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모종혁 중국 통신원 입력 2018.04.03. 17:05
3월23일 오전 9시30분 중국의 모든 증권사 객장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상하이(上海)종합지수가 전날보다 3.58%나 떨어진 채 장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장세는 암울했다. 오후 2시18분엔 5.4%까지 폭락했다. 다행히 폐장 직전 기관투자가들의 매입으로 낙폭을 줄여 장을 마쳤다. 이날 2100여 개 상장기업 가운데 86.1%인 1808개사의 주가가 하락했다.
특히 제조업체와 IT(정보기술) 수출기업의 주가 낙폭이 컸다. 그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3월26일 상하이증시는 전날보다 1.12% 하락해 개장했다. 그날은 뉴욕증시의 폭락으로 전 세계 증시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증시의 하락세는 다른 나라보다 컸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22일(현지 시각)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폭탄을 부과한 데 따른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흥분한 中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 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따른 관세 부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투자 제한 등을 골자로 했다. 중국산 수입품 중 5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대미 투자도 전면 제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5040억 달러의 대중 무역적자를 보는데, 이는 미국의 총 무역적자 8000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다”며 “통상법 301조에 따라 대중 무역적자 중 1000억 달러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무역전쟁을 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무엇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무역 보복을 예고했다. 3월23일 중국 상무부는 “당장 3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철강, 돈육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강과 돈육 등 7개 분야, 128개 품목에 15~25%의 고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같은 날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참깨를 줍다가 수박을 잃는다(檢了芝麻, 丢了西瓜)’는 속담을 인용하며 “미국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언론은 미국을 연일 격렬하게 공격했다. 평소 강경 국수주의 논조로 유명한 환구시보가 총대를 멨다. 3월25일 사설에서 “최근 1년여 동안 세계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며 순항 중인 미국 정부에 진정한 훈계가 필요하다”며 “그 역할은 세계 제1의 무역대국인 중국만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비교적 냉정한 논조를 유지하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도 3월26일자 4면 전체를 미국에 대한 비판 기사로 채웠다. 특히 인터넷매체는 미·중 무역전쟁 관련 소식을 실시간 보도하면서 결사항전을 촉구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언론의 움직임과 다르게 중국 정부는 갈수록 차분해지고 있다. 3월25일 이강(易綱) 중국 인민은행장은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포럼에서 “외부 충격이 중국에 전파돼도 은행 체계와 증권·보험 시장에서 유동성 및 가격 조정 통제를 통해 리스크를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 날 익명의 중앙정부 고위 관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목표로 하는 무역조치의 목표는 중국 전체 수출액의 3%에도 못 미친다”며 “관세폭탄이 중국에 주는 경제적 충격은 아주 적다”고 지적했다.
中, 외부의 적 부각…내부 불만 잠재울 수 있어
그렇다면 중국은 왜 언론을 내세워 대미 전운을 고조할까.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첫째, 미국의 관세폭탄 부과 대상 규모와 관세율이 예상보다 낮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선거 유세 내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45%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공약이 현실화될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은 최대 87%나 줄어들고 중국 GDP(국내총생산)는 5%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행정명령의 제재 대상은 항공기·정보통신·기계 등으로 한정됐다. 관세율도 당초 공약보다 훨씬 낮았다.
둘째, 중국의 산업 구조는 과거와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노동집약산업을 앞세워 GDP를 늘리는 데 골몰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고 내실을 다져왔다. 실제 중국은 내수 증진을 꾸준히 추진했고, 첨단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중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35%에서 지난해 19%로 뚝 떨어졌다. 이는 무역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한국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도 중국 경제성장률은 겨우 0.1% 떨어지는 것으로 예상한다.
셋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리더십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으로 자국 영토를 빼앗겼고 20세기 전반엔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었다. 1900년 제국주의 열강이 의화단 운동을 진압한다며 베이징을 점령하고 황궁을 약탈한 사건은 아직까지 중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중국인들은 자국 지도자가 외세의 압력에 굴복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만큼 외부의 충격에 맞설 강력한 지도력을 갈망한다. 실제 미국의 관세폭탄 조치 이후 중국의 SNS는 중국 정부를 응원하는 목소리로 열기가 뜨겁다.
무엇보다 미국과 트럼프라는 외부의 적을 부각시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3월1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삽입하고 ‘국가주석 2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수정 헌법이 통과되자, 중국인들의 불만은 컸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중국인조차 필자에게 “중국이 마오쩌둥(毛澤東)의 1인 장기집권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미·중 무역전쟁은 시 주석에겐 뜻하지 않은 선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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