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이유
2013/10/24 10:43 세일러의 블로그
앞서 팍스콘의 기술축적이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분명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작 팍스콘이 대만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축적이 있다고 해도 대만의 것이지 중국의 것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 중국의 수출분야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외국인의 투자와 소유 비율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2008년의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 기업은 중국의 전체 수출 중 55%, 전체 수입 중 5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첨단기술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대 중반에 90%에 육박했다.
이는 대규모 수출주도형 국가(일본·한국·대만)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일본과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나 외국인 소유기업이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성장했고, 대만은 일본·한국보다는 다국적기업과 좀 더 관련을 맺었지만 오늘날의 중국에서 보듯이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랑셴핑 교수는 중국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분개하면서, 중국의 제조업과 근로자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진 것에 대해,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할 때부터 미국을 위시한 서구 각국의 어떤 음모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랑셴핑 교수는 우선 정보화 시대의 세계화의 특성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음으로 랑셴핑 교수가 몰랐던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을 조장한 것이 바로 중국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팍스콘, 콴타, 아수스와 같은 대만의 대형 제조업체들(하청생산 전문업체들)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이 이와 같은 공장을 직접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는 1990년대부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새로운 차원의 국제분업구조가 형성되면서 세계경제 자체가 전면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는 팍스콘 모델과 같은 아웃소싱 생산방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화 혁명의 결과 생산방식이 변하면서 이제 숙련기술자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타국에 공장을 설립하더라도 보안 유지가 가능하며, 네트워크의 발달로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자기가 직접 생산할지라도 저임금 국가에 생산공장을 설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하지만 당시 저임금·저개발 국가들은 직접적인 외국인 소유를 허용하지 않고 합작사 형태 등의 일정한 제약조건을 두는 계약 형태를 고집했다. 합작사 형태가 되면 저임금 따먹기 만이 아니라 경영성과 자체를 분배받을 수 있고, 기술이전이 가능하며, 나중에 선진국 파트너가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하더라도 거래선이 남게 된다.
이와 같은 저임금 국가들의 요구조건은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공장 이전을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이 때 새로이 등장한 중국(중국이 세계경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이 글로벌 기업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기업과 생산공장을 아무런 조건없이 직접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외국 기업들에게 제약조건 없이 전면적인 소유를 허용하자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들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러시를 이루게 되었다. 미국, 유럽,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도 모두 중국에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 이미 설립했던 공장도 철수해서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일정한 제약조건을 두는 계약 형태를 고집했던 국가들이 점점 중국에게 시장을 잃어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중국의 고속성장 지속이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 구조에서 일어난 일의 전말이 바로 이와 같다. 1990년대 이후 중국에는 외국인 직접투자(생산공장 설립)가 줄을 이었고, 그 결과 중국의 수출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오늘날 무역은 ‘관계무역’이라는 사실을 앞서 설명했다. 관계무역은 투자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삼성전자가 중국에 설립한 공장에서 생산된 갤럭시S가 미국으로 수출되면, 이는 중국의 수출로 집계된다.)
이처럼 중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중국의 수출이 무서운 속도로 늘어날 때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유입되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줄어들고 있었고, 이들 나라의 수출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어느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근린궁핍화를 초래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지만, 이와 같은 성과(이 중 상당액은 무역흑자를 가장한 핫머니가 유입된 결과라는 사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는 이웃나라들에게 근린궁핍화라는 피해를 입힌 결과였던 것이다.
중국 때문에 이제는 다른 개도국들도 글로벌 생산 체제에 참여하려면 광범위한 외국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이 개도국들의 계약조건을 악화시키고 이윤율을 낮추어버린 주범인 셈이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중국이 1978년 이후 등소평 주도하에 개혁개방정책으로 돌아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개혁개방정책이라도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그 이전과 이후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은 거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는 중국의 국가체제에 일대 위기를 몰고왔다.
