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논란으로 본 쇼트트랙 현실
다음스포츠 입력 2014.02.18 09:06 수정 2014.02.18 14:58
안현수 폭풍이 거세다. 여론의 쏠림현상도 과하다. 다른 주장은 모두 무시한다. 양쪽을 모두 들어봐야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말에만 의지하는 것을 넘어서 행동으로, 눈으로, 통찰력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꿰뚫어볼 수 있어야만 더욱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안현수 귀화와 관련된 몇 가지 사안, 쇼트트랙 태생적 한계, 한국쇼트트랙계 현실을 정리해본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차원일 뿐 내주장을 강요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안현수는 역대 세계 최고 쇼트트랙 스케이터다. 상대국의 방해 속에서도, 한국 다른 선수들의 견제 속에서도 자신의 기량으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천재 같은 선수다. 지금의 자신도 몸만 괜찮고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했다.
쇼트트랙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로 가야 했다. 귀화한 데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안현수를 비판할 의사가 없다. 그건 오로지 개인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결과도 개인이 담당하면 된다. 안현수가 귀화를 결심한 요인은 무척 다양할 수 있다.
올림픽을 통한 자기실현 욕구, 빙상계 부조리, 소속팀 해체, 우수한 쇼트트랙 선수 과다로 인한 올림픽 출전 불확실, 귀화국의 좋은 오퍼, 글로벌 선수 이주 및 귀화 트렌드 활성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하에서 개인적 부와 명예 선택 존중 경향 등이다. 물론 모든 게, 아니면 대부분이 조금씩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겠지만 그 중 안현수 본인에게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을 통한 자기실현 욕구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주종목이 부상전 1000m, 1500m에서 지금은 500m, 1000m로 바뀌었다. 3주 훈련에 1주 휴식이 지켜졌다. 본인이 힘들거나 몸이 아프면 훈련 대신 휴식을 취했다. 훈련도 안현수 위주로 이뤄졌다. 안현수가 1위로 레이스를 하고 다른 선수들은 안현수를 제치지 않은 전제 하에 2위 싸움을 벌이는 훈련도 했다.
이런 일들은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특혜 논란, 특정서수 밀어주기, 특정 선수 중심의 훈련, 금메달 만들어주기, 실력파 유망주 무시 논란 등 수많은 반대의견이 제기됐을 것이다. 러시아는 금메달이 필요했고 러시아는 금메달을 딸 실력이 안 됐다. 짧은 시간 동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방법은 귀화뿐이었다. 러시아와 안현수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안현수는 귀화했고 그래서 러시아는 전폭적으로 지원하면 기다릴 수 있었다.
2008년 부상당한 뒤 세 차례 수술한 안현수는 2009년 4월 열린 2010 밴쿠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탈락했다. 그리고 2010년 9월 열린 2010-2011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떨어졌다. 당시 안현수는 선발전이 당초 4월에서 9월로 옮겨진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5월 군사훈련을 다녀온 뒤 선발전이 열리는 9월까지 몸을 만들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때는 쇼트트랙계에 짬짜미 파문이 크게 터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발전 연기를 지시한 상태였다. 10월 이후까지 연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웠다. 왜냐하면 월드컵 등 다음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이 11월이기 때문이다.
빙상연맹이 9월로 연기한 것은 안현수를 배제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11월 시작되는 새 시즌에 대비해 국가 대표팀에게 한 달 정도 함께 훈련하고 장기훈련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파벌싸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내자 아버지는 "모든 걸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발언은 너무 많은 파장을 몰고 왔다. 안현수의 선전, 한국 국가대표팀의 부진, 빙상계 부패 사실 등이 맞물려 국내에서 안현수 폭풍이 몰아쳤고 친안현수 여론이 급속하게 형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림픽 기간 중 빙상연맹의 조사를 강력하게 지시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감사원, 그리고 정치인들까지 나서 대통령의 지시에 발빠르게 화답했다. 물론 이로 인해 빙상연맹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을 것이며 고위층이 갈리고 많은 게 개선되고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답답하고 서글픈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올림픽 메달을 못 따는 것만으로도 너무 속상할 것이다. 그래도 그건 선수로서는 핑계할 말도 없고 핑계를 대서도 안 된다.
