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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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에서 의병 시리즈를 하는 모양이다. 철학이 빈곤한 시대에 상투적인 프레임 놀음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기는 어려울 게다. 이 글은 위에 링크한 딴지일보 기사와 상관없다.
농민이 어쩌구, 가렴주구가 어쩌고, 외세배격이 어쩌고 하는 식의 뻔한 레토릭은 전부 개소리다. 이념과잉 시대의 구태의연한 남탓놀음은 걷어치워야 한다. 자칭 혁명가 박정희와 진보진영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적이 있다. 친미와 반미가 합의한 것이 동학 유적지 성역화다.
박정희가 강화도를 성역화하면서 반미구호를 써놓은게 그러하다. 신미양요의 현장을 찾아 미제타도를 한 번 외쳐봤다. 박정희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런거 없다. 소인배는 원래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소인배인 게다. 전두환 시대에 전봉준 유적지가 성역화된 것도 그렇다.
본관이 다르지만 같은 전 씨니까 전봉준 후광을 보려고 수를 쓴 거. 전두환 부하 중에 본관을 헷갈린 사람이 아부한다고 벌인 짓일 수도 있고. 독재자는 왕과 같다. 왕이 양반의 편을 들면 안 된다. 왕은 사대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불교와 도교 무속도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조선 왕조 내내 왕과 사대부는 이걸로 갈등했다. 청나라만 해도 왕실은 불교 편이다. 왕이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려면 종교를 이용해야 한다. 독재자는 보수 편이지만 젊은 나이에 집권해서 일부 진보진영의 논리를 받아들인다. 허영만의 오! 한강이 안기부 작품인게 그런 맥락.
전두환은 국풍81 하며 진보인지 보수인지 애매한 짓을 벌였다. 김건희가 봉하마을 가는 것도 그런 행동. 이제 왕이 되었으니까 왕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보여주기 행동에 속으면 안 된다. 하여간 그런저런 이유로 동학은 보수진영도 잘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구조론은 구태의연한 이념놀음에 관심 없다. 권력은 힘의 균형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고 힘의 공백이 발생하면 그것을 메우는 힘의 작용이 일어난다. 조선 말기 청나라의 압박과 소빙하기의 도래로 자급자족과 소작제에 의해 지탱되던 조선의 지배질서가 완벽히 붕괴했다.
정조 이후 외척의 발호로 양반계급이 타락하고 서학을 소탕하는 과정에 민심이 크게 동요했으며 화폐의 유통으로 중인과 부민, 상인이 크게 일어났다. 화폐가 없을 때는 착취를 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는데. 대기근에 화폐가 굶주림을 면하게 하지만 빈부격차는 더 벌어진다.
정조 이후 통신사가 끊기고 청나라에 예속되면서 조선은 구조적으로 망해 있었다. 외교를 그만둘 때 나라가 망한 거다. 더 이상 왕실의 존재이유가 없다. 의병이 일어난 이유는 조선 조정에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군들의 관심은 총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장개석은 총을 주지 않았고 모택동은 총을 줬다. 모택동을 따라갔다. 의병의 관심은 총을 쏘아보는 것이다. 신문물, 신무기에 대한 관심이 본질이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변화의 현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려고 했던 것이다.
동학의 잔당이 일진회를 만들어 친일매국에 앞장선 이유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앞서고 싶었고 그 시대에 친일파가 되는게 가장 진보적이라고 본 거. 상투를 자른다는건 먹히기 쉬운 홍보전략에 불과하다. 남의 신체에 직접 손을 대는 짓이니 반발할 구실이 된다.
동학이 일어난 것도 의병이 일어난 것도 중앙의 힘이 약화되어 힘의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단 슬쩍 건드려보고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더 세게 때리는 것이다. 그리고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당시에 만인이 모두 변화의 기운을 느꼈다. 가만 앉아있는게 더 이상하다.
운이 좋으면 신무기를 손에 넣고 새 왕조를 열어볼 수도 있고. 일본의 명치유신도 원래 쇄국을 하려다가 일이 꼬여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외세에 굴종하는 막부를 타도하려는데 그러려면 총이 필요하고 서양총을 구하고 보니 화약도 필요하고 대포도 아쉽고.
