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 모멘텀
2011.1.27 호호당의 김태규님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에 대한 신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현 처지가 ‘스푸트니크 모멘텀’이라 규정하면서 전 미국 시민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스푸트니크 건은 1950 년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강 대립 구도에 있어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기에 오늘의 주제로 삼았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거대한 로케트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대기권 밖으로 발사하면 불과 30 분 정도의 시간에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면서 대륙 저편의 상대국 주요 도시나 시설을 초토화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국가의 사활을 건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를 대륙간 탄도미사일, 즉 ICBM 이라 한다.)
미국은 자기들이 소련보다 이 방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소련이 1957 년 10월에 로케트에 인공위성을 붙여서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던 것이 바로 ‘스푸트니크 쇼크’였다.
충격 받고 열 받은 미국은 즉각 우주항공사업을 총괄할 기구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NASA 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였다.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것은 말이 우주개발이지 실은 소련의 핵미사일이 바로 미국 대도시들을 겨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서 당시 미국으로선 대단한 충격이었다.
힘의 균형이 일거에 소련 쪽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그래서 ‘스푸트니크’란 말 뒤에 ‘쇼크’ 내지는 ‘크라이시스’를 붙여 표현했던 것이다. 미국 역시 부랴부랴 석달 뒤인 1958 년 초에 위성 로케트를 쏘아 올렸지만 소련은 여전히 이 방면에서 앞서 갔다.
1961 년 4월 12일 소련은 ‘유리 가가린’이라는 우주 비행사를 실은 우주선, 즉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면서, 가가린은 우주를 여행하고 보고 돌아온 최초의 우주인이 되어 엄청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는 소련이 영도하는 위대한 ‘과학적 사회주의’가 착취 구조의 자본주의를 타파함에 있어 성취해 낸 커다란 진보로서 받아들여졌다. 1961 년 아마도 이때야말로 소련 그리고 공산주의 이념이 가장 득의양양하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또 다시 황급히 한 달 뒤인 5월 5일에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긴 했으나 기선을 소련이 잡고 있다는 면에서 ‘자유 자본주의 진영’이 가장 암울해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소련의 연이은 凱歌(개가)는 전 세계 이념 투쟁에 있어서도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잔재는 심지어 2011 년 대한민국 내부에서도 여전히 적지 않는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흔히 민족해방 또는 National Liberation 줄여서 NL 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념체계가 세계적인 물살을 타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미소간의 우주선 로케트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이론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소련의 스푸트니크 사건을 통해 급거 힘을 얻어, 1960년 12월에 81개 공산진영의 나라들이 공동으로 '민족민주주의 혁명론'을 제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우리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이 흐름에 동조하는 흐름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오늘날 이른바 ‘주사파’의 원조이다.
소련이 로케트 경쟁에서 앞선다는 것은 결국 가장 중요한 테크놀로지 경쟁에서도 자본주의 진영을 앞서간다는 전반적이고도 명백한 징후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에 당시 전 세계 지식인들 상당수가 멀지 않은 장래에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소련이 영도하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그러나 실로 묘하지 않은가! 소련에게 있어 가가린의 유인 우주선이 성공하면서 가장 득의하던 때가 1961 년이고, 그로부터 정확하게 30 년 뒤인 1991 년에 소련은 붕괴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실로 기막힌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 블로그를 통해 내가 자주 인용하는 ‘시간의 논리’가 있으니 60 년 주기의 절반인 30 년이 지나면 사물의 흐름이 정반대로 간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1961 년 소련과 사회주의 진영이 가장 득의의 순간을 맞았다면 그로부터 30 년이 지난 1991 년에 가서 소련의 붕괴와 함께 스탈린식 사회주의에서 파생된 사회주의 좌파이론은 사실상 파국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아주 커다랗고 정교한 시계가 존재한다. 나 호호당은 그 커다란 시계의 바늘을 보는 사람인 셈이고.
그 시계에 따르면 소련의 운세는 1958 戊戌(무술)년에 氣(기)의 頂點(정점)을 맞이했고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1960 년 무렵 이른바 움직임이 가장 활달한 때를 맞이했던 것이다.그리고 그것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의 유인 우주선 이벤트였던 것이다.
