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노컷뉴스|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입력 2015.07.17 06:00|수정 2015.07.17 10:28

 

 야후돔 가는길이 부산 사직구장이나 광주 챔피언스필드 가는길 보다 쉬웠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30분이면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야후돔까지 전철타면 휘리릭 도착이다.

 

넥센히어로즈 열혈팬인 아빠와 아들은 올해 홈 전경기 직관(직접관람)을 결심했다.

경기일정을 살폈다. 6월 9일에서 11일까지 넥센은 광주 원정경기다.

 

같은 기간 이대호 선수가 속한 소프트뱅크 호크스 일정표를 보니 홈경기 일정이다.

게다가 오승환 선수의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다. 이대호와 오승환이 맞대결을 펼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가.

 

(사진=김규완 기자)
(사진=김규완 기자)

 

더 따질 것도 없이 바로 비행기와 숙소·야후돔 입장티켓을 예매했다.

 

 

◇ 첫날부터 오승환을 만나는 행운

 

첫날 호텔은 ANA크라운플라자 호텔, 야후돔과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야후돔에 붙어있는 힐튼씨호크 호텔을 예약하지 못해 첫날만 지내기로 한 호텔이다.

 

쇼핑타운인 캐널시티를 구경하고 느지막이 돌아오는 길에 호텔 정문 앞이 어수선하다.

웬일인가 싶어 다가가보니 한신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한신팬들 수십명이 몰려있다.

 

"헐, 이게 뭐람?" 재빨리 호텔 안으로 들어가 짧은 일본말로 직원들에게 물으니 원정팀인 한신타이거즈 선수들이 크라운플라자 호텔에 묵는단다.

 

아들은 이 말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응원 문구판을 꺼내든다. '끝판왕 오승환'.

한국에서 아들이 전날 밤 직접 제작한 것이다. 오승환을 일본에서 직접 만날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프런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아내가 "오승환이다"를 외쳤다.

 

(사진=김규완 기자)
(사진=김규완 기자)

 

오승환 선수가 아들이 든 응원 문구를 쳐다보고는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잠시 멈칫한다.

 

아들과 내가 입은 유니폼이 한신 타이거즈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도 아닌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이었던 것. 눈치를 챘지만 바로 사진요청을 했다. 흔쾌히 응해준다.

 

이날은 오승환 선수가 소프트뱅크 타자 6명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세이브를 올린 날이다. 그렇게 첫날부터 이대호 선수가 아닌 오승환 선수를 만났다.

 

 

◇ 야후돔의 웅장함에 입이 '쩍'

 

다음날 야후돔을 찾았다. 정확한 이름은 후쿠오카 야후오크돔이다.

우리가 묵은 힐튼호텔과 길 하나로 연결돼있다. 호텔은 경기관람을 위해 찾은 양 팀 팬들로 빈방이 없다.

32층 객실에서 내려다보니 바다를 끼고 있는 야후돔의 지붕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야후돔 앞에서 서니 시설의 웅장함과 관람객 위주의 다양한 편의시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목동구장이 너무 초라하다. 우리 한국야구도 이런 제대로 된 돔구장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꿈틀한다.

넥센도 내년에 고척 돔구장으로 간다고 하지만 웅장함만큼은 못 미칠 것 같다.

새로 짓는 고척돔이 1993년 지어 20년이 넘은 야후돔만도 못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다만, 야후돔의 주인인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주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씨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사진=김규완 기자)
(사진=김규완 기자)

 

 

◇ 야후돔에 이대호는 없었다

 

야후돔에 또 하나 부러운 것이 경기장 옆에 붙어있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매장이다.

웬만한 한국 쇼핑센터 크기다. 들어가서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어마어마한 용품들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팀 선수들의 유니폼은 물론 응원용품까지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용품들에 놀랐다. 족히 100여 가지는 넘을 듯 했다.

 

우리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의 경우 경기장 안 구멍가게 같은 매장에서 기껏해야 20여 가지 용품을 팔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 놀라움은 그 많은 용품 가운데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대호 선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치카와 등 일본 유명 스타 선수들의 마킹(유니폼 뒤에 선수이름과 등번호를 붙이는 것) 유니폼은 넘쳐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대호 선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들과 나는 이대호 이름이나 마스코트가 새겨진 용품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시간이 가는 만큼 보이지 않는 이대호 유니폼 때문에 서서히 화가 난다.

