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시차’라는 것과 재고효과
이번 공황의 진행경과를 지켜보면서 자꾸 되뇌이게 되는 두 단어가 ‘신용’과 ‘시차’입니다. 얼핏 이 두 단어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원리를 설명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시차는 우선 자연계에서 나타납니다. 동지는 작년 12월 22일이었습니다. 이날이 밤이 가장 긴 날이니 이 날 이후로는 낮이 점점 길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12월 22일이 가장 추운 날이고 그 이후로는 따뜻해져야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기온은 그 뒤로 더 추워지지요.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제 곧 봄이 온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어렵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객관적인 계산을 통해 남들보다 먼저 이 부분을 확신할 수 있었던 사제계급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상당히 춥더니 이번주는 깜짝 놀랄만큼 따뜻한 봄날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언제 추웠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작년 12월 22일 이후 태양이 비치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시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재고효과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재고효과란, 최종적인 소비의 변동폭보다 더욱 큰 변동폭이 산업생산에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런 현상은 기업들의 재고조절 때문에 생겨납니다. 고객의 주문 -> 생산에 걸리는 시차를 극복하려는 기업들의 노력 때문에 재고효과가 생겨납니다.
그 동안 진행돼온 에코버블의 전개과정에서 실물경제가 개선되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이는 재고효과 때문이었습니다. 시차 -> 재고가 부린 변덕은 금융 관련 지표를 넘어 실물경제지표가 좋아지는 모습까지 연출해냄으로써 에코버블의 규모를 키우고 눈먼 돈들을 유혹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저는 사실 작년 3분기까지 해서 재고효과가 끝날 것으로 짐작하기도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재고효과가 힘이 셌고, 10월,11월 두 달 동안 미국의 기업재고를 실제로 증가시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월의 미국 기업재고는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한달의 통계만 가지고 확신할 수 없지만, 재고/판매 비율까지 종합해서 살펴보면 재고효과는 이미 종료되었거나 최소한 종료될 시점이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이 재고효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살펴보기로 하고, 최소한 재고효과가 종료될 시점이 아주 가까워졌기 때문에 이제 조만간 실물경제가 악화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ㅇ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는 원래 재고효과와 관련하여 거론되는 단어입니다.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 지점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파장이 커지는 것처럼 부정적인 효과가 확산되어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재고효과에서, 최종적인 소비의 감소가 미치는 영향이 완제품 -> 중간재 -> 원자재, 로 갈수록 더욱 큰 변동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잔물결 효과로 설명합니다.
이 잔물결 효과라는 단어가 작년 11월말 두바이의 모라토리엄 선언 사태 이후 언론에서 꽤 거론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사용은 적절하다 싶습니다. 왜냐 하면 시차가 미치는 영향은 국제 분업구조(무역)에도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래의 초기 글을 통해서
미국 때문에 전 세계가 흔들리는 이유 - 세계 경제의 구조
미국 소비의 침체가 세계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1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드렸습니다. 작년 말 이후 세계 경제위기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경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 전까지는 ‘미국경제의 어려움’이 강조되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미국이 아닌 여타 국가들의 어려움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결국 두바이 사태, 그리스 사태 등 세계 각국 경제의 어려움이 지금 시점에 부각되는 이유도, 1년의 시차가 그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동지가 지나고 입춘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더 추워지고 있다, 과연 봄이 올까, 가 의문이라면, 봄이 오게 만드는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잔물결 효과는 고요했던 수면에 큰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 지점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파장이 커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애초에 파문을 일으킨 근본원인, 물방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근본원인은 달러화의 신용경색입니다. 달러화는 기축통화이므로 국제 경제의 유동성입니다. 그런데 지금 달러화는 신용경색으로 유동성이 수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 30년간 경상적자를 통해 세계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해왔습니다. 전세계 동시버블을 일으킨 근원이 바로 이 달러화 유동성 공급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이제 우리 경제도 어려우니 세계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나왔습니다.
달러화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면 두바이, 그리스가 아니더라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문제가 터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이 신용을 다 써버린 상태라는 점 때문에 효과가 증폭되어 나타납니다. 수면이 아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부적절한 비유이긴 합니다)이기 때문에 물방울이 떨어지기만 하면 잔물결 효과가 아주 쉽게 증폭되어 나타난다고나 할까요?
