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외국인 타자 마르테(사진
왼쪽부터)와 두산 외국인 투수 니퍼트(사진=kt/두산)
# 두산과 kt.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리그
꼴찌팀이다. 두산이 1982년 원년 멤버라면 kt는 올해가 1군 데뷔시즌이었던 막내팀이다. 성적과 역사는 다를지 몰라도 올 시즌 두 팀의
공통점이 있다면 뛰어난 외국인 선수의 활약을 꼽을 수 있다. 두산은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 kt는 외국인 타자 앤디 마르테가 그
주인공이다.
두 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좋은 인성과 자신만큼이나 팀을 위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많은 돈을 제시하는 일본 대신 한국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 큰 공통점이 있다. 먼저 니퍼트다.
#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니퍼트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두산이 14년 만에 우승하는데 절대적 기여를 했다. ‘신(神)의 어깨’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일까. 니퍼트의
재계약을 요구하는 두산팬들이 차고 넘친다. 기자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던 잠실구장에서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는 니퍼트를 보며
2011년 11월을 떠올렸다.
그해 니퍼트는 29경기에 선발 등판해 187이닝을 던져 15승 6패 평균자책 2.55, 탈삼진 150개를 기록했다. 다승 리그 3위, 평균자책·이닝·탈삼진은 2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이었다. 구단이 기대했던 기록 이상의 성과였던지라, 두산은 어떻게든 니퍼트를 잡고 싶어 했다. 그즈음 두산 김태룡 단장도 “니퍼트만 한 외국인 선수를 어디서 구하겠느냐”는 말로 재계약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런 니퍼트를 원한 건 두산만이 아니었다. 대한해협 건너 일본 프로팀에서도 니퍼트를 주목하고 있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똘똘 뭉친 이 일본팀은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요미우리는 니퍼트의 에이전트에 이미 추파를 던진 상태였다. 웬만한 일본야구관계자보다 더 일본야구를 잘 알던 김 단장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일본 최고의 인기팀이자 ‘돈 싸움’이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요미우리였다.
‘몸값’으로 승부한다면 두산은 요미우리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걸 두산도 잘 알고 있었다. 두산 내부에선 “이런 좋은 선수를 이렇게 놓쳐야 하나”하는 아쉬움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변수가 튀어나왔다. 요미우리 수뇌부에서 내분이 발생한 것이었다. 요미우리 기요다케 에이지 구단 대표와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은 서로 가시 돋친 인신공격을 주고받으며 구단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 이들의 대립으로 구단의 모든 행정이 올스톱한 건 당연한 결과. 외국인 선수 영입도 예외는 아니라, 요미우리 스카우트팀은 몇 번이나 니퍼트의 에이전트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내분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니퍼트의 마음도 바빠졌다.
두산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구단 운영 경험이 풍부한 김승영 사장과 김 단장은 ‘이때야말로 니퍼트를 잡을 호기’라 판단했고, 돈도 돈이지만, 돈을 능가하는 그 무언가를 무기로 삼기로 했다.
“돈으로 접근하는 것보단 마음으로 다가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 단장의 회상이다.
김 사장과 김 단장은 즉시 미국으로 날아갔다. 니퍼트를 직접 만나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시카고에서 비행기에서 내린 두 이는 피츠버그까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고, 피츠버그에서 차로 3시간가량을 달려 니퍼트가 묵고 있던 호텔에 도착했다. 니퍼트는 두 이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온다는 소린 들었지만, 정작 두 이가 자신을 찾아오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두 이는 자신들의 방문으로 크게 감동한 니퍼트에게 “계속 우리 팀에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딸의 건강을 걱정하던 니퍼트를 향해 슬그머니 ‘딸 카드’를 빼들었다.
“니퍼트의 딸이 한국을 참 좋아했어요. 미국에 있으면 니퍼트한테 ‘아빠, 한국 언제 가? 빨리 가면 안 돼’하고 보챌 정도였죠. 그래 제가 니퍼트에게 그랬습니다. ‘딸이 저렇게 한국을 좋아하는데 왜 일본에 가려고 하느냐. 넌 딸 때문에라도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요(웃음). 효과가 있었는지 니퍼트가 고갤 끄덕이더군요.”
결국 니퍼트는 일본행을 포기했다. 요미우리 내분이 현재진행형이었던 데다 두산 수뇌부의 미국 방문으로 마음이 크게 흔들린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딸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할 때 한국에 남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판단한 터였다.