 

"이대호 마킹 유니폼 구다사이" 직원에게 물었다. "나이데스" 없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하시면 유니폼을 사서 매장입구 쪽에 있는 마킹 코너에서 이름을 새겨넣으란다.

 

"이대호 마스코트 제품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선수들과 함께 새겨진 옷이나 응원 도구 밖에 없다고 한다.

 

아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빠, 이대호가 4번타자 아니야?", "작년까지는 4번이었고 올해는 5번이야, 임마" 답하는 나도 기분이 나쁘다. 이대호 선수가 최고 성적을 내는 만큼 최고인기를 누릴 것이라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러던 도중, 한 직원이 이대호 등번호가 적힌 티를 어디선가 들고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대호 선수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 선수들의 경우에도 용품들이 거의 없었다. 티를 사 입고 경기장 안에 들어갔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니 어마어마한 내부시설에 또 한번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잠실구장이 기껏해야 3만명이 들어가는데 3만 5천명의 관중이 돔구장에 앉아있다니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게다가 평일인데 만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일본 관중도 한국 관중처럼 저마다 좋아하는 선수 이름이 새겨진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입고 있다. 역시 이대호 이름은 없었다.

 

나는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그냥 다시 꺼내입기로 했다. 옆에 있는 일본팬이 어느 팀인지 몰라 갸우뚱하며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김규완 기자)
(사진=김규완 기자)

 

공수교대 시간에 복도로 나갔다가 드디어 이대호 선수의 사진을 발견했다. 소프트뱅크 구단측이 소속 선수들의 사진을 전시해놓았는데, 이대호 선수는 외국인 선수 명단 쪽에 걸려있었다.

 

일본 관중들의 응원문화는 국민성을 보여주듯 질서정연하다. 우리 한국처럼 자유분방하고 요란하지 않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는 홈팀의 홈런이 나와도 웬만해서는 소리만 지르지 벌떡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하고 괴성을 지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일어나 응원하는 사람들은 외야 센터 쪽에서 따로 모여 응원한다. 흔드는 응원용품, 구호, 동작, 노래까지 기계처럼 반복한다. 마치 북한 마스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부자는 이대호가 타석에 설 때마다 일어나 이름을 외치고 미친 듯이 응원했다. 옆자리 관중이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캉꼬쿠까라데스"(한국에서 왔습니다)였다.

 

 

◇ 그래도 이대호가 없으면 소프트뱅크는 없다

 

이대호가 누구인가?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전반기를 모두 마친 15일 현재 퍼시픽리그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팀 내 공헌도 1위가 이대호 선수다.

 

타율 0.331, 19홈런, 60타점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타율은 퍼시픽리그 3위, 홈런과 타점은 4위다. 장타율은 0.603으로 나카무라 다케야(니혼햄 파이터스)에 불과 8리 뒤진 2위다. 출루율도 0.410으로 3위에 올랐다.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상위권이다. 팀 4번 타자인 우치카와 세이치보다 훨씬 성적이 좋다.

 

이런 이대호 선수의 유니폼을 매장에서 살 수 없다니. 외국인 용병에 대해 배타적인 일본 야구문화를 감안하더라도 좀 섭섭하다.

 

17일과 18일 열리는 올스타전 출전도 불발됐다. 이대호는 올스타전 팬 투표 결과 퍼시픽리그 1루수 부문 3위에 그쳤다. 선수단 투표나 감독 추천선수에도 끼지 못했다.

 

오승환 선수만 센트럴리그 마무리투수 부문 3위에 그치고 감독추천으로 올스타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도 이대호가 없으면 소프트뱅크는 지금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일본시리즈를 우승하고도 강한 투수력에 비해 '물 타선'을 고민하는 소프트뱅크의 해결사는 이대호다.

 

이대호의 유니폼을 보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했지만, 야구광 부자의 가슴 속에 이대호 이름 석자를 강하게 새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대호는 후반기에도 야후돔 외야로 홈런을 펑펑 쏘아 올릴 것이다.

 

 

[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