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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독립전쟁 (전편)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1. 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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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러시아였던 우크라이나였는데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꽤나 복잡다단하다. 여러 민족과 세력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1764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당한 뒤로는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라고 하는 명칭 자체가 “변경에 있는 땅”이란 뜻이다. 즉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 우크라이나는 중앙인 모스크바에서 볼 때 그냥 변두리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적지 않았던 탓에 우크라이나는 좋게 말해서 “작은 러시아” 정도로 여겨졌다.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제국의 붕괴로 인해 생겨났다. 독립했어도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던 탓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갔다. 일례로 1994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믿고 종전에 배치되었던 핵무기를 모두 포기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진 푸틴이 핵으로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 되었으니 세상일 모르는 법이다.)

 

풍요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의 마음이라서

 

그랬던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연합(EU) 때문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한 때 소련의 변방을 지키던 동구권 나라들, 대표적으로 폴란드와 체코 등 무려 10개 이상의 나라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이래 나날이 번영과 발전을 거듭하는 것을 지켜본 우크라이나의 신세대 젊은 층들은 마음이 유럽연합 쪽으로 기울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일대 분열과 갈등이 생겨났다. 친러 아니면 친유럽연합.

 

물론 러시아 또한 이런 변화를 그냥 지켜보고 있진 않았다.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 세력들을 지원하고 또 공작도 해가면서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불온(?)한 움직임을 차단하고자 했다.

 

그런 갈등 속에서 결국 2004년 “오렌지 혁명”이 발생했다. 러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연합 쪽으로 가보자는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다시 더 강력하게 대응을 했고 이에 다시 불거진 사건이 10년 뒤인 2014년의 “유로마이단 사태”였으며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분쟁 상태에 들어갔다.

 

러시아로선 인구나 자원 등등 모든 면에서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영향권 밖으로 떨어져나가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 성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신세대들은 유럽연합(EU)이 가져다 줄 풍요에 마음이 쏠렸다. 두 나라가 이제 딴 마음이 된 셈이다.

 

평소에도 푸틴은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재임 중에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와 합쳐서 과거 소련 또는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굳건한 발판을 만들어 놓겠다고 호언을 하곤 했다.

 

행동을 개시한 푸틴

 

푸틴은 2014년 3월 러시아 사람이 많은 남부의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이른바 돈바스 지역에서부터 손을 댔다.

 

우선 크림 반도 주민들로 하여금 독립을 선언토록 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와 합병했다. 돈바스 지역의 경우 반정부 무장투쟁을 일으켰으니 바로 “돈바스 전쟁”이다. 이때 활약한 무장단체가 바로 푸틴의 私兵(사병)인 바그너 그룹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상황은 러시아를 배후에 둔 우크라이나 내부의 반정부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의 국지적 분쟁에 불과했다. 그런데 판이 커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으니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러 전쟁은 결국 그 뿌리가 유로마이단 사태였다. 2004년 유로마이단과 이번 우-러 전쟁은 18년의 시차가 있으니 그렇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에 있어 18년이란 기간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변화가 구체화되는 시점인 까닭이다.

 

(이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물론 마찬가지, 가령 당신이 18년 전에 큰 좌절을 겪었다면 지금쯤 당신은 그 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알면 된다.)

 

우-러 전쟁의 원인? 따지고 들면 많겠으나 결국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마음이 러시아 쪽에서 서유럽 또는 유럽연합 쪽으로 크게 돌아섰기 때문이라 하겠다.

 

모두를 망설이게 만든 우크라이나

 

당초 푸틴의 전략은 우크라이나의 내부 분열을 이용해서 야금야금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부터 먹어 들어가는 가운데 전체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려던 것이었는데 차질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대응책으로 유럽연합 가입은 물론이고 군사 방위 동맹인 나토(NATO)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에도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방위동맹체인 나토에 동구권 국가들을 잔뜩 가입시킨 상태였다. 폴란드를 위시해서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까지 대거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전략적 입장은 극도로 위축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쩌면 최후의 보루라고도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들어갈 경우 러시아의 위상은 그야말로 형편없이 위축된다.

 

그러니 러시아로선 더 이상 우크라이나의 행동을 방관하고 있을 순만은 없었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섣불리 찬성할 사안이 아니었다. 자칫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작년 7월 푸틴은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을 법적으로 보장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그런 푸틴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리 만무.

 

칼을 빼어든 푸틴

 

결국 러시아가 행동에 나선 것이고 이를 맞받아친 것이 우-러 전쟁이라 하겠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 의도를 작년 가을 무렵부터 확신했다. 하지만 직접 미국이 자국의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가 많다는 판단 아래 우크라이나에게 군수물자와 무기를 적당히 지원해주는 정도의 誠意(성의)만을 표했다.

 

어차피 러시아의 본격 침공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가 일주일도 못 가서 손을 들 것 같으니 그저 외교적인 측면에서 러시아를 맹비난하는 정도가 최선이란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특히 작년 8월 미국은 무려 20년 동안 엄청난 전비와 국력을 낭비해 가면서 끌어 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야반도주나 다름이 없는 무참한 철수를 단행한 터라 더더욱 그랬다.

 

유럽연합의 사실상 맹주이자 나토 회원국인 독일의 경우 역시 그랬다. 독일은 에너지 부문에 있어 러시아로부터 들어오는 가스가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독일 스스로 냉전 이후 군사력 자체를 경원시해오던 터라 군사강국 러시아와 맞설 의향도 힘도 없었다.

 

그런 미국과 유럽연합의 속사정을 뻔히 알고 있던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서 대규모 군사 기동훈련을 실시하면서 상당한 여유까지도 보여주었다. 중국 베이징의 동계 올림픽을 감안하여 침공 시기를 당초 작년 12월에서 금년 2월로 약간 늦추면서 중국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시진핑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푸틴이 보기에 동시 다방면에서 일제히 침공해 들어가면 우크라이나는 며칠 이내로 항복할 것이라 여겼고 미국을 포함한 나토 국가들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여겼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대반전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대 反轉(반전)이 일어났다. 코미디언 출신의 얼치기 아마추어 대통령인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였다.

 

젤렌스키는 姓(성)이고 이름은 푸틴과 같다. 그러니 흥미롭다. 푸틴은 블라디미르이고 젤렌스키는 볼로디미르, 정확하게 같은 뜻의 이름이다. 크게 다스린다는 뜻이니 한자이름으로 바꾸면 大治(대치)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가 초전부터 제공권을 장악한 뒤 전차와 장갑차, 로켓의 파상 공세를 통해 밀고 들어가면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고 친러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줄로 으레 예상했다. 친러 성향의 새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과 포옹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우리 두 나라 사이에는 조금치의 갈등이 없습니다,” 하고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을 줄로 알았다.

 

볼로디미르가 블라디미르를 이기고 있으니 

 

그런데 승자는 불라미디르가 아니라 볼로디미르였다. 다시 찾은 헤르손 현장에 나타난 젤렌스키는 이제 종전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이제 제대로 된 협상 좀 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이번 우-러 전쟁 또한 엄청난 파급력을 지녔다. 특히 독일의 미래 정책을 사실상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세계의 진로를 뒤바꾸고 있다.

 

다음 글에서 전쟁의 경과와 함께 향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글로서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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