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의 지수 강등과 보호무역[마포강변]
꿈파상은 요즘 대한민국의 민주화 지수가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현실의 미국의 트럼프는 한국의 이명박씨와 판박이라고 봅니다. 하는 짓이나 사유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생각 입니다. 우리는 이명박을 뛰어넘어 그의 아바타인 박근해를 슬기롭게 정리하고 이제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들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미국을 앞서가는 증거라 주장하며, 이 절체절명의 절호의 기회에 반드시 바른 국가의 틀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스크랩] 윤 석 천경제칼럼니스트 미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조사 발표가 나왔다. 이는 그동안 미국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하락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며, 또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미국 내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다. 단순한 일자리 늘리기보단 계층과 구조적 갈등을 개선해야만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국 정부의 신뢰도 하락이 가져온 결과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부설연구소인 ‘EIU(Economic Intelligence Unit)’는 매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한다.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도를 평가하듯 동 기관은 특정국의 민주주의 정도를 평가해 점수로 매긴다.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발표했는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바로 미국 민주주의 지수가 한 단계 강등된 것이다. EIU가 완전한 민주주의 기준으로 삼는 경계는 8.00점인데 2015년 8.05점에서 2016년 7.98점으로 하락하며 ‘완전한(Full)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Flawed) 민주주의’로 퇴행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하락한 걸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트럼프 당선은 미국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었다. EIU는 미국 국민이 정부 기관에 갖는 신뢰가 점차 하락하고 있는 것을 진짜 원인으로 꼽았다. “정부와 선출 권력, 정당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극도로 낮은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것은 장기적 추세이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전부터 계속됐다.” 대중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 대해 평론가와 매체들은 정치적 경험이 짧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그에게 투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는 분노한 반정치적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필함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즉, 민주·공화 두 주요 정당이 더 이상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에게 호소함으로써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인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1950년대 말부터 하락해왔다. EIU가 인용한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 자료에 따르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거의 20% 이하에 머물렀다. 80%에 달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믿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결과이다. 이런 하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주요 이벤트가 미국인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베트남 전쟁·워터케이트 사건·이라크 전쟁·2008년의 금융 위기 등으로 미국인들은 전쟁과 금융 위기에 심각하게 노출됐다. 이에 대한 반감이 정부와 기관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에 더해, EIU는 점증하는 소득불평등 또한 불신이 팽배해지는 주요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정치인이 대중들의 경제적 곤궁이나 난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믿는 것이다. 미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가 펴낸 2013년 보고서를 보면 상위 1%의 부자들은 미국 전체 소득의 20.1%를 보유하고 있다. 도이치방크가 낸 최근의 보고서를 보면 상위 0.1%가 하위 90%에 속한 집단이 가진 부와 비슷한 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 자료 역시 지니계수를 이용해 미국의 불평등을 분석했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수단이다. 지수는 제로에서 1까지로 표현하는데 제로는 완전평등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소득을 가진 상태를 의미하며 1은 완전 불평등 상황을 뜻한다. 다시 말해,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독일·프랑스·스웨덴과 같은 선진 경제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지니계수는 낮다. 반대로 러시아·브라질·남아프리카와 같은 신흥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은 낮고 지니계수는 높다.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스웨덴·노르웨이와 같은 선진 유럽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니계수는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수준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부유하지만 국민 간 소득불평등은 신흥국 수준이라는 얘기다. 지난 미국의 대선은 이런 원인으로 정치 문외한이자 포퓰리스트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초래했다. 트럼프는 이겼다. 정치 무능은 기존 정치인 탓으로, 불평등의 심화는 외부 탓으로 돌림으로써 미국의 실패를 외부로 투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공약의 핵심인 보호무역의 등장그 도구로 쓰인 게 보호무역이었다. 보호무역은 트럼프 대선 공약의 핵심이었다. 그가 보호무역을 들고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경제력이 점차 축소되고 미국인들의 삶이 고단해지는 이유가 모두 기존 정권의 자유무역 옹호에 있다는 점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자유무역 때문이며 그로 인해 미국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쨌든 그는 대중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을 실시한 이유 역시 ‘일자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이 무역에 관한 이론을 설파하기 이전부터 인류는 무역을 해왔다. 