세계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에, 그리스에서도 높은 경제 성장을 보였는데, 모두 부동산버블에 따른 건설경기와 과소비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난 글,
에서 다시 보여드렸던 ‘빚더미에 올라앉은 경제’의 모습은 미국만이 아니라 그리스를 포함하여 세계 모든 나라가 동일한 상황입니다. (이 그래프 관련하여 최근 수치를 질문하신 분이 계셨는데, 현재 수치는 370%를 넘고 있습니다.)
결국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신용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뉴욕마감]"소비심리충격" 다우급락, 달러강세 머니투데이 이날
그저께 미국 주식시장은 소비심리지수의 급락이 그대로 주식시장의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美 1월 신규주택 매매, 사상 최소(상보) 머니투데이 미국의 1월 신규주택 매매가 예상 밖의 감소세를 기록하며 사상 최소 수준으로 추락했다. 상무부의 24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신규주택 매매는 전월의 연률 34만8000채(수정치)에서 30만9000채로 11% 감소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 조사한 참가한 애널리스트들은 1월 신규주택 매매가 연률 35만3000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어제 미국에서 나온 발표를 보면 신규주택판매가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저는 앞서 일련의 글을 통해 미국 경제가 물방울 고문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위의 두 기사를 보면 물방울 고문 상황이 쉼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마감]"버냉키 효과" 미증시 1% 상승 머니투데이
어제 미국 주식시장은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호재라고 해석하며 상승했군요. 그런데 기사의 내용을 읽어보면, 버냉키의 말들이 과연 호재인지는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기사의 중간 제목을
버냉키 의장 "경제는 저금리를 여전히 요구"
라고 뽑아놓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미국경제는 여전히 저금리를 요구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게 주식시장에 호재일까요?
ㅇ 양적완화는 양적완화다
저는 그동안 줄곧 기준금리의 인상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없어도 경제가 붕괴할 정도로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양’적완화입니다. 질적 완화가 아닙니다. 기준금리가 본질이 아닌데, 모두가 ‘기준금리’ 언급에 속고 있습니다. 마치 기준금리 인상만 없으면 출구전략이 아닌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로부터 철수하는 출구전략은 이미 착착 진행중에 있습니다. 출구전략을 진행해서는 안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황의 진행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이 비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갈 수밖에 없지요. 버냉키 의장이 무어라 말하던, 시장이 보이는 단기적 변덕이 어떻게 반응하던 갈길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재고효과의 종료로 ‘단기적’ 변덕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 조차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나타났던 에코버블도 이미 반환점을 완전히 돌았다고 봅니다.
미국 달러화의 신용경색이라는 물방울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켜 퍼져나가기 시작한 잔물결은 두바이를 집어삼켰고, 그리스를 집어삼켰고, 우리나라 송도신도시까지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중국과 일본까지도 집어삼킬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구체적으로 잔물결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살펴보는 것은 다음 글로 미루겠습니다.)
< 주목할 만한 언론기사 – 미국의 경제지표 2010.02.26 >
어제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가 주목할 만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뉴욕마감]"경제지표 잇딴 실격" 3대지수 하락 머니투데이
...... 미 노동부는 이날 지난주(20일 마감 기준)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2만2000건 증가해 49만6000건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이전 발표치는 47만3000건이었다. 올해 들어 전문가 기대와 반대로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들어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약 6만건 늘었다. (그동안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실업 증가와 주택모기지 시장 상황이 서로 악순환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전 글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이는 고용시장 회복이 먼 미래의 일임을 상기시키며 미증시에 그대로 직격탄을 안겨줬다. 이날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비롯해 함께 발표된 지수도 시장에 호의적이지는 못했다.
지난달 내구재 주문 증가율은 예상치 1.5%보다 높은 3.0%를 기록했지만 보잉 등에 대한 상업적 항공기 주문이 증가한 탓에 의미가 반감됐다. 이날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비롯해 함께 발표된 지수도 시장에 호의적이지는 못했다.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주문은 지난 1월 2.2% 감소했다. 기계류에 대한 주문은 9.7% 하락했다. 그리고 미국의 지난 12월 주택가격 지수는 1.6% 감소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 0.4% 상승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재고효과는 내구재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콩나물이나 두부 등은 재고량이 많을 수 없지요. 특히 자동차와 부품이 전체 재고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재고효과가 이미 끝났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택가격 지수는, 미국 주택시장이 이미 바닥을 쳤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엉터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심연에서 지속되고 있는 흐름을 보시는 것이 오판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은 일이 바빠서 글이 상당히 뜸했습니다. 이제 좀 한숨 돌리게 돼서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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