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 입단이 유력한 넥센 4번 타자 박병호. 박병호는 야구실력만큼이나 인성도 좋은 선수다. 그래서 갖은 고난을 뚫고 KBO리그 최고 타자로 거듭난 이후 미국 무대 도전에 성공한 것일지 모른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박찬호.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도 한국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일지 모른다. 추신수(텍사스), 류현진(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같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도 탄생하기 어려웠을 거다. ‘박찬호’라는 개척자가 있었기에 한국야구는 세계야구의 변방에서 좀 더 중앙에 가까운 위치로 이동했고, 경기력과 야구 인프라도 몇 단계 성숙해질 수 있었다.
모든 개척자가 그랬듯 박찬호도 엄혹한 현실과 싸워야 했다. 가뜩이나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했던 1990년대 초중반은 아시아 야구선수가 극히 적었을 때다. 정직하게 말해 기존 미국, 중남미 선수들이 봤을 땐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박찬호는 마운드 위의 상대 타자만큼이나 국적, 인종의 편견에 둘러싸인 팀 동료들과도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적은 ‘언어’였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땐 영어를 못하거나 미국 음식을 먹지 못하면 계속 야구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지금은 한국 선수들이 영어를 좀 못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한국,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하지만, 제가 루키 땐 한국어를 쓰면 당장 몇몇 팀 동료가 ‘너 영어로 이야기하라’고 역정을 냈어요.” 박찬호의 회상이다.
박찬호가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한 ‘사건’도 그즈음 터졌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서 뛸 당시 팀 동료 가운데 한 명이 박찬호에게 “너한테 또 마늘 냄새가 난다”며 껌 종이를 집어 던진 것이다. 만약 그때만 그랬다면 박찬호는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도발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다 참다 폭발한 박찬호는 그 선수와 대판 주먹다짐을 벌였다. 누가 봐도 인종차별 발언을 한 팀 동료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구단은 박찬호에게까지 책임을 물었다. 그 후 박찬호는 한국 음식을 끊은 채 한 달 동안 치즈만 먹었다. 그리고 동시에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그 사건 이후 밤마다 저 혼자 문장을 만들면서 영어공부에 매달렸어요. 영어 콤플렉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 일로 무척 상처받았거든요. 네, 간절했어요. 제가 실수하면 당장 공격이 들어오니까. 왜 그렇지 않겠어요? 내 경쟁자 약점이 영어를 못하는 거라면 당장 그쪽으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겠어요? 분명한 건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나 자신이 성장하고, 성공하려면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걸 알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네,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거였어요.”
절벽에 서야 산의 높이를 알듯 인간은 필요성을 절감할 때 비로소 욕구를 행동으로 옮기는 법이다. 박찬호가 그랬다. 그는 미국야구 무대에서 살아남고자 영어를 익혔다. 그의 진지한 노력으로 어느덧 박찬호는 ‘영어를 잘하는 선수’로 거듭났고, 여기다 출중한 성적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에서 건너온 이방인’이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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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투수로 뛸 당시의 장면(사진=박찬호)
# 송승준도 마이너리그 시절 영어 실력이 좋았다. 그 역시 절박함이 그를 ‘영어의 바다’로 이끌었다. 송승준은 “잘할 땐 모르지만, 조금만 부진하거나 공이 좋지 않으면 구단과 코칭스태프부터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며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구단 눈에 들지 못한다는 걸 수없이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특히나 아플 때 영어가 더 간절했다. 송승준은 아파도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하면 몸이 좋아질 수 있는지 코칭스태프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 통역도 그때뿐이었다. 한 사람 거쳐 전달되면서 말의 의미가 훼손되고, 훼손된 말은 오해로 이어지게 일쑤였다. 송승준은 다짐했다. “통역 없이 내 힘으로 이야기하겠다”고. “내 입으로 직접 내 생각을 전달하겠다”고.
송승준은 통역 없이 생활했다. 언어 소통이 잘 안 돼 멀리했던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전을 찾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동료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송승준은 동료들과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회화 실력이 좋아졌다. 코칭스태프에 자기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데도 별 지장을 받지 않게 됐다. 비록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진 못했지만, 송승준은 “영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미국야구 전반에 관한 흐름과 최신 기술을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며 “영어를 못하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면 야구만 잘하다 왔겠지만, 영어를 배운 덕분에 빅리그 마운드는 밟지 못했어도 선진야구를 더 깊이 경험하고, 어느 정도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생활에 대해 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언급했듯 박찬호와 송승준은 “야구에만 매달리는 건 빅리그 성공의 진정한 열쇠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야구 실력을 쌓는 일 만큼이나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만의 주장도 아니다. 미국야구를 경험한 선수 누구나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거나 현재 뛰는 일본인 선수 가운덴 두 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가 꽤 된다.