이는 자연 발생적 현상이다. 자유무역 협정은 이런 자연스러운 인류의 욕구를 ‘필요’에 의해 가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원했고 무엇보다 힘을 가진 국가들이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구조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보조협정 조인식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유럽 정부의 몰락에서 배울 게 있다면, 완전히 통제된 사회는 오늘날 불고 있는 경제·기술·정보 흐름의 변화 바람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이들 변화를 포용하고 내일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략) 이 협정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 이웃과의 무역에 감사를 표한다. 이것이 그것을 지지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돌아보면, 1990년대 초에도 미국이 자유무역을 강하게 추진한 이유 역시 일자리 창출에 있었다. 이는 2016년 트럼프가 제안한 해법과 정반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이다. 그가 택한 보호무역 즉, 자유무역을 부정하는 오늘의 행위 역시 ‘일자리’를 위한 것이란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증거는 충분하다. 중국의 등장이 미국 임금과 일자리에 영향을 줬다는 논문들도 있다. 2016년 1월, 데이비드 아우터(David Autor), 데이비드 돈(David Dorn) 그리고 고든 한손(Gordon Hanson)은 미경제조사국에 이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한다. 제목은 ‘중국 쇼크’이다. “중국발 무역 쇼크가 시작된 이후 최소한 10년 동안 임금과 노동참여율이 억제되고 실업률이 높게 유지되면서 지역 노동시장의 조절력은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무역 충격에 노출된 노동자의 이직률이 더 커졌으며 생애 소득이 감소했다. 국가 수준에서 고용은 중요 경쟁에 노출된 산업일수록 하락했다.” “만약 소득불평등이 미국인들의 정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켰다면 계속되는 경제 발전은 앞으로 이런 추세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실업률은 5% 이하로 하락했고 시간당 평균임금은 오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경제 회복이 소득불평등 완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은 ‘완전한 민주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 보호무역에 따른 일자리 창출의 이면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는 자유무역 때문만일까? 그러나 이것이 과장돼서는 안 된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은 이를 증거로 이용해 자유무역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유무역협정 이후에 제조업 고용이 줄었다면 이는 분명 자유무역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전부터 이미 미국의 제조업 고용은 하락하고 있었다. 제조업 고용이 하락세로 돌아선 건 1970년대 말부터였다. 반면, 생산성은 늘고 있다. 고용 감소와는 반대로 제조품 생산은 늘고 있다. 볼스테이트(Ball State)대학의 경제경영연구소가 2015년 6월에 펴낸 ‘미국 제조업의 신화와 현실’이란 논문은 이런 현상을 파헤치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2000년대 초보다 더욱 극적인 생산성을 보인다. 논문의 저자는 오늘날 1천200만 명의 제조업 종사자가 2000년에 2천100만 명이 했던 생산성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과거보다 절반의 인력만으로도 과거와 같은 생산성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사람이 덜 필요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미국에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의 80%가 기술의 진보로 이루어진 것이란 놀라운 분석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면, 제조업 부문의 고용은 생산성 증가로 인해 하락세를 보인다. 제조업 고용 충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생산성 증가에 있다. 다시 말해, 자동화의 여파로 인간이 일자리에서 밀려난 것이지 결코 자유무역협정으로 일자리가 줄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와 미국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명분으로 보호무역을 강행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지만 이에 따라 미국은 손해를 볼 수가 있다. 인건비가 경쟁국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제조품의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노동원가는 실업률이 하락하면서 오르게 될 것이며 미국의 수출 경쟁력은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다. 미국의 일자리는 어느 정도 보호가 되겠지만 미국의 소비자와 기업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은 보호무역을 강화함으로써 상대국과의 연대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은 자국민의 불만을 외부로 투사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정치권은 스스로 자신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일자리와 불평등 해소를 이유로 자유무역을 부정하지만 그것을 애초에 태동시킨 건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포퓰리스트는 일자리를 강조하지만 일자리 감소는 온전히 자유무역 때문이 아니다. 자동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주범임을 잊으면 안된다. EIU가 미국 민주주의 부활에 필요한 요건이라고 지적한 제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약 소득불평등이 미국인들의 정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켰다면 계속되는 경제 발전은 앞으로 이런 추세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실업률은 5% 이하로 하락했고 시간당 평균임금은 오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경제 회복이 소득불평등 완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국은 ‘완전한 민주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 정치인은 일자리를 이유로 대중을 현혹하기보다 그들의 소득을 진작시킬 수 있는 분배 등 근본 대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분열로 치닫고 있는 계층, 국가 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다. 또한 미국이 ‘완전한 민주주의’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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