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공황 vs 21세기 공황, 무엇이 같고 다른가?
저는 2008년말 금융시장의 붕괴 이후로 전세계에 걸쳐 대공황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하에 현재의 공황을 '21세기 공황'이라고 명명한 글을 몇 차례 쓴 적이 있습니다. 지난 시절의 대공황의 경우는 지금까지 '1930년대 대공황'이라고 명명해왔는데, 너무 긴 듯 해서 앞으로는 '20세기 공황'이라고 명명하려 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역사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 공황 역시 많은 점에서 20세기 공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이 같고 다른지를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Since Yesterday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고스럽게 번역해주신 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ㅇ 지금 공황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어느 님께서 토론 중 댓글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지난 20세기 '대공황'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왠지 1929년만 생각납니다. 주식시장 붕괴에 함께 당장 큰 난리가 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모두 '큰일이다'고 인식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932년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에는 '시차'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지난 20세기 대공황에서는 '경제 방임주의'가 주류 사조이다 보니 당시 후버 대통령은 아무런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공황을 인식하기까지 3년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21세기 대공황에서는 금융시장 붕괴 직후부터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썼지요. 그 때문에 공황이 '저강도 공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느끼기까지 시차가 더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샹그릴라 님께서 당시와 지금이 놀랄 정도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책에서 그러한 대목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저에게 인상 깊었던 것 한 가지는 당시 대공황이 일어나자 사회적 풍조에 큰 변화가 생겨서, 기득권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영화, 연극 등이 흥행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2008년말의 붕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드라마나 영화, 책 등에서 기득권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흥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 개그콘서트에서도 그런 내용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을 눈여겨봅니다. (꼰~대 부장이 나오는 코너에서 인턴 여직원의 대사를 눈여겨보신 분 계신가요?) 또한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국수주의, 극우주의에 호소하는 정치가들의 등장해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는 얘기들이 많은데, 정말 미국 경제가 살아났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이라면 트럼프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경제지표로 봐도 미국의 실업률이 회복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고용률을 보면 전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회 풍조의 변화가 지금 목하 공황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2008년말의 붕괴 이후 많은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회복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구체적인 경우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1) 유럽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등 유럽의 취약한 국가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한참 하다가 최근 들어 회복세라고는 하나 0%대의 미약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며, 언제든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독일이 괜찮다고 말들 하는데 그래봐야 1%대 성장입니다. (수출의존형 경제이므로 경기회복의 근본 동인이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유가가 재하락하면 도이체방크가 위험해질 것입니다. 2) 일본 장기 정체 후 아베노믹스로 쥐어짜고 있으나 높은 국가부채 때문에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3) 신흥국 브라질 등 원자재 의존형 신흥국들은 금새 회복해서 높은 성장을 자랑하다가 최근 다시 마이너스 추세를 확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러시아의 경우는 한참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가 현재 0%를 전후하여 엉거주춤한 상태입니다(유가가 하락하면 다시 마이너스 성장할 것). 인도가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인도 경제는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 역시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높은 수출의존도와 과다한 부채, 부동산버블이 문제입니다. 미국이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 역시 수출의존형 경제이므로 경기회복의 근본 동인이 되지 못합니다. 부동산 버블은 내수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4) 미국과 영국 결국 이 두 나라가 괜찮은 정도입니다(이 두 나라는 문화적으로 '영미계'로 묶이기도 하고, 패권국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어서 묶어봤습니다). 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이 두 나라는 '탈제조업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공황기에 보호주의로 돌아서면 유리합니다. 결국 이 두 나라가 보호주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저는 이 점 역시 지금이 공황이라는 간접 증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국의 EU탈퇴는 지금이 공황이 맞다면 영국에 유리한 것이고, 아니라면 영국에 불리한 것입니다). 이 두 나라 경제가 괜찮다지만, 보호주의를 주도해서 괜찮은 것이니 이런 식으로 계속 괜찮은 것은 다른 나라에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나라의 경제 형편이 좋은 것은 경기가 회복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상의 모든 나라들에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정부의 재정지출로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로 인해 국가부채가 턱 밑까지 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 성장이 부진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재 '저강도 공황'이 진행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ㅇ 20세기 공황과 21세기 공황의 시점 비교 1) 금융을 기준으로 보면, 20세기 공황에서는, 1929년 10월에 증권시장이 붕괴한 이후, 1933년 2월에 미국의 은행시스템이 무너졌습니다(그 전에 유럽의 은행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3년 4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현재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취약국들의 은행이 문제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의 은행들이 취약한 상황입니다. 중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경고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현 시점은 20세기 대공황에서 1933년 2월에 은행위기가 닥치기 이전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 정부 재정을 기준으로 보면, 1937-38년의 경기후퇴는 너무 일찍 재정지출을 감축시킨 데 따라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국가부채의 신용 한도를 모두 소진함으로써 재정지출을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재정지출을 감축하게 될 것입니다. 즉 현 시점은 20세기 대공황에서 1937-38년의 경기후퇴 이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ㅇ 향후 전망 1) 미국이 계속 괜찮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보호주의를 주도해서 괜찮은 것이니 이런 식으로 계속 괜찮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을 공황으로 몰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계속 괜찮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국가부채가 100%를 넘어 턱 밑에 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트럼프 정부는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 다른 재정지출을 줄일 예정이니 그 여파가 나타날 것입니다. 셰일 투자붐도 다했고, 고용률도 계속 정체상태입니다(그러므로 실업률 개선은 의미 없습니다). 미국의 총유동성 상황은 별도 글로 차트를 올려드렸습니다. 소득 분배 개선을 통한 유효수요 회복도 미흡한 상태입니다. 결국 미국 경기도 재차 하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해결책은? 해결책의 핵심은 누진세 회복을 통한 소득분배 개선 -> 유효수요 회복입니다(그 외에도 부채의 청산 등 몇 가지 요소가 더 있지만...) '전쟁'은 없어도 됩니다. 전쟁을 통한 생산시설 파괴 운운하는 얘기가 많은데, 생산시설은 기업체가 도산하고 나면 금방 붕괴합니다(경매 넘어간 공장을 한 번 보시면...). 21세기 공황은 20세기 공황에서 배웠습니다. 버냉키의 경우도 즉시 양적완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바마는 즉시 '신뉴딜정책'을 추진했습니다(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못했지만). 20세기 공황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진세를 회복한다고 해서 위헌이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위기가 닥치면 누진세 회복에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단 '증세여력'이 중요한 사항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인류는 실수를 많이 하지만 분명 과거로부터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 대공황은 미국이 20세기 공황에서 겪었던 최악의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세기 공황에서는 미국이 최악의 상황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였기 때문에 중앙의 통제가 미약했고, 고전경제학을 신봉해서 자유방임주의였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도록 방치한 측면이 있습니다. 21세기 공황에서는 상황이 다를 듯 합니다. 미국보다 다른 나라들이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20세기 공황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유럽은 20세기 공황 당시 금본위제의 붕괴를 겪었는데, 21세기 공황에서는 유로의 붕괴를 겪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훨씬 혼란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20세기 공황을 겪으며 미국 연방은 통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는데, 21세기 공황에서 유럽 연방은 분열의 길로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국과 일본 역시 혼란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신: 20세기 공황과 유사하게 21세기 공황에서도 세계 각국이 블럭화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블럭이 최선인지 선택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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