천안문 사태가 있기 전까지 중국에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뒷받침하는 정통성의 기반이 존재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스스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자부심, 공산당의 영도 하에 전 인민이 합심하여 서구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성취했다는 자부심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인민의 군대라고 생각했던 인민해방군이 천안문 사태를 무력진압하기 위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순간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로 인해 중국 인민들이 느껴야 했던 정신적 공황상태와 무기력증은 심각한 것이었다.
과거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눈 앞에 벌어진 사태를 설명하고 통치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해주는(인민들에게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공산주의 = 전체주의 = 철권통치, 라고 간단히 등치시키지만,
사실 그 어떤 정권도 무력만으로는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 무력을 동원해서 당장의 유혈진압은 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통치를 이어가려면 피치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정통성의 기반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향후 중국을 어떻게 통치해나갈 것인가를 놓고 공산당 내에서는 등소평이 이끄는 개혁파와 무력진압을 주도했던 이붕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권력투쟁에서 등소평과 그 뒤를 이은 장쩌민은 수세에 몰렸다. 천안문 사태를 강제진압하기 위해 보수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던 개혁파는 보수파의 공세로 정국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었다. 보수파들은 천안문 사태와 같은 위기가 초래된 원인이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 탓이라고 하면서, 등소평을 승계하여 들어선 장쩌민에게 전통적인 모택동주의로 돌아가라고 압력을 가했다.
개혁개방은 자본주의 정책이며 사회주의 유산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노골적인 공격이 가해지는 지경이었다. 이 권력투쟁은 보수파의 승리로 끝났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등소평은 모든 공직을 내놓고 물러났고, 그를 계승한 장쩌민은 당내의 입지를 거의 잃고 말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을 뒤집은 것이 등소평의 남순강화(1992년)였다. 오늘날 등소평의 남순강화는 신화에 가까운 의미를 띨 정도로 치장되고 있지만, 위기에 처한 등소평이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필시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은, 군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등소평의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마침내 중국 군부가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자, 이를 토대로 장쩌민 등의 개혁파들은 이붕 일파를 억누르고 당내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공산당 내 개혁파들은 개혁개방정책을 통한 성과를 빨리 보여주어야만 했다. 성과가 부진한 것으로 판명되면 권력은 언제든 다시 보수파들에게 넘어갈 수 있었다.
천안문 사태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인민들에게도 정치적 자유 대신 경제성장을 약속했다. 1839년에 벌어진 아편전쟁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이래 중국의 역사는 서구로부터 100년 동안 일방적인 모욕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중국인들의 숙원은 빨리 부국강병을 이루어 위대한 중국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대신 중국인들에게 100년의 숙원인 부국강병을 빨리 이루겠다(경제성장, 산업강국 건설)는 약속을 내건 셈이 되었다. 이를 달성하는 것으로 권력의 정당성의 기반을 삼고자 한 것이다.
결국 1992년 이후 등소평과 장쩌민이 이끄는 개혁파들은 개혁개방정책을 통한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보여주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다국적 기업들에게 아무런 제약조건 없이 기업과 생산공장을 직접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버린 것이다.
1978년부터 실시해온 개혁개방 정책은 이상과 같은 사정으로 인해 1990년대 초반에 매우 적극적(사실은 필사적)인 것으로 변했다.
중국은 이 때부터 글로벌 생산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기존에 다른 저개발국들이 유지해온 합작사 설립 등의 제한조건을 깨끗이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그에 따라 다국적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공장을 설립하여 저임금 노동을 활용하면서도 기술이전을 해줄 필요도 없고, 합작사로서 경영성과를 분배해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철수할 수 있고, 철수하면서 거래선을 남겨줄 필요도 없게 되었다.
결국 이때 중국의 행보는 치밀한 고심 끝에 마련한 장기적인 비전이나 산업을 일으키고 경쟁자를 따돌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다.
중국은 최대한 빨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만 있다면 무슨 조건이든 수용했다. 이는 무턱대고 추진하는 미봉책에 가까웠다.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세우고 세계시장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시변통에 가까웠고 별다른 체계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저 무조건 세계화의 물결에 몸을 던지고 외부의 요구는 무엇이건 수용했다. 글로벌 생산사슬production chain을 관리하고 있는 해외 기업들에게 문을 활짝 열고, 해당 기업이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생산활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조건없는 국내 상륙을 허용했다. 스스로 생산체체를 구축하기보다 이미 작동하고 있으며 해외기업들이 관리하고 통제하는 글로벌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이다.
