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공산당 1차 전당대회 장소 1921년 상하이의 작은 집에서 시작된 중국 공산당은 30년도 되지 않아 대륙을 장악하는 일당이 됐다 | |
ⓒ 조창완 |
1921년 7월 23일 상하이에 있는 리한쥔(李漢俊)의 집에 모인 지역 대표 12명으로 시작된 중국 공산당이 이렇게 성장할 것을 예감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마오쩌둥, 천두슈, 동필우 등의 인물이 말하듯 공산당은 만들어진지 30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정권을 잡았다.
실제로 수많은 정치적 위기가 있었던 덩샤오핑도 마오쩌둥이 당원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부활할 수 있었다. 지금 주석 시진핑도 당원이 될 수 있던 18세에 문화대혁명을 거쳤는데 아버지 시중쉰이 정치적 박해를 받으면서 자칫하면 당원이 되지 못할 뻔했다.
일반 공산당원은 18세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는데, 당원 2명 이상의 추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입이 쉽지 않다.
또 향후 중국 지도층이 될 후춘화나 왕양, 저우지앙 등도 모두 젊은 시절에 능력으로 인정받아 지도자 그룹에 들어온 이들이다. 반면에 보시라이는 부패사건등에 휘말려 당적까지 박탈당해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들을 길러낸 것은 칭화대, 베이징대, 지아통대, 푸단대 등 대학을 꼽을 수 있지만, 그들이 사회에 나온 후 기술과 관리 능력을 보강하는 당학교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하지만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지면서 당대 지도자들은 인문쪽에서도 많이 나온다.
▲ 따리엔 시정부를 지키는 경찰 중국 공산당은 경찰, 공안, 안전, 군대를 통해 중국을 지킨다 | |
ⓒ 조창완 |
필자가 접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길러진 인재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일하는 이들을 보면서 상급 관리자들은 어떤 이를 인재로 키울지 판단하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때문에 서른 중반이 넘으면서 그 지역에서 서열 2~3위에 오른 이들도 적지 않다.
또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 가운데서 통솔 능력과 친화력이 있는 이들을 선발해 빠른 시간 안에 준 최고 지도자급으로 올린 사례도 많이 봤다. 조직에서 이런 지도자들은 철저히 대우받고 키워져 어떨 때보면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공산당의 지도라는 이념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런 권위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기도 한다.
▲ 중국 공산당 교육의 가점 중앙당학교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 교육의 요람 중앙 당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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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재 교육의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 당학교다. 말 그대로 공산당 인재의 교육기관인 당학교 가운데 중심은 중앙당학교인데 교장은 차기 지도자가 맡는다. 현 주석 시진핑도 당학교 교장을 맡으면서 인재들과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넓히고, 공감의 폭을 키워 차기 집권기에 안정을 도모했다.
물론 부족한 이라면 이 과정에서 낙오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과해 지도자급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언행은 물론이고 카리스마까지도 교육 받아서 배출된다. 당학교는 각 성은 물론이고 아래 행정단위까지 있어, 당원을 교육하는 한편 조직력을 갖춘다.
▲ 잠시 짬을 낸 민공들 도시에서 일하는 민공들이 잠시 짬을 내어 쉬고 있다. 월급을 모아야 멀리 보이는 양복 한벌을 살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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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과 대척점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일반인들을 흔히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고 부른다. 공산당원, 특히 지도층을 말하는 링다오(領導)가 되지 못한 서민들이 실질적으로 중국을 움직이는 하늘이지만 이들의 삶은 결코 녹녹지 않다. 라오바이싱의 가장 생생한 계층들 중에 하나가 민공(民工)이다.
민공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 등지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노동자들을 말한다. 가건물이나 아파트 지하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 자식 교육조차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은 실제로 도시의 대부분을 만들어낸다.
▲ 샨시성 작은 마을의 시골 아이들 한나라 한신과 제갈량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갔던 샨시성 마을의 천진한 아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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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들이 없었다면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될 수도 없었고, 상하이나 베이징 같이 하루가 다른 마천루를 가진 국제도시도 만들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국의 민중은 극악한 상황이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았다는 특성이 있다.
왕조 교체기도 황제의 지나친 자만으로 일반인들이 굶어죽는 상황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나 아니면 북방의 강한 소수민족이 능력을 길러서 내려올 때 진행됐지, 민란으로 인한 사례는 거의 없다. 공산화 이후 수천만명이 굶어죽은 대약진 시기나 문화대혁명 시기도 민중의 동요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중국 라오바이싱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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