그러나 안현수 귀화로 인한 파벌논란, 대통령의 강도 높은 조사지시 등에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국가대표팀은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그건 국가 대표팀이 제어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으며, 막아낼 수도 없는 너무나도 막강한 힘으로 다가왔다. 안현수 아버지가 만일 아들이 귀화한 것은 부상 때문이었고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파벌 논란을 거론하는 것은 용감했지만 그걸 아들의 탈락과 러시아 귀화 이유로 삼기보다는 빙상계가 개혁돼야할 부분으로 따로 떼어내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안현수의 성공에 대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나, 누가 잘 했고 누가 잘못했다는 식이 아니라 순수하게 축하하는 분위기가 더 무르익지 않았을까.
정충희 KBS 스포츠부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발로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안현수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질수록 안현수의 승리에 그림자가 드리울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적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한국쇼트트랙계 간판 선수들은 어떤 식으로든 득을 봤고 어떤 때는 해도 봤다. 그건 안현수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출신학교에 따른 파벌이 과거보다는 다소 약해졌다. 그러면서 불거지고 있는 게 소속팀별 파벌이다. 지금 국가 대표팀에도 선수와 감독의 소속팀이 달라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은 관계도 있다.
같은 소속팀 선수들이 국내대회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하면 서로 짬짜미를 하는 경향이 많다. 거기에 지금은 전명규 부회장의 전횡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적잖은 쇼트트랙 관계자들과 학부모, 쇼트트랙 담당기자들은 전 부회장을 비판하고 있으면 필자도 동의한다.
지금 쇼트트랙계 관계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출신학교를 따지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소속팀에 따라 서로 뭉쳤다가 헤어졌다가, 동지가 됐다가, 적이 됐다가 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뭉치고 자신에게 피해가 되면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쇼트트랙계 잡음이 왜 평소에는 별로 불거지지 않는데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대회를 전후에서 집중적으로 나올까.
그건 그 때마다 손해를 보는 쪽이 불만을 품고 과거 이야기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쪽도 과거 자신이 득을 볼 때는 쉬쉬했으며 미래 자신들이 볼 이득을 위해 짬짜미도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변함없는 쇼트트랙계 실정이다.
그게 우리는 쇼트트랙계의 팀 전략이라고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게 바로 짬짜미다. 그게 국내대회에서 열리면 짬짜미가 되고 국제대회에서 하면 팀 전략으로 다르게 인식될 뿐 내용은 똑같다. 즉 짬짜미, 팀 전략, 우리 선수가 또는 내가 좋아는 선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합심해서 노력하면서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것,
그건 쇼트트랙의 태생적인 특징이며 지속되고 있는 경기방식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짬짜미를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짬짜미가 팀 전략의 비슷하며 그게 쇼트트랙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태생적 특성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걸 이해하면 쇼트트랙 선수들이 왜 짬짜미를 하는지, 그러면서도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왜 일반사람들 만큼 느끼지 못하는지, 왜 자신이 손해를 볼 경우 참지 못하고 과거 이야기를 폭로하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4명이 뛰는 계주에서도 3명이 어느 정도 기량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 출중한 에이스 한명만 있다면 하위 팀이 단기간에 상위 팀이 될 수 있다. 물론 훈련을 열심히 하면 그만큼 스피드가 좋아지고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쇼트트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력 이외 변수가 너무 많은 데다, 그게 승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게 선수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자주 퇴색시키는 것은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굵직한 국제대회마다 행운의 우승자가 나오고 불운을 탓하는 선수들이 생기며 메달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연성이 크다는 의미다. 우연한 변수는 어느 종목에도 있지만 지금처럼 선수 4명이 동시에 레이스를 펼치는 쇼트트랙에서는 너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기에 짬짜미, 다른 말로 하면 팀 전략이 공식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레이스를 1대1로 하는 식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경기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두 선수의 격차가 어느 정도 시점에, 어느 정도 벌어지면 승부가 난 것으로 하거나, 둘 다 넘어지는 경우 가해자를 탈락시키고 피해자를 통과시키는 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
무엇보다 1대1 매치를 벌이면 짬짜미의 개연성과 우연성의 개입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예선뿐만 아니라 결승전 또는 동메달 결정전까지 1대1로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개혁할 의지만 있다면 개선시킬 방법은 있다. 그렇게 쇼트트랙은 올림픽에 존재해야지, 지금과 같은 방식과 형태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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