결국 그동안 이룬 중국의 경제성장은 경제발전의 규칙을 새로 쓰면서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중국이 자신의 비전에 따라 세계를 재편한 것도 아니다. 또한 독자적인 규칙에 따라 만든 게임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세계의 선진국들, 특히 미국의 주도로 생성되고 정의된 규칙(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라 운영되는 게임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이 워싱턴 컨센서스와 대립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성공적으로 확립하여 미국과 대치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터무니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은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규칙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나라인 셈이다.
중국은 이런 세계화의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 결과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현재와 같은 성장을 이룬 것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적인 분업 체제의 요구조건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철두철미하게 받아들이면서 적극 참여했고, 그 결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 극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중국의 이러한 변화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중국이 제조업으로 특화해주자(제조업 통제를 받아들여주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유럽, 일본)은 제조업보다 훨씬 고부가가치이며 훨씬 따라하기도 힘든 분야인 지식산업과 신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업 과정에서 중국이 상당히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선진국들은 중국과 비슷하거나 더욱 눈부신 경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는 경제성장률의 높낮이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글로벌 분업 과정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미국이었다. 요사이 미국이 온통 혁신을 몽땅 다 주도하고 있는 것이 그 성과를 보여준다.
미국이 여전히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생산활동)를 끌어안고 있어야 했다면(자신의 희소자원을 제조에도 투여해야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혁신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이 제조업 통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과거에 한국, 대만 등이 받아냈던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제조물품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기술축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중국 인민들이 땀흘린 노력의 결과를 헐값으로 미국에 넘겨버린 것이라 할 수도 있다.
ㅇ 삼성전자가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것일까?
이상과 같은 분석에 대해, 가전제품의 하이얼, IBM의 씽크패트 노트북PC를 인수한 레노버, 볼보를 인수한 지리자동차(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동차), 스마트폰의 샤오미 등의 사례를 들면서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모두 자체 브랜드 제품을 해외시장에 내놓고 있는 중국의 대기업들이다. 중국 정부도 이들을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들처럼 육성하고자 물심 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분명 이들의 존재를 무시하고서 모든 중국기업들을 팍스콘과 유사한 존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첨단기술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살펴본 바 있다. 즉 이들 자체 브랜드 제조 대기업들이 중국의 수출산업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뿐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PC생산 수출국이지만, 그 대다수는 델 등의 OEM 생산수출인 것이지 그 중에서 레노버가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비중은 미약하기만 하다.
중국이 세계 최대 핸드폰 생산국가지만 그 중 샤오미와 레노버(역시 스마트폰을 만든다)처럼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비중은 미약하고, 그 대부분은 팍스콘과 같은 하청생산전문 업체들이거나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가 중국에 자체 생산공장을 두고 생산하는 것들이다.
즉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과 인민들의 고용은 이들 외국인 투자 기업의 손에 달린 것이다.
그 외에도 이제는 제조업이 범용화되었다는 사실(지난 글에서 설명했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제조업이 범용화되면서 그 부가가치가 매우 낮아졌고,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이제 고가품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낮은 ‘일용품’화되었다.
지난 글에서 PC 생산의 마진구조를 살펴보았는데, 아이폰의 경우와 달리 자신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델의 마진조차도 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이익은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CPU를 제공하는 인텔이 가져간다.
그 이유는 오늘날 데스크탑, 노트북 컴퓨터와 관련한 혁신은 운영체제와 CPU에 담기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 경쟁은 인텔과 AMD사의 CPU 성능 경쟁으로 표현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인 windows를 획기적으로 개편했을 경우 화제꺼리가 되지만, 델이나 HP, 에이서, 삼성전자 등의 개인용 컴퓨터 생산업체가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이들 기업이 개인용 컴퓨터의 혁신과 관련하여 하는 역할은 거의 없다. 이들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직접생산한다고 할 지라도, 인텔의 CPU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부품을 세계 각지의 회사들로부터 조달하여 조립한 후 거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심어서 출고하는 것 뿐이다. 즉 팍스콘의 단순 조립생산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제 개인용 컴퓨터 생산은 자체 브랜드로 판매한다 할지라도 지극히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IBM이 자신의 PC 사업 부문을 레노버에게 거리낌없이 양도한 것이다. 이를 인수한 레노버가 개인용 컴퓨터의 혁신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그에 따라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도 매우 낮다.
