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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지향적 존재다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4. 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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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지향적 존재다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4. 25

 

 

창조론이 틀린 이유는 창조론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창조과학회 애들은 과거보다 세련되게 말을 바꾼다. 그들은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진화론도 말을 바꾸지만 그게 바로 진화다. 창조과학회는 진화론이 말을 바꾼다며 공격하지만 진화론의 진화는 자연스럽다.

 

    보수가 틀린 이유는 보수가 진보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에서 윤석열로 갈아탄 것은 보수의 진보다. 마크롱의 유연한 노선은 진보의 활력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 멜랑숑은 전통좌파 노선을 보수하고 있다. 보수하는 진보가 진보일까? 정의당은 과연 진보정당일까?

 

    르펜도 아버지 시절에 비해 진보했지만 충분히 진보하지 못했다. 트럼프도 전통적인 공화당 노선과 결별하고 조금이나마 진보한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영 내부에서의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박지현이 조국 까듯이 말이다.

 

    인간의 일용할 양식은 빵이고 사회의 일용할 양식은 권력이다. 인간은 권력지향적 동물이다. 다만 여기서 권력은 본질주의가 아니라 도구주의 관점의 권력이다. 인간은 권력 그 자체를 원하는게 아니라 권력시장을 원한다. 권력을 소유하기보다 확인하기를 원한다.

 

    집단의 상호작용구조 안에서 호흡하려는 것이다. 개인은 집단과 연결된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중심으로 쳐들어가려고 한다. 권력은 사회적 연결도구다. 중요한 것은 연결되는가다. 시장원리를 따르며 수요와 공급이 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는 거기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이유는 공무원의 전시행정과 같다. 권력을 눈에 보이게 전시해놔야 아 이 교회에 권력이 있구나 하고 사람들이 탄복하고 복종한다. 줄 서서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이다.

 

    지배욕만큼 복종욕이 있다. 우파들은 충성심, 애국심, 민족주의라고 포장하지만 동물의 복종본능이다. 강아지들도 주인에게 충성하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집단과 연결된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권력의지는 지배욕이면서 동시에 복종욕이다.

 

    둘은 같은 것이다. 소외되지 않고 소속되려는 것이다. 가능하면 중심에 서려고 하지만 변방에라도 끼고 싶어한다. 21세기에 종교가 준동하는 이유는 교회가 권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배욕과 복종욕을 만족시킨다. 마녀사냥과 동성애자 사냥으로 권력감을 느낀다.

 

    교회는 가부장의 기득권을 보호한다. 자녀를 부족본능에 빼앗기지 않게 한다. 원래 인간은 열세 살이면 자녀를 버리는 동물이다. 소년이 13살이면 자기 몫의 권력을 탐한다. 교회에 데려다 놓으면 제압된다. 엄마가 저축해 놓겠다며 세뱃돈을 빼앗는 것과 같다.

 

    네 몫의 권력은 교회에 저금해 놓았다가 어른이 되면 이자 붙여 받아쓰도록 하라. 문제는 정치가 권력의 생산공장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교회가 하는 일을 정치가 해야한다는 말이다. 권력을 주면 반대급부로 마을에 다리를 놔주겠다는 식의 권력거래는 추악하다.

 

    정치는 신규권력의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기득권력의 업무방해를 차단하고 권력과 권력을 경쟁시키며 권력의 세대교체를 돕는 일이다. 산업권력, 문화권력, 미디어권력, 가족권력, 부족권력 사이에 중재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생산하는 주체라는 점이다.

 

    가진 권력을 휘두를 게 아니라 새로 권력을 데뷔시켜야 한다. 전라도 가서 경상도 욕하고 경상도 가서 전라도 욕하는 식의 정치로 일시적으로 표를 네다바이 할 수 있지만 그게 권력의 소비행동이다. 윤석열이든 르펜이든 권력 과소비다. 권력을 소비하는 포퓰리즘이다.

 

    우리에게 힘이 있는데 약자를 밟아버리자. 즐겁잖아. 대중의 권력중독을 이용하여 일시적으로 득표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권력 자체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버리는 것이다. 신뢰가 깨지고, 저축이 깨지고, 권력의 효용가치가 감가상각된다.

 

    권력은 영향력이다. 만인이 만인에게 영향력을 상실하고 고립과 소외에 이르게 된다. 진보정치란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가 하는 일을 국가가 대행하는 것이다. 엄마가 주는 용돈을 국가에서 주는게 진보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권력이 사라진다.

 

    새로 생성되는 권력이 소멸되는 권력보다 작으면 망한다. 진보가 망하는 이유는 권력의 생산보다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때려부순 만큼 신규권력을 시장에 진입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산업의 생산력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라는 본질을 망각하고 권력을 어떤 이상적인 목적이나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라고 믿으면 망한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칸트의 이성과 헤겔의 절대정신과 마르크스의 혁명이 망쳐놓았다. 그들은 본질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극점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에베레스트에 오르듯이 어떤 극점을 찍으면 뭐가 된다고 믿는다. 되기는 개뿔 그런거 없다.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먹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원이 없어서 나눠먹기가 안 되는 것이다. 산업 생산력과 문화 생산력의 불균형이 위기의 원인이다.

 

    권력은 추한 것이지만 내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테니 그 추한 권력을 나에게 잠시 위임해다오. 이러면 망한다. 권력이 추하다는 안철수 정치 망한다. 정치가 추하다면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똥은 더럽지만 그 똥을 내가 몽땅 갖겠다는 식의 위선은 곤란하다.

 

    사람은 밥으로 살고 사회는 권력으로 산다. 밖으로는 폭넓게 뻗어나가고 내부로는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파는 밖으로 뻗어간다며 전쟁하다가 망하고 좌파는 내부로 촘촘하게 한다며 신변잡기주의로 망한다. 우파는 큰 것으로 허풍을 치고 좌파는 작은 것으로 지리멸렬해진다.

 

    모두는 권력을 원한다. 영향력을 원한다. 상호작용을 원한다. 인간들은 서로 긴밀해지려는 것이다. 소년은 권력을 얻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만 너무 일찍 독립하면 너무 일찍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크지 못하고 망한다. 이른 권력은 권력의 사이클을 작게 만들어 조로하게 된다.

 

    개인의 권력, 가족의 권력, 부족의 권력, 산업의 권력, 문화의 권력을 두루 인정하면서도 조금씩 국가의 권력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생산성의 혁신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집단에 공급해야 한다. 상호작용의 총량증대를 달성해야 한다.

 

    마크롱의 선전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좌파는 국가권력을 앞세워 개인권력을 지나치게 약탈하고 우파는 권력을 과소비하여 마약처럼 국민을 권력놀음에 중독시킨다. 생산력이 증대하면 권력의 신구교체는 자연스럽고 그럴 때 다스려진다.

 

    생산력이 망하면 교회처럼 계속 사람을 소집하거나, 북한처럼 계속 회의를 열거나, 조선시대처럼 계속 제사를 지내면서 집단에 권력이 작동하는 척 쇼를 해야 한다. 권력이 멸망한 자리를 거짓 권력으로 대체하여 인간의 권력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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