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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라는 이름의 우상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 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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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라는 이름의 우상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1. 16

 

 

구조론은 일체의 개소리를 부정한다. 공자의 정명사상으로 보자. 무슨 주의, 이념, 관념, 이즘, 이데올로기들 많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그런거 없다. 대개 어거지로 갖다붙인 말이다. 근거가 없다. 개소리로 개소리를 돌려막기 하는게 보통이다.

 

    인류의 대표적인 개소리가 신 개념이다. 신은 없지만 신의 기능은 있다. 기능이 있으면 존재가 있다. 기능이 존재다. 신은 권력을 의인화 한 것이다. 권력은 실제로 있다. 인간사회에 권력이 있을 뿐 아니라 자연법칙에도 지렛대의 원리로 권력이 있다.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면서 이전 단계가 다음 단계를 제한하는 것이 권력이다. 수학으로는 확률의 정규분포와 같다. 눈이 여섯개인 주사위를 던졌는데 7이 나올 수는 없다. 다음 결정이 먼저 결정된 범위를 이탈하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것이 신 개념이다. 심부름을 가다가 중간에 까먹고 옆길로 새는 녀석들 때문이다. 돌아가신 조상이 감시하고 있다고 말해두는 것이다.

 

    관념에 인격을 부여한게 우상이다. 신을 대상화 하고 타자화 하면 우상이다. 신이 당신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라고 믿는다면 그게 우상이다. 조각으로 새겨지고 그림으로 그려져야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념은 우상이다. 이성도 우상이다.

 

    유대인의 신은 이름이 없다. 이름이 붙으면 우상이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우상은 우상이 아닐까? 천만에. 무엇을 상상하든 우상이다. 마음 속에 무언가를 떠올리면 우상이다. 우상이 아닌 것은 대상화 되지 않고, 타자화 되지 않는 것이다. 주체인 나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구조와 기능이다. 구조는 주체와 타자의 가운데 선다. 중립기어와 같다. 기능은 어떤 둘 사이를 연결한다. 기어변환이 기능이다.

 

    주체인 인간의 맞은 편에 서면 우상이다. 대상화 되므로 우상이다. 자동차는 우상이 아니다. 인간이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기 때문이다. 인간과 연결되어 하나로 있다. 자동차는 인간의 맞은편에 서지 않는다. 자동차가 인간 몰래 살살 돌아다닌다고 생각되면 우상이다. 관념은 우상이다. 이념은 우상이다. 주의는 우상이다. 이데롤로기는 우상이다.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용어가 선점되어 있는데다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말이다. 구조나 기능이나 같지만 기능이 더 적극적인 표현이다. 기능은 구조의 실행명령이다. 구조라고 하면 구構에 주목하게 된다. 조造에 주목하면 기능이다. 구조가 엔진이라면 기능은 엔진의 작동이다. 구조가 심판이라면 기능은 판결이다. 기능의 주체는 구조다. 구조의 역할은 기능이다. 체언과 용언의 관계다. 구조가 주어라면 기능은 술어다. 구조가 물이라면 기능은 그 물의 흐름이다.

 

    기능은 단순하다. 하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면 멈추고 멈추면 죽는다. 하면 이기거나 아니면 진다. 지면 멈추고 멈추면 죽는다. 이기면 상대의 반응이 돌아온다. 반응이 돌아오면 계속하고 반응이 없으면 멈춘다. 멈추면 죽는다. 이기는 결정만 유지된다. 이기면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어 기능을 유지하며 다음 단계로 계속 진행한다.

 

    돌아가는 팽이가 멈추면 죽는다. 회오리 바람이 멈추면 죽는다. 태풍이 멈추면 죽는다. 소용돌이가 멈추면 죽는다. 인간의 호흡이 멈추면 죽는다. 날아가는 새는 날개짓을 멈출 때 죽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헤엄을 멈출 때 죽는다. 생물은 진화가 멈추면 죽고, 문명은 발달이 멈추면 죽는다.

 

    무슨 주의, 이념, 관념, 이즘, 이성, 이데올로기라는게 죄다 개소리지만 기능은 인정된다. 의인화된 관념으로서의 인격신은 없지만 신 개념의 기능은 있다. 좋은 말이라도 우상화 된 부분을 배제하고 의미를 기능으로 한정해야 한다. 좁게 해석해야 한다. 선악개념이라도 그러하다. 선이 우상화 되면 독선이다. 선의로 행한 결과가 악으로 나타나는 일은 흔하다.

 

    기능은 핸들과 같고 지렛대와 같다. 우리는 오른쪽이 정답이다 왼쪽이 정답이다 하고 목적지를 떠들지만 개소리다. 핸들을 장악했는지가 중요하다. 정의당이 망하는 이유는 노선이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핸들을 쥐지 않기 때문이다. 지렛대를 박지 않기 때문이다. 문명의 지렛대는 생산력 혁신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에 지렛대를 박는다. 민주주의는 권력에 지렛대를 박는다. 통제가능한 자본, 통제가능한 권력이 되어야 한다. 공산주의는 상상에 지렛대를 박는다. 권력을 통제하지 못한다. 독재자의 폭주를 말리는 지렛대가 없다. 허공에 지렛대를 박으면 죽는다. 허공이 도무지 인간의 말을 들어먹지 않기 때문이다.

 

    기능주의 세계관이 요구되는 바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되 어떤 둘을 연결하는 도구 중심, 기능 중심, 구조 중심, 지렛대 중심, 통제가능성 중심, 메커니즘 중심, 관계 중심의 사유를 얻어야 한다. 모든 좋은 말들을 기능 중심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자유주의도 우상화 되면 안 된다. 이성도 선행도 정의도 공정도 우상화 되면 안 된다.

 

    기능機能의 기機는 베틀이다. 베틀은 메커니즘이다. 어떤 둘의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며 에너지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메커니즘이 사유의 중심이어야 한다. 기능은 실행명령이다. 현장에서의 실행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왜 그것을 하는가? 인간의 목적, 의도, 동기, 의지는 개소리다. 탐욕, 야망, 욕망, 쾌락 따위는 개소리다. 단지 그것을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고추가 서니까 하지 안 서는데 하겠냐?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일의 다음 단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는 그러한 연결에 있다. 에너지가 업되고 흥분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새는 날개를 퍼득여서 날아지므로 날고, 말은 네 발을 움직여 달릴 수 있으므로 달리고, 사람은 머리를 써서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한다. 하면 반응이 오고 반응에 따라 다음 행동이 연결된다. 그것이 의미다. 의미는 사건을 연결하여 계속 가게 한다. 되돌아오는 반응이 없으면 하지 않는다. 그것을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다. 이기면 하고 지면 하지 않는다. 이기면 반응이 돌아오고 지면 반응이 없어서 허탈하다. 즉각적으로 반응이 되돌아오는게 메커니즘이다. 되돌아오는 반응이 지렛대가 되어 다음 동작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왜 하는가? 반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왜 사는가? 반응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크고 느린 반응과 작고 빠른 반응 사이에서 인간들이 헷갈려 한다. 역사의 큰 반응을 들을 수 있는 큰 센서를 장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테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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