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中國]현지화 잘했다는 네슬레의 실패..수토불복(水土不服) 극복하지 못한 탓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4.06.16 09:05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널리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특유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 사고, 생활 방식이 있는 것이지 모든 문화권을 관통하는 '스탠더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억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브랜드가 중국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과신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최근 중국에서 아이스티 음료수 판매를 전격 중단한 네슬레도 마찬가지 사례다. 네슬레는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아이스티가 음료의 글로벌 스탠더드일 것으로 확신했다.
당연히 중국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중국인들은 네슬레의 아이스티를 거부하고, 토종 브랜드의 아이스티 즉 '차이나 스탠더드'를 선택했다.
↑ 외국기업들이 중국 현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하거나 철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매경DB>
네슬레가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중 대표적인 성공 기업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다. 네슬레는 M&A(인수합병)를 통한 현지화 전략의 모범 기업으로 평가돼 왔다. M&A를 통해 중국 내 유통망을 확보하는 전략은 중국 시장 진출의 교본으로 꼽힌다.
네슬레가 2001년 중국에서 '빙상차(氷爽茶·얼음처럼 시원한 차라는 뜻)'라는 이름의 아이스티를 출시했을 당시는 이미 캉스푸나 퉁이, 와하하 등 중국 토종 브랜드 음료가 차음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때였다.
네슬레는 이들과 정면승부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마케팅 타깃을 20대의 화이트칼라로 잡았다. 그에 걸맞은 파격적 광고도 제작했다. 파란 눈의 늘씬한 여성 모델이 빙산을 뚫고 나오는 광고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네슬레 중국시장서 철저하게 참패 구글도 중국 본토에서 완전 철수 중국인 취향 고려 전혀 안 한 탓
네슬레의 이런 마케팅 전략은 사실 코카콜라의 실패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코카콜라는 1998년 중국에서 첫 비탄산음료 '톈위디'를 내놨으나 2년 만에 판매를 접었다. 타깃 소비자층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네슬레는 코카콜라를 반면교사로 삼아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짰지만 시장점유율이 2008년 2.3%까지 올라간 것이 최고였다. 이후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지난해는 판매와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매량이 줄었다.
네슬레의 실패 원인에 대해 중국 내 전문가들은 몇 가지 요인을 꼽는다.
우선 제품 포지셔닝 전략이 잘못됐다는 평가다. 출시와 동시에 곧바로 캉스푸, 퉁이 등 중국 토종 브랜드 선두업체들을 따라잡겠다고 나선 것이 패착이 됐다. 그러다 보니 토종 브랜드와 동질화 현상이 벌어졌다. 소비자들이 굳이 토종 브랜드를 제쳐두고 네슬레를 집어 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네슬레 아이스티처럼 중국 시장에서 실패의 쓴맛을 본 글로벌 브랜드는 셀 수 없이 많다. 미국 구글은 중국 내 검색엔진 점유율 고작 2%를 넘지 못하면서 2010년 중국 본토에서 철수해 본부를 홍콩으로 옮겼다. 야후도 지난해 9월 중국 내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유통업체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유럽 최대 건자재업체인 프랑스 생고뱅은 2005년 중국에 첫 점포를 열었으나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7개 점포 전부 문을 닫았다. 고급 인테리어 시장을 겨냥했으나 중국 부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 탓이다.
세계적 유통업체 영국 테스코는 지난해 중국 유통업체인 화룬창업과 합작으로 전환하면서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미국 주택용품업체인 홈디포는 중국에 7개 대형 매장을 열었다가 문을 닫았다.
프랑스 식품업체 다논도 2008년 요거트 시장점유율을 11%까지 끌어올렸으나 결국 1%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2011년 상하이 요거트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수토불복(水土不服)'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수토불복은 어떤 지역에 처음 간 경우 자연 환경과 생활 습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각종 병적 증상을 말한다. 이제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풍토병을 이겨낼 전략을 세워야 한다.
[베이징 = 정혁훈 특파원 moneyjung@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1호(06.11~06.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