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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날에 그리는 鬱寂(울적)한 山水畵(산수화)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2. 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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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날에 그리는 鬱寂(울적)한 山水畵(산수화)

2011.2.2 호호당의 김태규님

 

 

작업실에 나와 앉은 설 전날의 오늘은 홀로인 날이다. 전화 올 일 없고 어디 갈 일 없어, 멀리 길가의 자동차 소음이나 벗하는 날이다.

 

이것이 쉰 하고도 일곱이 된 내가 맞이하는 설 전날의 상황이다. 어릴 적의 분주하고 흔쾌했던 설날이 아련하기만 하다.  그때 나는 무엇이 그리고 왜 분주했고 흔쾌했던 것일까?

 

먹을 것이 많아서 분주했던 것 같긴 하다. 엄마가 이런저런 전을 부칠 때 곁에서 참견하느라, 떡 하러 엄마와 함께 방앗간에 다녀오느라, 엄마가 만두 빚을 때 함께 손때 묻히며 괴물같이 큰 만두 하나 빚어보느라 그런 일들로 분주했던 것이다.

 

설날 아침에 수줍음을 참고 세배를 드리고 나면 巨金(거금)이 생기니 그것이 흔쾌했던 것 같다.

 

동네 친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하면서 다시 추가로 收金(수금)을 하니 그 역시 흔쾌했던 것이고, 걷은 세뱃돈 중에서 일정 액수를 엄마에게 저축이란 명목으로 압류당하고 나서도 남은 액수가 컸으니 그것으로 진종일 돌아다니며 장난감도 사고 오뎅꼬치도 사먹고 이런저런 군것질을 하며 돌아다니니 그로서 흔쾌했던 것이다.

 

내일이 설날이다. 이제 특별히 맛있는 음식 없고 입맛을 돋우는 음식 사라진 지 오래이다. 세뱃돈 생길 일 없다.

 

차례상 준비는 아내의 몫이니 나설 일도 없다. 설은 그러니 분주하지도 않고 흔쾌하지도 않다. 그저 차려놓은 차례상 앞에 고개 숙여 절하고 여러 조상님들에게 올 한해 무사하게 잘 지낼 수 있게 살펴주시라고 드리는 기원이 전부이다.

 

새해맞이로서의 본질적 행사인 祭祀(제사)는 남았으되, 다양하고 풍부한 주변 디테일들은 이미 사라져버린 설이다.

 

명절이나 축제는 그 본질보다도 주변 행사들, 풍성한 음식과 놀이, 이런 것들 때문에 즐겁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의 설은 이제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그저 ‘명절’이다. 한때 즐거웠던 설의 자취를 기억하는 나에게 있어 오늘의 설은 외려 울적함만 안겨준다.

 

이에 나는 ‘에이 씨-’ 하며 설날을 맞는다. 작업실에서 나는 모처럼 시가(cigar)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인다. 최대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면서 코로 그 냄새를 즐기려 한다.

 

울적한 기분을 그럭저럭 달래주는 이 기막힌 향이여! 하지만 향이 좋다고 울적함이 채 가시지는 않는다. 일어나 서가로 다가가서 건전한 음담패설 모음집인 古今笑叢(고금소총)과 수상한 귀신 이야기들로 가득한 ‘요제지이’를 가져와 책갈피를 이리저리 넘겨본다.

 

그래도 여전히 울적함이 가시질 않는다. 저쪽 방으로 가서 수묵으로 화선지에 허튼 장난이나 쳐볼 생각이다. 붓에 진한 먹을 묻히고 거기에 내 울적함을 잔뜩 더해서 거칠게 토해보고자 한다. 잘 그려본 들 鬱寂山水(울적산수)가 될 것이니 그게 참 그렇다.

 

그래도 여러분 설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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