자동차산업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오늘날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 부가가치는 매우 낮아졌다. 현대자동차가 포니엑셀을 미국에 수출하던 1980년대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중국업체의 경우 부품의 국산화율이 낮다는 사실을 우선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이제 자동차에서도 핵심역량 자체가 정보기술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동 주차기술은 이미 실용화되었고, 구글은 무인운전기술을 상용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구글은 자신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애플은 자신의 운영체제인 iOS를 자동차에 심으려 하고 있다. 앞으로 구글이 자동차 관련해서도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 될지 모른다.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면 배터리업체 역시 키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면서, 이제 ‘물질적’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술은 아무 것도 아닌 범용기술로 전락했다. 선진국으로부터 필요한 생산장비(노하우가 내장된)를 도입하여 공장을 세우고, 미국, 일본, 독일, 한국 등으로부터 핵심부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품을 수입하면 ‘단순조립’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볼보를 중국의 지리자동차가 인수하는 것에 대해 유럽도 미국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의 스마트폰 생산업체 샤오미는 눈에 띄는 디자인을 갖춘 고급 제품을 만들어내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이제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는 중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스마트폰 자체가 이제 PC화하고 있는 중이다.
스마트폰의 경쟁 역시 애플과 구글 사이의 운영체제 경쟁이라는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제조 공정을 다른 업체에게 아웃소싱한다. 혁신의 주인공은 실제로 제조를 담당하는 기업이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한국인들은 삼성전자가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구글이 생산을 아웃소싱한 업체 중 하나일 뿐이다.
갤럭시S는 삼성전자의 실력이 아니다. 옴니아II가 삼성전자의 실력이다. 옴니아II는 삼성이 아이폰의 한국 상륙을 3년간이나 억지로 틀어막으면서 필사적으로 개발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옴니아II는 삼성과 사용자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당시 옴니아II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그 원성의 목소리들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에게 놀라운 것이 있다면 제품 개발력이 아니라 언론장악력이다. 당시 옴니아II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그대로 보도되었다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뻔했다. 결국 옴니아II의 실패로 두 손 든 삼성이 구글의 통제를 받아들인 결과 내놓을 수 있었던 제품이 갤럭시S인 것이다.
요즘은 인도의 마이크로맥스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도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며 무섭게 성장중이다. 현재 삼성전자에 뒤이어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위지만 조만간 역전시킬 기세다.
이제 스마트폰은 PC처럼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는 범용제품이자 일용품이 되었고, 그 생산 역시 PC의 생산처럼 단순조립 생산이 되어버렸다.
그에 따라 스마트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졌다. 노키아, 블랙베리, HTC가 몰락했다. 수년 전 노키아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삼성전자의 미래가 걱정없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생산’업체들이 모두 망해나간다 해도 운영체제와 앱마켓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은 아무 문제없다. 애플은 아이튠즈 계정에 5.7억명의 신용카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한다. 구글 역시 비슷할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삼성전자 역시 무수한 스마트폰 생산업체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메인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등 스마트폰의 부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점에서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생산업체로서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업체들 중 하나일 뿐이며, 오늘 현재 다른 업체들보다 좀 더 잘하고 있지만, 내일이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노키아가 바로 그랬다.