김 단장은 “만약 그때 사장님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지 않았다면 니퍼트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때 고생한 게 지금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 시즌 무시무시한 방망이를 휘두른 마르테-블랙
콤비(사진=kt)
# 니퍼트가 요미우리의 내분과 두산
수뇌부의 적극적 구애로 한국에 잔류했다면 마르테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으며 한국 잔류를 결심한 케이스다.
마르테는 올 시즌 타율 .348/출루율 .414/장타율 .569/20홈런, 89타점을 기록했다. 외국인 타자 가운데 에릭
테임즈(NC)와 함께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나 원정 타율 1위(.365), 좌투수 상대 타율 2위(.381), 리그 3점대 평균자책 투수
상대 타율 1위(.398)에서 알 수 있듯 알토란 같은 성적을 보여줬다.
마르테가 없었다면 kt의 1군 데뷔 시즌 성적이 훨씬
참혹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원체 성적이 좋아선지 kt는 일찌감치 마르테와의 재계약을 준비했다. kt 조범현 감독도 “다른 외국인 선수는 몰라도 마르테만은 꼭 잡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때 변수가 나왔다. 바로 일본 프로팀 한신 타이거스였다. 2016시즌을 대비해 새로운 외국인 타자를 물색하던 한신은 kt에서 ‘펄펄’ 나는 마르테에 주목했다.
사실 한신이 마르테에 주목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kt 외국인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이충무 차장의 회상이다.
“마르테는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뛸 때부터 제가 지켜봤던 선수였어요. 타격, 수비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죠.
거기다 여느 도미니카 선수들과는 달리 굉장히 인성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하는 친구였어요. 그래 마르테를 영입하려고 도미니카로 날아갔는데 그때
한신 스카우트를 만났습니다. 한신 스카우트가 마르테는 관심 없어 하는 척하면서 다른 선수 칭찬을 하더군요. 그때 ‘아, 이 친구가 노리는 선수가
마르테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신 역시 우리처럼 3루수가 필요했으니까요. 결국 마르테가 우리 팀에 오긴 했지만, 한신은 그 이후에도
마르테를 계속 주목했습니다.”
올 시즌이 끝날 무렵. 한신은 마르테 영입에 나섰다. 한신 스카우트들이 직접 방한해 꼼꼼하게 마르테 보고서를 작성한
터라, 한신 내부에선 마르테에 대한 평이 꽤 좋았다. 본격적인 ‘마르테 영입전’에 돌입한다면 kt에서 주던 몸값보다 두세 배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마르테의 환심을 살 계획을 세웠다. 마르테의 에이전트 역시 한신의 움직임에 꽤 고무돼 있었다.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9월 23일 한신 나카무라 가즈히로 단장이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이었다. 오승환 영입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팀 내 주요 외국인 선수 선발을 진두지휘했던 나카무라 단장의 급사로 한신 외국인 스카우트 영입작업은 올스톱했다. 마르테의 일본행을 적극적으로 알아봤던 에이전트 역시 난감한 처지가 돼버렸다.
kt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차장은 “평소 마르테가 ‘난 한국이 좋다. 일본팀에서 지금 연봉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부르지 않는다면 조금 손해 보더라도 kt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마르테도 마르테지만, 그의 와이프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남편의 kt 잔류를 설득했다”고 귀띔했다.
효과는 좋았다. 마르테의 아내는 “계속 한국에 살았으면 좋겠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르테는 아내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사실 마르테의 아내는 kt의 친절함에 무척 감사해 하던 차였다. kt는 마르테 가족에게 여성 직원 한 명을 붙여 시즌 내내 그들의 한국 정착을 도왔다. 워낙 가족처럼 다가왔기에 마르테 가족은 이 직원에게 많은 의지를 했고, 덕분에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카무라 단장의 작고로 어수선했던 한신은 다시 외국인 선수 영입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마르테는 kt로 마음이 기운 터였다. kt의 끊임없는 설득과 가족의 요구가 주효한 결과였다. 결국 마르테는 10월 26일 kt와 재계약하면서 한국 잔류를 선언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두산 유니폼을 입고 통산 58승을 기록한
니퍼트. 실력만큼이나 인성도 뛰어난 선수다(사진=두산)
# 니퍼트와 마르테는 투·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외국인 선수들이다. 하지만, 두산과 kt가 두 선수와 함께하길 계속 원한 이유는 뛰어난 야구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선수의 좋은 인성과 ‘나보다 팀을 우선하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높이 산 까닭이었다.
