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시 독재체제로 돌아가다
시진핑 제3기가 시작되면서 1인 독재체제가 다시 부활했다. 중국은 다시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이에 중국의 이번 변화가 미치게 될 여러 파장에 대해 얘기해보는 글을 준비했다.
중국의 그간 흐름을 자연 순환의 이치로 설명해볼 것 같으면 참으로 흥미롭고 절묘한 대목들이 많지만 글의 분량을 고려해서 축약해서 얘기하겠다. 우선 알아둘 것 한 가지, 중국의 경우 1968년과 2028년 戊申(무신)이란 코드가 60년 순환에 있어 立春(입춘) 바닥이란 점이다.
중국의 번영을 이끌어낸 덩샤오핑과 집단지도체제
지금까지의 중국은 이른바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어 왔는데 이런 틀을 만든 이는 개혁개방의 전도사 덩샤오핑(이후 덩이라 하겠다)이었다.
공산 혁명 과정에서 절대 권력을 장악한 마오쩌둥(이후 마오)이 문화대혁명이란 엄청난 사고를 친 후 1976년 9월에 사망하자 중국 공산당 내부는 즉각적으로 격렬한 권력투쟁의 일대 드라마가 펼쳐졌는데 뜻밖으로 짧은 시일 내에 마무리가 되었다.
복잡한 과정이 있었으나 단기간에 상황을 수습한 인물은 마오가 권력을 잡는데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혁명동지이자 베이징의 軍權(군권)을 쥐고 있던 예젠잉이었고 바로 그가 지지했던 이가 덩이었다.
덩은 1978년 12월 공산당을 장악했고 그 즉시 “개혁개방”을 표방했다. 이는 마오의 노선과 정반대의 길이었다. 하지만 덩은 문화대혁명 시절 많은 박해를 받았음에도 마오를 전적으로 깎아내리지 않았다. 功七過三(공칠과삼)), 공이 7이요 잘못은 3이었다 하면서 당 전체를 포용했다.
마오를 통해 절대독재의 폐단을 절감했던 덩은 자신의 권위를 통해 당내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해가면서 당을 이끌었으니 이게 바로 집단지도체제이다.
덩이 권력을 잡은 1978년은 중국 국운에 있어 이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淸明(청명)의 운이었다.
미국과의 국교 수립은 '신의 한 수'였으나
덩은 개혁개방을 표방함과 동시에 미국과 전격적으로 국교를 체결했다. 미국과는 그 이전부터 이른바 “핑퐁외교”를 통해 약간의 관계를 텄지만 그 이전 중국공산당이 워낙 “미국이야말로 세계인민의 적”이라고 선전을 해왔던 터라 당시로선 상당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덩은 중국이 발전하려면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장차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과감한 행동에 나섰으니 그야말로 “神(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덩 역시 공산주의자였기에 권력을 잡은 후 11년 뒤에 발생한 1989년의 “천안문 사건”에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야 하는 오점을 남겼다. 자칫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는데, 이 대목이야말로 현대 중국의 진로를 결정지은 일대 사건이자 한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절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기에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할 때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변명해야 했지만 그건 어쨌거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 정권이었기에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탓에 중국은 여전히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용인하되 전체 체제는 사회주의, 그리고 최근 시진핑이 내세운 중국식 현대화 역시 공산당의 권력 원천을 포기할 수 없는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이게 중국의 한계란 생각을 한다.
덩은 사회주의를 지켜나가면서도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를 장려했다. 사실 이는 절묘한 조정과 타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덩은 자신의 권위를 십분 활용하여 교묘하게 경제발전을 이끌어나갔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한계를 보여준 1989 천안문 사건
1989년의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인들은 자유와 인권, 이런 민주주의적 가치를 포기해야 했고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중국인들 스스로 시니컬한 말을 만들었다. 앞날을 바라보자는 向前看(향전간)이 아니라 돈을 바라보자, 즉 向錢看(향전간)의 시대라 했다. 줄이면 황금만능주의를 떠나 출구가 없어진 것이다.
덩이 만든 집단지도체제는 장쩌민과 후진타오까지 잘 이어져왔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자본과 선진 각국의 기술을 활용해서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다. 중국인들 또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만큼이나 부지런해서 중국식 표현으로 24시간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저런 발전이 가능했다고 본다. 한일중 세 나라 모두 儒敎(유교)적 사상인 自强不息(자강불식), 스스로 강해지고 쉬지 않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기본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 본다.
시진핑의 1인 독재는 단순한 권력욕만은 아닌 것이니
그랬던 중국이 시진핑이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제 1인 독재 체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진핑 개인의 권력욕구 때문만은 아니라 본다. 이 역시 공산체제의 한계에서 온다고 본다.
