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순환운명학 강좌의 긍정적인 효과
가을비 아니면 겨울비? 체감 상으로 늦가을이고 절기론 立冬(입동)이 지났으니 그런데 굵은 빗줄기를 보니 때 아닌 여름비 같기도 하다.
오늘 자연순환운명학 기초강좌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수강하신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늘 그렇지만 이번 강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 여성분은 12회 강좌 즉 석 달의 기간 동안에 얼굴색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처음 만났을 때 분노 조절 장애 같은 것이 있구나 싶었는데 중간 무렵이 되자 본인 스스로도 바뀌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달라졌다.
나 호호당은 강좌 자체가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12회에 걸친 석 달의 강좌 기간은 바로 석 달에 걸쳐 스스로의 지난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도록 하기에 그렇다. 왜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지? 현 위치를 알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장차 다가올 날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해주기에 그렇다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실패와 좌절을 겪기 마련인데 거기에 대해 일종의 자책감도 갖게 된다. 그런데 강좌를 듣다 보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누구도 완벽하고 흠 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아낸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강의 도중 나 호호당은 모든 수강생들과 함께 호흡한다. 어떤 대목에선 필요한 경우 의도적으로 특정한 분에게 눈빛과 함께 메시지를 건네면 반응이 있고 그러면 그 점에 대해 다시 답을 해온다. 한 쪽은 말하고만 있고 한 쪽은 듣고만 있지만 실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나 호호당이 동영상 강좌를 하지 않고 굳이 오프라인으로 하는 이유도 비로 여기에 있다.
두 가지 욕망이 있는데 그게 일견 모순처럼 느껴진다는 점
오늘 마지막 강의에서 했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크게 두 가지의 욕망이 있는데 그 두 가지는 일견 矛盾(모순)의 관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나는 살아있고 싶다는 것, 좀 강조하면 모든 시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다는 욕망이다. 바로 존재에 대한 바람이다.
존재에 대한 욕구와 성취에 대한 욕구는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언가를 이루거나 가지고 싶다는 것 즉 성취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욕망은 60년에 걸친 삶의 순환에 있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생생하게 살아있고픈 욕구와 성취감은 동시에 맛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60년 순환에 있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점은 立秋(입추)의 때이다. 입춘 바닥에서 30년이 흐른 때가 바로 존재감으로 충만한 때가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입추 직후의 처서가 되지만 편의상 입추라고 해둔다.)
입추란 한 해 순환에 있어 양력 8월 초순의 때이다. 가장 무더운 여름철이다. 이 무렵이야말로 존재감으로 충만한 때란 얘기이다.
그런데 성취하는 때는 한 해의 순환으로 잡아보면 11월 초순의 立冬(입동), 즉 겨울이 시작되는 때가 된다. 이 무렵에 이르러 가을 수확이 마무리되니 성취의 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입동 지나 소설의 때가 된다.)
정리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60년 운명의 순환에 있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때와 성취했다고 느끼는 때는 한 해로 계산하면 3개월의 時差(시차)가 있고 60년 순환으로 계산하면 15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입추 무렵에는 겉으로 보기에 가진 것은 없어도 존재 자체의 충만감으로 가득하다. 반면 입동 무렵이 되면 성취했으니 가진 건 많아도 이상하게 이 순간부터 스스로의 존재감이나 그로 인한 충만감은 시들해진다. 이게 바로 오늘 얘기했던 삶과 운명의 모순이다.
1994년의 한국과 2009년의 대한민국, 그 차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설명을 좀 더 붙여본다.