정규시즌에서 니퍼트는 여기저기 아프면서 좋은 공을 던지는데 실패했다. 2011년 KBO리그 무대를 밟은 이후 처음으로 5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했고, 이닝도 90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포스트 시즌은 몰라도 정규 시즌에선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부상으로 부진했던 니퍼트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올 시즌 니퍼트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까 굉장히 속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처럼 누굴 원망하거나 부상 탓을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대신 저만 보면 연방 ‘미안해요, 미안해요.’ 했어요. 얼굴에 정말 미안한 기색이 새겨져 있더군요. 그걸 보니까 저도 니퍼트한테 괜히 미안해지고. 그때마다 ‘신경 쓰지 말고 몸 잘 만들어라. 가을에 잘 던지면 된다’고 어깨를 다독거려줬습니다.”
두산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며 니퍼트를 몰아세우기보단 그가 천천히 재활하도록 시간적 여유를 줬다. 그게 효과를 냈다. 포스트 시즌에서 니퍼트는 올 시즌 가장 강력한 공을 던졌다.
김 단장은 “포스트 시즌에서의 니퍼트 공은 2011년 최전성기 때의 그 공과 똑같았다. 푹 쉬면서 에너지를 축적한 까닭인지 정말 좋은 공을 던졌다”며 “김태형 감독이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고, 충분히 휴식시간을 준 게 포스트 시즌 호투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두 번의 옆구리 부상에도 마르테는 좌절하지 않고, 부상을 극복했다. kt
코칭스태프는 마르테를 가리켜 '프로야구선수의 표상'이라고 칭찬하길 주저하지 않는다(사진=kt)
마르테 역시
‘인성’과 관련해선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선수다. 마르테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내국인 선수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던 이였다. ‘강훈’으로 유명한
조 감독마저 “지금까지 감독 생활하면서 저렇게 성실하게 팀 훈련을 소화하는 외국인 선수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규 시즌 때도 그랬다. 마르테는 팀 동료 댄 블랙을 설득해 자율훈련을 거듭했고, 조금만 부진하면 다음날 가장 일찍 구장에 나와 배트를 휘둘렀다. kt 이충무 차장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5월 초였을 거예요. 마르테가 옆구리를 다쳤을 때에요. 같은 부위를 두 번째 다친 터라, 꽤 부상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다치고서 클럽하우스에 있는 마르테를 찾아갔더니 ‘엉엉’ 울고 있는 거예요. ‘왜 많이 아프냐? 큰 병원으로 갈까?’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게 아니라 팀에 또 한 번 도움을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난다’고 하더군요. 마르테는 그런 선수예요.”
마르테가 치명적 부상을 입었을 때 일부에선 “가뜩이나 팀 성적도 안 좋은데 외국인 타자까지 말썽이냐. 빨리 외국인 타자를 교체해서 팀 성적 향상에 나서라”고 조언했다. 구단도 대체 외국인 타자를 알아볼까 고민했다. 어떤 이는 “트레이드를 통해 마르테의 공백을 메우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러나 kt는 마르테를 버리지 않았다. 내국인 선수도 보내길 주저하는 일본 돗토리 재활센터로 마르테를 보내 재기를 도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르테는 예상보다 빨리 재활에 성공한 뒤 팀에 합류해 이전과 같은 맹활약을 펼쳤다. 만약 마르테의 기능적 면만 봤다면 kt는
이렇듯 마르테에게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니퍼트와 마르테 모두 구단의 기다림과 선수에 대한 애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다.
니퍼트가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하는
장면(사진=두산)
# 니퍼트는 한국시리즈 우승 영광과
함께 재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두산팬은 니퍼트가 내년에도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길 바란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이만한 투수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로 강한 재계약 의사를 밝히고 있다.
걸림돌이 있다면 이번에도 일본 프로팀이다. 일본야구 관계자들은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니퍼트 영입에 꽤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선 “관심을 넘어 니퍼트 영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과연 2011년처럼 니퍼트가 일본행을 뒤로하고, 계속 두산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두산 김 단장의 답변은 이랬다.
“박 기자. 미국이 아니라 달나라라도 쫓아가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