해외언론이 자꾸 삼성전자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애플보다 시가총액과 PER가 형편없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역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섬유는 어느 나라나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에는 최고 부가가치를 낳던 첨단산업이 바로 섬유산업이었다. 당시 영국은 기를 쓰고 섬유산업 관련 기술을 지키고자 했지 이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식민지였던 인도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전통적인 면방직업을 고의적으로 파괴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조차도 섬유산업을 중국과 베트남으로 넘겨주었다. 최근 중국조차도 방글라데시로 넘겨주는 중이다. 왜 그럴까? 섬유산업의 부가가치가 너무 낮아져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나라가 섬유산업을 자신의 주력산업으로 삼는다는 얘기는 방글라데시와 같은 국민소득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방글라데시의 국민소득은 2012년에 $2,100(PPP) 정도로 추산된다.
이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이라면 다른 나라에 넘겨줄 리가 없다. 저부가가치 범용산업이기에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것이다.
최근 제조업은 전반적으로 섬유산업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자계통의 제조업의 경우 섬유나 의류보다 엄연히 부가가치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조업이 범용화되면서 점점 더 부가가치가 떨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 때문에 IBM이 자신의 PC 사업 부문을 레노버에게 거리낌없이 양도한 것이다.
이상으로 중국의 레노버, 지리자동차, 샤오미 등 자체 브랜드 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대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의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 결과 이들이 핵심부품(혁신의 성과가 여기 들어있는)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부품의 국산화율이 낮기 때문에 비록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다고 해도 역시 단순 조립생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상태로는 이들 업체들이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선진 글로벌기업들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결국 중국의 수출산업은 자체 브랜드 수출기업들까지 포함해서 대부분 단순조립생산을 하는 가공무역processing trade일 뿐이다.
첨단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대부분 수입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완성품의 핵심 기술을 담고 있는 것은 이들 수입 부품이다. 첨단제품과 관련된 모든 ‘첨단’의 요소, 즉 지식, 혁신, 정밀성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는 부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중국의 수출산업은 이처럼 반제품이나 이미 만들어진 부품을 들여다가 조립한 후 수출할 뿐이어서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이처럼 단순조립생산 수출에 압도적인 비중으로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 중국 수출산업의 특징이며, 이 점에서 한국·대만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스타인펠드 교수는 세계은행과 공동으로 실시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와 같은 실태를 밝힌 바 있다. 중국기업들 중에서 전자제품, IT, 자동차 등 첨단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1500개 기업의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기업이 외국회사가 설계한 디자인과 규격에 따라 부품을 생산하거나 외국 상표의 제품을 가공 및 최종 조립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들은 첨단기술 산업에 참여하고는 있으나 글로벌 생산사슬 중에서 가장 표준화되고 차별화되지 않은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이윤폭도 매우 작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핵심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팍스콘의 사례와 유사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팍스콘의 경우 2010년 한 해 동안 13명의 근로자가 연속으로 투신자살했던 사건으로 세계의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고 이에 대해 미국 내의 여론도 악화되자 애플이 마진폭을 조금 더 양보해주었다. 그 결과 팍스콘은 900위안이던 근로자의 기본급을 1200위안으로, 다시 2000위안으로 인상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팍스콘은 임금수준이 더 낮은 서부 내륙으로 옮길 계획을 검토하고 있으며, 생산 공정에 로봇 도입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팍스콘은 가격을 맞추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여론이 좋지않으니 애플이 마진폭을 잠시 양보한 것일 뿐 영원히 그와 같은 상태가 계속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랑셴핑 교수는 월마트가 판매하는 상품을 하청생산하던 랑사, 자싱, 보산 등의 사례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월마트의 요구조건을 견디다 못해 결국 월마트가 요구하는 가격조건을 맞출 수 없다고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월마트는 오더를 옮겨가버렸고, 이들 하청생산업체들은 처음에 들여왔던 고가의 생산설비 투자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에 거액의 고정비용을 투자한 부담 때문에 하청생산업체들은 일시적으로 노마진을 감수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래저래 하청생산업체들이 마진을 쥐어짜일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중국 생산업체들의 희생을 토대로 전 세계는 지난 2006년까지 지속되었던 초호황기에도 ‘저물가’를 누를 수 있었다. 지난 2008년처럼 원자재 가격이 일시에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경우에도 중국의 생산업체들은 이를 제품가격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노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스스로 흡수해야 했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 국내 물가 동향을 돌이켜보면, 국제 원자재 가격의 큰 폭 상승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리 크게 오르지는 않았었다. 이 때문에 소비자물가 통계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의 생필품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수입된다는 사정 역시 국내의 소비자물가를 어느 정도 묶어두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 세계는 중국의 생산기업들 덕분에 저물가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수익률은 어떻게 될까?
