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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運(국운)과 G 20 서울 정상회담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11. 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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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運(국운)과 G 20 서울 정상회담

2010.11.12 호호당의 김태규님

 

 

오늘은 이번 G 20 서울 정상회담이 우리 국운 상에서 지니는 意義(의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신문이나 방송을 듣다보면 이번 회담에 대해 환율전쟁을 종식할 합의가 나오느냐 또 무역흑자의 가이드라인이 도출되느냐 등의 문제를 놓고 성패를 확인하고 또 거기에 따라 의미를 두는 論調(논조)가 主(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중요한 사안들이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큰 눈에서 보면 枝葉(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G 20 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해도 85 % 에 달한다. 그러니 사실상 G 20 자체가 세계 전체를 대변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에 우리는 의장국으로서 전 세계를 서울로 불러들인 셈이니 이미 그 자체로서 엄청난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다 하겠다.

 

覇者(패자)라는 단어를 익히 아실 것이다. 覇者(패자)란 여러 제후(諸侯)를 불러 모아 그 회맹(會盟)의 맹주가 된 자를 말한다. 이에 춘추오패 (春秋五覇)란 중국 춘추시대에 있었던 5명의 패자(覇者)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패자는 미국이지만, 그렇다고 늘 워싱턴으로 각국 정상들을 소집하자니 ‘야, 아그들 불러 모아라’ 식의 눈꼴사나운 일이 될 것이다. 이에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정해서 그 나라에서 주최하는 것이 오늘날 보다 세련된 외교 방식이다.

 

그러나 의장국이 되는 것만 해도 일종의 세미 覇者(패자)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니 역시 적지 않은 의의가 있다. 이번 회담은 사실상 최초의 G 20 정상회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면 이전에 G 20 회담은 미국에서 두 번, 영국과 캐나다에서 각 한 번씩 있었으니 모두 G 7 에 속하는 국가들이 주최했다. 그러나 이번 서울 정상회담은 G 7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최초의 G 20 정상회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음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처럼 지구촌의 패자는 아니라 해도 準(준)패자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길고 긴 역사를 통틀어 최초인 것이니 정말이지 대한민국 출세해도 심하게 출세했고 커도 너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예전의 우리가 그런대로 힘이 있는 나라였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나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조선 말 1907 년에 李儁(이준) 열사는 고종황제로부터 친서와 신임장을 가지고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임을 널리 알리려고 했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는 오늘날의 G 20 정상회담과 유사한 성격의 회담이었는데, 우리 조선은 나라로서의 취급도 받지 못했다. 옵서버 자격도 얻지 못하고 회의장 밖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준 열사는 그만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飮毒自殺(음독자살)을 택했다. 103 년 전의 일이다.

 

또 1950 庚寅(경인)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60 년 한 甲子(갑자) 전만 해도 우리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였다.

 

1960 년대 초반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장충체육관을 누가 지어 주었는지 아시는가?

 

장충 체육관은 실내 체육관으로서 돔 형식의 건물이다. 당시 우리는 그런 첨단 건물을 지어낼 기술도 돈도 없었다. 장충체육관은 1963 년 당시 오늘날 우리가 업신여기는 필리핀의 100 % 원조와 기술로 지어졌다.

 

우리는 당시 그런 ‘찌질’한 나라였다.

 

1964 년 그런 허허벌판에서 무일푼이던 우리는 제3 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힘차고도 억세게 도전해갔고 그 결과 불과 半世紀(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세월에 오늘날 전 세계 각국과 주요 기구의 정상들을 서울로 불러들였으니 게다가 G 7을 제외한 최초의 의장국이 되었으니 이 어찌 감격스럽다 하지 않으랴!

 

우리 겨레 반만년 역사를 다해서 이처럼 위대한 躍進(약진)의 시대가 있었던가!

 

제3공화국과 함께 시작된 우리의 거세고도 당찬 도전은 1976 丙辰(병진)년에 이르러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 즉 씨뿌리는 일로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절대 다수의 지식인들이 무리한 투자라고 비판하기 바빴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로부터 10 년이 지난 1986 丙寅(병인)년 우리의 수출산업이 아침 해와 같이 찬연히 떠오르면서 결실을 보기 시작했지 않았던가. 1988 년 올림픽 개최는 우리가 성공하기 시작했다는 최초의 신호탄이었고 말이다.

 

내가 평소에 잘 얘기하는 12 년 간격으로 세상을 보는 법에 따르면 1986 丙寅(병인)년으로부터 12 년이 지난 1998 戊寅(무인)년에 이으러 드디어 복지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2 년이 지난 올해 庚寅(경인)년, 24 년 만에 그 위대하고도 놀라운 결실의 한 證票(증표)로서 G 20 서울정상회담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1976 년에 뿌린 씨앗은 30 년이 지난 2006 년으로서 秋收(추수)를 했고 지금 우리는 그 결실의 바탕 위에 풍요를 누리고 있다.

 

양극화 역시 문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국민이 지난 세월에 비하면 절대적이고도 압도적인 豊饒(풍요)를 누리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누가 뭐라 해도 대성공한 것이고 벼락출세를 했다는 점에 대해 異議(이의)를 제기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반쪽 북한은 이제라도 국민을 위해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야 정상일 것이다. 일부의 권력 유지를 위해 처절하고도 참담한 실패를 언제까지 끌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대로 줄곧 성공가도를 달려갈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誤算(오산)이고 錯覺(착각)이다.

 

세계경제는 미국이 양적완화를 하든 중국이 위엔화를 올리든 아니면 굳히든 관계없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내부의 거품 문제를 해소하지 않을 수가 없고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역시 未久(미구)에 상당한 한계에 봉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내년 辛卯(신묘)년부터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G 20 서울정상회담은 물론 최근 개최되고 있는 고려불화대전, 세계 불꽃 축제, 오세훈 시장이 가꾸어놓은 아름다운 서울의 거리 등등 많은 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국운 60 년 주기 상에서 ‘10월의 마지막 밤’과도 같은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풍성한 축제의 밤’이자 다가오는 ‘겨울의 예감’으로 슬픈 한때이기도 하다.

 

‘좋은 계절에 다시 만나요’ 라는 노랫말처럼 물론 우리는 훗날 다시 약동의 세월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당장의 悲感(비감)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G 20 서울정상회담은 풍성한 가을걷이를 마친 우리들이 갖는 또 한 번의 성대한 행사라 하겠다. 이에 우리가 성공했다는 것, 그것도 엄청나게 성공했다는 것을 이번 회담을 지켜보면서 확인한다.

 

그리고 어느덧 저기 겨울의 그림자가 서성대고 있는 것이 눈에 든다.

 

지난 밤 산책길에 올랐더니 흩뿌리는 비에 바람도 제법 불었다. 산책로 등불 아래 낙엽이 빛을 받으며 분분히 지고 있었다. 겁먹은 우리 강아지들이 내 얼굴을 보곤 했다. 괜찮아 하고 표정을 지으면서 보니 가로등 주변의 밝은 공간이 꼭 다른 세상만 같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2010 년 경인년은 두고두고 오래도록 추억될 한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 절정은 언제나 지난 뒤에 알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이 순간에 미리 알고 있다니 이 기분 몹시도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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