전술도 배워야겠고 이기려고 하다 보니 이기는 자의 포지션에 서게 된 것. 왜적을 토벌하자는 것은 당시 불리하니까 약자의 포지션이 된다. 전투에 이겨서 적절한 시점에 강자의 포지션으로 갈아타는게 목적이다. 진나라를 토벌하는 오광과 진승은 왕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
동학에 무슨 개혁적 요소를 기대하는 것은 오광과 진승에게 왕이 되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다. 왜군을 물리치고 왕실을 바로잡겠다고 해야지 내가 왕이 되겠다고 하면 당연히 몰락한다. 그러나 본심은 다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은 것. 일단 왕을 제압하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왕이 못되더라도 궁궐 근처에서 굴러먹으며 기회를 엿보는게 맞다. 의병들은 서울로 쳐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그 시점에 알 수 없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 일본과 교섭하여 신무기를 입수하려는 모색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동학이나 의병이 봉건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는건 개소리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말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해야만 군대를 모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뿐이다. 개화에 앞장서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 돌 맞지. 싸우다 보면 신무기를 입수한다.
신무기를 손에 쥐면 태도를 바꾸는 거. 눈앞에 신무기를 딱 보여주면 개화를 한다고 해도 다들 찬성해버려. 도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간들의 태도는 180도로 달라져버려. 모두가 나폴레옹을 욕하다가 나폴레옹이 밀라노에서 막대한 황금을 털어오니까 태도돌변.
어제까지.. 우리에게는 백 명의 브루투스가 있다. 파리의 도살자 나폴레옹은 얼른 목을 내놓아라. 오늘은.. 황제 폐하 어서 옥좌에 오르소서. 그게 인간. 황금을 보면 다들 눈이 뒤집어진다. 도구가 본질. 도구는 총이다. 전쟁을 해야 총을 만져본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탐관오리를 때려죽이는게 제일 쉬웠어요. 그게 제일 쉬우니까 그걸 제일 먼저 한 것이다. 무슨 행동이든 다른 사람이 먼저 어떻게 해서 그에 대한 반발로 내가 이런다는 식의 해석은 개소리다. 진시황이 폭정을 내서 내가 들고일어난다고 말하지 그럼 무슨 말을 하겠는가?
조병갑이 부친 송덕비를 세워달라고 돈을 뜯었는데 그게 몇 푼 안 된다. 송덕비는 원래 주민들이 추렴해서 세우는 거지 자기 돈으로 세우는게 아니다. 이순신 장군 추모비 세우는데 40냥이 필요했는데 석수장이가 그 말 듣고 공짜로 세워주겠다고 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조선 시대 말기에 유행한 송덕비는 대부분 허접한 거. 요즘 돈으로는 50만 원어치나 될라나. 아전들이 돈 삥땅치려고 사또 팔아서 모금운동을 한다. 착취를 했으면 그 돈으로 세운 화려한 건물이 남아있어야 한다. 근데 다 어디 갔지? 착취는 본질이 아니고 본질은 개판이다.
외척이 득세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모든 것이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청나라에서 서태후가 그러니까 명성황후도 그렇게 하는 거다. 양반집단이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고 힘의 공백이 생겨난 것이다. 빈 공간이 생기면 그것을 메우는 힘의 작용이 반드시 일어난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인간은 나쁜 결정을 내린다. 상황은 더 나빠진다. 척양척왜로 조선왕조를 구하려고 한 것이 더 빨리 망한 결과로 되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그렇게라도 움직여봐야 했다. 우리는 조선왕조를 끝냈고 일본은 아직 왕을 죽이지 못하고 있다.
척양척왜는 사람을 모으는 구실일 뿐 본질은 변화의 기운을 느끼고 변화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기회를 엿보려고 한 것이다. 전봉준이나 김개남이 조선왕을 섬기고 싶었을 리가 없다. 다른 구호가 먹히지 않으니까 그 구호를 세워본 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