일본인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 '개척자'로 꼽히는 노모 히데오(사진=LA 다저스)
# ‘일본의 메이저리그 개척자’ 노모 히데오가 대표적이다. 노모는 은퇴할 때까지 영어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필요하면 통역을 대동해 일본어로 했다. 지난해 박찬호와 공동 수상했던 ‘야구 개척자상’ 시상식 때도 그는 식장에 불참한 대신 일본어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유창한 영어로 장내를 ‘감동의 숲’으로 만든 박찬호와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실생활에서도 노모의 영어 실력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일본에서 만난 일본야구전문 통역사는 “노모는 빅리그 경험이 쌓이면서 ‘영어로 듣는 덴 큰 지장이 없었지만, 영어로 말하는 덴 줄곧 어려움을 느꼈다”며 “그러나 영어 때문에 노모가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되고, 빅리그에서도 호투를 펼친 노모는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박찬호, 송승준에 비해 영어에 대한 절박함이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모 이후 미국 무대를 밟는 일본 선수들도 일본에서 유명했건 무명이었건 대부분 영어실력은 떨어졌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영어 실력이 부쩍 향상된 선수 역시 손에 꼽을 정도다. 스즈키 이치로는 여전히 일본어로 인터뷰하고, 우에하라 고지를 비롯한 다른 일본인 선수들도 일본어 인터뷰를 고집하게 마련이다. 최근 들어 다르빗슈 유나 가와사키 무네노리처럼 적극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가능한 한 영어 인터뷰를 하려는 선수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그친 듯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은 ‘영어의 바다’에 빠지길 주저했던 것일까. 일전 일본야구를 취재했을 때 메이저리그 특파원으로 오랜 세월 미국에 머물렀던 한 베테랑 일본기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한국 선수들은 다들 적극적이에요. 미국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영어를 배우고, 서툰 영어라도 먼저 말을 거는 적극성을 보여요. 문장과 문법이 엉터리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죠. 야구만큼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이 확실히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일본 선수 대부분은 아니에요. 미국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법이 별로 없어요. 개인교사를 두고 영어를 배울진 몰라도 공식 인터뷰에선 일본어를 고집합니다. 신조 쓰요시 같은 친구는 자기가 영어를 배우는 대신 동료 선수들한테 일본어를 가르쳤어요(웃음). 일본 선수들이 수줍어하는 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말하는 의미가 온전하게 전달되길 원해서라고 봅니다. 서툰 영어로 말했을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하는 거죠.
한마디로 한국 선수들이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듭하면서 미국야구에 적응하자’라면 일본 선수들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미국야구에 적응하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 박병호(사진=넥센)
# ‘KBO리그 최고 거포’ 박병호(넥센)의 미국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1천285만 달러’라는 높은 포스팅비를 기록한 박병호는 단독입찰권을 손에 쥔 미네소타 트윈스와 입단 협상에 들어갔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내년 시즌 박병호는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고 미국 무대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야구관계자는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연착륙에 성공하리라 기대한다. 원체 지금껏 보여준 성적이 대단한 데다 실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성공을 박병호 연착륙 예상의 근거로 삼는 이도 많다. 항상 노력하고, 매사 겸손한 자세야말로 박병호가 손에 쥔 가장 확실한 무기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박병호는 빅리그 진출을 대비해 ‘조용한 준비’를 해왔다. 영어공부가 그것이다.
올 시즌 초반부터 박병호는 조용히 영어 과외를 받았다. 박병호의 팀 동료는 “시즌 중 (박)병호 형이 구장으로 출근하기 전, 영어학원에 가거나 개인교사로부터 1대 1 수업을 받는 식으로 늘 1시간씩 영어공부를 한 것으로 안다”며 “회화뿐만 아니라 문법도 같이 배우는 등 병호 형이 영어공부에 꽤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박병호의 영어공부는 시즌이 끝난 뒤에도 멈출 줄 몰랐다. 박병호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소속팀 넥센이 두산에 패했음에도 꾸준히 목동구장에 출근해 개인훈련에 매달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야구에만 올인한 건 아니었다.
그는 개인훈련을 시작하기 전인 오전 11시면 구장을 찾아온 개인교사와 함께 어김없이 영어공부에 들어갔다. 박병호의 ‘영어공부 삼매경’은 프리미어 12 대표팀 멤버로 합숙훈련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공부 결과가 나름 좋았는지 팀 동료 라이언 피어밴드는 박병호의 영어를 들을 때마다 연방 “굿, 굿(Good)”했다는 후문이다.
기자의 기억을 더듬는다면 박병호의 ‘영어 삼매경’은 올 시즌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지 않나 싶다.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박병호는 팀 내 외국인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포스트 시즌까지 외국인 선수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다. 지갑을 털어 외국인 선수들에게 맛난 걸 사주는 건 기본이었다. 팀 적응에 애를 먹는 외국인 선수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박병호의 몫이었다.
선의와 호의로 외국인 선수에게 다가간 박병호는 팀 내 외국인 선수들의 KBO리그 적응에 큰 도움을 줬다. 덕분에 자신도 그들의 장점과 노하우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가 박병호의 미국 무대 연착륙을 기대하는 건 그가 ‘최고의 선수’라서가 아니라 항상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매사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조용히 영어공부를 하듯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가 미국에서 꿈꾸는 좋은 날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박병호의 건투와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