1961 년 가가린의 최초 우주비행은 그러니까 30 년 뒤 1991 년 소련의 붕괴와 정확하게 對蹠點(대척점)에 놓인 일이라 하겠다.
1961 년 당시 자유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격인 미국은 반대로 무척이나 곤란한 경지로 내몰렸다. 미국으로선 가장 바닥의 지경에 처한 위기국면이었다. 그러나 미국에는 영웅이 등장했으니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그는 1961 년 소련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절에 미국의 지도자로서 등장하면서 ‘새로운 변경’, 뉴 프런티어 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면서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이 무렵 소련은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까지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케네디는 소련의 공세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섰으니 바로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두 강대국 간의 위기는 1962 년 10월 소련이 물러서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이에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가진 총체적 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며 반면 미국은 바닥이었지만 소련과의 기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 간 힘의 우위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20 세기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왜 소련은 힘의 절정에서 물러났으며 미국은 어떻게 해서 바닥 국면에서도 소련에 맞서 결국 이길 수 있었던 것일까? 사물을 궁극적인 경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으리라.
따라서 나 역시 음양오행이라는 틀, 과학이 종교가 된 현대 사회에서는 아주 요상하고도 해괴한 틀로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이 소련을 누르고 이길 수 있었던 까닭? 아주 간단하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힘이 소련의 힘을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음양오행으로 한 번 보기로 하자. 그것은 두 나라 국운의 주기에서 알 수 있다. 소련은 1928년에 일어나 1958년에 정점에 달하고 1988년에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운세를 가졌다. 지금은 러시아가 되었고.
미국의 60 년 주기는 1903년부터 일어나 1933년에 정점, 1963년에 바닥에서 다시 일어나는 운세를 가졌다. 스푸트니트 우주선은 1958 년, 가가린의 유인우주선 이벤트는 1961 년이었으니 소련으로선 힘이 가장 강성할 때의 일이었다.
반면 미국으로선 1963년이 바닥이니 그 무렵 미국은 만사가 어려운 경지였다. 당시 세계정세와 그 흐름에 대해 나름 식견을 지닌 지식인들이 소련이 이기고 있다는 사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지식인들은 돈을 만지는 投資家(투자가), 달리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투기꾼이 될 수 없는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투기꾼은 사물의 裏面(이면)을 보는 사람이지 겉모습만으로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닥에 처한 미국이 최절정의 소련에 대해 약간 뒤지는 형국이었으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미국의 승리로 귀결이 날 수밖에 없는 게임이 동서간의 냉전이었던 것이다.
결국 소련은 1958 년으로부터 10 년 뒤 ‘모습의 절정’인 1968 년에 가서 자체 내부 진영을 단속하기 위해 체코의 프라하 시가지를 탱크로 진압해야 했으니 그것은 강대함이 아니라 허약함의 노출이었다.
미국은 승산이 없는 베트남 전쟁에서 체면 상하면서도 손을 털고 나왔고 그것으로 내부 체력을 키울 수가 있었지만, 소련은 운세가 한창 기울던 1979 년 말 아프가니스탄으로 군대를 들이밀면서 그나마 고갈된 국력을 소진하면서 결국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스푸트니크 사건을 들먹이며 나온 것은 지금의 미국을 그때와 유사하다고 본 것이고 이로서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을 건설해보자는 취지라 하겠다.
미국의 운세는 1963 년에 바닥이었고 1993 년에 정점, 그러니 2003 년에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마치 소련이 체코를 무력 진압한 것과 같은 사건이라 하겠으며 이로서 힘을 크게 잃고 말았으며 그것이 다시 불씨가 되어 서브 프라임 그리고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졌다.
미국은 2023 년이 바닥이니 계속 내리막 길, 그리고 지금은 과거 스푸트니크 쇼크와 비슷한 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다시 미국이 예의 그 강력한 탄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는 바닥 10 년 전인 2013 년쯤에 어떤 개혁을 단행하느냐에 달려있다.
어쩌면 오바마가 연임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초석을 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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