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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사장님은 내 존경하는 스승이니 : 시간을 통해 하나하나 배우고 또 구현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1. 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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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사장님은 내 존경하는 스승이니

2011.1.16 호호당의 김태규님

 

 

 

 

어제 밤은 추위로 해서 강아지 산책은 포기하고 동네 고양이들 밥만 주었다. 모처럼 모자까지 썼지만 귀가 시릴 정도의 야무진 추위였다. (온난화는 어디 가고 이건 무슨 추위냐고요!)

 

매일 밤 아들과 함께 수행하는 고양이 보급 작전은 2 개의 페트병에 담긴 온수와 고양이 통조림 두 개, 사료 3 킬로그램을 산으로 가는 길목의 중간 정자와 꽁꽁 얼어있는 약수터, 동네의 철거된 폐가 등 다섯 군데의 지정된 장소에 나누어주는 일이다. (이제 동네 사람들도 우리 부자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동네의 수십 마리 길고양이들, 그리고 까치들은 윤기가 반질거리고 통통하니 이 모두 철저한 보급 작전의 결과이다. 경사진 길을 오를 때 시린 귀를 손으로 매만지며 하늘을 보니 창백한 달이 거의 얼어 죽기 직전이었다. (오늘 밤 달이 과연 뜰라나?)

 

보급 작전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더니 강아지들 입이 잔뜩 부어있었다. ‘아빠, 애정이 식었나요’ 하는 눈빛에 ‘야 이 개시키들, 추위가 지금 장난인 줄 아니?’ 하고 항변해 보지만, 저들이 한국말을 완벽히 알아듣지는 못하는지라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어린 저 강아지 백성들이 우리말을 알지 못하니 내 이를 ‘여엿비 너겨’ 내 이제라도 강아지 전용 문자라도 만들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자기 전에 어머니에게 ‘내일은 우리 중국집에 가서 엄마 좋아하는 요리를 먹자’고 권했더니 좋은 표정 완연하셨다. (이 아들 효도 때립니다! 하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날이 밝아 일요일, 오전 11시 40 분 쯤 나갈 준비하자고 했더니 말귀를 또 잘못 알아들은 강아지들이 또 다시 흥분 모드로 돌입했다.

 

찔리는 마음 뒤로 하고 구반포의 중국집 ‘왕금성’이란 곳을 찾았다. 난 왜 이렇게 늘 찔리는 마음이여야 하지? 생각하니 약간 억울함도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 오늘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 아파트 단지에 있는 오늘 들렀던 중국 식당이 오늘의 주제이다. 유싼슬과 탕수육, 깐소새우를 작은 걸로 시키고 나중에 자장면과 굴짬뽕을 시켜서 먹었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주문한 중국 요리에 대해 그 의미를 잠깐 소개하겠다. 유싼슬이란 한자로 溜(유)와 三(삼), 絲(사), 兒(아)로 되어있다. 溜(유)란 녹말물을 끼얹어 걸죽하게 만든다는 뜻, 三(삼)은 주 재료가 세 가지란 뜻으로 주로 죽순과 해삼, 버섯을 말한다, 紗(사)는 재료를 실처럼 길게 채를 썬다는 뜻, 兒(아)는 복수형의 어미이다. 세 가지 재료를 길게 실처럼 채를 쳐서 녹말물을 얹어 만든 음식이 유싼슬이다.

 

탕수육은 모두 잘 아는 음식, 한자로 설탕의 糖(당)과 식초의 醋(초), 고기 肉(육), 고기를 밀가루를 입혀 튀긴 후 달콤새콤한 소스를 얹은 음식이다. 오리지널 중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변형된 스타일이다.

 

깐소새우의 깐소는 乾(건)과 燒(소)이다. 중국 음식에서 乾(건)이 들어가면 국물이 없이 마른 음식이란 뜻, 간자장의 간도 마른 자장이란 뜻이다. 燒(소)는 불에 튀겨낸다는 뜻이다.

 

깐풍새우도 있고 깐풍기도 있는데 燒(소) 대신에 ‘풍’이 들어가 있다. 풍이란 한자로 삶을 烹(팽)인데 중국 발음이 펑, 우리 식으로 변형되어 풍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깐풍’이란 말이 붙으면 마늘 소스를 얹었다고 생각하면 무방하다.

 

이제부터 진짜 오늘의 주제가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뒤늦게 끄집어내는 방식은 정말이지 나쁜 방식이다. 한참 주변을 에두른 다음에야 얘기를 꺼내는 이런 방식, 나 같으면 참지 못하고 뭔데 요지가? 하고 대뜸 성화를 부릴 것이다.)

 

이 ‘왕금성’의 사장님은 정말 대단한 사업가이다. 80 년대 중반, 서초구 구 반포 아파트 단지의 차로 변에서 배달 전문의 짝퉁 중국집으로 시작했다. 중국집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뒤 젊은 나이로 자신의 가게를 차렸던 것이다.

 

나는 중국 요리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 먹어보면 예전에는 주방장이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대뜸 구분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중국집을 가면 그 집이 정통 중국요리 집인지 한국형 중국집인지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만 해도 중국 음식 맛을 안다고 자부하던 나로서는 이 ‘왕금성’을 비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로 맛이 좋아져갔다. 입맛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날이 맛이 좋아졌다.

 

그리고 젊은 사장님이 여간 친절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가자 옆 가게까지 확장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요리가 고급스럽게 변했고, 사장님도 깔끔하고 하얀 블라우스 셔츠에 타이를 매기 시작했고, 종업원들도 빨간 차이나 풍의 제복을 입기 시작했다.

