
중국이 마침내 위엔화 절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있다. 미국은 작년 한해 내내 클린턴 국무장관이 인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중국이 위엔화를 올리지 않으면 투자를 인도로 돌려서 중국의 저렴한 가격 즉 차이나 프라이스의 수명을 단축하겠다는 협박이다.
우리가 브릭스(BRICs)라 부르는 나라들 중에서 인도와 브라질은 본질에 있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수작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보다 더 저렴한 생산비가 가능한 나라가 인구 11 억의 인도이고 브라질은 자원의 강국이고 인구도 많아서 이들 나라를 서서히 키우면서 중국이 말을 듣지 않으면 즉각 카드로 써먹으려는 미국의 장기 포석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뭐 엄청 잘 한 것 같지만 실은 브라질을 중국의 대항마로 키워둘 필요가 있음을 느낀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배경이었다는 사실.) 이에 결국 위엔화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타협과 조정을 통해 정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얼마나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위엔화를 올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근 2 년간 위엔화의 달러 대비 교환비율은 6.83 이었다. 이를 미국은 5.63 정도까지 올리라는 주문이고 중국은 6 위엔 대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결과 위엔화의 실제적인 절상치는 그 중간 어느 선이 될 것이다.
아울러 시기가 문제인데, 미국은 늦어도 대통령 선거 6 개월 전인 2012 년 여름까지를 주문하고 있고 중국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 하면서 2015 년 여름까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쟁이나 진배없는 양국 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의 최근 금리인상은 환율 절상과 관련이 되어있다.
그러니 중국 역시도 올해부터 내부의 양극화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에 중국은 금리인상과 환율절상으로 인해 사실상 이윤이 없는 한계 수출기업들이 도산으로 내몰릴 것이고 그러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서 그렇다.
지금 중국 당국은 겉으로야 태연한 척 하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경제를 조율해가고 있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올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인 까닭이다.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고 말이야 쉽게 하지만, 사실 수출경제를 내수경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실로 至難(지난)한 일이다.
우리 역시 30 년 전부터 내수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수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왔음에도 오늘에 이르러 수출 의존도는 더욱 더 커진 현실이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제2차 대전 이후 수출의존형 경제가 내수경제로 전환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독일 역시 여전히 수출의존형 경제이고 일본도 수출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여전하다.
중국이 그저 인구가 많다고 해서 어느 날 내수로 전환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닌 것이다. 겉보기에 중국 경제가 엄청 좋은 것 같지만 실은 위엔화 절상 기조가 시작된 이 마당에 앞으로도 중국경제가 순항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우리가 1996 년 당시 원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바로 그 다음 해인 1997 년 외환위기를 겪었듯이 중국 역시 위엔화의 가치 상승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당분간 위엔화의 상승 기조는 우리 수출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엔화가 초강세이고 위엔화마저 강세 기조이니 중국 수출도 좋고 일본 상품과의 경쟁력도 여전히 막강하다.
그러나 위엔화의 강세기조나 수퍼 엔고 현상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긴축기조가 자칫 침체로 들어서거나 수퍼 엔고가 사라지면 그 반대 현상이 불가피할 것이니 말이다.
미국의 제로 금리와 달러 물타기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맹렬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지도 못한다. 미국이 올리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덜컥 금리를 인상했다가는 바로 원화 강세가 되고 수출에 타격이 올 것이니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감히 어느 나라도 함부로 금리를 올리지 못한다. 유로 은행 총재도 입으로만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제국 미국의 위상에 별다른 변동이 없음을 말해주는 단편적인 사례라 하겠으니, 미국 덕분에 먹고 살고 미국 탓에 몸살이 나는 오늘의 세상이다.
다음 글에서는 오늘날 미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좀 할까 한다. 현존하는 세계의 實勢(실세)이니 좋건 싫건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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