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150조 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준 전 세계 은행들이 채무를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국제 대형 금융사의 러시아 엑소더스(탈출)도 현실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월스트리트의 대표 투자은행(IB)은 러시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CNN은 10일(현지시각) “국제결제은행(BIS)은 전 세계 국제 은행이 러시아 기업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채무 중 대부분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은행들이 러시아 기업에 빌려준 채무 규모는 1210억 달러(약 149조1567억원)를 넘는다.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한 곳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은행이다. 이들이 안고 있는 채권액은 840억 달러(약 103조53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은행도 147억 달러(약 18조1148억원)의 채권을 갖고 있다. 신용공여는 포괄적인 빚을 의미하며 대출금, 지급보증, 기업어음(CP) 매입, 사모사채 외에 역외 외화대출, 크레디트 라인, 회사채, 미확정 지급보증 내용 등을 포함한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현재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국가 부도 직전’으로 본다. 지난 8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러시아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이 임박했다며국가 신용등급을 기존의 ‘B’에서 ‘C’로 6단계 강등했다. 앞서 러시아의 등급을 기존 BBB에서 6단계 아래인 B로 낮춘 지 5일 만에 추가 강등이다. 피치의 C등급은 무디스의 'Ca'와 같은 등급으로 사실상 국가부도를 의미하는 'D'등급 직전 단계다. 무디스는 지난 6일 이미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Ca로 낮췄다.
무디스, 러시아 국가신용등급 강등.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피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서유럽 대형 은행의 자산 질이 떨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국제 제재 준수로 인해 은행들의 영업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러시아의 경제 상황도 악화 일로를 걷자 미국 은행부터 ‘사업 철수’를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각) 골드만삭스가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서 떠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규제와 인허가 요구 사항에 따라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 시장에서 기존의 의무를 관리하거나 폐지하고, 직원들의 복지 보장 및 전 세계 고객들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투자은행 중 러시아 사업 철수를 공식 선언한 곳은 골드만삭스가 처음이다. 러시아에 근무하던 골드만삭스 직원 가운데 일부는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이동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의 성명 발표 후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도 철수 계획을 밝혔다. 같은 날 JP모건은 성명을 내 “전 세계 정부들의 방침에 따라 우리는 러시아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러시아에서의) 활동은 글로벌 고객의 기존 투자 관련 리스크 관리나 종료 지원, 현지 직원의 안전 관리 등에 한해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 소속 러시아 근무 직원은 약 200명 미만이라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각)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월스트리트의 대표 투자은행(IB)은 러시아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이밖에 씨티그룹도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 등 고객사의 러시아 사업 철수를 지원하며 러시아 사업 위험도 등을 재평가하고 있다고 전하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 대형 금융기관이 러시아에서 철수한다면 인구 1억4400만 명,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인 러시아를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서방의 다른 은행도 골드만삭스나 JP모건처럼 철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은행은 러시아 사업 비중이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철수에 따른 부담이 적지만 다른 은행의 상황을 다룰 수 있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 골드만삭스의 러시아 시장 신용공여는 6억5000만 달러(약 8000억 원) 수준이다.
러시아는 국제 은행의 연쇄 사업 철수에 ‘국유화 선언’ 엄포로 맞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은 10일 러시아의 경제 상황 관련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제재에 대한 보복을 약속한다. 철수하는 은행의 자산은 크렘린에 의해 압류되거나 국유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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