중국경제가 고도성장으로 전세계의 찬탄을 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의 수익률은 줄곧 하락하기만 하고, 중국 주식시장이 부진하기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랑셴핑 교수가 중국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분개하는 것도 바로 이상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분석은 중국에 대해 형성된 통상적인 관념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선뜻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얻게 된다.
그 중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도 하지 못하는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는 기술력, 첨단 스텔스전투기(스텔스 성능은 입증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의심스럽지만,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에 필적하는 초음속 전투기를 만들어내는 기술력을 갖춘 것은 분명 사실이다)를 만들어내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구소련이 미국에 필적할 만한 첨단 군사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경제가 붕괴하고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비극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중국은 1950년대부터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항공산업을 육성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상업용 항공기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국제 상업용 항공기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처럼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첨단군사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경우 개발비용과 생산원가는 문제되지 않는다)과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때는 개발비용과 생산원가가 문제가 된다)은 서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1980년대 일본산 ‘코끼리밥솥’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정식 수입이 금지돼있던 제품이기에 돈을 가지고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이 일제 밥솥은 富의 상징이라고까지 여겨져서 주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이 일본 언론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자 당시
서슬퍼런 군사정부의 명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오늘날 한국의 전기밥솥이 중국 관광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제품 개발역량이 일본을 누른 것일까?
당시 일본의 ‘코끼리밥솥’이 아무리 뛰어난 제품이라고 할 지라도 일본의 일개 중소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일 뿐이다. 한국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경우(개발에 투입하는 비용이 얼마가 들든 불문하고서) 충분히 누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산업의 모든 분야에 이와 같이 과다한 개발비용을 투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시장성 있는 제품이란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전략적 차원에서 개발비용과 생산원가를 불문하고 개발한 첨단군사기술을 가지고 해당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구소련은 첨단 군사기술과 기초과학 분야의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산업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이와 상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마크 파버는 1991년에 부의 분수라는 그림으로 신흥시장들의 발전단계와 성장의 정도를 분류해서 제시한 적이 있다. 여기서 중국은 신흥시장 국가들 중에서도 맨 하단에 위치해 있었다. 중국의 성장잠재력을 가장 낮게 평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결과 먼저 개발을 시작한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페루, 인도, 필리핀, 아르헨티나보다 더 높은 성장단계에 접어들었고, 이에 대해 마크 파버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 파버의 예측은 실수가 아니었다. 드러커 역시 당시에는 아무도 중국의 성장을 결코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성장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 중국보다 먼저 성장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 즐비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선발주자들을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앞서 설명했듯이 글로벌 분업체제의 요구조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 중국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중국에 집중된 경제성장의 성과는 중국보다 선발주자였던 나라들이 가져갔을 것이다.
중국이 글로벌 국제분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미국 등 선진국이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갔다고 하지만, 그 결과 중국이 고도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 사실이다. 기술축적도 없이 저임금 착취를 당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박리다매’로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쌓은 것도 사실이다.
기술축적이 미약했다고는 하나 중국 경제가 큰 폭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생산성 향상이 있기에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그 생산성 향상이 자체적으로 이룬 혁신의 결과가 아니라 생산장비, 기계에 내장된 노하우라는 형태로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며, 이처럼 기계에 내장된 노하우의 구매는 자체적인 노하우와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결과 어쨌든 단시일 내에 생산성을 큰 폭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도 분명 사실이다.
‘압축성장’, ‘고속성장’ 사례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이루는데 40년이 걸렸다. 이에 비해 중국은 20년만에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어쨌든 결과는 좋은 것인가?
중국 경제가 커다란 ‘변동성’을 떠안았다는 점이 문제이고, 바로 지금 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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