우리 대한민국은 1964년이 입춘 바닥이자 시작점이었기에 이에 30년이 흐른 1994년이 60년 국운 순환에 있어 입추의 때였다. 그때 우리 대한민국은 약동하고 있었고 존재감으로 충만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유수의 강국도 부국도 아니었다. 소득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았었다. 가진 게 별로 없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충만했고 역동적이었다. 그때가 바로 이른바 양김 시대, 김영삼과 김대중의 시대였으니 당시 우리는 서로 간에 선악시비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열정적으로 지지했었다. 정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역동적인 변화의 때였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2009년 우리 국운의 立冬(입동)이 되자 우리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1인당 소득수준도 높고 정부는 풍부한 세입을 통해 왕성하게 재정지출을 하고 있었다. 기업들 또한 글로벌 수준에 오른 대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 우울해지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냉소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으니 성취한 것인데 현실적으론 우울감과 시니컬한 감정이 지배하기 시작했던 것이 2009년의 정서였다.
과연 어느 때가 더 좋았는가를 놓고 택일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사람에 따라 다른 답을 내게 될 것이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물론 1994년 당시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니 아예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건 기록을 통해 읽어낼 수가 없다, 당시의 공기를 느끼지 못한 이상 그렇다.
그러니 질문을 한 번 더 정리하면 이렇다. 치열한 열정의 삶이 좋은가요? 아니면 이제 가진 자로서의 여유를 가질 때가 좋은가요? 하는 질문이다. 답하기가 쉽지 않다.
미처 가진 건 없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때와 열정은 식었으나 가진 자가 되었을 때, 그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고 그 시점은 15년의 시차가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동시, 즉 같은 시각에 누릴 순 없다는 점에서 삶의 모순이란 얘기를 오늘 마지막 강의에서 했다.
에리히 프롬의 편향적이고 억압적인 강요
예전에 “에리히 프롬”이란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쓴 유명한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소유냐 존재냐?”란 제목의 책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소위 신 마르크스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의 물질문명, 즉 소유에 대한 선호를 강렬히 비판했고 그로서 많은 성원을 받았지만 나 호호당은 양자택일을 하라고 강요했던 에리히 프롬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
존재감으로 충만한 것도 중요하고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두 가지는 삶과 운명의 순환을 거치다 보면 맞이하기 마련인 서로 시차를 갖는 두 때, 즉 입추와 입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존재감으로 충만한 때와 소유 즉 성취했을 때 모두 60년 하나의 순환 속에 시차를 두고 놓여있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얻을 수 있으니 사실 모순이 아니라는 얘기
앞에선 존재와 성취, 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면 존재와 소유에 대해 일견 모순이 존재한다는 했지만, 좀 더 큰 눈에서 보면 그건 삶의 순환 속에 시차를 두고 존재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은 矛盾(모순)이 아니란 생각을 한다.
두 개를 동시에 가질 순 없으니 모순이라 했지만 시차를 두고 하나씩 맛을 보는 것도 그다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결국 전부를 동시에 함께 가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모순이자 헛된 욕망이 되지만 그냥 때가 되어 순차적으로 가지고자 한다면 그건 모순이 아니란 얘기이다.
성취하고 나면 당초 기대했던 것에 비해 별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를 만나면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그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하는 생각을 한다.
하디만 현재 도전해가고 있는 자는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늘 마음이 불안 불안하다, 또 그렇기에 힘껏 분발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 자가 성취한 자를 보면 속으로 부러워한다, 저 선배님은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대단한 성취를 했으니 하고.
챔피언이면서 챌린저인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챔피언이면서 도전자인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시점이 다른 것이다.
1994년의 대한민국은 당시 그냥 “한국”이었고 챌린저였다. 2009년의 대한민국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었고 나름 우리 역사의 챔피언이 되어있었다.
모순이라고 하면 모순이겠으나 다른 눈에서 보면 하나의 자연스런 순환의 과정, 즉 “자연순환”일 뿐이다.
가져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가지고자 할 때 진정으로 생생하다. 가지고 나면 잠시 뿌듯하겠으나 이상하게 시들해진다.
그러고 나면 길고 긴 休止(휴지)의 기간으로 들어간다. 힘을 썼으니 쉬어야 하기 때문이고 그게 인생의 겨울이다.
어쩌면 이게 바로 삶과 운명의 심오한 비밀 즉 奧秘(오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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