덩은 先富論(선부론)을 주장했다. 가능한 자부터 먼저 부를 축적해야만 그 부가 돌고 돌아서 전체를 부유와 풍요로 이끌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하지만 공산당 체제에서 先富(선부)를 이룬 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산당과의 연줄이 있어야만 했다. 이른바 “꽌씨”가 좋아야 했다. 여기에 더해서 등장한 문제가 바로 수억에 달하는 農民工(농민공)의 문제가 있다.
중국이 부유해지면서 빈부격차가 발생한 것이고, 그 격차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로부터 생겨나는 빈부격차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예컨대 북한 문제가 김정은이가 권력을 내려놓을 경우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듯이 중국 문제 또한 공산당이 권력을 내려놓을 경우 훨씬 더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과 같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을 수가 있겠는가? 몸에 중병이 생겼을 때 스스로 메스를 들고 자신의 배를 가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대목에서 강조할 점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을 하나로 보지만 실은 지방 각 省(성) 단위의 지방 공산당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연합체로서의 공산당이고 그 중앙에 그를 이끌어가는 공산당 중앙이 있는 중국 공산당이란 사실이다. 미국이 합중국이듯이 중국 또한 공산당 연합이라 점이다.
이번 시진핑의 3연임으로 인해 시작된 1인 체제는 결국 지역 省(성) 단위의 공산당들이 지닌 자율권을 없애거나 극도로 줄이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산당 상무위원들은 그간 여러 지역 단위 공산당의 이해를 반영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시진핑은 공산당 중앙 상무위원들을 자신의 부하들로 모조리 채워놓았다.
지역 공산당의 자치권한을 없애겠다는 것 또한 사실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에 시진핑의 무기는 역시 부정부패 척결일 것이니 지역 공산당원은 물론이요 말을 잘 듣지 않는 중앙의 당 간부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나가는 장면들이 장차 연출될 것임은 물론이다.
미국이 만들어낸 글로벌 분업 체제
이 대목에서 다시 미국에 대해 얘기를 좀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그간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지난 세기 동안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글로벌 분업 체제를 만들었으니 그 핵심 파트너는 바로 중국이었다. 일반 제조는 중국이 맡고 고급 기술을 요하는 제조는 일본과 한국, 타이완에 맡긴 뒤 첨단 기술개발과 마케팅만 미국이 하는 새로운 글로벌 분업 체제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이에 오늘날 미국의 “빅 테크” 기업들은 아예 공장이 없다. 제조공장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공이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리면서 돈도 많이 든다. 따라서 리스크도 높다. 이에 빅 테크 기업들은 그런 과정을 송두리째 중국과 우리, 그리고 타이완에 넘겨버렸다. (그런 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은 일본이 오늘날 저처럼 힘이 빠진 이유는 미국이 만든 글로벌 분업체제에 고분고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미국은 시쳇말처럼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네일 관리만 받으면서 우아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프리젠테이션(PT)만 잘 하면 전 세계의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자본시장을 통해 막대한 돈을 펀딩할 수 있다.
나머진 모두 아랫것들이 알아서 하거라! 식의 미국이다.
대표적으로 희토류하면 중국 생산이 가장 많다. 하지만 희토류가 중국에만 있지 않고 세계 어디에도 있다. 다만 채굴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노고가 들어가는 ‘노가다’이기에 중국이 제일이다.
애플 아이폰의 판매가에서 중국 현지 생산이 차지하는 부분은 겨우 7%이다. 나머진 삼성전자나 TSMC, 일본 기업들이 좀 가져가고 애플은 모든 비용을 다 제하고도 무려 40%나 가져간다.
글로벌 분업체제가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런데 중국이 점차적으로 그리고 갖은 방법을 써서 첨단 기술 쪽에서도 따라오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브레이크를 걸었다.
칩4 동맹이란 게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끼리만 해먹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장도 미국 내에 좀 있어야 하겠는데 할 놈이 없으니 우리나 일본 타이완과 같은 꼬붕들아, 냉큼 들어와서 차려, 이번엔 아예 유예기한도 없다, 알아서 혀! 하는 것이 이번 바이든의 인플레 감축법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나라들로 카르텔을 형성해서 중국을 따돌리자는 것이다.
이로서 중국은 이제 그야말로 엄중한 挑戰(도전)에 직면했다. 시진핑이가 “중국몽”을 외치면서 자신의 임기 중에 글로벌 제일의 나라로 올려놓겠다고 공언한 것 또한 화를 자초한 면이 있다.
줄여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분량 관계상 다음 글로 이어가기로 한다. 양해를 바란다. 한 방에 다 써버리고 싶지만 독자들께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