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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인간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 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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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인간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1. 18

 

 

 인간은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할줄 모른다. 생각한다는 것은 칼로 도마 위의 생선을 내려치는 것이다. 잣대로 대상과 접촉하여 측정하는 것이다. 그 한 순간에 주체와 과정과 대상이 나란해야 한다.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내가 갑이 되어야 한다. 대상을 장악하고 능동적으로 타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못한다. 

 

    대개 섬긴다. 주워섬기는 것이다. 톱니가 맞물리지 않으면 겉돌게 되고 겉돌면 이탈한다. 이탈하지 않게 붙잡아 두려면 머리에 이고 가는 수 밖에 없다. 대상을 앞세우는 것이다. 인간 앞에 서면 의인화 된다. 인격이 부여된다. 명령권자가 된다. 이성이든 도덕이든 윤리든 정의든 공정이든 사랑이든 행복이든 그렇다.

 

    페미든 자유든 민주든 신이든 도깨비든 인간 위에 군림하면 우상이다. 이성이 인간에 앞서면 우상이다. 사건은 원인 아니면 결과다. 인간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의사결정구조를 모른다. 아는 단어가 원인과 결과 둘 뿐일때 무언가 주장하려면 대상에 원인 포지션을 부여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우상이 되는 것이다. 

 

    동기, 목적, 야망, 탐욕, 쾌락, 도덕, 윤리, 정의, 행복, 사랑이 모두 우상이다. 술어를 주어로 바꾸는 즉 우상이 된다. 나란히 가며 맞물려 돌아야 한다. 새는 날개로 가지만 날개를 섬기지 않는다. 자동차는 바퀴로 가지만 바퀴를 섬기지 않는다. 자유든 정의든 이념이든 이성이든 동기든 목적이든 그건 도구에 불과하다.

 

    도구를 넘어서는 즉 우상이다. 언어는 주어와 술어다. 용언과 체언이다. 인간의 사유는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언어에는 메커니즘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상호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가 없다. 게임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가 없다.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을 나타낼 수단이 없다. 우상화 된다. 

 

    인간의 행동은 반응하기 때문이다. 위하여는 죄다 거짓말이다. 상대의 반응에 의하여다. 톱니의 맞물림에 의하여다. 인간은 그저 반응을 끌어내고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사랑이고 자시고 어떻게 해볼 수단이 없는 것이다. 

 

    혼자 뭘 어떻게 한다는 건가? 믿는다는 말도 그렇다.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면 그게 믿는 것인가? 사랑이든 믿음이든 상호작용이라야 한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야 한다. 반응이 있어야 한다.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다. 그런데 반응이 천천히 온다면? 반응을 느끼지 못하면?

 

    관념, 이념, 이성, 주의, 이즘, 이데올로기는 죄다 거짓말이다. 반응이 약하거나 느리기 때문에 우상이 사용되는 것이다. 도구를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에너지의 용틀임을 감지하는 눈을 얻어야 한다. 반응은 보인다. 어부는 물고기 떼가 몰려오는 모습을 십리 밖에서 알아채곤 한다.

 

    역사의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둔하기 때문이다. 낚시꾼은 찌의 반응을 재빨리 포착한다. 이성이라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반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이성도 아니고 감성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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