 

또 비웃었다, 저 양반이 제법 정통 중국 요리집 흉내를 내는구나, 하지만 어디 봅시다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왕금성은 더욱 번창했다. 슬슬 내 발걸음이 빈번해져갔다, 탐문도 할 겸해서 말이다. 왕금성은 드디어 이층까지 확장을 했고 더욱 번창했다.

 

어느 날 나는 마침내 그 왕금성의 사장님이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짝퉁 배달 전문으로 시작해서 옆으로 그리고 이층으로 확장하면서 발전해갔기에 인정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사장님의 사업을 임하는 자세에 그만 인정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중국집 주방의 견습으로 시작했으니 오죽 하랴 싶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양반은 중국 식당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업을 잘 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는가를 부단히 연구해왔던 것이다.

 

번창하는 식당의 주인이었지만, 그 양반은 언제나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고 손님들의 동태를 미소어린 표정 밑으로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종업원 이상으로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쭈, 제법이네 헝그리 정신 투철하네’ 하고 여전히 비아냥조로 바라보았다.

 

내 기억에 왕금성은 1988 년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2000 년이 되어도 그 양반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고 가게는 일로 번창했다.

2003 년 무렵의 어느 날 밤 11 시가 넘었을 무렵 동네 수퍼에 들렀더니 거기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늦은 식사를 하시네’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겨를이 없으니’ 하며 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나는 그 사장님을 슬슬 인정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존경의 마음까지 일었다. 왕금성은 잘 안 되면 그게 도리어 이상할 정도의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 분명한 데도 사장님은 카운터를 지키면서 전체 상황을 관장하고 있었다. 재료는 늘 신선한 재료를 썼고, 손님이 음식을 먹다가 도중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바로 주방에 들어가서 그 음식을 직접 확인했다.

 

기계적으로 짓는 미소였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언젠가 나이 지긋한 손님이 이 집 김치가 맛이 있어 하고 칭찬을 하니 기회를 놓칠 새라 제가 직접 담그는 김치입지요, 절대 사오는 김치가 아닙니다 하고 가게 홍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간자장을 시켜 먹고 있던 나는 속으로 ‘캬, 아부도 잘하고 기회를 놓치는 법도 없구나’ 하고 탄복을 했다.

 

왕금성의 사장님은 좋은 식당이 가져야 할 모든 요소를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부단히 하나하나 배우고 또 구현해가고 있었다.

 

종업원 관리, 매장 관리, 맛의 관리, 재료의 관리, 주방 관리, 어느 하나도 소홀한 법이 없었다. 벌써 20 년이 넘은 집이고 그간 성업해왔으니 돈도 엄청 벌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왕금성 사장님은 오늘 일요일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카운터를 지키면서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직접 주문을 받고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누군가에게 맡기고 이런저런 다른 놀이에 빠져들 법도 하건만 사장님은 오늘도 언제나처럼 자신의 ‘現場(현장)’을 지키고 있다. 보나마나 퇴근도 가장 늦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몸매도 여전히 날씬하고 동작도 빠르다.

 

분점이나 체인점을 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열심히 변함없는 열정과 의욕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왕금성 사장님이다.

 

나는 이 왕금성 사장님과 그러니 무척이나 오랜 세월 동안 일종의 게임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짝퉁 중국집이 슬슬 번창해가길래 비웃으면서 시작된 게임이었다. 얼마나 가는지를 의심하면서 시작된 게임이었다.

 

이십 년이 넘게 흘렀고 왕금성은 번창 일로를 걸어왔다. 그 사이에 나의 운세도 내리막을 걸었고 바닥을 쳤으며 이제 다시 힘겹게 오르고 있다. 운이 오름세라는 것은 그간 내가 뭔가를 배운 것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많은 것을 깨우치고 배웠던 것이 사실이고, 그 배움 중에는 바로 이 왕금성 사장님의 경영하는 모습도 포함이 된다.

 

내 머리 속에는 수천권의 책이 족히 들어가 있다. 철학과 역사, 기타 다방면의 지식으로 가득하고 영어와 중국어에 제법 능하고 독일어도 책은 그런대로 읽을 정도의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 자부하기에 그리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내 자랑을 하는 것은 그런 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애기하고자 함이다. 나는 운명의 바닥을 지나오면서 더 본질적으로 배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왕금성 사장님과 같은 분의 자세였다.

 

중국집, 흔히들 ‘짱께’라고 비하조로 말하는 중국집의 주인 또는 사장님, 학력도 뻔하고 고생도 지지리 했을 그 사장님이 20 년이 넘도록 발전하면서 보여준 그 자세에서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君子(군자)는 終日乾乾(종일건건)하고 自强不息(자강불식)이라!

 

군자는 종일토록 부지런하면서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쉬임없이 노력한다더니 왕금성의 주인이 바로 그런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왕금성 사장님과의 오랜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통쾌하고도 유쾌한 패배였다. 이에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여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린다.

 

그간 당신은 진정한 군자였고 사업가였다면 나야말로 쓸 데 없이 부질없이 아는 것만 많은 輕薄(경박)한 사람이었음을 실토한다.

 

많이 배웠다고 허구한 날 사회 체제를 논하고 시스템을 떠들어대는 이른바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내 눈에는 한갓된 무리로 보이는 것도 다 까닭이 있음이다. 이는 근거 없는 내 질투가 아니요, 그간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 진짜인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 운세도 오름길로 서서히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겨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日新(일신)하고 또 日新(일신)해야 할지니, 나도 그렇게 노력할 것이고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나날이 새롭게 발전해가기를 기원해본다. 가게를 나서면서 정말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왕금성 사장님은 고맙게 내 인사를 받았다.

 

존경합니다, 스승님! (참고로 이처럼 주제가 뒤에 나오는 방식의 글쓰기는 방대한 이야기 책인 ‘아라비언 나이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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